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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청화 큰스님 서적/5. 원통불법의 요체

원통불법의 요체(59)

 

 

 

게송 음미偈頌吟味

 

불경佛經을 보면 무슨 경이나 꼭 게송이 같이 곁들여 있습니다. 역시 부처님께서 중생을 교화하는 묘가 부사의不思議하기 때문에 우리 마음을 평온하고 순수한 정서로써 순화시킨다는 의미가 포함되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더구나 저같이 말주변 없는 사람이 하루에 네댓 시간씩 원리만 말을 하니까 굉장히 딱딱할 것입니다. 그래서 밤에 한 시간 동안에는 공부하는데 유익한 게송을 골라서 음미吟味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부용芙蓉 스님의 임운무애게任運無碍偈

 

부용도해(芙蓉道楷 ?1118) 스님은 중국 중세기 북송北宋때 조동종曹洞宗의 위대한 선사입니다. 이 스님은 청백하고 도행道行이 높아 총림叢林에는 물론이요 도속這俗이 존경하므로 당시 휘종徽宗 황제가 자가사袈裟 즉 금란가사金襴袈裟와 당호를 하사했는데 받지를 않고 되돌려 보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자기가 유명한 선사禪師라 하더라도 감격을 하면서 받아야 할 것인데 몇 번 간청을 해도 사절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임금의 노여움을 사서 그 벌로 귀양을 가게 되었습니다. 귀양도 참 별난 귀양도 있지 않습니까. 5년 동안이나 귀양살이를 하였는데 그곳에 수백 명의 학도들이 모여 스님 밑에서 공부를 하게 되니 황제는 뉘우치고 화엄선사華嚴禪寺라는 절 이름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렇게 유명한 스님입니다. 그 뒤 병도 없이 입적하였는데 나이가 아마 76세이었던 모양이지요. 그래서 벌써 우리도 그 나이에 가까워지니까 더욱 친밀감이 들어서 가장 허두에 말씀드리겠습니다.

 

任運無碍偈임운무애게

 

吾年七十六오년칠십육  내 나이 이미 칠십육인데

世緣今已足세연금이족  세상인연 이제 모두 마쳤도다.

生不愛天堂생불애천당  살아서는 천당을 바라지 않고

死不怕地獄사불파지옥  죽어서는 지옥도 두렵지 않네.

撒手橫身三界外살수횡신삼계외  뿌리치고 삼계 밖에 내 몸을 두니

騰騰任運何拘束등등임운하구속  등등임운[걸림없는 경계] 에 무슨 구속 있을 것인고!

 

- 芙蓉道楷부용도해 -

 

오년 칠십육吾年七十六인데 세연금이족世緣今已足이라내 나이가 벌써 일흔 여섯인데 세상 인연이 다 해서 더 바랄 것이 없이 이로서 이미 만족을 한다는 말입니다. ‘생불애천당生不愛天堂이요 사불파지옥死不怕地獄살아서는 참선 공부에만 애썼지 천상 같은 것은 바랄만 한 틈도 겨를도 없었다는 말입니다. 오로지 정진만 했다는 의미가 되겠지요. 또한 금생에 닦을 만큼 닦았으니 죽음에 이르러서는 지옥을 두려워 할 것도 없다는 말입니다. ‘살수횡신삼계외撒手橫身三界外하니살수는 손을 뿌리친다는 말로 그냥 모든 잡연雜緣을 다 뿌리치고 간다는 뜻입니다. 삼계 밖에 몸을 누인다는 말은 공부를 했으니 삼계에 갇혀 있지 않고 해탈을 했다는 뜻이 됩니다. 이제 손을 뿌리치고 해탈의 경계에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등등임운 하구속騰騰任運河拘束이리요등등임운騰騰任運은 조금도 조작이 없이 법 그대로, 불교말로 하면 법이자연法爾自然이라, 법 그대로이니 조금도 구속이 없이 당당하다는 뜻입니다. 등등임운이니 어찌 내가 구속이 있을 것인고. 이런 게송입니다. 공부하다가도 이런 게송을 한번 읊어보면 그마만치 마음이 시원스럽기도 하지 않겠습니까?

