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4. 청화 큰스님 법문집/1. 다시 읽는 큰스님 법문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787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787

 

불교는 부처님의 이름도 얼마나 많습니까.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해야 될 것인가? 미륵보살(彌勒菩薩)해야 될 것인가? 이러저러해서 우리가 수행(修行)론에 대해서 제가 마무리를 해나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여러 가지 수행법(修行法)이 많이 있지만은 역시 우리 마음의 핵심(核心)은 무엇인가 하면은 우선 신앙적(信仰的)으로 내 마음에 부처님의 삼신(三身)과 사지(四智)를 모두를 다 갖추고 있다. 이렇게 대승적인 신앙을 확립을 해야 할 것이고 또 그다음 문제는 어떻게 그 자리를 우리가 증명(證明)할 것인가?

 

증명 못하면은 못한 대로 끝나면 모르겠지만은 증명 못하면은 그때는 공부를 좀 했다 하더라도 윤회(輪廻)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윤회라는 것은 정확한 업()의 사상(思想)입니다. 정확한 카르마의 사상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참 정밀(情密)한 물리학(物理學)이나 수학(數學)하고 똑같습니다. 우리가 하나의 행동하면 하나 행동한 꼭 받습니다.

 

우리가 행동하나 하면 그것이 그대로 소멸(消滅)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잠재의식(潛在意識)에다 흔적(痕迹)을 두었다가 백 세후에나 천 세후에나 아무 때 받아도 과보(過報)를 보복(報復)을 받습니다. 따라서 그와 같이 윤회사상(輪廻思想)이라는 것이 그렇게 정확하기 때문에 과거세(過去世)에 자기가 잘못 살아서 금생(今生)에 와서 우리가 고통(苦痛)을 받고 사람을 잘못 만나기도 하고 그럴 수가 있겠지요. 그러나 그로 대해서 비관할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금 현재(現在) 우리가 지금 바로 예지(叡智)로 판단해서 정말로 무아(無我)의 행()이다. 나라는 것이 본래 없는 것이다. 내 모든 행동(行動)을 중생(衆生)을 위해서 다 받쳐야 되겠다. 이렇게 한다고 생각할 때는 이렇게 생각하는 그 마음과 또 거기에 따르는 행이 이것이 보상이 되어서 그때는 우리가 미래(未來)를 결정한단 말입니다. 어떠한 불행(不幸) 이것이 우리가 지금 이 불행을 그대로 멈추게 하고서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힘이 있단 말입니다. 그것이 업()사상의 이른바 카르마사상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윤회사상을 확실히 안다고 생각할 때는 슬퍼할 것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받는 고생이 아무리 지극하니 어렵다 하더라도 이것도 역시 다른 사람 책임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가 다 우리가 과거지어서 금생에 받고 있단 말입니다. 그와 동시에 한 생각 우리가 바꾸면은 우리 생각이라는 것은 그때그때 순간순간 바로 비약(飛躍)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 마음은 바로 성자(聖者)의 마음이나 우리 마음이나 같은 마음인 것이고 만능의 마음이기 때문에 우리 생각만 고치면은 그냥 우리가 초월(超越)한단 말입니다.

 

실존철학(實存哲學)과 야스코스라든가 하이데커나 그런 분들도 역시 초월에 대해서 상당히 말씀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이 상당히 훌륭한 철인(哲人)은 되어도 성자(聖者)가 아니기 때문에 부처님 말씀같이 확실한 말씀을 못했습니다. 부처님 말씀은 간단명료(簡單明瞭)합니다. 부처님 말씀은 그대로 증명(證明)한 말씀이기 때문에 조금도 찌꺼기가 없습니다. 우리 중생들은 우리 마음이 바로 만능(萬能)을 갖춘 생명자체이기 때문에, 또는 마음 이것은 어느 것에도 본래로 누구나가 다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도둑놈 마음이나 또는 학문적으로 아무런 공부도 않은 그런 사람 마음이나 마음은 모양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양이 있는 것이 아닌 것은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모양이 있다고 그러면은 부처님 마음은 더 크고 우리 마음은 작고 하면은 그때는 비교가 되겠습니다만은 부처님 마음이나 우리 마음이나 과거 몇천년 전에 사람 마음이나 조금도 비교가 안 된단 말입니다. 따라서 모양이 없는 것은 똑같이 우주(宇宙)를 다 감싸고 있습니다. 김가란 사람 마음이나 박가란 사람 마음이나 어느 사람 마음이나 모두가 다 우주를 다 감싸고 있는 광대무변(廣大無邊)한 것입니다. 이른바 허공(虛空)같단 말입니다.

 

그 마음을 비유해서 허공(虛空)이라, 법성(法性)이라, 또는 부처 불(), 성품 성(), 불성(佛性)이라, 실제(實際)라 그러는 것입니다. 법성(法性), 진여(眞如), 중도(中道) 아까 그런 것은 모두가 다 우리 마음을 살려있단 말입니다. 불교(佛敎)는 물질(物質)이 본래(本來)없다는 제법공(諸法空) 도리에 입각하기 때문에 물질이 본래 없다고 생각할 때는 그것은 무엇인가? 천지우주(天地宇宙)가 진여불성(眞如佛性)뿐이란 말입니다.

 

진여불성 자리를 그대로 곧이곧대로 수용(收用)해서 믿는 것이 이것이 불교(佛敎)의 참다운 대승신앙(大乘信仰)입니다. 진여불성 자리를 바로 믿어야 그래야 이른바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이란 말입니다. 우리가 누구한테 법문을 하든지 또는 누구한테 어떤 경우에 무슨 가르침을 주든지 간에 꼭 본체론(本體論)적인 진여불성자리를 딱 집어서 줘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서 상()만 가르치면은 그때는 마음에 분열만 생기고서 마음이 통일이 안 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불안(不安)을 면치 못하고 여러 가지로 갈등과 여러 가지 세간적인 문제라든가 어려운 것이 많지 않습니까? 그런 것은 무엇인가 하면은 우리 각자가 모두가 다 참다운 주체성(主體性)이 희박합니다. 주체성은 무엇인가?

