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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 다시 읽는 큰스님 법문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798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798

 

강진 무위사無爲寺에 가면 성중래영도聖衆來迎圖, 성자聖者가 죽으면 극락세계에서 성중聖衆들이 맞이하는 영접하는 그림이 있습니다. 우리가 죽을 때 성중이 와서 맞이합니다. 성인 성[], 무리 중[], 올 래[], 맞을 영[], 성중래영聖衆來迎입니다. 즉 부처님이나 보살님들이 우리를 영접합니다.

 

우리는 이것도 역시 의심을 많이 합니다마는, 분명히 우리를 영접을 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우리가 닦아서, 영혼이 가벼워서 초승할 때는 그런 성중이 우리를 영접한다 말입니다. 그림 가운데도 내용을 보면 성중래영도를 보면 이십오보살이라, 아미타 부처님이 관음보살을 비롯해서 이십오보살을 데리고 와서 영혼을 영접합니다. 그래서 연화대蓮花臺에 태워서 극락세계로 이끌어 갑니다.

 

이 법문은 법조法照스님이라는 중국 당나라 때 분인데, 이분이 살아서 그냥 생시生時에 그냥 극락세계를 본 분입니다. 다시 말하면 부처님 세계를 본다 말입니다. 극락은 내내야 부처님의 세계입니다. 부처님 눈에서 보는 불안佛眼으로 보는 안목이 다 극락세계인 것입니다. 우리중생은 그와 같이 못 봅니다. 서방정토 저 멀리 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만 보면 이 자리가 바로 극락세계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닦아서 맑아지면 그때는 그냥 영원의 세계, 죽지 않는 세계에서 그냥 각 성중이 와서 우리를 맞이해 갑니다. 이것은 그러한 경계를 그냥 말씀한 것입니다.

 

[법조法照스님의 왕생낙원문往生樂願文에서]

 

일체회심향안락一切回心向安樂이것은 안락세계, 극락세계나 안락세계나 똑 같은 뜻입니다. 일체회심이라, 우리가 하는 선이나 모든 수행을 극락세계에 회향시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모실 때나 모든 공덕을 회향을 시킵니다. “일체회심향안락이라, 우리의 모든 그런 공덕을 다 안락세계에, 극락세계에 회향시킨다 말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성불하겠다 하는, 성불을 위하는 것이나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즉견진금공덕심卽見眞金功德心안락세계의 진금공덕심이라, 불경을 보면 부처님의 금색심金色心, 진금심眞金心, 광명심光明心이 많이 나옵니다. 부처님의 법신불은 사람과 같은 모양이 아닙니다. 법신불은 천지에 간격도 없이 충만해 있는 하나의 진금색眞金色의 광명입니다. 물리적인 광명이 아니라 신비神祕 부사의不思議한 그런 부사의 광명, 신비 부사의한 광명의 생명, 이것이 부처님 공덕심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수행을 다 극락세계의 그런 광명심에 회향시킨다는 말입니다. 또는 극락세계 그것은

 

정토장엄제성중淨土莊嚴諸聖衆안락이나, 극락, 정토가 똑같습니다. 정토는 그야말로 모두가 전부가 다 금색광명金色光明 뿐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중생은 바로 못 보니까 더럽게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의 제아무리 더러운 것이라 하더라도 바로 보면 금색광명이라 말입니다. 다시 바꾸어 말하면 불안佛眼의 현미경을 쓰고 본다면 그때는 천지 우주가 다 부처님의 광명뿐입니다. 모든 극락세계에서 부처님의 광명이 빛나는 곳에 성중聖衆들이 계십니다.

 

농농상재행인전籠籠常在行人前그러한 성중들의 무리가 금색 연꽃 타고서 우리 수행자 앞에 보입니다. 이것은 주로 임종 때 합니다. 죽을 때 닦아 가지고 수행도 많이 하고, 염불도 많이 한 분들이 닦아 가지고서 죽을 때, 성중들이 우리를 마중 올 때의 광경을 그대로 읊은 것입니다. “농농상재행인전이라, 성중들의 무리가 금색 연꽃 타고서 우리 수행자 앞에 보입니다.

 

행자견이심환희行者見已心歡喜수행자修行者가 불법을 수행하는 자가 그런 성자를 보고서 마음에 환희심을 낸다 말입니다. 우리가 공부할 때도 역시 인간 이상의 무엇인가 힘을 보면 그때는 환희심歡喜心을 내는 것인데 중생은 어두워서 인간 이상의 법을 못 보니까 그런 환희심을 못 냅니다. 그러나 죽을 때 닦아 가지고 나갈 때 성자가 보이고, 극락의 장엄이 보이면 그때는 그냥 마음에 환희심을 낸다 말입니다.

 

종시종불좌금련終時從佛坐金蓮우리가 죽을 때는 부처님 따라서 좌연대라, 금색으로 이루어진 연화대에 앉는다 말입니다.

 

일념승대도불회一念乘臺到佛會오랫동안 시일이 경과하지 않고서 일념 동안 순간에 연화대를 타고 부처님의 회상에 이릅니다. 이것은 상징이지만은 사실적인 상징인 것입니다. 맑은 영혼들은 그때도 역시 지금 여기 있는 바와 같이 성자가 가지고 온 연꽃을 타고서 순식간에 부처님 계신 곳에 이르러 버립니다.

