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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 다시 읽는 큰스님 법문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799

 

 

지금 오늘 열반 재를 모시는 금타金陀대화상大和尙, 이분이 출현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분은 말없이 조용히 가셨습니다. 정작 우담바라화 꽃이라고 하면은 지금 세상 같으면 굉장히 혼란도 하고 시끄러울 것입니다마는 이분은 그와 같이 우담바라화에 비길만한 위대한 분인데도 조용히 말없이 가셨습니다.

 

이러한 데에 수행자의 귀감龜鑑이 되는 것입니다. 서둘지 않고, 내세우지 않고, 오직 바로 닦고서 바로 닦은 그런 향기로운 훈향薰香만 남기고 가셨습니다. 오늘 제 말씀은 주로 금타金陀 대화상 이분의 부처님의 정법正法을 옮긴 가운데,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으로 몇 군데만 발췌해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분은 1898329일에 전라북도 고창군 성속면에서 출생하셨습니다. 그리고 19371117일 당 39세 때 대각大覺을 성취하신 분입니다. 분명히 성취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1948년 한창 일할 수 있는 오십 세에 입멸하셨습니다.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사회가 혼돈하고 또는 우리 길을 밝히는 등불이 부족할 때는 특히 이러한 위인들이, 이러한 선지식善知識들의 자취가 그립고도 그리운 것입니다.

 

첫째 이분께서는,

오늘 말씀드릴 양이 좀 많아서 띄엄띄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 20세기 문명사 가운데서 제일 소중한 가르침, 이것이 선입니다. 다시 말할 것도 없이 우리 불교가 모든 종교, 철학 또는 과학, 이러한 것 인류 문화의 모든 것을 다 합해서 최고 지상의 가르침이 불교입니다마는 그런 가운데도 역시 최상의 법, 무상심심법無上甚深法, 또는 우리 인간이 되고자 하는 본래 인간을 성취하는 그러한 가장 소중한 법, 이것이 참선參禪입니다.

 

따라서 현대 문명의 정수精髓를 알려면 꼭 참선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도인들이나 참선법에 대해서 말씀 안하신 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참선법에 있어서 참선법도 근기에 따라서 여러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마는, 참선법 가운데서 제일 지상의 법, 제일 고도한 지상의 법, 말로도 표현 못하고 생각으로 우리가 헤아리지도 못하고 문자로 표현도 못하고 그러한 심심 미묘한 참선법, 이것이 조사선祖師禪 도리입니다.

 

참선법에는 뒤에 설명이 있습니다만 보통 불교외의, 불교를 믿지 않는 즉 정견을 갖지 않는 분들이 닦는, 요새 말하는 명상법 하는 그런 외도선外道禪법이 있습니다. 정법이 아닌 분들이 닦는 참선법 이것은 그냥 자기의 어느 이욕利慾이나, 어느 재능이나, 어떠한 기능을 구해서 닦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 그다음에는 범부선凡夫禪이라 인과도 믿고 약간의 그런 바른 견해는 좀 있다 하더라도 마음의 열리지 않아서, 마음이 옹졸한 대로 믿는 그러한 분들이 닦는 참선 이것이 범부선입니다.

 

그다음은 소승선小乘禪이라, 불법을 연구해 내가 없다, 즉 자기가 원래 없음을 안다 말입니다. 불교의 요체는 먼저 자기가 본래 없다 하는 무아無我의 도리, 이것을 아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몸뚱이가 지금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는 견해, 내가 보는 망념된 견해가 없다 말입니다. 자기가 보는 그런 망념된 견해가 없는 것을 모르면 불교인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비록 나의 이러한 형체는 있다 하더라도, 내가 보는 정도로 좋다, 궂다, 또는 시, 다 하는 것은 없다 말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가운데서 우선 내가 없다하는 내 몸 이것은 지, ,, 사대가 합해서 내 몸이 이루어졌고, 내 생각 이것은 수와 상과 행과 식이라, 즉 우리가 감수하고 상상하고, 분별 시비하고 이런 것들이 모여서 내 마음이 되었다 말입니다. 이런 것을 알고서 닦는 선 이것이 소승선小乘禪입니다.

