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필독!경전,법문자료/4. 인광대사의 가언록

화두 놓고 염불하세(21)

 

 

印光大師 嘉言錄(인광대사 가언록)

                                                                                 옮긴이 김지수(寶積)

 

 

2. 극락왕생은 믿음과 발원 지닌 염불 수행으로(6)

 

 

부처가 궁극에 존재하는 사실은, 우리들 범부 중생의 감정이 아직 깨끗이 세척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혀 볼 수 없는 것뿐이오. 우리들 자신도 또한 확실히 존재하고 있소. 다만 우리들의 오온이 아직 텅 비지 못해서, · · · · 식을 떠나서 그 뭔가를 정확히 끄집어 낼 수 있을 따름이오. 금강경에서는 보리심을 낸 보살들에게, 일체 중생을 모두 제도하여 남김없는 열반을 증득시키되, 어떤 한 중생도 결코 제도되어 열반을 얻었다고 보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소. 또 빛()이나 소리() · 냄새() · () · 만짐() · 생각()에 머물러(집착하여) 보시를 행하지는 말라고 일깨우고 있소.

 

보시는 육도만행(六度萬行)의 으뜸이오. 보시를 들어 말씀하셨으니, 지계 · 인욕 · 정진 · 선정 · 지혜와 만 가지 행실 모두가, 빛이나 소리 · 냄새 · · 만짐 · 생각에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 당연하오. 금강경의 문장이 간략하게 보시만 거론하고, 그 나머지는 모두 보시 안에 포함시킨 것이오. 마땅히 머무르는(집착하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고(應無所住而生其心), 나나 사람이나 중생이나 수자(壽者)라는 모습(형상)이 전혀 없이 일체의 착한 법(善法)을 닦으라는 가르침이라오.

 

이렇게 말한다면, ()라는 것은 도대체 모습(형상)이 있겠소? 없겠소? 이처럼 광대무변한 광명의 모습이 우주 허공(虛空)을 꽉 채우고 있는데도 없다고 말한다면, 이거야말로 타고난 장님과 무엇이 다르겠소?

 

금강경에서 한 중생도 제도 못한다거나, 형상에 머무르지 않는다거나, 나나 중생의 모습이 없다거나, 머무르는 바 없다고 말씀하신 전제는, 사람들에게 범부의 감정이나 성인의 견해 같은 형상 집착에서 자유롭게 벗어나라는 뜻이오, 그리고 모든 중생을 제도하여 남김없는 열반을 증득시키고, 보시를 행하고, 마음을 내고, 착한 법을 닦으라고 말씀하신 본론은, 사람들에게 자기 성품에 알맞게 자신과 남을 모두 이롭게 하는 법을 익히고 닦아, 자기와 남이 함께 보리를 원만히 성취하길 기약하고자 권하신 것이오.

 

바로 여기에 착안하지 못하고, 모습(형상) 없음(無相)이 궁극의 경지인줄로 집착하는 과대망상은, 마치 술지게미(酒糟)를 맛보고 최고라고 여기는 술꾼과 똑같은 지식 견해에 불과하오. 이런 자를 어떻게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하겠소?

 

믿음이 얼마나 일으키기 어렵고, 의심은 어찌도 이리 제거하기 어려운고?! 그대들 자신이 결정코 믿음을 일으키려 하지 않고, 또 결정코 의심을 제거하려 들지 않는다면, 비록 부처님이 눈 앞에 나타나 친히 설법해 주신단고 할지라도, 어떻게 할 수 없다오. 하물며 나 같은 범부 중생이 자질구레한 말로 납득시킬 수 있겠소?

 

부처의 허실(虛實)을 알고자 하면서, 어찌하여 정토문(淨土文)과 서귀직지(西歸直指 : 서방정토로 돌아가는 길을 곧장 가리킴)에서 논하고 있는 이치와 거기에 수록된 사례를, 의심없이 믿고 받아들이지 못한단 말이오? 이러한 논설과 사례들이 모두 날조한 헛소문이기 때문에, 거들떠 볼 가치도 없다고 내팽개칠 참이오?

