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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 다시 읽는 큰스님 법문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772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772

 

천지우주(天地宇宙)는 결국은 일여평등(一如平等)의 진여불성(眞如佛性)뿐입니다. 그런 자리를 정말로 눈에다가 불을 켜고 우리가 확실히 느껴야 됩니다. 그 불성은 하나의 청정미묘(淸淨微妙)한 빛이란 말입니다. 물질도 저 원자나 그런 단계에서는 방사선이라, 하나의 그것이 광명으로 다 화하고 마는 것입니다. 물질이라는 것은 쪼개고 쪼개고 분석해 놓고 보면은 끝에 가서는 다 에너지 단계에서는 빛입니다.

 

빛인 것인데, 더구나 우리의 불성 우리의 본래성품(本來性品)은 하나의 청정미묘한 빛이란 말입니다. 간격도 없는 하나의 빛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공부해서 우리 마음이 정화(淨化)되면은 차근차근 그런 빛의 여명(黎明)이 우리한테 비춰오는 것입니다. 그 성자(聖者)들은 그런 빛하고 완연히 하나가 딱 됐습니다. 우리 중생(衆生)들은 빛하고 잘못 살면은 거리가 차근차근 멀단 말입니다. 즉 그와 같이 참선염불(參禪念佛)이라는 것은 우리 중생의 중생심을 지향(指向)해서 차근차근 본래적인 마음자리로 본래 성품 자리로 우리가 가까워진단 말입니다.

 

우리는 부처님을 그리워 한다는 부처님한테 지향하는 그런 어려운 말로 하면 갈앙심(渴仰心)이라, 간절히 그리워하는 그마음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왜 그런고 하면은 그 부처님은 눈에 안 보이는 생명이기 때문에 눈에 안보이면서 우주의 성품을 이루는 하나의 생명이기 때문에 그 부처님 불성자리가 물질 같으면은 요만치 가다가 또 저만치 가고 그와 같이 순서 있게 조금씩 조금씩 가겠지만은 하나의 비교할수 없는 생명자체이기 때문에 우리가 정말로 간절하게 부처님을 갈앙(渴仰)하고 흠모(欽慕)한다고 생각 할 때는 우리마음은 초월(超越)하고 우리마음은 비약(飛躍)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교(佛敎)에서 말하는 본원(本願)이라. 본원이라, 근본 본(), 원할 원()자 본원이란 말입니다. 우주란 것은 부처님의 본원으로 꽉차있습니다. 무슨 본원인가? 모두를 다 모든 중생을 다 부처가 되게시리 하는 그런 원()이란 말입니다. 천지우주(天地宇宙)란 것은 모든 존재 사람뿐만이 아니라 다른 동물이나 식물이나 천지우주가 모두가 다 부처가 되게시리 하는 원이 우주에는 있습니다. 바꾸어서 말하면 우주(宇宙)의 목적의식(目的意識)이란 말입니다. 우주의 목적의식, 우주는 그냥 만연히 이렇게 봄이 오고 여름 되고 그러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주란 것은 산천초목(山川草木)과 더불어서 산하대지(山河大地) 모두가 다 부처가 지금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처가 되는 기왕이면은 지름길은 어떤 것인가? 지름길이 아까 말씀드린바 같이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도덕적인 행동을 될수록 원만하니 도덕적으로 우리가 바로 살아야 우주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아까 제가 말씀드린바 같이 우선 살생(殺生)만 두고 본다 하더라도 다른 생명을 함부로 죽이면은 우주의 도리에 안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만치 우리 마음이 독해지고 또 그만치 걸림이 생기고 다른 동물들하고 서로 원수가 지고하지요. 우리 눈앞에 있는 어느 것이나 닭 한 마리나 돼지 한 마리나 모두가 다 과거전생(過去前生)에 우리 생명과 같이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어느 고기를 먹는다고 생각할 때 과거전생에는 친구가 되고 어버이가 되고 그렇게 되었던 즉 말하자면 그런 관계들 그런 존재들 고기를 먹는 것입니다. 저번에 서울 제가 올라갈 때 승용차로 갔는데 돼지를 실은 차를 서울 가는 동안에 한 댓 번이나 만났어요. 더구나 요새 그 돼지는 순 고기만 먹을라고 기르기 때문에 말입니다. 정말 참 그렇게 트럭 뒤에서 서로 비비고 서로 몸부림치고 그래요 모두가 다. 생명인 한에는 우리와 똑 같습니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그런 고기를 먹어야 할 것인가. 그런 고기 먹는다고 그래서 우리가 오래 삽니까?

 

우리 불자님들은 부처님을 믿을 때에는 온전히 믿어야 됩니다. 온전히 믿으면은 우리가 훨썩 좋습니다. 지금 이른바 문명병(文明病)들은 그런 고기를 많이 먹고 영양과다가 되어서 문명병이 생긴다고 하지 않습니까. 부처님 법대로 살면은 제일 편합니다. 제일 편하다가 정말로 아까 말씀드린바와 같이 염불참선(念佛參禪)으로 해서 몸도 마음도 가뿐히 우리가 영생(永生)의 고향(故鄕)에 간다고 생각할 때에 얼마나 좋겠습니까. 극락세계(極樂世界)는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극락세계는 우리 인생의 고향입니다. 모든 존재의 고향입니다. 어느 누구나가 안가고 베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본래 부처기 때문에 늦게 가나 빨리 가나 꼭 극락세계는 가야 되는 것입니다. 게으름 부리면은 늦게 가고 게으름 안 부리고 잘 닦으면은 빨리 가고 그러겠지요. 성자(聖者)의 길 따라서 그런 성인들 길 따라서 생활하는 것이 우리한테 가장 확실하고 분명하고 행복(幸福)을 보장하는 그런 길입니다. 아까 말씀드린바와 같이 우주(宇宙)는 부처님의 원력(願力)으로 충만(充滿)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 원력을 부처님의 원력을 우리가 상기하고 생각하고 간절히 그리워하는 갈앙심, 갈앙심 가지면은 우리 생명이 비약한단 말입니다.

 

하나로 둘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명이 그냥 비약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참다웁게 닦으면 단 일곱 살 먹어서도 도인(道人)이 된단 말입니다. 다라표 비구는 14살에 출가해 가지고 16살 먹을 때까지 공부해서 삼명육통(三明六通)을 다 했단 말입니다. 부처님 당시에, 우리는 필요 없는 것을 너무나 많이 배우고 필요 없는 생각을 너무나 많이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마음을 모으기가 어렵지 않습니까. 정말로 우리 마음을 그때 그때 자나 깨나 우리가 운전을 하나 밥을 먹을 때나 누구하고 재미있게 이야기 할 때나 항시 우리 마음으로는 부처님을 따르는 마음이 흘러 있어야 한단 말입니다.

 

우리는 염불(念佛)도 정말로 지성(至誠)으로 하면은 그때는 우리 입에서 광명(光明)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성도스님이나 또는 소강스님들은 한번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하면은 입에서 광명이 나온단 말입니다. 우리 불자님들도 염불해서 그와 같이 내 입에서 정말로 하여튼 광명이 나온다는, 우리가 못 나올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마음을 모아서 공부를 해야 그래야 본래 갖추어 있는, 그러기 때문에 불교(佛敎)에서 본래(本來)란 말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나중에 배워서 우리가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부처란 것은 원래 본래로 부처란 말입니다. 본래 부처인 것을 우리가 잘못 살아서 부처가 중생이 되고, 중생이 잘살면 바로 성인이 되고 부처가 된단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