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선원 일과는 변함이 없습니다.
대중 처소처럼 2시 40분에 일어나 시간 지켜가면서 일과 보내는 것입니다. 오전 정진, 오후 울력, 법공양 출판 준비 등 일과가 빡빡한데 제가 보아도 시간 아껴가며 잘해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일과가 하루 이틀이 아니고 출가 이후 아직 지켜온 일과인데 새벽에 일어날 적마다 저 자신이 대견스럽고 고맙습니다.
그 옛날 어린 시절 눈칫밥 먹다가 홀로 서울 올라와 연탄불에 김치도 없는 라면으로 끼니 해결하면서 그렇게 마음이 편하고 행복했는데 “이 세상에 가장 맛있고 깨끗한 음식은 손수 끓여 먹는 라면입니다.” 사바세계 이치가 간단한 것도 남에 손에 의지하려면 정치와 당근이 필요한데 손수 라면을 연탄불에 끓여 먹어 일체 정치와 당근 없이, 마음 그림자 없이 한 끼가 해결되니 이보다 더 청정한 음식은 없다는 진리를 터득했고 바람막이 없는 서울 객지 생활을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 스스로 해결하면서 생존하는 “독고다이”이 삶이 운명이자 기질입니다.
“손수 끓여 먹는 라면” 철학과 가풍은 현재도 여여합니다. 홀로 정진하면서 손수 공양 지어 부처님 전에 올리고 설거지하고 세탁기 돌리고 예초기 돌리고 검질 매고 법공양 손수 포장해서 우체국 다녀오고 하나부터 열까지 혼자서 헤쳐나가며 망상 없이 하루 일과 잘 보내고 있습니다. 수행도 결국은 스스로 깨닫는 것이지 누가 깨달아 주는 것은 없습니다. 법신(法身)이 설법한다고 마음만 열면 온 사바세계가 다 스승이고 도반입니다.
업(業)을 녹이는 수행은 염불이나 좌선에만 있는 것은 아니고 황야(荒野)에서 철저한 고(苦)를 겪고 일어나야 업을 녹이고 영혼을 맑힐 수가 있는 것이며 고(苦)에 지면 폐인(廢人) 되는 것이고 극복하면 상인(上人)이 되는 것입니다. 같은 꽃도 온실에서 자란 꽃보다 노지에서 서리와 찬바람을 맞고 자란 꽃이 꽃향기도 짙고 오래가는 것입니다. 고(苦)를 극복하고 나면 나를 놓게 되고 나의 수행으로 뭇 중생들에게 이익이 되겠다는 서원이 가슴으로 우러나야 비로소 반듯한 수행자의 삶을 가꾸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