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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 다시 읽는 큰스님 법문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773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773

 

자민대사(慈愍大師, 680-748), 자민대사는 굉장히 위대한 분입니다. 우리나라로는 신라 8세기 때 분입니다. 저는 자민대사를 그 어른법문을 많이 봐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 제가 그 양반을 그 어른을 좋아하는 것은 그이가 공부하실 때에 중국은 당나라 8세기 때 분인데 그이가 계실 때에 의정대사란 분이 인도에 갔다 왔단 말입니다.

 

중국에서 모다 당나라 때에는 인도에 가서 법을 배워가지고 오지 않습니까. 의정대사(義淨大師)가 자민스님 보다도, 자민대사는 경()이나 계율(戒律)이나 참선(參禪)이나 모든 것에 능통(能通)하기 때문에 자민삼장(慈愍三藏) 그래서 삼장법사(三藏法師)입니다. 현장법사(玄奘法師, 622-664)도 삼장법사이지만은 자민스님도 삼장법사입니다.

 

삼장은 경장(經藏) 논장(論藏) 율장(律藏)을 다 통달(通達) 했단 말입니다. 삼장법사인데 이이가 의정대사가 인도에 갔다 오니까 자기도 가고 싶어서 아주 그야말로 참 못내 갈망한단 말입니다. 인도에 한 번씩 갔다 올려면 한 20년 걸립니다.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20년 동안 걸려야 인도에 갖다 제대로 돌아올 수가 있고 또 법을 배워가지고 올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 20년 걸리는 것은 맨 처음에 가는데 만 한 3년 걸립니다. 그 고비사막을 넘어야 되고 히말라야 산을 넘어야 되고 말입니다.

 

그러고 인도까지 갈려면 한 30여개 국의 국경을 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세상같이 비자 내기가 쉬울 때도 미국만 갈려도 굉장히 복잡합니다. 더구나 옛날에 비자도 뭣이고 없는 그러한 미개한 때인데 그럴 때 30개 나라의 국경을 넘어서 간단 말입니다. 그래 중국(中國)서 가더라도 꼭 3년이 걸립니다. 3년이 걸려도 다 가는 것이 아닙니다. 열사람 출발하면은 십진구퇴(十進九退). 아홉 사람쯤은 쓰러지고 죽고 도로 못 가게 되서 돌아온단 말입니다.

 

그런 길이기 때문에 좀처럼 마음을 내기가 어렵지 않습니까. 그런 길을 3년 동안 우리 불자님들 3년 동안 공부를 오로지 하신 경험이 있으십니까. 없으시겠지요. 저 같은 사람은 몇 번 3년 동안을 해봤지만은 공부를 부지런히 못해서 크게 얻은 것이 없습니다. 없으나 해보면 상당히 지리 합니다. 3년도, 그런데 3년 동안 나그네 길 위에서 허비한단 말입니다. 그 고비사막은 사막을 가 보신 분들은 아시지만 사막 길이라는 것이 바람이 불면 있던 길도 없어지고 없든 산도 생기곤 한다는 것입니다.

 

중국에서 무수한 여러분들이 구법승들이 인도에 갈려고 출발했으나 중간에 쓰러지고 죽고 죽고 해서 그 사막 길 위에 먼저 쓰러지고 돌아가신 해골들이 있고 한다고 그래요. 그런 길을 3년을 가야 됩니다. 3년을, 3년 가면 또 인도에 가서 인도 말 배워야 되겠지요. 인도 말 배운 다음에 또 거기서 공부를 해야 되겠지요. 그래서 거기서 인도 말 배우고 공부하고 또 돌아올 때 3년이라. 합하면 한 20년 걸려버린단 말입니다. 그 아까운 청춘 다 가버립니다. 그렇게 해서 불경(佛經)을 번역하고 그러는 것입니다.

