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청화 큰스님 서적/5. 원통불법의 요체

원통불법의 요체(80)

원통불법의 요체(80)

 

3절 해탈십육지解脫十六地

 

 

오늘 마무리하려고 생각하니 시간이 너무나 짧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이 심오深奧하고 범위가 넓어서 말씀하고자 하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그러나 부처님 법문은 심즉시불心卽是佛이라, 마음이 바로 부처고 또는 심청정시불心淸淨是佛이라, 마음 청정하게 해서 부처를 이룬다는 것으로 대의가 되기 때문에 줄이면 몇 말씀으로 줄일 수가 있는 것이고 퍼뜨리면 끝없이 확장하여 부연시킬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체로 마무리를 해보겠습니다.

 

수행의 위차位次인 해탈 십육지解脫十六地가 있습니다. 수행을 하려면 어떤 과정을 밟아서 해야 할 것인가 하는 위차이기 때문에 실수實修하는 수행자로서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위차를 모름으로서는 암중모색을 할 수가 있는 것이고, 또한 동시에 아만심이 있는 사람들은 증상만增上慢을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수행 위차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기 때문에 예부터 번쇄하게 논의가 많이 되어 왔습니다.

 

밀교密敎에서는 십지十地를 말하고 유가瑜伽는 십칠지十七地를 말하며 또는 성문승聲聞乘도 나름대로 십지十地를 말하고, 연각승緣覺乘도 역시 십지十地를 말하고 또는 보살승도 역시 화엄경에서 십지十地를 말하고 또한 그와 동시에 오십오위五十五位, 오십일위五十一位, 오십육위五十六位…… 등등의 여러 가지 수행론이 있는 것을 보면 얼마나 중요한 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가운데서 어떻게 서로 연관이 될 것인가?

 

달마達磨 대사께서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傅을 말씀한 것도 무엇인가 하면, 복잡한 문제들을 따지다 보면 소중한 마음도 못 닦고 말아 버리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큰스님들이 분별 시비하지 말라, 경을 보지 말라고 하는 것도 지극히 노파심절한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위차 문제만 해결하려고 해도 오랜 시일과 정력이 소모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금타 스님께 대해서 감사를 느끼는 것이 이런 성문십지, 연각십지, 보살십지 또는 오십오위나 오십육위나 그런 여러 가지 위차에 관해서 대비對比시켜 가지고 회통會通하여 하나의 체계를 세웠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할 때는 석존釋尊 이후에 그렇게 하신 분이 현대에까지 아직은 없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고, 저도 사실 젊어서는 상당히 교만한 편이었습니다마는 이런 공부를 할 기회가 없었다면 엉뚱하게도 공부가 다 되었다고 아만심에 젖어서 무거운 죄를 범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승려가 된 뒤 법화경法華經을 보고서 내 공부가 이제 다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교학 공부를 그만두려고 마음먹었습니다. ‘불교라는 것이 상대와 절대와 성상체용性相體用이 상즉상입相卽相入하여 본래 둘이 아닌 법을 알고 우주법계 그대로 제법실상諸法實相의 도리를 알았으면 앞으로 인연 따라 증오證悟를 위하여 닦아나가면 되는 것이지 무엇이 더 필요한 것인가?’ 이렇게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이런 수도의 위차位次 법문을 보고서 우리 범부가 공부해 간다는 것이 지극히 멀고도 먼 길을 가야 하는 것이구나!’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 해탈십육지解脫十六地는 금타 스님께서 성문십지, 연각십지, 보살십지 또는 오십오위라든가 여러 가지 밀교의 계위를 합해서 비교해 가면서 보살 십지를 근간으로 하여 회통을 시킨 수행 체계입니다. 물론 이 작업이 완전무결한 것인지 아닌지는 제가 그 경계가 못되기는 하나,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내용이 확실한 전거典據를 인용引用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두고두고 수행자나 선지식들이 연구하고 검토할 소중한 문제입니다.

 

처음에는 삼보에 귀의하는 초 삼귀지三歸地, 그 다음 신심과 원력을 확립하는 신원지信願地, 다음은 선택한 수행법을 닦아서 익히는 습인지習忍地, 거기에 따라서 자기의 수행을 보다 더 맹렬히 지속적으로 정진하는 경지가 가행지加行地입니다. 이 사가행지까지는 범부지凡夫地입니다.