 

이러한 견해를 지닌다면, 그 영혼은 틀림없이 다른 오도(五道)에도 떨어지지 못하고, 오직 아비(阿鼻 : 無間)지옥에 갇힐 것이오. 거기서 미래세가 다하도록, 자기 마음따라 나타나는 펄펄 끓는 용광로나 검수도산(劍樹刀山)같은 지옥의 경지에서, 온갖 즐거움을 자유자재로이 즐기게 될 것이오. 그 즐거움은 어디에도 비유할 수 없소.

 

부처가 정말 존재하는지 허실을 반드시 알고자 하면서, 정토문이나 서귀직지에서 말하는 내용은 모두 진실이 아니고, 오직 자기가 몸소 보고 경험해야만 진실이라고 고집한단 말이오? 여기 구체적인 사례 하나를 들어 물어 볼테니, 어물쩡하게 넘기거나 피하려 들지 말고, 솔직한 마음으로 한번 대답해 보시오.

 

북통주왕(北通州王)인 철산(鐵珊)이란 사람은, 청나라 말엽에 광서성(廣西省)의 번대(藩臺 : 布政使의 별칭, ()의 두 세 번째 실권자)를 지냈다오. 그 당시 광서 지역에는 토착 무장 도적들이 몹시 많았는데, 그가 군대 치안을 담당할 때 그들을 섬멸하려고 계획 세워 살해한 자가 아주 많았다오. 그런데 4년 전 중병에 걸려, 눈만 붙였다 하면 몹시 크고도 시커먼 집안에서 자신이 수없이 많은 귀신들에게 사방에서 핍박 당하는 모습이 너무도 뚜렷이 보여, 깜짝 놀라 깨어나곤 했다오, 한참 있다 다시 눈을 감으면 다시 똑같은 장면이 나타나, 또 섬뜩 놀라 깨어나기를 되풀이하였소. 그렇게 사흘 밤낮 동안 꼬박 두 눈을 뜬 째로 지세워, 그저 숨결만 겨우 이어지는 정도였다오.

 

그래서 그 아내가 보다 못해, “당신이 이러하니 어쩌면 좋겠소? 당신 나무아미타불을 한번 염송해 보시오. 염불하면 틀림없이 좋아질 것이오.” 라고 권했다오. 철산은 아내의 그 말을 듣고 나서, 죽어라고 염불했소. 그런데 얼마 안 되어 이내 잠들어, 한바탕 실컷 자고 나도록 어떠한 모습이나 경계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오. 병도 점차 다 나아서, 그때부터 계속 재계(齊戒)하며 염불하고 있다오. 이는 철산이 재작년 진석주(陣錫周)와 함께 산에 올라와 나에게 직접 털어 놓은 이야기요.

 

가령 그대라면, 이러한 상황에서 먼저 부처의 존재 유무를 확인해 안 다음 염불하겠소? 아니면 한번 듣는 대로 곧장 염불하겠소? 만약 이때 부처의 허실을 따져 볼 겨를 없이 즉시 염불한다면, 지금은 어찌하여 옛사람들이 우리에게 기록으로 전해준, 부처(염불 · 정토) 정토의 허실에 관한 언론과 사례들을, 모두 허황된 거짓말로 치부한단 말이오? 오직 급박한 구원이 필요한 정신없는 상황에서만, 눈물을 흘리며 구하고 싶소? 부귀공명도 한낱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거늘, 어찌하여 편협한 집착은 헌신짝으로 여겨 아주 말끔히 내버릴 수 없단 말이오? 그대는 혹시라도 이러한 지식 견해가 도에 들어가는 문인 줄만 알고, 아비지옥에 떨어지는 고속도로인 줄은 모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