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시절 산중 암자에 도인스님이 계시다고 하여 도반스님과 함께 찾아갔습니다. 산길 따라 올라 거의 암자에 다다랐을 적에 등산로 길을 생나무로 잘라 막아놓은 것이 보였습니다. 아마 여러 길의 암자 가는 길을 하나로 정리하려고 막아 놓은 듯 하였으나 공부인은 나무하나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어른스님이 계신 암자 마당에 있는 나무가 차를 돌리는데 불편하게 하는데 어른스님이 계시면 나무를 못 베어내게 하니 어른스님이 외출한 틈에 대중스님네가 나무를 베어내었다고 합니다. 외출에서 돌아오신 어른스님께서 다리 뻗고 울면서 “이놈들아 너희들이 공부하는 사람들이나” 하며 탄식하시였다고 합니다.
도반스님과 암자 마당에 들어서니 도인스님?께서 바로 말을 까는데, 공부인은 하찮은 사람에게도 그렇게 천박하게 하대(下待)하지 않습니다. 구참스님이 하시는 말씀이 사미승시절 태안사에서 청화큰스님 모시고 선방에서 정진하며 지내는데 자신에게도 꼭 공대(恭待)를 하였다고 겸손하기가 그지없었다고 회고합니다.
도인스님께 방에서 도반스님과 삼배를 올리는데 비스듬히 앉는 자세로 삼배를 받습니다. 삼배는 존경의 뜻으로 삼배를 올리는 사람도 정성을 다해서 하는 것이지만 받는 사람도 정성을 다하여 받는 것입니다 예전에 큰 절 뒷방에 계신 어른스님은 후학이 찾아가 삼배를 올리면 꼭 호궤 합장하고 삼배를 받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천도재 지낸 귤과 사탕을 방바닥에 던져주면서 “야 이거 먹어”하는데 도인스님의 살림살이는 여기서 다 끝났습니다.
“아만심(我慢心)이 가득한 수행자, 뭔가 부족하고 천해보이는 일명 졸부수행자” 아무리 용맹스럽게 정진을 하더라도 아만심만 가득하다면 정진이 아닌 극기 훈련 하는 것 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수행은 극기 훈련도 아니고 보여주기 위한 퍼포먼스도 아닙니다.
부처님 공부, 도(道) 공부, 이론은 한 줄이면 족 합니다.
그러나 사유(思惟)와 반조(返照)를 통하여 삼독심(三毒心)을 털어내고 본래의 불성,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을 드러내는 한 줄의 이론을 증명하는 데는 다겁생이 걸립니다. 자성청정심의 속성이 밝음, 부드러움, 평등심, 자비심, 연민심, 헌신이며 공부가 깊어지면서 자성청정심의 속성이 행위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 아 - 다겁생이 걸리는 길에 아만심으로 한생을 보내는 시절도 있겠지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