 

오늘 날 우리가 얼마나 해택을 보고 있습니까. 불경을 하나하나 모두가 그와 같이 또 중국에서 고승들이 인도에 들어가서 20년 동안 그런 각고의 뼈를 깍는 고생을 해가면서 들여온 불경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자민스님이란 그분은 아까 말씀마따나 의정대사가 갔다 온 것에 대해서 감격해서 말입니다. 나도 한번 꼭 가야 되겠다. 이렇게 마음 먹지만은 같이 갈 동기가 별로 없단 말입니다. 좀처럼 맘먹겠습니까. 그러나 가까스로 동기가 생겨서 출발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육지로 가서 육지로 바로 온 분도 있고, 또는 바다로 갔다 육지로 온 분도 있고 그래요 모두가 다, 그래서 자민대사는 나는 바다로 가야 되겠다. 그래서 바다 길로 해서 스리랑카로 돌아서 말입니다. 바다 길도 하여튼 아주 참 견고한 배가 있는 때가 아니기 때문에 풍파를 만나면 또 돌아오고 그러겠지요. 풍파 때문에 배가 침몰이 되고 말입니다. 그러니 몇 번이고 하여튼 중국에서 출발해 가지고 또 바람 불면할 수 없이 돌아와서 또 가야되고 말입니다.

 

그렁저렁해서 가는데 3년 걸린단 말입니다. 3년 걸려가지고 처음에 갈 때도 결심을 많이 품었겠지만 고생이 너무 지나치면 사람이 결심을 품어도 결심이 차근차근 흐미 해지고 않겠습니까. 인도에 가서 인도 말 배워야 되고 배워가지고서 그냥 올 수가 있습니까. 될수록 하여튼 자기 힘으로 해서 짊어질 만치 또 불경을 가져와야 됩니다. 낙타에다 실고 어디다 싫고 그래 가지고서 가져와야 되겠지요. 기왕 생명 걸고서 갔으니까. 그래서 중국 가서 인도에 가서 배우고 불경을 많이 얻어가지고 부처님 사리를 얻어 가지고 온단 말입니다.

 

 

올 때는 육로로 오니까 히말라야산을 넘어야 되어요. 히말라야산은 고도 평균 5천 미터가 넘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여튼 워낙 고생이 심하니까 내가 이렇게 공부해서 뭣할 것인가? 세상이라는 것은 이와 같이 고생 밖에는 없는 것인가? 어떤 공부를 해야 고생 없이 공부를 빨리 할 것인가? 이런 것에 대해서 항시 생각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마치 그렇게 하다가 간다라 지방, 간다라 지방은 북인도 지방인데 그때 간다라에 가서 관음굴(觀音窟)이라. 관음굴이란 굴이 있었다고 그래요. 굴속에 들어가서 내 지혜(智慧)로 해서는 내가 잘 모르니까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나 부처님 감응을 받고서 내가 지혜를 받아야 되겠구나. 그래서 거기서 7일 동안 단식(斷食)을 하고서 기도(祈禱)를 모셨어요. 기도를 모시니까 정말로 이렛만에 관음보살께서 자비로운 모습을 나토시면서 말씀을 하시더라고 그래요.

 

그래서 관음보살님이 하시는 말씀이 그대는 마음이 아주 순진하고 마음이 그야말로 아주 순결한 분이기 때문에 그대는 마땅히 염불(念佛)로 해서 공부를 하는 것이 그대는 훨썩 빠르다는 그런 말씀을 관음보살님한테서 얻었단 말입니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밥도 안 먹고 기도를 모시고, 기진맥진 했는데 관음보살 친견하고서 그 말씀을 들은 뒤에 순식간에 피로가 싹 다 풀려버린단 말입니다. 우리 불자님들은 그런 경험을 더러 가지신 분들이 없으십니까? 우리가 공부를 정말로 지성으로 한다고 생각할 때 어느 순간 그 지성스러운 마음 때문에 우리 모든 갈등이나 그런 것들이 다 싹 순식간에 가셔가는 그런 것을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꼭 그런 경험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참 정말로 우리라는 것은 본래 부처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현재 된 대로 해서 그대로 우리 존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존재의 근본은 바로 부처기 때문에 우리가 정말로 부처님한테 간절히 우리 모두를 다 바치고서 기원 드린다고 생각할 때 또는 부처님이라는 것은 바로 만능의 생명이기 때문에 우리가 정말로 부처님한테, 부처님이 감응할 정도가 되면 그때는 순식간에 우리 모든 갈등이 다 풀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민삼장은 아까 말씀드린바와 같이 아주 처음에는 차라리 내가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어떨가 하는 그런 비관적인 맘도 품고 또 히말라야 산을 넘어서 중국으로 올라면은 고비사막을 넘어야 되고 아주 그야말로 참 심난하겠지요. 그것이, 그러나 관음보살의 영고(靈告), 관음보살의 신령스런 말씀을 들은 뒤에는 하여튼 짐을 짊어져도 무거운 줄을 모르고 몸도 마음도 가푼하게 중국에 들어오니까 중국 당나라 현종황제는 대사께서 잘 돌아오셨다고 하면서 자민삼장이라는 호()도 주고 말입니다. 그야말로 참 삼장법사라는 호를 저마다 못 받는 것입니다. 중국에서도 몇 사람뿐인 삼장법사(三藏法師)라는 호를 받았단 말입니다.