 

내 나이 일흔여섯, 세상 인연이 다해서 가는 것인데 서운할 것도 미련도 애착도 없고 조금도 불평이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살아서는 오직 내 최선을 다해서 공부하였을 뿐이지 천상이고 행복이고 그런 것을 바랄만 한 겨를도 없었다. 바르게 살았으니 죽어서 지옥이 두려울 것도 없는 것이고 잡연을 뿌리치고 삼계 밖에 해탈의 경계에다 몸을 두니 등등임운 하구속이리요, 이제 당당하고 활발발지活潑潑地, 무엇을 두려워하고 꿇릴 것이 있을 것인가, 그저 의젓이 인연 따라서 자연의 법도에 따를 뿐이라는 뜻입니다. 그야말로 임금이 주는 금란가사, 찬란한 가사를 보통 사람 같으면 못 받아서 한일 것인데 그렇게 안 받다가 귀양살이까지 할 수 있는 청빈淸貧한 수행자의 귀감입니다.

 

 

 

 

2) 석옥石屋화상 임종게臨終偈

 

다음은 임제종臨濟宗 전등법사요 한국 조계종의 종조宗祖인 태고 보우太古普愚 선사의 스승 되는 석옥청공(石屋淸珙 ?1352) 화상이 읊은 임종게臨終偈입니다. 앞의 게송도 임종게입니다만, 다른 게송도 중요하겠지만 도인들이 열반 들 때에 남겨 놓은 임종게는 우리에게 더욱더 숙연한 감명을 줍니다.

 

無火定偈무화정게

 

靑山不着臭尸骸청산불착취시해  청산은 냄새나는 시체를 받지 않는데

死了何須掘土埋사료하수굴토매  죽어서 하필이면 땅에다 묻을 것인가,

顧我也無三昧火고아야무삼매화  나를 돌아보니 삼매의 불이 없구나

先前絶後一堆柴선전절후일퇴시  앞에 있다 이내 사라질 장작더미 뿐,

 

- 石屋淸珙석옥청공 -

 

청산불착 취시해靑山不着臭尸骸하니청산은 냄새나는 시체를 받지 않으니, 붙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맑은 청산도 바로 본다면 하나의 생명인데 그런 맑은 청산이 나같이 참선 공부를 좀 했더라도 죽으면 냄새나는 시체이므로 붙이기를 싫어할 것이니, ‘사료하수 굴토매死了何須掘土埋리요죽어서 가는 길에 어찌 하필 땅을 파고서 시체를 묻을 것인가? 속인들이나 매장을 할 것이지 우리 공부하는 출가사문들을 무슨 필요로 매장을 할 것인가 하는 말입니다. 청산도 냄새를 풍기는 시체를 붙이기 싫어하는데 그 땅에다 냄새나는 시체를 무슨 필요로 묻어야만 할 것인가? 그러니까 자기 시체를 매장을 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지요. 그러나 고아야顧我也 무삼매화無三昧火그렇다고 해서 과거 위대한 조사들처럼 화광삼매火光三昧에 들어서 자기 몸을 태우면 좋은데 그럴만한 법력도 없다는 한탄입니다. 나를 돌아다보니 삼매의 불이 없다는 말입니다.

 

삼매의 불, 출가사문이 되어서 참선 수행을 하는 우리 수행자들이 저나 여러분이나 임종 때에 이런 한탄이 안 나오리라고 장담을 하겠습니까? 부처와 나와 둘이 아니고 달마와 나와 둘이 아닌데, 그런 분들은 화광삼매에 들어서 삼매의 불로 자기 시체를 태워서 사리舍利(Sarira)를 남겼던 것입니다.

