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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경전,법문자료/4. 인광대사의 가언록

화두 놓고 염불하세(43)

 

 

印光大師 嘉言錄(인광대사 가언록)

옮긴이 김지수(寶積)

 

3. 마음 닦고 염불하는 수행의 요령(16)

 

 

3) 마음가짐과 품격 세움(存心立品)

 

성현의 학문은 모두 격물(格物) · 치지(致知) · 성의(誠意) · 정심(正心)으로부터 시작되오. 하물며 생사를 해탈하고 평범을 초월하여 성현의 경지에 들려고 하는, 진실한 수행이야 말할 게 있겠소? 격물과 치지에 관하여는 사서우익해중각석(四書蕅益解重刻序)와 요범사훈서(了凡四訓序)를 보면 될 것이오.

 

어떠한 악도 짓지 말고, 뭇 선을 받들어 행하라(諸惡莫作, 衆善奉行)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두 모름지기 마음 바탕(心地)에서 논해야 하며, 단지 구체적인 일에 표출해 내는 행위만 가리키는 것은 결코 아니오. 마음 바탕에서 전혀 죄악을 일으키지 않으면, 전체가 온통 선()이 되어, 그 마음으로 염불하는 공덕은 보통 사람보다 백천만 배 이상 뛰어나게 되오. 마음 바탕이 오직 선하기만 하고 악이 없기를 바란다면, 언제나 어디서나 마치 부처님이나 하늘을 눈앞에 대하듯이 정성스럽고 공경스러워야 되오. 마음이 한 번 풀어지면(放縱), 불법에 어긋나는 염두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오.

 

염불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발심(發心)을 잘하여, 마음이 수행의 주인이 되어야 하오. 마음이 만약 사홍서원과 합치할 것 같으면, ‘나무아미타불을 한 번만 염송하고 착한 일을 한 가지만 하더라도, 공덕이 끝없고 한없다오. 하물며 몸과 입 · 생각의 삼업(三業)이 항상 염불로 중생을 이롭게 하려고 일삼으면 오죽하겠소?

 

그러나 마음이 오직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고, 남을 이롭게 하려고 발원하지 않으면, 행한 일이 제아무리 많더라도, 얻는 공덕은 몹시 적게 되오. 하물며 혹시라도 남을 넘어뜨리고 해치려는 생각을 일으키거나, 자기를 과시하고 자랑하려는 마음을 품는다면, 어떻게 되겠소? 그가 한 염불과 선행은 전혀 공덕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정말로 백천만 억분의 일이나 얻으면 다행일 것이오. 게다가 그가 품은 나쁜 생각(惡念)의 허물 또한 적지 않을 것이오. 그래서 단지 염불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수행인들은 모름지기 발심(發心)을 잘해야 한다오.

 

불법은 원래 세간법(世間法)을 떠나 있지 않소. 따라서 모든 불자와 법우들은 반드시 각각 자기 본분을 다해야 하오. 부모는 자애롭고 자녀는 효성스러우며, 형제자매는 서로 우애하고, 부부간에는 사랑과 공경으로 화목해야 하오. 또 어떠한 죄악도 짓지 말고, 뭇 선행을 받들어 행하며, 생명을 살해하지 않고 보호하며, 술과 고기를 먹지 않아야 하오. 정성을 간직하여 사악함을 막고, 자기(감정 · 욕망)를 극복하여 예법으로 되돌아가야 하오. 그래서 자기와 남을 두루 이롭게 하는 일로, 자기의 사명과 임무를 삼아야 하오. 이렇게만 한다면, 그 기초가 올바르고 튼튼하게 닦여, 불법의 윤택한 이익을 받을 수 있소. 여기다 진실한 믿음과 간절한 발원까지 갖춘다면, 틀림없이 극락세계에 상품(上品)으로 왕생할 것이오.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들은 대부분 진실한 수행을 하지 않으면서, 그저 진짜 도 닦는다는 헛된 명성만 얻으려고 애쓴다오. 그래서 온갖 방법을 고안하여 그럴듯하게 꾸미고 허세 부리며, ‘마치 진짜인듯하면서 가짜인(似是而非)’ 모습으로, 남들이 자기를 칭찬해 주기 바란다오. 그 마음과 행실이 이미 말할 수 없이 더럽고 지저분하여, 설사 수행이 있더라도 그 마음에 오염되어, 진실한 이익을 결코 얻지 못할 것이오.