 

그래서 인도에 다녀와서 정토자민집이란 책을 내놓았어요. 냈는데, 그이가 아주 말씀을 조금도 숨김없이 아주 정직하게 하는 분이기 때문에 그렁저렁 공부하는 사람들이 그 양반을 좋게 안 본단 말입니다. 불교에서 가장 큰 거짓말이 무엇인고하면은 이것은 그냥 보통 사기나 그런 거짓말이 아니라 도()를 깨닫지 못하고 깨달았다고 하거나 어떠한 깊은 삼매(三昧)를 증명(證明)하지 못하고 증명했다는 그런 거짓말 이것을 굉장히 큰 사기(詐欺)로 봅니다.

 

그래 세상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없지가 않단 말입니다. 그 당시도 못 깨닫고 깨달았다하는 도인 행세하는 그런 스님도 많이 있고 말입니다. 또는 어느 경계를 자기가 증명도 못하고 했다고 한단 말입니다. 누가 대접하면 공부를 많이 했다고 그래야 체면이 서겠지요. 그러나 그 보통사람들의 사기는 그야말로 별로 큰 사기가 아니지만 그러나 성자(聖者)를 사기하는 그런 것은 가장 큰 거짓말로 세워서 사실은 못 깨닫고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이라든가 또는 어느 경계를 못 증명하고 증명했다고 하는 그런 사람들은 우리 승려에서 다 쫓겨나는 것입니다. 대망언(大妄言) 그래서 그나 사람들이 다 위장을 잘 하니까 그렁저렁 넘어갈랑가 모르겠지만 그래서 자민삼장도 그와 같이 조금도 에누리 없이 그런 사람들을 공격했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에도 도() 진리(眞理)를 시기한 그런 분들이 꽤 많이 있었던가 그런 분들한테 미움을 사서 그래서 그 양반 돌아가신 뒤에는 그 양반 책을 다 태워버렸어요. 거두어서, 다행히 우리 한국(韓國)의 동화사에서 자민집이 나왔다 그래요. 그것도 일본사람이 발견했습니다. 일본 불교학자가 상당히 정도가 높은 논문을 작성해서 말입니다. 자민집이란 것을 내서 얻어 봤습니다만 그걸 보니까 정말로 하여튼 자민삼장이란 분은 굉장히 위대한 분입니다.

 

그분이 아까 말씀마따나 관음보살(觀音菩薩)의 염원(念願)을 받고서 그이가 염불하는 공부를 창도(唱導)했지만은 그 양반 식의 염불은 계행(戒行)과 참선(參禪)과 염불(念佛) 세 가지가 똑같이 겸비가 돼있습니다. 일반사람들은 더러는 염불은 염불만, 참선은 참선만 할 수가 있겠지요. 그러나 자민삼장의 염불은 참선과 염불과 계율과 같이 다 겸비가 되어있단 말입니다. 사실은 자민삼장 말씀마따나 참선염불은 절대로 둘이 아닙니다. 어째서 둘이 아닌가 하면은 우리가 본래(本來)로 부처인데 부처가 지금 되어가지 않습니까. 부처가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무슨 방법을 어떻게 취하는 것인가. 그런 방법적인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어떻게 하거나 학문(學文)도 많이 배우든 안 배우든 일자무식(一字無識)이건 간에 우리마음이 오로지 부처님한테 가서 부처님한테로 우리 마음이 오로지 모아지면 된단 말입니다. 따라서 선방(禪房)에서 오로지 좌선(坐禪)하는 것도 역시 부처님이 되는 한 공부가 될 것이고 또는 선방에 우리가 안 들어간다 하더라도 자기 집에서나 어디서나 우리 마음을 통일을 시켜가지고서 우리마음이 오로지 일념(一念)으로 되면 그만치 부처가 되어가는 지름길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주문을 외이든 염불을 하든 또는 좌선을 하고 있든 그런 방법적인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마음이 얼마만치 순수(純粹)하니 통일(統一)이 되는가? 즉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자민삼장 아까 말씀마따나 참선과 염불과 계율이 원래 나란히 가는 다 겸비해가는 그런 쪽으로 말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염불한다 하더라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일본사람들이 하는 식은 대체로 칭명염불(稱名念佛)입니다. 이름만 그냥 죽자고 이름만 외인단 말입니다. 이름만 주로 외우고 또 중국의 4세기 때 혜원대사 그분도 염불(念佛)을 창도한 분인데 그분은 그냥 속으로 염불만 하고서 그이는 앉아서 좌선만 주로 한단 말입니다. 이른바 염불화두(念佛話頭). 화두를 염불로 한단 말입니다. 그런 식이 있습니다. 우리 불자님들도 주로 가정에서는 아무래도 염불을 하기가 제일 손쉽지 않습니까. 염불을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역시 아까 제가 말씀드린 자민삼장 그런 식으로 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입니다.

