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4. 청화 큰스님 법문집/1. 다시 읽는 큰스님 법문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791

 

-반야심경 설법(2) -청화(淸華)대종사

 

사리자(舍利子)-부처님 제자 가운데서 지혜 제일 사리자지혜가 제일 수승한 제자 아닙니까. 인도 히말라야 산에서는 사리조(舍利鳥)라는 새가 있는데 그 새는 굉장히 눈이 아름답고 영롱한 새인데 사리자 어머니가 눈이 영롱하고 미인인데 말입니다. 사리 눈같이 어여쁜 어머니한테서 나왔다고 해서 그 아들을 사리자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부처님 제자 가운데서 지혜가 제일 수승한 분인데 어머니가 사리 눈 같이 아름다운 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들을 사리자라고 부르는데 사리자! 그러니까 반야심경 이것은 부처님께서, 어떤 경전이나 누구한테 부처님께서 말씀 했는가 그런 연기유서가 있습니다.

 

반야심경은 부처님께서 직접으로, 그냥 일반 사람한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일반 사람한테는 그냥 저급한 법문도 말할 수가 있지만 이러한 고도한 불교 철학이 들어 있는 가장 중요한 법문은 역시 무어라 해도 지혜 제일, 지혜가 제일 수승한 사리불(舍利弗)만이 알 수가 있는 것이니까 사리불한테 하신 법문입니다.

 

사리자야 잘 들어라!

색불이공(色不異空)이요. 색 이것은 물질 아닙니까. 물질이 공과 다름이 없고 말입니다.

() 이것은 마음[]이라 해도 무방합니다. 공이나 마음은 불교에서는 같이 쓰입니다. 물질이 마음과 다름이 없고, 물질이 공과 다름이 없고, 내내야 마음이라는 것은 형체가 없는 것이니까 공이나 마찬가지 이지요. 물질이 공과 다름이 없고 말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정신 따로 몸 따로 합니다. 우리 범부(凡夫)는 몸 따로 마음 따로 합니다. 허나 사실은 둘이 아닌 것입니다. 물질이 마음과 다름이 없고, 물질이 공과 허공(虛空)과 다름이 없고, 또한 동시에 그 반대로

 

공불이색(空不異色)이라, 마음이 공이 물질과 다름이 없으며, 따라서

색즉시공(色卽是空)이요. 물질이 곧 바로, 이 시(), - 빛 색(), 곧 즉(), 이 시(), 빌 공(), - 이 시()자 이것은 바로라고 합니다. 바로 공인 것입니다.

따라서 물질이 곧 바로 공이란 말입니다. 이원적(二元的)으로 구분(區分)한 것이 아니라 물질 그대로 바로 마음이란 말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아까도 말씀마따나 물질 따로 마음 따로 합니다. 보통은 다 물질이라는 것은 물질인 것이고 물질 이것은 무생물이고, 마음은 하나의 생명체고, 그와 같이 구분 합니다. 허나 사실은 불교에서는 그렇게 안 보는 것입니다. 어떠한 미세한 물질도 역시 그 본질은 마음입니다.

 

지금 물리학에서는 분석하고 분석해서 다 들어가면 저 물질 끝트머리는 내내야 소립자(素粒子) 아닙니까. 소립자 그것이 물질이 아니라 다만 에너지energy의 하나의 형태로 보는 것입니다. 물질이라는 것은 결국은 질량(質量)이 있는 물질은 없어지고 저 끝에 가서는 하나의 에너지 형태에 불과하단 말입니다.

 

에너지의 작용 때문에 결국은 소립자가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물리학은 물질이 본래 공인 것을 거의 증명을 하고 있단 말입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보다 앞서서 어떠한 물질이나 아까 말씀마따나 원자나 또는 분자나 모두가 다 근본 요소는 결국은 다 마음이란 것입니다. 이런데서 불교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두가 마음뿐이라는 결국 불교 철학이 성립 된단 말입니다. 모두가 사실은 마음뿐인 것입니다.

 

마음이라는 순수 에너지 위에서 마음 작용 따라서 물질로 보인단 말입니다. 물질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우리는 물질이 별도로 있다는 잘 못된 관념을 부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관념을 못 부수면 일체유심조라, 모두가 성불한다. 그런 말은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천지 우주는 마음뿐인 것인데 마음 위에서 마음의 힘이 적당히 이렇게 모이고 저렇게 모이고 말입니다.