 

그러나 소승선은 일체만유一切萬有가 제법이 공이라, 일체 만유가 다 공인 줄을 모릅니다. 겨우 내가 공인 줄은 알지만은 우주 만유가 본래 공인 줄은 모른다 말입니다. 헌데 나도 공이요, 우주 만유의 만법이 공인 줄을 느끼고 닦는다 말입니다. 이것이 대승선大乘禪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마음이 열리는 선법은 못됩니다.

 

그래서 가장 고도한 선법, 이것이 최상승선最上乘禪, 가장 높은 선법, 이것이 바로 조사선祖師禪입니다. 이것은 어떤 것인가 하면은 비록 내가 어두워서 못 느끼고 있다 하다더라도 본래시불本來是佛이라, 내 자성自性 내 불성佛性이나 우주 만유가 본래 부처란 말입니다.

 

우리 중생이 어두워서 못 느끼고 있다 하더라도 성자가 바로 보면 본래 부처입니다. 본래시불이라 본래 바로 부처란 말입니다. 내가 깨달은 뒤에 부처가 아니라 바로 보면 중생 이대로 바로 부처다 말입니다. 악인이나 선인이나 다 부처입니다. 바로 보면 또 산이나 냇이나 하나의 미물이나 모두 다 부처입니다.

 

이와 같이 중생이 보면 천차만별로 차이가 있고, 또는 선악 시비가 있다 하더라도 성자의 바른 견해, 바른 정견에서 본다고 그러면은 모두가 바로 본래 부처입니다. 본래 부처이니까 그 가운데는 일체 공덕功德이 다 포함되어 있다 말입니다. 부처란 것은 일체 공덕이 다 포함되어 있는 자비나 지혜나, 또는 영생도 하고 또는 신통자재도 하고 또는 번뇌도 없고, 청정하고 이러한 것들, 우리 인간이 생각할 수 없는 그러한 모든 공덕, 이러한 것이 포함된 생명체 이것이 부처입니다. 우리 중생이 말로도 다 못하고 또는 어느 성자가 몇 겁을 통해서 설법한다 하더라도 못할 정도의 무량공덕無量功德, 이런 공덕을 포함한 생명체 이것이 부처입니다.

 

바로 이러한 부처임을 먼저 우리가 깨닫는단 말입니다. 이와 같이 본래시불本來是佛이라 본래 부처이니까 무루지성無漏智性 본자구족本自具足이라,’ 번뇌를 떠나버린 일체 공덕이 다 포함되어 있단 말입니다. 따라서 심시불心是佛이라 이 마음이 바로 부처요, 또는 천지 만유가 바로 부처임을 딱 느끼고 닦는 선, 이 선법 이것이 최상승선 바로 조사선祖師禪입니다.

 

비록 우리가 화두話頭를 들고 염불念佛을 하고 또는 묵조黙照를 하고 선법을 취한다 하더라도 이와 같이 본래시불本來是佛이요, 본래 바로 부처요 일체 공덕이 다 포함되어 있는 것을 못 느끼고 닦으면 이것은 참다운 선법이 못됩니다.

 

너무 길어지니까 짤막짤막하니 넘어가겠습니다만, 그러한 조사선祖師禪법인 간화선看話禪과 화두를 참구하는 선과 또는 묵조선黙照禪과 지금 조동종이나 원불교 같은 그런 선은 묵조선입니다. 이것도 역시 훌륭한 선법입니다. 또는 염불선과, 부처님의 명호를 그때는 화두로 한다 말입니다. 염불선은 부처님의 명호 즉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나 아미타불阿彌陀佛이나 부처님의 명호를 화두로 하는 것입니다.

