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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경전,법문자료/4. 인광대사의 가언록

화두 놓고 염불하세(84)

 

 

印光大師 嘉言錄(인광대사 가언록)

옮긴이 김지수(寶積)

 

 

7. 염불과 참선은 본디 둘이 아니건만.(5)

 

 

1) 영명(永明) 선사의 사료간(四料簡)

 

교리를 좀 아는 총명한 사람들은 으레 염불수행이 왜 굳이 서방의 극락정토에 왕생하려고 선택하는지 따져 묻곤 하오. 마치 상대적인 분별과 취사선택을 완전히 초월한 수행만이 절대 궁극인 양 여기는가 보오. 그러나 이는, 취함도 없고 버림도 없는 궁극의 경지는 부처가 된 다음의 일이라는 걸 모르기 때문이오.

 

아직 부처가 되지 못했다면, 설령 미혹을 완전히 끊고 진리를 증득하는 것조차, 모두 취사선택의 편에 속하오. 미혹을 완전히 끊고 진리를 증득하는 취사선택을 인정한다면, 염불법문이 동방 대신 서방을 향하고, 혼탁한 사바 고해를 떠나 극락정토에 왕생하려는 발원을, 어찌 허용하지 않는다는 말이오? 참선 법문 같으면 취사선택이 모두 잘못이지만, 염불법문에서는 취사선택이 모두 옳다오. 참선은 오로지 자기 마음(自心)만 참구하는 것이고, 염불은 부처님의 힘을 함께 믿고 의지하기 때문이오.

 

그런데 이렇게 서로 판이한 법문의 근본원리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망령되이 참선 법문을 가지고 염불법문을 공격 비판하는 것은, 그 의도가 몹시 잘못 되었소. 참선에서 취사선택을 안 하는 것은 본디 최상의 정수이지만, 염불에서도 취사선택을 없애려 한다면 곧 독약이 되고 만다오.

 

여름에 모시옷 입고 겨울에 털 가죽옷 입으며, 목마르면 물마시고 배고프면 밥 먹은 것은, 지극히 당연한 순리 아니겠소? 서로는 비난할 수도 없거니와, 또 어느 한 쪽만 옳다고 고집해서도 안 되오. 오직 각자의 근기와 본성에 적합한 방편을 골라 잡는다면, 폐해가 없이 유익할 것이오.

 

동방을 버리고 서방을 취하는 것이 생멸(生滅)이라고 비방하는 자들은, 거꾸로 동방을 고집하여 서방을 버리는 것이 단멸(斷滅)임을 모르고 있소. 대저 아직 미묘한 무상정각을 증득하지 못한 중생이라면, 누가 취사선택을 벗어날 수 있겠소?

 

3아승지겁을 수련하고 백겁동안 원인 자리를 닦아, 위로 불도를 구하고 아래로 중생을 교화하며, 미혹을 끊고 진리를 증득하는 일체의 수행과정이, 어느 것 하나 취사선택의 연속이 아니겠소? 모르지기 여래께서 증득할 수 있도록 이끌기 위하여, 특별히 나무아미타불 명호를 지송(持誦)하여 서방정토에 왕생하라고 간곡히 권하셨음을 잘 알고 명심해야 되오.

 

여래께서 설하신 일체의 법문은, 모두 미혹을 끊고 진리를 증득하여야만 비로소 생사 윤회를 벗어날 수 있으며, 미혹과 업장을 다 끊지 않고서 생사를 벗어날 수 있는 법문은 결코 없음을 알아야 하오. 그런데 염불법문은, 미혹을 끊은 자가 왕생하면 법신(法身)을 곧장 증득하고, 미혹과 업장을 짊어지고 왕생하더라도 이미 성인의 경지에 우뚝 올라서게 되니, 이 아니 수승(殊勝)하오?

 

하나는 오로지 자신의 힘에 의지하고, 하나는 오로지 부처님의 힘에 의지하면서 자신의 힘을 아울러 보태니, 두 가지 법문의 쉽고 어려움은 어찌 하늘과 땅 차이가 아니겠소?

 

으레 보면, 총명한 사람들이 선서(禪書) 좀 섭렵했다 재미있는 걸 느끼고는, 마침내 참선을 최고로 여기고 마치 사방으로 통달한 도인처럼 자처하는 경우가 많소. 대부분 참선과 염불의 이치를 제대로 모르고, 스스로 과대망상에 잠긴 부류라오. 이러한 생각과 견해는 결코 따라서는 안 되오. 만약 이들을 따르면, 생사윤회를 벗어나는 일은 티끌처럼 수많은 겁()이 지나도록 가망이 없을 것이오.

 

()이란 여래께서 중생의 근기를 굽어보시고 거기에 맞춰 드리운 방편법문(臨機應變)을 일컫고, ()이란 부처님께서 마음으로부터 증득한 도의(道義) 그대로 설법하심을 일컫소. 또 돈()이란 점차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빠르게 단박에 뛰어 넘어 들어감을 일컫고, ()이란 점차 닦아 나아가고 점차 증험해 들어가, 반드시 많은 세월과 생명의 과정을 거쳐 바야흐로 실상(實相)을 몸소 증득하는 것이오.

 

그런데 참선하는 사람들은, 참선의 법문이야말로 사람 마음을 곧장 가리켜(直指人心) 본성을 보고 불도를 이루게 하는(見性成佛) 법문으로, 정말로 실()이고 돈() 그 자체의 수행이라고 으레 자랑하는구려. 설사 참선으로 확철대오하여 마음을 밝히고 본성을 본다(明心見性) 할지라도, 그것은 단지 마음에 본래 갖추어 있는 진리와 본성상의 부처(理性佛)를 보는 것에 지나지 않음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오.

 

만약 대보살의 근기와 성품을 지닌 사람이라면, 확철대오 하면서 증득하여 스스로 삼계 고해를 벗어나 영원히 생사윤회를 해탈함과 동시에, 위로 불도를 추구하고 아래로 중생을 교화하여 복덕과 지혜의 기초를 튼튼히 다질 수 있을 것이오. 그러나 이러한 대보살의 근기와 성품을 갖춘 경우는, 이른바 확철대오 했다는 사람들 가운데서 백천 분의 일이나 될까 말까 할 따름이라오.

 

그 나머지가 근기가 조금이라도 처지는 사람은 제아무리 미묘한 도를 확철대오 했을지라도, 보고 생각하는 번뇌(見思煩惱)를 완전히 끊을 수 없어서, 여전히 삼계고해에서 생사윤회를 되풀이해야 한다오. 그렇게 생사를 되풀이하다 보면, 깨달음에서 미혹으로 빠지는 경우가 훨씬 많고, 미궁에서 벗어나 깨달음으로 나아가기는 무척이나 어려운 게, 사바세계 수행의 현실이오. 이러한 즉, 참선 법문이 비록 제아무리 실()이고 돈() 그 자체 수행이라고 할지라도, 정말로 근기가 몹시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면 그 실()과 돈()의 진짜 이익을 받지 못하고, 결국 권()과 점()의 방편법문이 되고 마는 게 아니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