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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청화 큰스님 서적/5. 원통불법의 요체

원통불법의 요체(60)

 

 

4) 대지大智선사 영득한인송羸得閑人頌

 

그다음에는 대지大智선사의 게송입니다. 200년 전의 일본 스님으로 참선도 통달했다는 분이고 또는 역대 일본 승려 가운데 게송을 제일 잘하는 분이라는 정도로 이름 있는 분입니다. 진불암眞佛庵에서 저와 같이 지낸 도반들은 이 게송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때 이 게송을 써서 벽에 붙인 적이 있습니다.

 

羸得閑人頌영득한인송

 

幸作福田衣下身행작복전의하신 다행히도 가사를 입는 몸이 되어서

乾坤羸得一閑人건곤영득일한인 천지에 한가로운 사문이 되었도다.

有緣卽住無緣去유연즉주무연거 인연 있어 머물다 인연 다 하면 떠나가나니

一任淸風送白雲일임청풍송백운 맑은 바람 부는 대로 흘러가는 흰 구름처럼,

 

- 大智禪師대지선사 -

 

행작복전의하신幸作福衣下身하니다행히도 복전의福田衣 밑에 몸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복전의란 가사로서 바로 복 밭이 되는 옷이라는 뜻입니다. 생각해보면 생각할수록 옷 가운데서 가사같이 복 밭이 되는 옷이 없는데 다행히도 자기 같은 존재가 복전의 아래의 몸이 되었다는 깊은 감회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건곤영득일한인乾坤羸得一閑人이로다천지간에 모든 것을 극복하고 모든 번뇌를 다 이겨낸 위대한 승리자요 삼계를 초월한 한가로운 사람이 되었도다.

 

그러니 유연즉주무연거有緣卽住無緣去인연이 있으면 머물고 인연 다 하면 바로 떠나는 것이니 조금도 집착이 없이 인연 따라 산다는 말입니다. 죽을 때나 또는 이별할 때나 또는 어느 절에서 살다가 떠날 때나 말입니다. 보통은 불사佛事나 좀 해놓으면 모두 계속 살려고 합니다만 인연이 다할 때 떠나지 않으면 결국은 번뇌의 앙금이 가라앉는 것입니다. 천지간에 일체를 다 초월해 버렸으니 어디 가나 문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도리어 자기 것이 아무것도 없으면 공부하기 편리합니다. 천지간에 모든 것을 다 초월하여 이겨버린 한가한 사람, 불교에서는 한인閑人이라 하면 공부를 다 해 마쳐서 할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한가한 사람이 되었으니 인연이 있으면 머물고 인연이 없으면 떠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일임청풍송백운一任淸風送白雲이라마치 맑은 바람에 흰 구름이 가는 것이나 같다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수행자를 가리켜서 운수雲水라 하지 않습니까? 행운유수行雲流水, 구름이 떠가는 것 같고 물이 흘러가는 것 같다는 말입니다. 아무런 찌꺼기나 섭섭함이나 아쉬움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저 그런대로 인연 따라서 가되 마음은 항시 진여불성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공부가 되어버리면 진여불성과 온전히 하나가 되었으니 아무런 조작인 없이 임운등등 등등임운이 될 것이고 공부가 미숙한 때에는 애써야 되는 것입니다.

 

 

5) 부설거사浮雪居士 사허부구게四虛浮漚偈

 

저는 출가했을 때에 운문암雲門庵 절에 가서 보니 법당 안에 수릉엄삼매도首楞嚴三昧圖와 순치황제順治皇帝 출가시出家詩, 그리고 부설거사浮雪居士 사허부구게四虛浮漚偈가 붙여 있어서 특별히 인상 깊게 간직하고 외우고 있습니다. 요 근래 큰스님들도 순치황제 출가시나 부설거사 사허부구게는 상당히 좋아하면서 소개를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공부인에게 이 부설거사의 허부구게가 굉장히 의의 깊은 법문이 됩니다.

