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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청화 큰스님 서적/5. 원통불법의 요체

원통불법의 요체(82)

원통불법의 요체(82)

 

5에 금강지金剛地, 보살이 장차 정각正覺에 오르려 할 때 금강불성金剛佛性 곧 자기자성自己自性, 우주의 실상實相을 깨닫는 것이므로 정각이라 하는데 온전한 정각은 습기를 다 없앤 보살 십지를 거쳐야 합니다. 그러니까 정각의 초보인 셈입니다. 개좌皆坐 금강좌金剛坐라 설하신 금강좌란 곧 금강지金剛地로서, 금강좌라고 하는 것은 자기 생명의 본질이 훤히 빛나서 금강불성으로 화해 버린 경계입니다.

 

밀교의 수행차서인 오상성신위차五相成身位次의 제4 증금강신위證金剛身位니 해탈도에 제일보를 자리하였으며 그 자리가 공십지共十地의 제4 견지具地, 또 성문승의 제7 수다원지須陀洹地 곧 예류과의 자리며, 연각승의 제7 증적멸지證寂滅地 곧 연각 견도見道의 자리인 동시에 제8 육통지六通地 곧 육신통六神通을 얻는 자리의 초보니, 육신통을 하려면 필수적으로 금강지를 먼저 성취해야 합니다.

 

다시 바꿔 말하면 제5 금강지란 지층地層의 최저인 금강륜金剛輪이 나타난 경지로서 무쇠의 녹을 제거함과 같고 새장에 갇혀있는 새가 새장을 탈출함과 같이 생사生死의 그물을 떠나야 합니다. 범부 중생은 새장의 새처럼 생사生死의 그물에 갇혀 있습니다. 공부를 좀 했다 하더라도 금강불성을 증명하지 못하면 모두가 다 번뇌의 새장에 갇혀 있는 신세입니다.

 

중생 몸의 실상인 금강불성을 깨달아 증명하였고 진실로 본격적인 육안肉眼을 성취하였으니, 우리 육안은 탐··치에 어두워져 바로 보지 못하니 온전한 육안이 못됩니다. 금강지를 성취해야 바로 보게 됩니다. 점차로 천안天眼, 법안法眼, 혜안, 불안佛眼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이 금강지를 성취하여야 비로소 금강살타金剛薩埵 곧 금강지를 성취한 보살이라 이름하게 됩니다.

 

6에 희락지喜樂地란 삼계三界를 구지九地로 구분하여 욕계欲界는 오취五趣 즉 지옥아귀축생천상인간이 같지 않으나 동일한 산란심의 경계이므로 다 합하여 산지散地라 하고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를 각각 4로 구분합니다.

 

1에 욕계오취지欲界五趣地, 욕계 내에 지옥아귀축생의 오취(아수라는 천에 포섭함)가 있는바 이를 합하여 일지一地를 이룬 것이며

 

2에 이생희락지離生喜樂地, 욕계의 생을 떠남으로 말미 맘아 희수喜受 곧 의식에 나오는 기쁨과, 낙수樂受 곧 몸에서 느끼는 즐거움이 생하는 지로서 안의의 사식만이 있고, 이식二識이 없으므로 무분별의 낙수가 상응하며 의식에 유분별의 희수가 상응하니 곧 색계의 초선천이며, 초선에 들어가면 냄새도 모르고 맛도 모르는 것입니다.

 

3에 정생희락지定生喜樂地, 초선정의 희락喜樂을 인으로 하고 다시 승묘勝妙한 희락이 생하는 경지로서 이 지이상에는 모두 오식五識[眼識耳識鼻識舌識身識]을 여의고 곧 눈으로 봐도 안 보이고 귀로 들어도 안 들리고, 코로 냄새 맡아도 냄새가 안 나고, 입맛도 모르고, 몸에 촉감도 모르고 다만 의식意識만이 있으므로 이선천二禪天 이상은 의식뿐이고 오식五識은 없습니다. 혹 희수가 상응하고 혹 낙수가 상응하니 곧 이선천이며, 희수喜受나 낙수樂受가 서로 교차한다는 말입니다.

