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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 다시 읽는 큰스님 법문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796

 

 

-반야심경 설법(7) -청화(淸華)대종사

 

이와 같이 이런 것들이 다 허무하기 때문에 보살이 어떻게 했는가 하면 보살은 다만 이런 상대유한적인 지식은 다 떠나버려서 그런 것은 관심도 없이 다만 이와 같이 성불하는 피안에 이르는 지혜에 의지하는 고로

 

심무괘애(心無罣碍), 거리낄 괘(), 거리낄 애(), 이런 한자는 어렵지만 불교를 공부할 때 자주 나오니까 외워두면 좋습니다. 거리낄 괘(), 마음에 거리낌이 없단 말입니다. 무괘애라는 것은 거리낌이 없는 것입니다. 즉 말하자면 좋다 궂다 또는 마음이 껄끄럽고 막힌단 말입니다. 이와 같은 괘애가 없고,

 

무괘애고(無罣碍故) - 이런 마음에 거리낌이 없기 때문에

무유공포(無有恐怖) - 공포가 없단 말입니다.

마음이 툭 틔어서 천지우주와 나하고 하나가 되었는데 어디 가서 무서움이 있겠습니까. 저 사람이 나를 해친다. 상대가 있고 또 귀신도 있어가지고서 나를 해꼬지 한다. 이와 같이 둘로 보고 셋으로 보고 이렇게 보는데서 우리 마음이 두려운 것이지 생사(生死)를 떠나버린 사람, 내 몸뚱아리는 원래 허망한 하나의 거품으로 보거니 이걸 누가 칼로 찌른들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이와 같이 제법공(諸法空)에서 천지우주의 유위법은 다 비었다는 것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는 그때는 공포가 없단 말입니다. 마음이 거리낌이 없고, 마음이 거리낌이 있어야 공포가 있는 것인데 말입니다. 너다 나다 좋다 궂다 또는 산다 안 산다. 아프다 안 아프다 그런 마음 때문에 그런 괘애 때문에 공포가 있는 것이지, 괘애가 없기 때문에 마음에 공포가 없다는 것입니다. 공포가 없는지라,

 

원리전도몽상(遠離顚倒夢想)하고, 멀 원(), 떠날 리(), 자빠질 전(), 넘어질 도(), 꿈 몽(), 생각 상()입니다. 전도몽상 거꾸로 된 꿈같은 생각을 멀리 떼어버린단 말입니다. 멀리 여읜다는 말입니다. 우리 중생은 지금 거꾸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바로 못 보고 있는 것입니다. 거꾸로 보면서 거꾸로 보는지를 모른단 말입니다.

 

현명한 사람들은 내가 지금 거꾸로 보는 구나. 이것 정도는 느껴야 하는 것인데 우리 중생은 그것도 못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꾸로 보는 것입니다. 바로 못 보고서, 이와 같이 이런 마음의 공포가 없어지면 그때는 마음이 툭 틔어서 마음이 열려서 우리가 평소에 거꾸로 보는 꿈같은 생각을 그야말로 참 멀리 여읜다는 말입니다. 멀리 떠나버리고서, 우리가 꿈을 꿀 때는 꿈속에서 보는 것이 다 사실 같습니다. 싸우고 미워하고 먹고 하는 것이 참말로 생각되지만 꿈 깨고 나면 무엇이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지요. 그와 똑같은 것입니다. 우리 중생이 보는 것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입니다.

 

꿈인 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불교를 바로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결국은 꿈을 꾸고 있는 것입니다. 거꾸로 본단 말입니다. 이와 같이 거꾸로 보는 생각을 멀리 여의고서, 원리전도몽상(遠離顚倒夢想)이라, 거꾸로 보는 꿈같은 생각을 멀리 여의고서

 

구경열반(究竟涅槃)이라, 구경 이것은 궁구할 구(), 마칠 경(), 열반을 우리가 성취한다 말입니다. 열반에 이른단 말입니다.열반은 무엇인가? 열반은 이것은 이상향(理想鄕), 극락(極樂), 진리(眞理), (), 부처 경계, 불교의 이상적인 경계, 이것이 열반입니다.

 

()자 이것은 해감(앙금흙) (), 극락갈 녈(), 보통은 자로 쓰나 불교적일 때는 극락 갈 열()로 씁니다. ()자 이것은 즐길 반(), 또는 소반 반(), 열반이것은 극락세계란 말입니다. 아까 말씀마따나 진리(眞理)나 또는 도()나 또는 법성(法性)이나 부처나 이와 같이 통용하는 말인 것입니다. 하여튼 불교 이상향(理想鄕) 말입니다. 열반에 이른단 말입니다.

