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십대 들어서 문득 문득 깊은 의식 속에서 올라오는 “홀로 산속에 들어가 농사지으며 도 닦고 싶다”는 한 생각, 전생에 그렇게 살았을 것입니다 금생에는 그렇게 살 운명이자 팔자입니다. 그러나 산중에 들어가 홀로 농사지으면 수행하기에는 많은 망상이 가려있고 망상이 온전히 털어져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諸) 종교를 섭렵하고 이십대 후반 조계사를 들락거렸는데 하루는 청년회 회식 자리에서 “난 언제인가 출가할 것이라” 하니 이 말을 들은 법우가 하는 말이 한(韓) 형! “출가하려면 일주일 안에 가던지 한 두 달 안에 가야지 언제인가 하면 출가 못해” 했는데 털어야 할 망상이 남아 있기에 십여 년을 그렇게 처사의 몸으로 산 것입니다.
시절인연이 도래한 어느 날 꽉 막힌 세곡동 사거리 신호대기 중 저 깊은 의식 속에서 올라오는 일체중생에 대한 연민심 그 다음 날부터는 어제가 오늘이 아닌 새로운 세상이었고 생업이었던 꽃 농장을 정리하기 시작 출가한 것입니다.
출가 이후에는 뒤를 돌아본 적은 없습니다. 은사스님을 만난 인연으로 처사시절 염송하던 “옴마니반메흠”을 놓고 “나무아미타불” 그리고 세곡동 사거리에서 경험한 연민심을 증명하기 위해서 아직까지 자비관을 하는 것입니다. 아직 털어야 할 망상이 많기에 증명을 못하는 것이고 망상이 많더라도 포기는 하지 않는 것입니다.
망상하나 털고 나면 새로운 망상이 일어나고 반복하면서 강과 산을 넘어 다니며 세월은 가는 것입니다 어른스님이 하시는 말씀이 “시작은 있는데 끝이 없는 공부”라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망상하나 터는데 현실은 한생도 부족합니다. 초심 때 보았던 사문, 지금보아도 곡차와 도끼나물이 여전한데 한 생을 절집에 있어도 술과 고기 망상을 못 터는 것이고 한 사문은 천일을 기도해도 향 마지를 못 끊었다고 고백하는데 식계(食戒)도 이 정도인데 다겁생의 삼독심이야 오죽 합니까? 생각대로 쉽게 된다면 하늘에 별처럼 아라한이 많을 것입니다.
꿈에 그리던 산중토굴에서 아미타불과 함께 자고 함께 일어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일어나는 망상 이 좋은 공부, 행복한 공부를 혼자 즐기기에는 미안하다 “더불어 공부하자” 하는 망상이 일고 그 후 5십 만원 주고 산 중고차에 묘목을 가득실고 제주도 자성원에 내려온 것입니다. 이것 또한 부질없는 망상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세월이 흐른 것입니다.
이제는 혼자서 법당에서 살고 마당에서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내 공부 증명하고 싶다는 마음뿐이며 어쩌다 찾아오시는 분 있으면 차 공양 대접해드리고 지네는 것입니다. 사바세계 와서 다른 이 살림살이 입 델 것은 없고 “나답게 살다” 가면 비구승답게 살다가는 것이고 이제는 나 자신에게 속고 살 것 같지는 안습니다. 아무튼 그 옛날 젊은 시절 그리던 산중에 농사지으면 홀로 도 닦겠다는 인연은 거의 온 것 같습니다. 그 때는 언제인지 저도 모르고 그 인연 터가 다시 제주도가 될지 육지가 될지 아님 이 자리인지 부처님만이 알 것 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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