 

부설거사浮雪居士는 다 아는 바와 같이 신라 때 도인 거사입니다. 자기 아내 묘화妙花도 아들 등운登雲과 딸 월명月明도 다 깨달은 도인이라고 전합니다. 부안扶安 변산 월명암에 가면 월명각시라고 부설거사 딸의 부도가 있을 정도로 네 분 다 위대한 분으로, 마치 인도의 유마거사維摩居士나 중국의 방거사龐居士와 비교하기도 하는 위대한 분입니다. 애초에는 승려인데 과거 숙세 인연으로 묘화 아가씨와 만나게 되어 할 수 없이 결혼은 했으나 거사로 있으면서도 승려 못지않게 공부 정진하여 도반들보다도 더 빨리 깨달아서 도반들을 다 제도한 분이라고 합니다.

 

浮雪居士四虛浮漚偈부설거사사허부구게

 

妻子眷屬森如竹처자궐속삼여죽 거느린 처자권속 삼대밭 같고

金銀玉帛積似邱금은옥백적사구 쌓여진 금은옥백 산더미 같아도

臨終獨自孤魂逝임종독자고혼서 임종에 당하여 외로운 혼만 떠나가니

思量也是虛浮漚사량야시허부구 생각하면 이 또한 허망한 뜬 거품이요,

朝朝役役紅塵路조조역역홍진로 날마다 힘들여서 살아온 세상길에

爵位纔高已白頭작위재고이백두 벼슬길 올랐어도 머리는 백발이라

閻王不怕佩金魚염왕불파패금어 염왕은 벼슬과 영화를 두려워 않거니

思量也是虛浮漚사량야시허부구 생각하면 이 또한 허망한 뜬 거품이요,

錦心繡口風雷舌금심수구풍뇌설 재주가 뛰어나서 말로는 요설변재

千首詩輕萬戶候천수시경만호후 천 글귀 시를 지어 만호후를 경멸해도

增長多生人我本증장다생인아본 다생겁의 아만의 근본만 늘게 하나니

思量也是處浮漚사량야시허부구 생각하면 이 또한 허망한 뜬 거품이요,

假使說法如雲雨가사설법여운우 가사, 비구름 몰아치듯 설법을 잘 하여

感得天花石點頭감득천화석점두 하늘 꽃 감동하고 돌멩이 끄덕여도

乾慧未能免生死간혜미능면생사 껍데기 지혜로는 생사를 못 면하니

思量也是虛浮漚사량야시허부구 생각하면 이 또한 허망한 뜬 거품이로다.

 

처자궐속삼여죽妻子眷屬森如竹하고처자와 권속이 번성해서 마치 삼대나 대밭의 대나무같이 수가 많고, ‘금은옥백적사구金銀玉帛積似邱라도금이나 은이나 또는 옥이나 비단이나 재산이 많아서 마치 산더미같이 많다 해도, ‘임종독자고혼서臨終獨自孤魂逝하니죽어서 갈 때는 홀로 외로운 혼으로 돌아가니, ‘사량야시허부구思量也是虛浮漚생각해보니 이것도 허망한 뜬 거품이로다.

 

네 가지 끝 글귀가 모두가 허부구이기 때문에 허부구게라고 합니다. 처자권속이 그렇게 많고 재산인 금백이 산더미같이 많다 하더라도 임종 때는 결국은 홀로 외롭게 혼만 가는 것이니 생각해보면 이것도 역시 허망한 뜬 거품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수행자라고 해서 허망하지 않겠습니까?

 

조조역역홍진로朝朝役役紅塵路아침마다 날마다 하루 종일 애쓰고 애쓰는 세상길에서, 세상은 복잡하고 번뇌가 많으니까 홍진이라 합니다. 이러한 고달프고 때 묻은 세상 바닥에서, ‘작위재고이백두爵位纔高已白頭벼슬 지위가 가까스로 높이 좀 올라갈 땐 이미 벌써 센머리가 되는 것이니 염왕불파패금어閻王不怕佩金魚금어는 벼슬아치들이 차는 훈패나 같은 것입니다. 염라대왕은 저승에서 우리의 행동을 심판하는 존재입니다. 설사 심판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 잠재의식 마음자리에 들어 있는 업의 종자는 스스로 심판이 되어서 업 따라 굴러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상징적으로 염라대왕이 한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겠지요. 염라대왕은 우리가 높은 벼슬아치가 된 것을 두려워하지 않나니, 이것도 생각해보면 허망한 뜬 거품이로구나.