 

다음 제5의 금강지金剛地는 금강불성金剛佛性 , 자성불성自性佛性을 직관적으로 견증見證할 때 이른바 증오證悟할 때요, 6은 희락지喜樂地, 금강지를 성취해서 법락, 선정락禪定樂이 더욱 증장增長되어서 무한불멸의 희락을 느낄 때이고, 7에 이구지離垢地, 금강지를 성취해서 욕계 번뇌를 대부분은 털어 버렸지만 아직도 제거되지 못한 욕계 번뇌의 습기를 완전히 제거할 경계입니다. 8에는 발광지發光地, 진여 곧 진여불성眞如佛性의 모든 공덕의 광명이 현발現發할 때이고, 9에 정진지精進地, 그래도 습기가 아직 남아 있으니 정진을 더욱 가속화하고, 10은 선정지禪定地, 이른바 아를 멸진滅盡하는 멸진정滅盡定이라, 와 상과 행과 식의 사온四蘊을 멸진해 버려야 누진통漏盡通을 하는데 그런 선정을 여기서 닦는 경지입니다. 물론 앞에서도 닦기는 하였지만 완전한 것은 못되었고 깊은 선정으로써 습기習氣를 떼어버리니 제11에 현전지現前地로서 일진법계一眞法界의 현상이 앞에 나타나는 경계입니다.

 

12는 나한지羅漢地, 아라한과를 성취하고 제13에 지불지支佛地, 독각승獨覺乘 즉 연각승緣覺乘의 자리로 모든 인연 관계를 모두 통달해 버리는 자리입니다. 그다음 제14에 보살지菩薩地, 자기도 깨달을 뿐 아니라 무량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원을 세우는 경지요, 그리고 부동지不動地, 번뇌의 습기가 없기 때문에 조금도 후퇴가 없고 임운등등任運騰騰 등등임운으로서 조작이 없이 자연적으로 모든 공덕을 할 수 있는 경계를 성취하였고 제15에 유여지有餘地, 그래도 아직은 불지佛地와 같이 완전하지 못하나 제16에 무여지無餘地, 부족함이 조금도 남지 않은 완전무결한 경지라 따라서 우리 범부가 초 삼귀지에서 삼보三寶에 들어가고, 차근차근 공부해서 무여지에서 정각묘각正覺妙覺을 성취하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렇게 점차로 차근차근 올라가는 분도 있고, 또는 비약적으로 뛰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가는 분도 있고, 또는 중간에 23지를 뛰어 넘어서 가는 분도 있고 근기 따라서 구구합니다. 근기가 수승한 분들은 과거 숙세 선근도 많이 있고 용맹 정진할 정력도 수승하기 때문에 그와 같이 뛰어 넘을 수가 있으나, 그렇지 못한 분들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금강지를 성취하면 성자의 경계이기 때문에 범부로 내려올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법에 대해서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고 후퇴가 없는 완전한 부동지를 성취함은 제14보살지입니다.

 

다음에 금타 스님의 해탈십육지 원문을 보겠습니다.

(원문생략)

 

 

일체의 불타佛陀는 불보佛寶, 협소한 사람들은 부처님도 꼭 석가모니 부처님만 믿는다거나 또는 같은 정토신앙을 하더라도 꼭 아미타불만 숭상합니다. 이렇게 되면 참 협소합니다. 역사적으로 필요하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지 부처님의 경계가 어느 한 부처님이 있고, 두 가지 부처님이 있다면 참다운 불교가 못됩니다. 그야말로 무장무애無障無碍, 조금도 거리낌이나 한계가 없는 것이고 천지 우주가 바로 불타이기에 시방여래十方如來는 법계法界를 몸으로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처에 대해서 이 부처 저 부처로 따로 생각하면 대승적인 생각이 못되는 것입니다. 불타께서 설하신 교법은 법보法寶, 그 교법에 의하여 수업하는 자는 승보僧寶라 말합니다.