 

소리를 안 내도 무방하고 우리마음이 하여튼 부처님한테 가있으면 되는 것이니까 그러나 일반사람들은 소리를 안 내면은 우리 마음이 자꾸만 산란스러우니까 마음을 모으기가 어렵겠지요. 그래서 그런때는 염불(念佛)도량, 여러분들은 안 보셨는가 모르시지만 우리가 막 승려가 될 때는 2-3십대에 큰절에 가면 염불당(念佛堂)이 있어요. 스님네가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북을 치고 말입니다.

 

신도님들이 몇백 명 모여서 한철 90일 동안 공부를 합니다. 90일 동안 하고나면 대체로 공부가 상당히 된 기분들이란 말입니다. 지금은 그런데가 없으니까 좀 아쉽게 생각합니다만 앞으로 가능하면 어디다 하던지 간에 그런 염불당을 만들어서 그러니까 한철, 한철이라는 참선하시는 분들로서는 90일입니다. 90일 동안 하여튼 북을 치고 하면 재미도 지고 그런 것 같아요. 저는 보기만 하고 안 해보았습니다만 그래서 자민삼장은 그렇게 위대한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앞으로 공부하는데도 그런 분들 자기 생명을 바치고서 도를 구하는 구도인(求道人)들의 행적을 따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너무 제가 말씀을 많이 하면 무덥고 더러는 여러분들이 지루하실 것이고 제가 말씀을 줄여서 끝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아까 말씀드린 봐와 같이 우리가 상()을 떠나지 못하면 우리 마음은 불안의식을 우리가 제어할 수가 없습니다. 불안을 떠나야 참다운 종교인데 불안을 떠나기 위해서는 그 허망한 현상-있다가 없어지고 없다가 있어지고 하는 허망한 현상-사실은 제법공(諸法空)밖에는 아닌 꿈이요 허깨비요 그런 것에다 우리 마음을 구속을 받지를 마시고 말입니다.

 

! 그런 것은 모두가 허망한 것이구나! 그 불성에다가 진여불성(眞如佛性)에다가 우리마음을 딱 안주를 시킨다고 생각할 때는 우리가 안심입명(安心立命)을 할 수가 있는 것이고 또 우리 마음이라는 것이 아까 말씀드린 봐와 같이 만능(萬能)의 자리이기 때문에 정말로 나한테는 모두를 다 할 수가 있고 도두를 다 알 수가 있다. 분명히 그러는 것인데 우리가 개발을 못한단 말입니다. 개발하는 작업이 이제 참선(參禪)이고 염불(念佛)입니다. 그래서 염불을 한다 하더라도 일본사람식으로 그냥 이름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생명이 하나의 생명이다. 부처님은 하나의 우주를 다 통할(統轄)해 있는 하나의 진정한 찬란하고 영롱한 광명(光明)이단 말입니다. 따라서 우주(宇宙)에 충만(充滿)한 그런 광명을 상상하면서 이미지를 우리가 부각(浮刻)을 시키면서 염불(念佛)을 하시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