 

다음에는 금심수구풍뇌설錦心繡口風雷舌이라비단 같은 마음 수놓아서 울긋불긋한 입이니까 재주가 많아 말재간의 요설변재가 바람 같고 번개같이 능란하고 천수시경만호후千首詩輕萬戶候라도천호후나 만호후는 이른바 지방의 호족이나 왕자 제후諸候라는 말입니다. 시를 잘 지어서 많은 시로써 이름이 유명해지면 만호후와 같은 제후[]도 가벼워 한다는 말입니다. 그럴 정도로 명예라든가 능력이 훌륭하더라도, ‘증장다생인아본增長多生人我本하러인아란 아만심을 말합니다. 다생겁래로 우리가 인간인지라 어떤 누구나가 아만이 있습니다. 아무리 못난 사람도 자기 잘났다는 생각은 있는 것입니다. 시를 잘 쓰고 제후()를 가볍게 할 수 있을 만한 정도가 되어도 이런 것은 모두가 다 다생겁래로 자기 아만심의 근본만 더 증장을 시킨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참다운 깨달음의 경계에서 본다면 이것도 아무 쓸데가 없는 것이라, 생각해 보니 이것도 역시 허망한 뜬 거품이로구나.

 

다음 마지막 절에는 가사설법여운우假使說法如雲雨하고가사, 법을 설하는 것이 마치 구름과 비와 같이, 구름이 흘러가고 또는 비가 오듯이 막힘없이 설법을 잘해서(법사를 말하겠지요) 감득천화석점두感得天花石點頭라도사람만 감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늘 꽃도 감동하고 돌 같은 무생물도 끄덕끄덕 수긍할 정도로 한다는 말입니다.

 

옛날 남인도의 진나陳那(Dinnaga) 법사는 대승법문을 하는 데도 당시에 모두들 법집法執에 휩싸여 수긍하지 않고 오히려 비방만 하니까 하도 한탄스러워서 산에 올라가 돌을 세워놓고 대승법문을 했더니 어찌나 도리에 맞는 법문이던지 돌들이 끄덕끄덕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석점두石點頭라 합니다. 하늘에 있는 꽃이 감동하고 돌들이 수긍할 정도로 설법을 잘 하더라도 간혜미능면생사乾慧未能免生死하니간혜乾慧는 마른 지혜라는 말입니다. 물기가 있으면 바싹 마르지가 않겠지요. 선정의 물이 없으면, 선정은 물로 비유합니다. 바싹 마른 지혜 곧 실증實證이 없는 허망한 분별 지혜라는 말입니다. 세간에서 남한테 칭찬도 받고 잘났다는 말도 듣고 설법도 잘 하더라도 생사 문제에는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처를 욕하고 조사를 나무라고 별스런 똑똑한 소리를 다 하더라도 선정으로 습기를 못 녹였으면 생사에는 힘이 없고 해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렇게 설법을 잘 해서 돌멩이들이 끄덕이고 하늘에 있는 꽃이 감동할 정도가 된다 해도 바싹 마른 지혜, 다만 이론만의 지혜, 해오解悟만의 지혜인 간혜乾慧로는 생사를 면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생각해 보면 이것도 역시 허망한 뜬 거품이로구나.

 

중국 당나라 약산유엄(藥山惟儼 745828) 선사는 석두희천(石頭希遷 700790) 스님의 제자로 마조馬祖 스님과 같은 시대의 선사입니다. ‘강남江南은 약산 유엄선사요 강서江西는 마조 도일 스님이라고 할 정도로 유명한 분입니다. 그런데 선사이기 때문에 설법을 잘 안 하는데 많은 대중들이 간절히 설법을 청했더니 법상에 올라가 아무 말 없이 한참 눈만 끔벅끔벅하고 있다가 내려와서 조실 방으로 가버렸습니다. 원주院主가 따라가서 이렇게 수많은 사람이 모여서 스님의 법문을 청했는데 어찌 그러시느냐고 물었더니 불경佛經의 해설은 강사講師가 하고 계율을 설하는 데는 율사律師가 있는데 나는 선사禪師가 아니냐?’고 하면서 다시는 말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선사들은 이렇게 많은 말이 없는 것인데 저는 선사의 분상에서 너무 번다한 해설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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