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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행자의 편지/미타행자의 편지

아홉수

 

 

또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과에 세월의 감각은 무디어졌으나 세속 나이를 헤아리면 내년이 예순아홉, 아홉 수에 걸리는 해입니다. 보통 아홉수에서는 운세가 사납다고 하는데 저의 경우는 아홉수에서 삶이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열아홉에 고향을 떠나 서울에 올라왔고 서른아홉에 출가하였고 마흔아홉에 제주에 내려왔고 내년이 예순아홉 서울에서도 이십 년을 못 넘기였고 제주에서 내년이 이십 년에 아홉수, 변화가 있을 것 같은 시기에 도달하여 기대되는 해입니다.

 

우리가 사바세계 올 적에는 부모가 자식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이 부모를 선택하여 오는 것입니다. 제가 알지 못하는 전생에 가난하고 부모와 함께할 인연이 박복한 곳을 선택하여 왔겠지요. 지독한 가난 속에서 두터운 업장을 녹이고 한 생각 일어나 열아홉 서울에 올라왔을 적에는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손수 끓여 먹는 라면이 가장 깨끗하고 맛있다는 철학을 익힌 것입니다.

 

서울에서 이십 년 콘크리트 밀림 속에서 용맹정진 끝에 세속적인 망상은 다 털고 한 생각 일어나 벌려놓은 것 정리하고 서른아홉에 출가한 것입니다. 출가 이후는 쓸데없이 돌아다니거나 여기저기 기웃한 것 없이 딱 강원과 선방 그리고 기도 외에는 잡생각 없이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서울에서 이십 년은 세속적인 성공이 꿈이었으나 그것은 나의 길이 아니고 제주에서 이십 년은 더불어 수행하는 여법한 도량이 꿈이었으나 역시 내 역량이 부족한 것입니다.

 

결국은 금생은 전생 습관대로 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업()대로 사는 것이고 이론상은 다겁생의 업() 뿌리를 뽑고 깨달을 수가 있다는 돈오돈수(頓悟頓修)가 있지만, 현실에서는 체감하기가 힘든 것입니다. 다겁생의 업을 한 생에 녹이기가 쉽지는 않고 스스로 부딪치면서 깨달아 가는 것이지 누가 깨우쳐 주는 것은 없습니다. 또한 자업자득(自業自得) 스스로가 짓고 스스로가 받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통찰(洞察)하면 모든 시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을 위해서 마음을 일으키는 것뿐입니다.

 

사문(沙門)이 늙으면 딱 두 가지 길입니다. 하나는 대중 처소 뒷방에서 조용히 지내다 가는 것이고 하나는 홀로 작은 토굴에 가서 있는 듯, 없는 듯 정진하고 지네다가 소리 없이 가는 것입니다. 전 후자를 택하였습니다. 올 적에도 혼자 왔고 갈 적에도 소리 없이 혼자 가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 - 마음 준비는 다 되어 있는데 언제나 이루어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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