 

이란 각지覺知의 뜻 즉, 깨닫는다는 뜻이요 법이란 법궤法軌 곧 우주의 규범이란 뜻이요, 이란 화합의 뜻이며 보란 기성其性이 밝고 청정함과 동시에 그 세력의 위대함이 최상무비最上無比하여 능히 세간을 장엄하되 영구불변하여 세계에 희유希有한 때문이라 삼보에 6종의 뜻이 있어서

 

1에 동체삼보同體三寶를 일체삼보 또는 동상同相삼보라고도 말하니 삼보 일일의 체에 삼보의 뜻이 있어 불의 체상體上에 각조覺照 곧 깨닫고 비춘다는 뜻이 있음은 불보佛寶, 궤칙軌則의 뜻이 있음은 법보法寶, 또는 다투는 허물이 없음은 승보僧寶, 내지 승에 관찰하는 지혜가 있으면 불보요, 규범이 있음은 법보, 화합함은 승보입니다.

 

2에 별상삼보別相三寶를 화상化相삼보 또는 별체別體삼보라고도 말하니 제불의 삼신三身을 불보, 육도六度를 법보, 십성十聖을 승보라 말함은 대승삼보며 장육丈六의 화신을 불보, 사제四諦 십이인연十二因緣의 법을 법보, 사과四果 연각緣覺을 승보라 말함은 소승삼보요.

 

3에 일승삼보一乘三寶란 구경究竟의 법신을 불보, 일승의 법을 법보, 일승의 보살승을 승보라 말하니 이는 승만경, 법화경등의 뜻이요,

 

4에 삼승삼보三乘三寶란 삼승자를 위하여 현하신 불의 삼신三身을 불보, 삼승三乘의 법을 법보, 삼승의 승을 승보라 말함도 역시 승만경,섭론등의 뜻이요,

 

5에 진실삼보眞實三寶란 불의 삼신三身을 불보, 일체 무루無漏의 교리행과敎理行果를 법보, 견체見諦 이상의 삼승성중三乘聖衆을 승보라 말함이요,

 

6에 주지삼보住持三寶란 불멸후佛滅後 세간에 주하는 삼보로서 목불·화상 등을 불보, 삼장三藏의 문구를 법보, 체발염의剃髮染衣를 승보라 말함이니 1, 3, 5의 삼종은 대승에 국한하고 2, 4, 6의 삼종은 대소승에 통하니라.

 

비록 삼귀계를 초수初受할지라도 해탈을 목적할진댄 반드시 대승삼보에 귀의해야 합니다.

 

란 입도방편入道方便이라 불가결이니, 우리가 방편이라 하면 안 해도 무방하다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보통 세간적인 방편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일체경론一切經論은 따지고 보면 다 방편인 것입니다. 따라서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방편은 꼭 지켜야 합니다. 방편에 의지해서 통하고 방편에 의지해서 깨닫는 것입니다. 계상戒相으로는 율의律儀를 섭하고 계덕戒德으로는 대도大道에 통할새 오계五戒는 계경戒經의 수위로서 위선 제일 불살생계不殺生戒에 있어 무생無生의 이를 증하면 대승이요, 그렇지 않으면 소승이니라. 진여불성 자리에 입각해서 계를 지키면 대승인 것이고, 불쌍하니까 안 죽인다는 정도는 계를 지켜도 소승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삼보三寶를 풀이하는 것은 모두가 다 불경에 있는 것이니까 보다 구체적으로 알기 위해서는 승만경이나 법화경이나 경론을 보면 되겠습니다마는 아무튼 이와 같이 육종삼보六種三寶 곧 여섯 종류로 삼보를 말해 있는 것을 생각하고 이 소승삼보는 일차 참고로 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결국은 대승 삼보를 의지해야만 이 대승적인 신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승 삼보의 요체는 무엇인가? 이것은 천지 우주가 바로 부처이고, 법보는 천지우주의 도리라, 따라서 어떤 것도 불보 가운데 안 들어가 있는 것이 없고, 어떤 도리도 법보 가운데 안 들어가 있는 것이 없습니다. 승보는 바로 현상계 모두가 승보입니다. 특히 오늘날은 부처님 도리 곧 우주의 법칙대로 바로 믿을 때입니다. 바로 못 믿으면 필요 없는 갈등과 정력의 소모를 많이 합니다. 기독교나 이슬람이나 공산주의나 따지고 보면 법보에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만 그네들은 법보를 제대로 온전히 모르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저렇게 생각해서 집착하는 것이지 그것이 법보 아닌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다운 진실된 법보로 인도하면 되는 것이지 적으로 몰아세워서 싸울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