 

아난阿難ananda,(阿難陀)존자는 마하가섭 다음의 제삼대第三代조사입니다. 대체로 그런 분들이 임종 들 때는 미리서 내가 언제 가겠다고 말씀을 합니다. 그런 것은 미련을 두어서가 아니라 마지막 설법을 하기 위해서, 제도 못한 사람들을 마저 제도하기 위해서 방편으로 말씀하는 것입니다. 아난존자도 열반에 들 것을 미리 예언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열반들 장소로 마가타국Magadha에서는 오래 있었으므로 갠지스강Ganges을 건너서 한가한 비사리국Vaisali으로 가려고 하였습니다. 아난존자는 삼대조사이고 부처님 종제從弟이며 부처님을 20여 년 동안 시봉하였고 부처님 법문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다 외울 정도로 위대한 분이기 때문에 아난존자의 열반상涅槃相을 뵈옵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그런데 마가타국을 떠나서 저쪽 비사리국으로 간다고 하니까 그때 마가타국의 왕인 아사세왕阿闍世王(Agatasatru)은 숭앙하는 성자가 다른 나라에 가서 열반 든다는 소식에 굉장히 섭섭해서 가지 못하게 말리려고 많은 군대를 거느리고 아난존자가 떠난 길을 뒤따라갔습니다. 그런데 이미 갠지스 강 저 편에 있는 비사리[비야리]에서는 그 나라 왕이 아난존자를 마중하러 군대를 이끌고 갠지스 강 기슭으로 오는 것입니다.

 

아난존자는 갠지스 강을 건너려고 모래사장으로 나왔는데 그때 벌써 아사세왕은 곧바로 뒤쫓아 와서 진을 치고 있고 저쪽을 건너다보니까 그곳 비사리국 왕이 군대를 거느리고 마중을 나와 있는 것입니다. 아난존자는 자기 때문에 큰 싸움이 일어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여 배를 타고 강심江心에 이르러 배 위에서 공중으로 솟아올랐습니다. 그리고는 18신변神變을 나투고 화광삼매火光三昧에 들어 가슴에서 불을 내어 공중에서 자기 몸을 태웠습니다. 삼매가 순숙되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불이나 물이나 무엇이든지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불성 가운데는 불이나 물이나 무엇이고 모든 성품이 모두가 다 들어 있어서 깊은 삼매에 들면 그걸 자재自在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광삼매로써 사리를 내어 양쪽 기슭으로 이분二分해서 떨어뜨렸습니다. 그러니 싸울 수가 있겠습니까? 양편이 다 한없이 슬퍼하고 우러러 찬탄하였습니다.

 

그러한 열반상을 청공화상이 모를 리가 만무하겠지요. 그래도 조실로 불리고 태고 스님뿐만 아니라 위대한 제자가 많이 있는데, 자기가 자기를 돌아보니 마땅히 화광삼매 정도는 있어야 할 것인데 푸른 청산에다 냄새나는 시체를 묻는다는 것은 아예 내키지 않고 그렇다고 화광삼매에 들 만한 법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저 같은 사람도 이대로 죽으면 어찌할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가당치도 않습니다. 앞으로 죽을 날까지 얼마나 가려는지 모르겠지만 부지런히 공부해가지고 이런 정도의 한탄은 안해야 할 것인데 어떻게 되려는지 참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나를 돌아보니 삼매의 불이 없고서 다만 선전절후일퇴시先前絶後一堆柴지금 자기 앞에는 사부대중이 모여서 화장하려고 쌓아놓은 한 무더기 장작더미가 있는데 자기를 화장하면 곧 사라지고 말겠지요. 그래서 자기 앞에 있지만 이윽고 사라지고 없어질 한 무더기의 나무뿐이로다 하는 말입니다. 이렇게 석옥청공 화상은 읊었습니다. 이런 것을 우리 참선 공부하는 스님 네들은 명감明鑑을 삼아서 부지런히 삼매를 닦아서 꼭 이런 후회를 하지 않도록 공부를 해야 할 것입니다. 부처와 나와 둘이 아니고 또는 아난존자와 나와 둘이 아니지 않습니까?

 

3) 천고송天鼓頌

 

우리는 도리천忉利天이라든가 또는 야마천夜摩天이나 도솔천兜率天이나 말하면 꿈속 나라처럼 감도 잘 안 잡히고 믿지도 않는 불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천상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색즉공色卽空이라 또는 오온개공五蘊皆空이라, 모든 상이 본래 공이라는 차원에서 본다면 나도 없고 인간도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상도 허망상이나마 가상假相이나마 있다고 할 때는 욕계欲界 뿐만 아니라 색계나 무색계나 삼계三界가 엄연히 있는 것입니다. 다만 그 있는 것은 인간도 가상으로 있듯이 실존적이 아니라 가상으로 있다는 말입니다.

