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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경전,법문자료/4. 인광대사의 가언록

화두 놓고 염불하세(83)

 

 

印光大師 嘉言錄(인광대사 가언록)

옮긴이 김지수(寶積)

 

 

7. 염불과 참선은 본디 둘이 아니건만.(4)

 

1) 영명(永明) 선사의 사료간(四料簡)

 

이는 마치 사람이 밥을 먹을 때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라오. 천하의 선지식들이 열반의 경지를 증득하지 못하는 것도, 그 공덕이 이 성인과 가지런하지 못하기 때문이오. 그래서 오조(五祖) () 선사는 소동파(蘇東坡)로 태어나고, 초당(草堂) ()선사는 노공(魯公)으로 다시 출생한 거라오. 예로부터 확철대오 하고서도 완전히 증득하지 못한 대종사(大宗師)들이 이처럼 수없이 많소.

 

이는 정말로 오직 자력(自力)에만 의지하고, 부처님의 자비 가피를 구하지 않은 탓이오. 미혹이나 업장이 말끔히 제거되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한, 결코 생사 윤회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라오.

 

반면 정토염불은 믿음과 발원과 수행(信願行)의 삼요소만 갖추면, 업장을 짊어진 채 극락정토에 왕생할 수 있으며, 한번 왕생하면 생사윤회를 영원히 벗어나게 되오. 이미 깨달아 증득한 사람은 곧장 부처의 후보 자리(補處)에 오르게 되고, 아직 깨닫지 못한 중생이라고 할지라도 불퇴전(不退轉 : 아비발치)의 경지를 증득하게 되오.

 

그래서 연화장(蓮華藏) 세계의 모든 중생들이 한결같이 극락정토에 왕생하기를 발원하며, 선종과 교종의 수많은 선지식들이 나란히 서방정토에 왕생하라는 거라오. 이는 부처님의 자비 가피력에 완전히 의지하여 자신의 간절한 믿음과 발원을 행하기 때문에, 쌍방의 마음이 서로 교류되어 빨리 정각(正覺)을 이루는 감응이 나타나는 것이오.

 

지금 같은 세상에서는 참선보다는 정토염불 수행에 전념하는 것이 마땅한 방법이오. 한티끌도 물들지 아니한 마음 가운데서, 만 가지 공덕을 두루 갖춘 위대하고 거룩한 나무아미타불의 명호(名號)를 지송(持誦)하는 것이오.

 

더러 소리 내어 염송하기도 하고, 더러 소리 없이 조용히 암송하기도 하되, 끊어짐이나 잡념 망상이 없도록 하오. 반드시 생각()이 마음에서 일어나, 소리가 자기 귀로 들어가면서 한 글자가 또렷또렷 살아 있고, 한 구절 한 구절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염송해야 하오.

 

이렇게 염불을 오래 계속하다 보면 저절로 한 덩어리가 되어, 염불삼매(念佛三昧)를 몸소 증험(證驗)하고 서방정토의 풍취를 스스로 알게 될 것이오. 그래서 대세지보살이 육근(六根 : · · 코 혀 · · 생각)을 모두 추슬러 청정한 생각을 끊임없이 이어가는 수행을, 삼매에 이르는 최상의 원통(圓通) 법문으로 삼은 것이오. 정토염불로 곧장 선정(禪定)에 드는 방편이, 이보다 더 묘한 게 또 어디 있겠소?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들은 오직 자신의 힘(自力)에만 의지하고, 부처님의 가피력을 구하지 않소. 그래서 공부에 힘이 붙어 진짜와 가짜가 서로 뒤섞여 공격해 올 때, 여러 가지 경계(境界)가 번쩍 나타났다가 번쩍 사라지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기 쉽소. 그러한 경계들은, 마치 잔뜩 흐리고 비 오던 날씨가 장차 개려고 할 때, 두터운 구름장이 터지면서 문득 햇빛이 눈부시게 비치다가 눈 깜박할 사이 다시 어두컴컴해지기를 반복하여, 도대체 날씨 변화를 예측할 수 없는 경우와 비슷하오.

 

이러한 상황은 진짜 도안(道眼)이 뜨인 자가 아니면 식별해낼 수가 없소. 이 때 만약 한 소식(消息) 얻은 걸로 착각하면, 악마에 집착(走火入魔)하여 미쳐 날뛰게 되고, 어떤 의약으로도 고칠 수 없게 되오.

 

염불 수행하는 사람이 진실한 마음과 간절한 발원으로, 온갖 공덕을 갖춘 위대한 명호(萬德洪名 : 南無阿彌陀佛)를 염송하는 방법은, 마치 밝은 해가 중천에 걸린 대낮에 큰 길을 가는 것과 같아서, 단지 마귀나 요정 · 도깨비들이 얼씬도 못하고 자취를 감출뿐만 아니라, 샛길로 빠지거나 옳고 그름을 따질 염두조차 일어날 여지가 없다오.

 

이러한 염불수행을 꾸준히 계속하여, 공부가 순수해지고 힘이 지극히 붙으면, 결국 온 마음이 부처이고 온 부처가 마음이 되어, 마음과 부처가 둘이 아니고 마음과 부처가 하나 되는경지에 이르는 것이오.

 

이러한 이치와 이러한 수행을 사람들이 잘 몰라서, 부처님이 중생들을 두루 제도하시고자 한 원력에 부합하지 못할까 걱정될 따름이오. 그러니 어찌 은밀히 숨겨 두고 전해 주지 않거나, 또는 어떤 특정인에게만 전해주는 일이 있겠소? 만약 아무도 모르게 은밀히 입과 마음으로만 전수하는 미묘한 비결이 있다면, 이는 삿된 악마나 외도(外道)일 것이며, 불법은 아니라오.

 

법당 화상(法幢和尙)은 숙세에 영특한 근기를 타고나, 처음에는 진실한 유학자였다가, 나중에 진실한 스님이 되셨소. 그러니 글공부하고 도 닦은 게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칭송할 만하오. 세상에 진짜 유학자가 있어야, 비로소 진짜 스님이 있게 되오. 별 볼일 없이 어중이 떠중이로 노닐던 무뢰한들이 출가하면, 정말로 거의 모두 불법을 파괴하는 마왕과 외도가 되기 십상이오.

 

법당 화상의 어록은 모두 사람들 마음이 눈을 곧장 통쾌하게 확 틔워주는 훌륭한 법문으로, 인쇄하여 널리 유통시키고 선가(禪家)의 보배로도 삼을 만하오. 그러나 이는 오직 사람의 마음을 곧장 가리켜, 본성을 보고 부처가 되게 하는(直指人心, 見性成佛) 길을 밝혀 놓았을 따름이오.

 

우리들은 오로지 정토염불을 수행하기만 하면 되니, 그 말씀의 구절들을 붙잡고 씨름하여 둘다 손해보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기 바라오. 선가에서 주창하는 것은 오직 근본 요지에 국한되며, 그 밖에는 일체 밝히지 않소. 원인을 닦아 과보를 얻고, 미혹을 끊어 진아(眞我)를 증득하는 일은, 모두 스스로 묵묵히 수행해 나가야 할 공부라오. 그런데 문외한들은 선가에서 이러한 수행과 증득의 도리를 뚜렷하게 언급하지 않는 것을 보고는, 선가에서 이러한 방법을 쓰지 않는다고 말하는구려. 이는 곧 선가를 비방하고 부처님과 불법을 비방하는 죄악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