 

히 염불선念佛禪에 역점을 두어, 위기 충만하고 불안한 현대과학 문명시대에 시기 상응한 선법禪法임을 제창提唱 하였으며 특히보리방편문菩提方便門으로써 선오후수先悟後修

 

먼저 깨닫고 뒤에 닦는, 보조(普照知訥, 1158~1210)국사國師 말씀으로 하면 돈오점수頓悟漸修지요 돈오점수를 비판하는 분도 있겠지만 보조국사 말씀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보조국사뿐만 아니라 종밀(宗密, 780~840)선사禪師나 또는 화엄경華嚴經이나 육조단경六祖壇經이나 모두가 다 선오후수先悟後修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단지 지금 보조국사의 돈오점수를 비판하는 분들은 오란 개념, 깨닫는다는 오란 개념에 대해서 혼돈을 일으키기 때문에 비판을 하는 것입니다. 보조국사의 말씀은 틀림이 없습니다.

 

보리방편문菩提方便門이것은 선오후수라는 먼저 이치를 깨닫고 닦는 즉 말하자면 정견正見을 확립시키는 그런데 굉장히 중요한 법문입니다. 이것은 용수보살龍樹菩薩이 찬보리심론菩提心論에 있는 것인데, 내용은 적당한 기회에 소개해 드리겠습니다마는 심즉시불心卽是佛이라, 바로 마음이 부처임을 간명히 간단명료하니 도파道破한 법문입니다. 따라서 그것을 보면 그냥 내 마음이 본래 부처구나, 우주가 부처구나 이와 같이 느낄 수가 있단 말입니다.

 

보리방편문菩提方便門으로써 선오후수先悟後修먼저 정견을 깨닫고, 닦아 나가는 그런 식으로 참구하면 자성불自性佛의 본원本願이라자성불이란 것은 아까 말씀처럼 깨달은 뒤에가 아니라 천지만유가 바로 보면 바로 부처입니다. 도인이 보면 다 부처요, 범부가 보면 다 범부라고 하듯이 진정 바로 보면 다 부처입니다.

 

헌데 그 부처 가운데는 원래 원력願力이 있습니다. 사람도 각기 원력이 있습니다마는 시방삼세불인 부처님은 원래 원력願力이 있습니다. 다시 바꿔서 말하면, 우주 목적 우주 원력 이것이 바로 부처님 원력입니다. 그런 원력은 어떤 것인가 하면은 모든 중생을 다 성불시키고자 하는 원이란 말입니다. 하나의 독사나 또는 악인이나 누구나 다, 또는 하나의 땅덩어리나 모두를 다 법신불法身佛로 이끌어서 나가는, 귀일시키는 만법귀일萬法歸一이라 이끌어 나가는 그런 원력이 있습니다.

 

정토삼부경말씀으로 하면은 사십팔원四十八願이라, 마흔 여덟 가지 원이 있습니다만, 모든 중생을 성불로 이끌어 가는 그런 원입니다. 우리는 지금 아까도 법회 때 발사홍서원이라, 사홍서원四弘誓願을 외웠습니다마는 그것은 우주의 원, 법신불의 원을 가장 간추린 원이 네 가지 서원입니다. 이러한 서원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천지 우주는 그와 같이 서원이 있습니다. 헌데 염불念佛, 물론 어떤 행법이나 마찬가지겠지마는, 특히 염불은 이와 같이 부처님의 서원에 수순하는 따르는 것에 더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특히 보리방편문으로써 선오후수 참구하면 자성불이 원래 부처의 그런 본원을 확신 수순하는부처님께서나 또는 조사가 천지가 부처라 했으면 다 부처인 것이지 부처 아님이 없습니다. 우리 범부가 번뇌가 많아서 못 믿습니다만 바로 생각하면은 부처님이나 도인들 말씀은 불불허설佛不虛說이라 조금도 허설이 없습니다. 따라서 이분들이 검다고 했으면 바로 그것이 검은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증명만 미처 못 했을 뿐입니다.