 

우리가 보통 자아의 회복이라, 또는 상실된 잃어버린 자기를 만회한다든가 여러 가지 그런 좋은 말씀들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허나 그런 것은 따지고 보면은 주체성을 회복한다는 그런 말씀이 됩니다. 그러면 주체성은 무엇인가? 우리 인간이 의지해야 될 근원적인 도리란 말입니다. 우리 인간이 의지해야 될 근원적(根源的)인 도리(道理)는 무엇인가? 이것이 바로 아까 말씀드린바와 같이 진여불성(眞如佛性)입니다. 진여불성이 바로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입니다.

 

이것은 조금도 어떠한 한계가 있는 것도 아닌 것이고 과거(過去)나 현재(現在)나 미래(未來)나 우주에 가득 차 있는 하나의 우주(宇宙)의 생명(生命)을 말한단 말입니다. 따라서 참선(參禪)공부라 하는 것도 바로 그 자리 우주의 생명, 진여불성의 자리를 우리가 바로 참구(參究)한단 말입니다. 요새 도시에나 각 지방에서 모두 다 명상(瞑想)을 여러 가지 명상이 유행되지 않습니까. 이래저래 명상하는 법이 많습니다 만은 가장 고도한 가장 근원적인 명상은 역시 부처님 공부, 부처님 명상입니다.

 

부처님은 바로 우주의 생명 자체이기 때문에 부처님 명상을 해야 그래야 명상 가운데 명상인 것이고 또는 우리 중생의 한계상황(限界狀況)을 초월(超越)해서 영원적(永遠的)인 영생불멸(永生不滅)한 그 자리까지 우리가 갈 수 있단 말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명상 할것인가? 우리는 그냥 말로나 교리(敎理)나 그런 분야에서는 상당히 애를 많이 씁니다 만은 깊은 명상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안 두는 분이 있습니다. 헌데 사실은 불교(佛敎)가 명상(瞑想)을 빼버리면은 결국은 증명(證明)이 못 된단 말입니다.

 

명상을 해야 삼매(三昧)에 듭니다. 삼매에, 삼매란 것은 본래 음으로 하면은 삼마지, 삼마지인데 삼매는 무엇인고 하면은 명상이 좀 수련이 되어서 명상이 더 깊어져서 우리 마음에 산란스런 마음이 없는 정도가 되어야 삼매라고 하는 것입니다. 삼매가 되어야 그래야 우리 근본업장(根本業障)을 녹인단 말입니다. 삼매에 못 들면은 우리는 근본업장을 못 녹입니다. 못 녹이니까 따라서 성자(聖者)가 못 되는 셈이지요. 명상 훈련을 많이 해서 우리 마음이 산란심이 없는 삼매에 딱 들고, 삼매에 들어서 상당히 오랫동안 공부를 해야, 물론 그 사람 여러 가지 업장(業障) 따라서 길고 짧고 그런 차이는 있겠습니다 만은 아무튼 삼매를 통과않고서 우리가 성자는 될 수가 없습니다. 성자라고 말하면은 여러분들이 어렵게 생각을 하실란가 모르겠습니다 만은 우리가 성자가 안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본래 우리가 부처거니 우리 마음은 본래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나 예수 마음이나 우리 마음과 조금도 차이가 없습니다. 비교가 안 된단 말입니다. 똑 같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그런 자리까지 가지 않으면은 우리는 또 역시 윤회(輪廻)한단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윤회하지 않고 다행히 금생에 부처님법 만났을 때 최상의 생활, 우리가 최상의 생활을 말하면은 이것도 출가한 사람이나 할 것이지 일반사람들은 어렵지 않은가? 사실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 생활이라는 것이 그 부처님 되는 공부는 사실은 따지고 보면은 제일 쉬운 것입니다.

 

불교 말로 하면 안락법문(安樂法門)이라, 몸도 마음도 가장 편안한 공부란 말입니다. 마음과 몸이 둘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 편한 것은 어떤 것이 마음 편한 것인가? 부처님 되는 공부 따라서 나가는 것이 가장 마음 편한 것입니다. 마음 편하면 몸도 편합니다. 생리(生理)와 우리 진리(眞理)가 절대로 둘이 아닙니다. 따라서 어느 누구나가 다 부처님 되는 공부를 뒤로 미룰 수가 없습니다. 이 순간 현재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그것은 부처님 공부, 부처님에 대한 생각을 순식간도 안 놓치고서 부처님이라는 본체(本體)에다가 우리 마음을 두고서 이른바 증명하는 삼매에 드는 공부를 해야 한단 말입니다.

 

염불(念佛)이면 염불삼매(念佛三昧), 화두(話頭)들면 화두삼매(話頭三昧), 다 모두다 성불(成佛)하는 그러한 법입니다. 그러나 어느 것도 어떠한 공부를 하든지 간에 내 마음이 본래로 부처다. 천지우주(天地宇宙)가 모두가 다 부처님뿐이다. 천지우주는 부처님 아닌 것이 없습니다. 부처님은 바로 우주생명(宇宙生命)이기 때문에 천지우주가 그대로 일진법계(一眞法界)가 모두가 다 화장세계(華藏世界). 부처님 세계다. 부처님뿐이다. 이렇게 생각해야 그래야 이른바 우리가 본체를 안 여의고 상에 떨어지지 않는단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