 

이것이 이른바 이름(명분)만 좋아하고 알맹이(실질)는 싫어하는 것으로, 수행에서 제일로 크게 금기시하는 병폐라오. 가령 앞서 언급한 행해야 할 바를 갖추고, 뒤에서 언급한 금기해야 할 바를 피한다면, 이러한 사람은 세속에서는 현인(賢人)이 되고, 불법에서는 개사(開士)가 될 것이오. 자신이 솔선수범하여 집에서 마을로, 마을에서 지방으로, 전국으로, 천하로 확대해 나간다면, 예절과 정의가 일어나고 창칼이 영원히 스러지며, 자비와 선행이 불어나고 재해와 사고는 생기지 않으리다. 그러면 저절로 천하가 태평스러워지고 인민이 안락해지지 않겠소?!

 

염불로 극락왕생하기를 바란다면, 모름지기 자비심을 발하여 방편에 맞는 선행을 행하며, 탐진치 삼독을 그치고 살생 · 도적 · 사음의 죄악을 끊어야 하오. 그렇게 자기와 남을 함께 이롭게 하여야, 비로소 부처님 뜻에 부합하게 되오.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부처님과 등지기 때문에 서로 감응의 길이 막혀, 단지 미래의 원인 종자만 심을 뿐, 현세의 과보를 얻기는 어렵다오.

 

만약 지성으로 염불하며, 행실이 부처님 마음과 합치하고 마음과 입이 서로 호응한다면, 이런 사람은 임종 때에 틀림없이 아미타불께서 뭇 성현대중과 함께 몸소 마중 나오시어 서방 왕생을 이끄실 것이오. 일단 서방 극락에 왕생하면, 생사를 완전히 해탈하고 평범을 초월하여 성현의 경지에 들기 때문에, 모든 고통을 영원히 벗어나 뭇 즐거움만 누리게 된다오. 이는 공덕의 다소나 미혹의 유무를 따지지 않고, 오롯이 부처님 힘에 의지하는 수행이기 때문이오. 단지 진실한 믿음과 간절한 수행만 갖춘다면, 만 사람 가운데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틀림없이 왕생하는 법문이오.

 

도를 배우는 사람은, 마음가짐과 행실이 반드시 질박하고 곧으며 치우침 없이 올바라야 하며, 조금이라도 편협하거나 구부러지거나 사사로운 모습이 있어서는 결코 안 되오. 만약 조금이라도 편협하거나 구부러지면, 마치 저울의 눈금이 맞지 않아 물건의 무게를 올바르게 달 수 없다는 것과 같소. 또 마치 거울의 바탕이 매끄럽고 깨끗하지 못해, 사물의 모습을 뚜렷하고 정확히 비춰 줄 수 없는 것과 같소. 터럭 끝만 한 차이가 천 리의 오차로 벌어지고, 소문이 한 다리 건널 때마다 거짓과 과장이 뒤섞여 해명할 수조차 없게 되는 격이오.

 

그래서 능엄경에서는, “시방 여래께서 동일한 도로써 생사윤회를 벗어났으니, 모두 곧은 마음 때문일세.” 라고 칭소하였소. 마음과 말이 올곧기 때문에, 이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중간에 치우치거나 삐뚤어진 모습이 전혀 없는 거라오. 서경(書經)에도 말하지 않소? “사람 마음 오직 위태롭고, 도의 마음 오직 미약하나니, 오직 정성스럽고 오직 한결같이, 그 한가운데를 진실로 붙잡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