 

확신수순確信隨順하는 수행법修行法이기 때문에 사마邪魔가 불침不侵하고

이럴까, 저럴까하는 의심이 들거나 또는 잘 안 믿으면 그때는 마가 침범해 옵니다. 우리가 길을 가는데도 길을 지시한대로 똑바로 가면 좋은데, 이 사람 말 듣고 저 사람 말 들으면 바로 못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법도 역시 딱 부처님 말씀 믿어 버리면 좋은데, 하도 세상이 혼란스럽고 하도 스승도 많고 하는 것이니까 바로 못 믿습니다. 허나 다행히 확신수순이라, 확신하고 거기에 따라 버리면 그때는 별로 병폐가 없어놔서 사마가 불침이라, 가 별로 침범이 없다 말입니다.

 

정혜定慧가 균등均等이라

우리가 공부가 안 되는 것은 정혜가 균등이 안 되니까 안 됩니다. 참선할 때는 백사십 가지 선병禪病이라, 가지가지 선병이 있습니다만 모두가 다 정혜가 균등히 안 되니까 선병이 생깁니다. 정혜가 균등均等히 안 되는 그런 원인은 무엇인가 하면은 확신수순確信隨順을 잘못한다 말입니다.

 

이와 같이 전부가 혼란스럽고 가르침이 많은 때는 한편은 좋으나 우리가 따라 가는데 있어서 굉장히 혼돈을 느낍니다. 그래서 확신수순이 참 어렵습니다. 이와 같이 확신하고서 따라갈 때는 그때는 별로 사마가 침범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때는 정혜쌍수定慧雙修, 선정 고요한 선정, 또는 지혜를 밝히는 혜 이것이 같이 가지런히 균등하단 말입니다. 우리 불성佛性 가운데는 자비慈悲나 지혜智慧나 모든 것이 갖추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한 가지만, 한 가지 법만 치우치게 공부하면은 공부가 균등하게 못됩니다. 어떤 성자나 간에 공부할 때는 반드시 정혜쌍수라, 정혜균등이라 그런 말씀을 하십니다. 즉 고요히 들어가는, 고요한 그 마음 또는 우리 자성自性을 비추어 보는 그런 지혜智慧, 이것이 같이 합류合流해야 합니다. 부처님 법문 가운데서 팔정도八正道 칠각지七覺支, 칠각지 법문은 주로 내용이 정혜균등 하고자 하는 내용이 되겠습니다. 마음이 가라앉으면 마음을 일으키고, 마음이 들뜨면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런 묘법이 칠각지 법문입니다. 헌데 보리방편문을 하는 선법 이것은 정혜균등定慧均等하기가 지극히 용이하게 되어있습니다.

 

정혜가 균등 순숙純熟하여 오매일여寤寐一如,

정혜가 균등히 안 되면 오매일여가 못됩니다. 공부하는 사람들은 누구나가 다 자나 깨나 오매일여라 말입니다. 공부가 낮 시간에 우리가 상상할 때뿐만 아니라, 자나 깨나 언제나 한 생각으로 공부가 흘러간다 말입니다. 우리 범부는 천 생각, 만 생각 모두 나는 것이지만 그런 생각을 타성일편打成一片이라 하나로 딱 모아서 그때는 맑은 생각만 이어간다 말입니다. 그래야만이 삼매三昧에 들어갑니다. 불교 말로 하면은 무간수無間修, 사이 없이 닦아 나가야만 그때는 마음이 하나로 딱 되어서 삼매에 들어갑니다. 그렇게 되어야만 우리 본래면목本來面目, 우리 마음의 근본자리인 불심을 깨달아 버립니다.

 

구경성취究竟成就의 첩경捷徑이라 역설力說

비록 본래 부처라 하더라도 무시겁래無始劫來의 그런 우리 번뇌 망상에 가리어서 부처인 줄을 모릅니다. 따라서 될수록 번뇌 망상은 거두어 버리고서 한 생각으로 우리 생각을 뭉쳐야 합니다. 그래야 만이 본래 마음이 거기에 발로가 되어서 구경성취 성불이 옵니다. 이러한 것을 역설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