 

4에 이희묘락지離喜妙樂地, 기쁨을 여의고 신묘한 안락인 묘락을 얻는 경지니 희수도 오히려 추심麤心이므로, 추심은 거친 마음으로 기쁨도 공부로 보아서는 거친 번뇌입니다. 이선二禪의 희를 떠나고 오로지 정묘한 무분별의 안락에 머무는 경지로서 곧 삼선천三禪天이며

 

5에 사념청정지捨念淸淨地, 모든 번뇌 망상을 떠나 청정한 경지니, 낙수樂受도 오히려 거친 마음이므로 이를 떠나고 청정하고 조금도 조작이 없고 고나 낙을 받는 것이 전혀 없는 생각에 머무는 경지로서 곧 사선천四禪天인데 이상 사지四地는 색계입니다.

 

6에 공무변처지空無邊處地, 색지色地[색계]의 색을 싫어하여 공을 생각하되 공에 한계가 없다고 관찰하는 지혜를 짓는 자가 생하는 경지로서 즉 무색계의 제일천이며

 

7에 식무변처지識無邊處地, 앞의 외공外空을 싫어하여 내식內識을 생각하되 식에 한계가 없다고 관찰하는 자가 생한 경지로서 무색계의 제이천이며

 

8에 무소유처지無所有處地, 앞의 내식內識을 싫어하고 무소유를 생각하여 무소유를 관찰하는 지혜 있는 자가 생하는 경지로서 즉 무색계의 제삼천이며

 

9에 비상비비상처지非想非非想處地니 앞의 경지와 같은 거친 추상麤想이 없고[비상非想], 극히 미세한 상념[비비상非非想]만 있는 경지 곧, 삼계의 꼭대기인 비상비비상처도 아직은 생각인가 아닌가 하는 미세한 생각은 남아 있다는 경지입니다. 이러한 경계가 무색계의 제사천으로서 삼계 중 제일 수승殊勝한 과보果報입니다.

 

그런데 무색계를 식계識界, 색계를 근계根界, 욕계를 경[]계로 구분할 수 있으나 각계各界가 각각 삼계三界를 갖추어서 다만 현상적인 상만 차이가 있을 뿐이지 성품 차원에서는 다 일여평등一如平等합니다.

 

그래서 횡으로는 구분할 수 없고, 횡으로는 하나가 다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구분할 수 없습니다. 우주란 따로따로 뿔뿔이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하나로 다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가사, 김씨 박씨가 따로 따로 있다고 알지만 현대 물리학으로만 보더라도 산소나 수소 등의 원소로 구성된 몸이기에 산소나 수소 등의 원소 차원으로는 결국 다 붙어 있는 것입니다. 원소의 차원에서만 보더라도 다 붙어 있는 것인데 하물며 원소를 구성한 근본 성품인 불성佛性차원에서는 나나 너나 공간이나 모두가 다 동일한 불성뿐입니다. 그래서 횡으로 보아서는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근본에서, 진여불성 자리에서 문제를 풀어가야 합니다. 지금은 더욱 그럴 때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괜히 네 문중 내 문중, 네 종파 내 종파, 내 종교 네 종교로 부질없는 소모와 갈등만 할 뿐입니다.

 

으로 나눈다면 욕경계欲境界를 추진삼계麤塵三界 번뇌가 거친 경계, 색근계色根界를 세진삼계細塵三界 번뇌가 좀 미세한 경계, 무색식계無色識界를 극미삼계極微三界 번뇌가 아주 미세한 경계로 나눌 수 있겠으나, 하여튼 삼계란 근, , 의 별칭으로서 우리 마음의 번뇌로 본다면 육근, 육경, 육식이 맑아 들어가는 정도를 별칭한 것입니다. 그래서 상적으로는 경이오, 적으로는 근이며, 분별적으로는 식일새, 오온五蘊이 각기 오온을 갖추어 구별하기 어려우나 평등 일여한 가운데 성상性相이 분명하니 또한 구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수행자는 금강지를 성취하여 공무변처를 관념觀念하면 이생희락지에 이르고, 식무변처를 관념하면 정생희락지에, 무소유처를 관념하면 이희묘락지에, 비상비비상처에 머물면 사념 청정지에 이르는 것인데, 6 희락지란 이생희락과 정생희락이 생하는 경지로서 성문승의 제8 사다함지斯陀含地 즉 일래과一來果, 욕계 번뇌가 마저 녹지 못해서 욕계에 한 번 오는 위와 공십지共十地의 제5 박지薄地에 해당하고 제5 금강지와 제6 희락지를 합해서 보살승의 초환희지에 해당합니다. 여기까지가 보살초지에 해당합니다. 금타 스님께서는 보살십지를 표준하고 여러 가지 계위를 대비對比 회통會通시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