 

도리천은 바로 사왕천四王天 다음이니까 욕계천欲界天 가운데는 낮은 천상입니다. 도리천 다음에는 야마천 그다음에는 도솔천, 그다음에는 화락천化樂天, 욕계천의 마지막 하늘이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인데,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욕계에서 올라갈수록 점차로 욕심이 희박해지다가 색계에 올라가서는 잠욕[睡眼慾], 식욕, 음욕 등 욕심이 모두 떨어지는 것입니다. 욕계천에 있는 도리천의 공덕에 대한 게송이 있습니다. 이 게송은 당화엄경華嚴經에 있는 법문인데 어떻게 해서 이런 게송이 나왔는가 하는 그 연원이 있습니다.

 

도리천의 왕은 제석천帝釋天입니다. 그런데 도리천은 욕계의 범주에 들어있어서 역시 게으름도 피우고 또는 망상도 하고 번뇌를 다 떼지 않은 욕계천 입니다. 우리 인간 세상 같으면 게으름 피우면 계속 게을러질 수도 있고 공부를 조금 했으면 그때그때 반성하고 경각심을 내겠습니다마는 도리천에 있는 중생들은 인간 보다는 조금 더 높은, 업장이 더 가벼운 세계이기 때문에 게으름을 내면 북이 없는데도 법성法性:佛性자연의 도리로서 자동적으로 북소리가 울려오는 것을 천고天鼓라고 합니다. 천고는 하늘 북인데 물형적物形的인 어떤 북이 있어서 소리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게으름 부림에 따라서 그에 상응하여 울려나오는 북소리 자체가 게으름을 없애고 정진을 일깨우는 북소리라는 뜻입니다. 극락세계의 나무나 숲이나 모두 염불念佛염법念法염승念僧이라, 부처를 노래하고 또한 법을 노래하고 승가를 노래하듯이 그런 높은 세계는 소리 가운데 법문의 의미가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도리천에서 저절로 울려오는 북소리도 어떻게 들려오는가 하면,

 

天鼓頌천고송

 

一切五慾悉無常일체오욕실무상  일체의 오욕락은 모두 다 무상하여

如水聚沫性虛僞여수취말성허위  물거품과 같아서 성품은 허위로다.

諸有如夢如陽焰제유여몽여양염  모든 것 꿈같고 아지랑이 같아

亦如浮雲水中月역여부운수중월  또한 뜬구름이요 물에 비친 달이로다.

 

華嚴經화엄경十五십오

 

일체오욕실무상一切五慾悉無常이라일체의 오욕이 모두가 다 덧이 없다는 말입니다. 오욕은 재색식명수財色食名睡, 재물욕이나 음욕 식욕 명예욕 잠욕이나 이런 오욕이 모두가 다 허무하고 무상하다는 말입니다. 명곡名曲 리듬에는 거의 다 무상無常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명곡을 듣고, 같은 연극이라도 비극을 보는 것이 훨씬 더 우리 인생을 성숙되게 합니다. 그것이 이른바 카타르시스Katharsis 아니겠습니까.

 

여수취말성허위如水聚沫性虛僞마치 우리 인생이나 세상의 모든 것은 물거품 같아 그 성품이 허망하고 거짓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인간도 바로 못 보듯이 도리천도 욕계천상이기 때문에 바로 못 깨달아 좋다 궂다 하지만 모두가 다 사실이 아니요 거짓되어 허망하다는 말입니다.

 

제유여몽여양염諸有如夢如陽焰하니제유諸有는 모든 존재하는 것들로서, 상대적으로 있는 것은 모두가 다 꿈같고 아지랑이陽焰 같으며 역여부운수중월亦如浮雲水中月이라역시 뜬구름 같고 물속에 비친 달 같도다. 이와 같이 도리천 북소리가 울려온다는 것입니다. 참선을 깊이 하면 경험을 한 분도 있을 것입니다마는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북소리 같은 아주 청아한 소리가 울려오면 불현듯 심신이 개운해지고 산란한 마음의 갈등이 풀려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경계가 바로 도리천의 북소리가 되겠구나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주란 것은 이렇게 신비로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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