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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청화 큰스님 서적/5. 원통불법의 요체

원통불법의 요체(46)

 

 

2) 열반사덕涅槃四德

 

불교와 같은 가장 위없는 종교가 아니더라도 어떠한 분야에서나 고결한 비젼Vision이나 이상理想이 없으면 우리 행동이 감격스럽게 실천할 수가 없습니다. 이른바 목적의식 이상에 대한 가치관을 확실히 해두어야 하는 근본문제에 있어서 불성공덕이 어떠한 것인가? 불성공덕에 대한 인식이나 믿고 해석하는 신해信解가 애매모호하면 생명을 내걸고 공부도 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출가한 의의에 대해서도 항시 회의를 품습니다. 성불이란 것은 얼마만치 중요한 것이고 어떠한 가치와 공덕이 있는 것인가? 이런 것에 대한 정립이 꼭 선행적으로 우리 수행자한테는 필요합니다. 거기에 대응한 법문이 이미 밝힌바 오지여래五智如來와 열반사덕涅槃四德입니다.

 

涅槃四德열반사덕

涅槃열반滅度멸도ㆍ不生불생ㆍ安樂안락ㆍ極樂극락ㆍ解脫해탈

1. 常德상덕常恒不變상항불변하여 生滅생멸이 없음.

2. 樂德낙덕無爲安樂무위안락.

3. 我德아덕神通妙用신통묘용大自在대자재함(八大自在我팔대자제아)

4. 淨德정덕一切垢染일체구염解脫해탈하여 淸淨청정.

 

열반涅槃(nirvana)이란 멸도滅度 곧 번뇌가 다 완전히 다 멸해버렸다는 뜻입니다. 불생不生이라, 불생불멸한 불생은 바로 영생永生과 같은 뜻입니다. 낳지 않고 죽지 않으니까 응당 영생이 되겠지요. 또는 안락安樂이라, 아무런 번뇌가 없으니 안락스러울 것이고 또 같은 안락도 변동과 소멸이 없고 사무친 위없는 안락이기 때문에 바로 극락極樂입니다. 또 어떤 구속이나 얽매임이 없이 자유자재하기 때문에 해탈解脫이 되는 것입니다.

 

열반의 공덕은 물론 무량공덕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 경전마다 부처님 공덕은 불가설不可說 불가설不可說이라, 어떻게 말씀을 다 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항하사 모래수와 같다는 비유로도 부처님 공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무량공덕을 네 가지 속성으로 구분한 것이 열반사덕涅槃四德입니다. 다시 환언하면 처음에 상덕常德이라, 상덕은 상항불변常恒不變해서 우리들이 얻는 지혜나 자비나 무량공덕이 변동이 없는 것입니다. 아무런 변동이 없어서 생멸이 없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아무리 변동이 없다 하더라도 행복감을 주지 않아서는 또 별 가치가 없을 것입니다. 행복도 무한의 행복이 되어야 현상적인 오욕五慾경계에서 맛보는 시원찮은 행복에 관념이나 몸을 내던지지 않겠지요. 우리가 출가한 것도 세속적인 행복보다도 비교할 수 없는 생사해탈의 무한한 행복이 있기 때문에 출가를 했던 것입니다. 낙덕樂德이란 무위안락無爲安樂이라, 조금도 조작이 없는 상대적인 행복이 아닌 절대적인 행복이란 말입니다.

 

다음 아덕我德이라, 아덕을 잘못 생각하여 단순히 피상적으로 해석을 하는 분도 더러 있습니다. 아덕은 무한의 가능성 무제한의 지혜공덕 자리입니다. 이른바 중생들의 속된 아俗我, 조그마한 소아小我 또는 망령된 망아妾我 이런 것이 중생들이 나라하고 고집하는 아가 되지 않겠습니까마는 아덕은 그런 아가 아니라, 본래면목을 훤히 밝힌 깨달은 자리의 대아大我의 덕이란 말입니다. 이것도 나나 너나 하는 상만 떠났을 뿐이라고 간단히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일체 모든 것을 다 알 수가 있고 다 할 수가 있는 무한의 능력을 의미 합니다. 신통묘용神通妙用을 대자재大自在라 하는데 대자재를 갖춘 공덕이 아덕我德입니다.

