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집에 우스갯말이 있습니다. 처음 출가하여 부처님 공부하면 신심이 솟구쳐 “이 행복한 공부를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겠다.” 하여 시내 포교당을 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욕과는 달리 현실은 포교당을 열어보아야 한 사람도 오시는 분이 없고 가뭄에 콩 나듯이 포교당 간판 전화번호보고 전화가 오는데 “뭐 봐주십니까?” 뭐 이런 유의 전화뿐이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우리는 부처님 법을 전하는 정법도량입니다” 하고 정색하는데 세월이 한 두 달 가고 월세가 밀리고 쌀이 떨어지면 좌판을 걷던지 아님 철학관(?)에 전화하여 철학 좀 배울 수 있습니까 한다는 것인데 우리나라 민족의 무당과 유전자는 띨래, 띨 수 없는 우랄알타이 산맥서부터 가져온 것입니다 하 하 어느 스님은 포교당 열고 5개월 동안 신도 한 분도 없어서 결국은 좌판 걷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저도 한 때 은사스님께서도 정진 하시였던 월출산 상견성암에서 정진한 적이 있습니다. 그 시절은 나이도 젊고 신심도 장한 시절이라 생식하며 서너 시간 잠자며 아미타불과 함께 자고 함께 일어나는 행복한 시절이었습니다. 이 행복한 공부를 혼자서 하기는 미안한 생각이 들고 더불어 공부하자는 원력이 일어나고 그 후 선방 몇 철나고 2003년 제주도 자성원으로 내려온 것입니다.
그 때만해도 제주인구가 5십만 정도이고 2차선 길도 많았고 자연도 훼손이 덜 될 때입니다 겨울에도 밭작물이 자라는 환상적인 날씨에 상견성암에서 꿈꾸던 세상을 제주에 만들자 한 것입니다. 아무튼 사연은 많지만 여기까지 와서 무주선원을 개원했는데 다 지난 이야기지만 마음은 계기가 있어야 바뀌는 것 아닙니까?
한 날은 거사 한 분이 저녁에 곡차 한 잔하고 찾아와 곡차 핑계로 존대 말도 아니고 반말도 아닌 말투로 무리한 요구를 하고 거절하자 노골적으로 야, 자 해가며 험한 말을 하는데 젊은 시절 막노동판에서도 못 듣던 야, 자이고 속내는 “육지 것 군기한 번 잡으러 온 것이지요.” 그 다음은 자성원 시절부터 안면이 있는 거사 분은 두 번이나 찾아와서 간곡히 불사에 좋은 인연을 맺어주겠다고 해서 사람을 소개 시켜주려나 하고 따라 갔더니 모시고간 곳이(?) “다단계 판매 하는 곳” 이 거사 말로는 3백만 원 내고 회원 가입하여 화장품, 영양제 장사해서 돈 벌어 불사하라는 것 이지요 하 하
출가 사문을 사기 대상자로 삼은 것인데, 사실 스님네들이 세상물정 잘 몰라 사기 치는 사람들이 접근하는데, “사람 잘못 본 것이지요.” 아무튼 제주에 내려와서는 “아저씨” 소리는 듣는 것은 기본이고 생각도 못하는 여러 사건이 있는데 생략하고 “꿈은 해몽을 잘하여야 합니다.” 이런 험한 꼴을 신장님이 “본연스님 변변치 않은 살림살이로 망상피우지 말고 정진이나 하소.” 하고 연극한 것으로 해몽하고 맘 비우고 정진이나 하는 것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한 생각 돌이켜 상견성암 시절처럼 밥이나 먹고 정진하며 마당에 풀이나 뽑고 지네니 세상은 편합니다. 그 시절 보다 추가된 것이 있다면 한 달에 한 번 법회와 인터넷 카페 운영하는 것 법공양한다고 좀 분주한 것인데, 놀아도 밥값은 해야 한다고 부처님 은혜와 은사스님 은혜, 그리고 시주 은혜 갚는 마음으로 나름대로 정성을 드리고 있습니다.
GMP 3만불 시대! 스마트 폰이 신통을 부리고 얼마나 편한 세상에 즐거움이 많겠습니까? 마음 밖 즐거움에 법당도 비워가고 절도 비워갑니다. 그러나 나라가 잘살게 되었다고 해도 재물과 권력의 비극 드라마를 우리는 매일 보지 않습니까? 재물과 권력에는 끝이 있어도 정진하여 얻는 행복은 그늘이 없는 영원한 행복입니다. 승속을 떠나, 갈 날이 내일 모레인데도 게으름을 피우며 권력과 재물에 골몰하시는 분들 보면 연민하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소아적인 수행이나 보여주기 위한 수행, 스펙 쌓는 수행은 행복과는 거리가 멉니다. 마음을 털어 일체중생을 용서하고 일체중생에게 연민하는 마음을 가지고 정진한다면 행복감을 느낄 수 있고 이 행복감으로 망상은 털어지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정진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고 무주선원에서 홀로 하루 일과를 보내는 날이 가장 행복한 날입니다. 여기서 일보 전진하여 행복감에 밥 먹는 것도 잊고 잠자는 것도 잊고 정진해야 하는데,
“아 언제나 이런 날이 올까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