 

또는 마음을 가진 중생들이 마음 쓰는 그런 힘 따라서 물질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이해하시기가 곤란스럽지만 사실은 그런 것입니다. 저는 가끔 예를 듭니다만 가사 화분이 두 개가 있어서 양쪽에다 똑 같은 조건으로 화분을 가꿉니다. 가꿀 때에 이쪽 화분한테는 좀 소홀하게 생각하고 저쪽 화분에 대해서는 관심을 더 준단 말입니다. 하면은 관심을 더 둔 쪽의 화분이 훨썩 더 성장이 빠르다는 것입니다. 식물도 역시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개인들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부모님한테 탁태(잉태)하기 전에 우리 존재가 무엇입니까? 부모님을 의지해서 나오기 전에 우리 존재가 무엇입니까? 형체가 없단 말입니다. ()이라는 마음이 결국은 부동(浮動)하다가 영혼(靈魂)이 부동하다가 부모님 연() 따라서 엄마의 태에 들어가서 사람으로 커나간 단 말입니다. 이와 같은 몸이 원래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원천은 하나의 식, 불교에서 말하는 의식 말입니다.

 

식이 사람이 죽어지면, 몸은 화장하면 재가 되고 파묻으면 흙 되고 하겠지요. 없어지지만은 우리 마음 쓰는 식은 없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식()이 부동 하다가 그 식의 파장(波長)과 맞는 부모를 만나면 엄마의 태에 수태한단 말입니다. 그때까지는 물질이 아니지요. 탁태한 뒤에는 엄마의 배안에서 엄마 자양분(滋養分)을 받아서 성장하므로 해서 비로소 인간 형태로 나온단 말입니다.

 

태초(太初)에 인간도 역시 물질이 아니었습니다. 불교에서는 기세경(起世經)이라, 일어날 기(), 인간 세(), 태초에 인간이 나오는 것을 굉장히 상세히 풀이했습니다. 그런 것이 어려우니까 지금 사람들은 간과(看過; 대충 보기만 하고 버려둠)해서 잘 안 봅니다만 아무튼 우리가 중요한 것은 무엇인고 하면 일체가 마음뿐이라는 것입니다. 물질은 흔적도 없는 것입니다.

 

다만 중생이 물질의 저 본질, 물질의 끄트머리가 마음인 줄을 못 볼 따름입니다. 항시 예를 듭니다만 일수사견(一水四見)이라, 똑같이 마시는 하나의 물인데도 우리 인간이 볼 때는 그것이 물인 것이고, 귀신이 볼 때는 물을 물로 안 보는 것입니다. 귀신은 물을 불로 보는 것이고, 또 천상사람도 있는 것인데 천상인간은 물을 유리로 보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어떻게 볼 것인가? 부처님은 물을 청정미묘(淸淨微妙)한 감로수(甘露水)로 보는 것입니다. 광명(光明)으로 빛나는 감로수로 본단 말입니다.

 

그와 같이 같은 물이지만 우리 식의 정도 우리 식이 얼마만치 정화(淨化)가 됐는가에 따라서 달리 본단 말입니다. 사람이 보면 사람만치 업장(業障)이 무거우면 물로 보는 것이고, 거기에 사는 고기는 자기 집으로 보는 것이고, 헤엄치는 고기들 이사 집으로 보겠지요. 귀신은 불로 보고, 천상 인간은 유리로 보고, 부처님은 청정미묘한 하나의 광명, 광명이 충만한 감로수로 본단 말입니다.

 

이와 같이 같은 물이지만 시각 따라서 달리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걸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부처님께서 보는 것만이 절대로 옳습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가상(假象)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런 법문 이것은 부처님께서 보신 그대로 말씀했기 때문에 우리 중생은 납득하기 곤란스러우나 여기에서 우리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다행이도 현대 물리학은 방금 말씀마따나 인제 물질의 근원에 가서 텅 비었다는 것을 증명한단 말입니다. 다만 그 비어있는 알맹이가 무엇인가? 그것만 지금 현대 물리학은 모릅니다. 부처님은 다 알고 있었지만, 물질이 곧 바로 마음이요. 또한 마음의 작용 따라서 그때는 물질이 되기 때문에,

 

또한 동시에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 마음이 곧 바로 물질이란 말입니다. 이렇게 둘이 아닌 것입니다. 마음밖에 어떤 물질이 안 된다고 하면 그때는 안 되겠지만은, <정리자 주석 : 마음[]이 마음[]으로만 존재하고 어떤 물질[]이 안 된다고 하면 그때는 공즉시색(空卽是色)이 성립이 안 되겠지만,> 우리 중생이 보면 마음이 물질화가 될망정 결국은 내내야 둘이 아닙니다.

 

수상행식(受想行識) 역부여시(亦復如是), 우리 감수(感受)하는 감각(感覺)이나 상상(想像)하는 우리 감정(感情)이나 또는 우리가 의욕(意慾)하는 행()이나 또 우리가 분별(分別)하는 식()이나 이런 것도 역시 또한 이와 같도다. 그와 똑 같이 역시 물질이 마음이요 마음이 물질이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