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월스님께서 한 때 화엄사 산내 암자에도 머무르신 적이 있는 모양입니다. 화엄사 행자시절 산내 암자에 올라가서 친견하였다는 어른스님께서 말씀하시는데 수월스님 모습은 영락없는 머슴 같고 손도 무척 거칠었다고 하였습니다. 도인(道人)이라서 기대를 했는데 속으로 모습을 보고 실망하였다고 하는데 수월스님께서는 입으로는 대비주를 염송하시면서 일만 일만하시면서 대도(大道)를 성취하신 것으로 유명합니다. 만주시절에는 밤새도록 대비주를 염송하시면서 짚신 삼아 아침에는 길가는 사람들 신으라고 길에 다 걸어두었다고 합니다.
미타행자의 편지에 등장하는 제천 무암사 노스님께서도 늘 농사 일만하시며 사시였다고 하는데 신장이 감복하여 밭에서 일하는 스님을 “스님 가실 때가 되었는데 그만 하세요” 했다는 것 아닙니까? 옛 어른스님들은 선농일치(禪農一致) 수행과 노동을 함께하면서 도(道)를 성취하시였습니다. 선농일치 전통은 근래까지 내려왔는데 송광사에서 울력 목탁 치면 당시 구산(九山) 방장스님께서 제일먼저 나오시었다고 합니다. 절에서 울력 목탁 치면 송장도 일어나 나온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GNP 3만 불 시대라고 합니다. GNP 3만 불 시대의 특징은 안이고 밖이고 힘든 일하는 것을 싫어하고 할 줄도 모르고 하려고 하지도 안는다는 것입니다. 절집도 선농일치는 다 옛날이야기가 되었고 이제는 출가자도 적고 그나마 편한 서울, 대도시에서 살려고 하지 불편한 시골 절에서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시골 절에서는 필수가 울력입니다 마당에 풀도 뽑아야 하고 텃밭도 일구어야하고 무엇이 고장 나면 손수 해결하여야 하고,,,,
다 이런 것이 행선(行禪), 마음을 다독거리는 것이고 마음을 쉬게 하는 것인데 객승이 3일 있다 가면서 하는 말이 “요즘 스님같이 사는 분이 어디 있습니까?” 하는데 풀 한포기 없는 도량에서 밖으로만 돌면서 사는 것이 제 입장에서는 신기하고 그런 곳에서 마음이 편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도시화가 세계적 추세에 도시에도 스님이 있어야겠지요.
적당한 노동에 흙을 만지고 사는 것이 인간답게 사는 것인데 하는 생각, 법당에서 정진도 하고 마당에 나와서 풀도 뽑고 꽃모종도 만들어 오가는 분 분양도 해드리고 시주금은 아껴 쓰고 남은 것은 책 만들어 법공양하고 더할 나위없는 것 같습니다 각자들 인연 따라 정진하는 것이지요. 아무튼 사회학자들도 농업사회가 가장 건강하다고 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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