 

열반 아덕을 팔덕八德이라, 여덟 가지로 덕을 말한 것도 있습니다. 이런 것은 무량신통을 다 갖추어 있는 자리를 여덟 갈래로 풀이한 것입니다. 그야말로 천안통, 천이통 등 모든 신통이 다 들어 있다는 말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자기 몸을 바늘 구멍만한 데에도 자재롭게 들어갈 수도 있는 것이고 또는 삼천대천세계로 자기 몸을 한없이 키울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원래 크고 작고 상대를 떠나버린 세계이기 때문에 마땅히 그런 능력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잘못 생각한 사람들은 신통은 외도外道나 하는 것이라고 폄하貶下를 합니다. 물론 누진통漏盡通을 빼놓고 다른 것은 외도도 합니다. 그러나 외도가 한다 하더라도 외도도 철저한 계행을 지켜야 5신통을 하는 것입니다. 그냥 그렁저렁 하면서 천안통 천이통 그런 신통을 할 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외도 공부하는 법칙을 보면 굉장히 까다롭습니다. 하물며 그 보다도 훨씬 더 넘어선 누진통까지 하려면 그야말로 보다 한결 철저해야 되겠지요.

 

마땅히 아덕我德 자리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두고 생각해야 합니다. 자기한테 갖추어 있는 자성공덕, 본래면목 공덕이 무한함을 확신해야 합니다. 우리가 아프다는 것은 과거 숙세인연도 있고 금생에 섭생을 잘못해서 아픈 것도 있겠습니다만 협소한 자아自我 관념 때문에 아픈 경우가 많습니다. 마음이 옹졸하면 그마만치 우리 세포 활동도 거기에 따르는 것입니다. 기분 좋을 때 음식을 먹으면 소화가 잘 되고 기분 안 좋을 때 억지로 먹으면 소화가 안 되듯이 마음이 아덕我德, 본래면목 쪽으로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우리 생리도 따라서 좋은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내가 없고 네가 없고 내 것도 없고 천지 우주 모두가 다 만 공덕을 갖춘 진여불성 뿐이라고 확신을 해버리면 웬만큼 속이 답답한 우울증이나 조울증이나 그런 것은 싹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부처님 말씀이나 위대한 선지식 말씀은 한마디 들으면 그냥 마음이 시원스럽게 툭 트이는 것입니다. 우리 자성공덕 자체가 조금도 막힘이 없는 것인데 그 자리에 무슨 생사가 있겠습니까? 무슨 병이 있겠습니까. 병도 따지고 보면 일체가 유심조唯心造 아니겠습니까. 금생이 되었든 과거가 되었든 마음 잘못 썼기에 병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땅히 병을 빨리 나으려고 생각할 때는 마음 자세가 본래의 자리, 병도 없고 생사도 없고, 남을 미워할 것도 없고 좋아할 것도 없는 자리에다 마음을 둔다면 웬만한 병은 물러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른바 귀신같은 것은 절대로 못 짚이는 것입니다.

 

다음에 정덕淨德이라, 맑은 덕이라는 말입니다. 일체 구염垢染을 해탈하여 청정함이라, 구염은 바로 번뇌입니다. 따라서 일체 번뇌가 없는 자리란 말입니다.

이와 같이 영생불멸해서 모든 공덕이 조금도 변치 않고서 그대로 갖추어 있는 상덕常德이 있고 위없는 최고의 행복을 완전히 갖추어 있는 낙덕樂德이 있고 또는 모두를 다 할 수 있고 알 수 있는 신통묘용을 갖추어 있는 아덕我德이 있고 또는 일체 번뇌를 다 떠나 오염된 것은 아무것도 없는 정덕淨德이 열반사덕涅槃四德 즉 우리 자성의 무량공덕입니다. 이 자리를 확신하여야 합니다. 이 자리를 확신하고 닦아야 용기도 나고 생사대사를 위하여 이 몸뚱이 몇 천 개 바친다 하더라도 아깝지 않다는 대 결단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오지여래도 내내야 열반사덕을 다른 각도로 풀이한 것이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오지여래와 열반사덕을 함께 정리하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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