 

즉증불퇴입삼현卽證不退入三賢부처님 회상에 이르러서 곧장 삼현三賢 아직 구경지究竟地까지 성자가 못 되었다 하더라도 번뇌를 안 내는 자리, 그 자리에까지 이르러 버린다 말입니다. “즉증불퇴입삼현이라, 삼현에 들어서 다시 후퇴가 없다 말입니다.

 

일일지중화진만一一池中華盡滿극락세계에 금색 광명의 연꽃이 있는 못이 한두 개가 아닌데, 그런 무량무변의 연못 가운데 모두가 금색 연못이 충만해 있다 말입니다.

 

화화총시왕생인華華總是往生人그런 충만해 있는 그런 못마다 연못에 있는 꽃마다 모두 선행을 닦아서 극락세계에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영합금화백천겁寧合金華百千劫한 번 지어서 극락세계의 연꽃 위에 태어난 사람들이 백천 겁을 경과한다 하더라도 어찌 합할 것인가? 항시 피어서 그야말로 영생의 생명으로 하나가 되어버립니다.

 

불원지옥수유간不願地獄須臾間따라서 그런 경계는 다만 찰나 순간도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각유반좌승화엽各留半坐乘華葉이 뒤가 의미심장합니다. 각기 자기가 탄 연꽃을 반 자리를 남기고 갑니다. 자기 혼자만 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탄 연꽃을 반 자리를 두고서 가는데 누구를 주는가 하면은,

 

대아염부동행인待我閻浮同行人이라아직은 안 죽었지만 사바세계에서 바르게 닦은 사람을 주기 위해서 연꽃의 반 자리를 남기고 가단 말입니다. 이 가운데는 심심 미묘한 상징이 들어있습니다. 아까 말씀처럼 우리 중생은 안 보인다 하더라도 우리가 안 보이는 가운데 무수 무량의 높은 세계가 많이 있습니다. 저 밑으로도 세계가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인식함으로 해서 우리 시야를 더 넓힐 수가 있습니다.

 

그럼 너무 시간이 많이 되었습니다. 제가 말씀한 말을 간단히 정리해서 이 시간을 끝마치겠습니다. 사실 우리가 지금 인간으로 있다 하더라도 우리 인간의 마음은 무량無量합니다. 밑에도 위로도 무량합니다. 지옥도 백 팔 지옥이라, 백이십육 지옥이라, 무수 무량의 지옥이 많이 있습니다. 무간지옥無間地獄이라 말입니다.

 

또는 부처 역시 경계는 끝도 없이 무변無邊 무량無量한 것이 부처의 그런 자리입니다. 이와 같이 위에도 끝이 없고, 밑에도 끝이 갓도 없습니다. 이런 것이 사실로 있고 또는 동시에 그런 요소가 우리 마음에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 하나의 행동이 비록 부처님의 행동이 아니더라도 역시 그냥 영향을 미칩니다. 가령 교수님 한 분의 말씀이 이것도 그 영향을 굉장히 줍니다. 어버이의 한 분의 말 이것이 굉장히 영향이 큽니다.

 

이런 때는 우리가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말해야 할 것인가? 제가 허두에 말씀마따나 부처님의 안목으로 볼 수 있는, 그런 부처님의 무가정無假定의 지혜, 부처님의 심심 미묘한 그런 여법의 지혜, 불안청정佛眼淸淨의 지혜로 봐야만 바로 보입니다. 그래야만 사물의 전모全貌를 보고 실상實相을 바로 봅니다.

 

실상을 못 볼 때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급한 것은 역시 실상을 보는 것이 제일 급한 문제입니다. 우리 빵보다도 뭣보다도, 집보다도 뭣보다도 실상을 보는 것이 제일 급한 문제입니다. “입식불반入息不返 즉명이사卽命已死.” 한번 나간 숨을 못 들이키면 그때는 죽음입니다.

 

이와 같이 허망한 인생이기 때문에 가장 급한 것은 역시 우리 본래 생명을 아는 것, 참다운 모습을 아는 것, 이것이 가장 급한 문제입니다. 참 나를 알기 위해서는 내 마음에 있는 그런 열 가지 경계 이런 경계에서 가짜인 지옥이나 축생이나 아귀이나 천상을 버리고서 참다운 그런 즉 말하자면 참다운 내가 없다는 지혜, 내가 없다는 소위 망아忘我, 망령된 나를 버리고서, 참다운 진짜 나[眞我]를 알기 위해서는 내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억지로 아는 것이 아니라 사실 내가 없는 것입니다.

 

어째서 내가 없는 것인가? 젊은 총명한 우리 불자들은 앞으로 이것을 증명證明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무아의 도리를 알고서 참다운 진아를 아는 것이 무엇보다 더 급한 거니까 아무리 사회가 혼란스럽더라도 우리는 먼저 선후를 바꾸면 안 됩니다. 먼저 참 나를 알기 위해서 정진할 것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나무석가모니불南無釋迦牟尼佛!

나무마하반야바라밀南無摩訶般若波羅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