 

우리 중생은 전도몽상(顚倒夢想) 때문에 꿈같은 거꾸로 보는 생각 때문에 결국은 열반에 못 가는 것입니다. 허나 우리가 모두를 텅 비었다고 보면서 우리 업장이 녹아지면 여러 가지 그런 꿈같은 전도몽상 거꾸로 보는 뒤 바뀐 생각을 우리가 떠나서 열반을 성취한단 말입니다. 즉 말하자면 극락을 성취한단 말입니다. 부처를 우리가 이룬단 말입니다. 열반을 성취하나니

 

삼세제불(三世諸佛)도 석가모니(釋迦牟尼)부처님 뿐만 아니라 과거(過去) 부처님이나 또는 현재(現在)나 미래(未來)나 모든 부처님이 삼세제불 아닙니까. 삼세 모든 부처님도 역시 - 다만 아까 말한 보살뿐만 아니라 - 이와 같이 피안에 이르는 영생에 이르는 지혜인 반야바라밀다에 의지 했다는 것입니다.

삼세 부처님도 또한 똑같이,

 

의반야바라밀다(依般若波羅蜜多)고로, 역시 피안에 이르는 영생에 이르는 반야에 의지한단 말입니다. 우리가 반야에 의지해야 씁니다. 반야가 무엇인가? 반야는 지금까지 말한 바와 같이 해탈의 지혜 모든 것을 바로 보는 지혜란 말입니다. 바로 보는 지혜 이것이 반야입니다. 또한 바꿔서 말하면 모두 텅 비어서 우리가 보는 이러한 현상들이 다 비었다고 보는 지혜란 말입니다. 바로 보면 다 비었다고 보는 것이니까.

 

마치 전자현미경을 쓰고 보면 전부 전자로만 보이듯이 부처님의 안목 부처님의 눈으로 본다면 우주가 텅 비어서 부처님의 광명만 가득 찬 것입니다. 그렇게 보는 것이 참답게 옳은 것입니다. 전자 현미경을 쓰고 보면 전자나 원자로만 보이듯이 번뇌가 떠나버린 부처님의 청정한 안목으로 본다면 천지우주가 부처님의 청정 미묘한 광명으로만 가득차 있단 말입니다. 그렇게 보는 것이 참답게 바로 보는 것입니다. 삼세(三世) 모든 부처님도 역시 아까 보살과 마찬가지로 반야바라밀 즉 말하자면 영생에 이르는 피안에 이르는 그러한 반야에 즉 지혜에 의지한 고로

 

고득아누다라삼먁삼보리(故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아름다울 아()자 클 아(), 김맬 누(), 누자 인데 지금 모다 아뇩다라합니다만 사실 이 발음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 원래는 자입니다. 인도 음도 역시 nu그래서 누인데, 아름다울 누(), 많을 다(), 비단 라(), 석 삼(), 이것도 아름다울 막(), 석 삼(), 또 보살 보(), 이끌 제(), 이것이 이끌 제인데 인도의 보디bodhi, 인도 말로해서 보디라고 하는데 부르기 사나우니까 보리라고 발음합니다만 역시 한문으로 본음은 제()자입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이것은 무슨 뜻인고 하면 무상정변지(無上正遍智무상정진도(無上正眞道), 없을 무(), 윗 상(), 위없는(최상의, 비할 바 없는) 정변(正遍)이라, 바를 정(), 두루 변, (), 지혜 지(), 위가 없이 바르고 보편적인 그러한 지혜, 따라서 부처님의 참다운 지혜란 뜻이지요. 부처님의 참다운 지혜, 다시 위 없는 다시 비교할 수 없는 또는 모든 지혜가 다 포함된 지혜가 바로 아누다라삼먁삼보리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무상도(無上道), 무상지혜(無上智慧), 구체적으로 말하면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 또는 무상정변지(無上正徧智) 말입니다. 무상(無上) 위가 없고, 바를 정(), 두루 편, (), 바르고 두루해 있단 말입니다. 그런 지혜가 아누다라삼먁삼보리입니다. 따라서 아누다라삼먁삼보리를 완전히 증득(證得)하면 부처 아닙니까. 성인(聖人)이고 말입니다. 아누다라삼먁삼보리를 이와 같이 얻는다.

 

삼세제불도 반야바라밀다 즉 피안에 이르는 영생에 이르는 지혜에 의지하는 고(), 그 지혜가 무엇인가? 아까 말한 제법(諸法)이 공()한 오온(五蘊)이 다 공()한 지혜란 말입니다. 하여튼 이것을 머리에 딱 두어야 한단 말입니다. 그래야 혼미가 안 온단 말입니다. 제법이 공한 지혜, 제법이 공한 실상, 그것으로 본다면 아까 말과 같이 보살도 그런 지혜에 의지한 것이고 삼세제불도 역시 그와 같은 제법이 공한 지혜를 의지하기 때문에 이와 같이 무상도를 성취한단 말입니다.

 

고지(故知), 고로 알아라, 고로 알지라, 이와 같이 보살이나 부처나 제법이 공한 지혜에 의지 해서 무상(無上) 도리(道理)를 성취했으니까 그대들은 알아라. 어제도 말한바 이것은 부처님께서 지혜제일(智慧第一) 지혜가 수승한 사리불(舍利弗)한테 말한 법문입니다. 지혜가 수승한, 같은 제자도 아무리 신통은 많이 하지만 지혜가 수승하지 못하면 이런 법문은 알아먹을 수가 없단 말입니다. 따라서 부처님께서 지혜가 제일 수승한 사리불존자한테 이런 법문을 했단 말입니다. 고로 알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