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향발원(廻向發願) : 당나라의 선도화상은 자신이 행한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의 선근은 물론, 타인이 삼업으로 선근을 행하면 그것도 즐거워하고(수희찬탄), 타인의 선행을 즐거워해준 선근까지도 모두 왕생을 위해 회향해서 왕생을 발원하는 것을 회향발원심이라 하였다. 다시 말하면 왕생을 위해 일체 자타(自他)의 선근을 극락왕생에 회향하는 마음을 회향발원심이라 하였다. 예를 들어, 극락에 왕생하기 위해서는 ‘100’ 이라는 공덕이 필요하다고 하자. 어떤 사람이 보시를 하고 나서 그 공덕을 자기의 극락왕생에 회향하면 1점이 되고, 채식을 평생토록 한 후 역시 그 공덕을 자기의 극락왕생에 회향했더니 12점이 되었고, 수희찬탄 하고나서 역시 그 공덕을 자기의 극락왕생에 회향했더니 60점이 되었다. 이렇게 자기가 공덕을 짓고나서 그 공덕을 자기의 극락왕생에 돌리는(보태는) 것을 ‘회향발원’ 이라 한다.
* 정공법사는 「모든 행(行)마다, 언제나, 어디서나, 일체의 경계(境界)와 연(緣) 가운데 순경(順境)이든 역경(逆境)을 가리지 아니하고 늘 아미타불을 생각하되, 일심으로 서방세계 왕생을 향하고, 일심으로 아미타불만 부르면, 이것을 일러 회향발원심이라고 한다.」 라고 하면서 , 「여기서 일체행은 행주좌와(行住坐臥)와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을 말하고, 경(境)은 물질환경을, 연(緣)은 사람환경(즉, 사람들과의 관계)을 말한다.」 고 하였다.
이미 〈왕생전往生傳〉에 실린 임종 시의 상서로운 모습들이 하나하나 또렷또렷 전해지는데, 이들 실록實錄이 또한 어찌 우리를 속이고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확신을 하고 나면, 극락왕생의 발원이 저절로 간절해질 것입니다. 만약 저 극락세계의 즐거움을 가지고, 이 사바세계의 괴로움을 되돌아본다면, 마치 똥구덩이를 벗어나고 감옥에서 빠져나오고 싶은 것만큼이나, 이 사바세계의 괴로움을 가지고, 저 극락국토의 즐거움을 멀리 관망한다면, 마치 고향에 되돌아가고 보물창고에 달려가는 것만큼이나, 극락세계를 기뻐하고 가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간절해질 것입니다.
요컨대, 마치 목마른 자가 물 마시는 걸 생각하듯이, 굶주린 자가 밥 먹기를 생각하듯이, 또한 병들어 신음하는 자가 좋은 약을 먹고 낫기를 바라듯이, 어린 아이가 자애로운 어머니를 그리워하듯이,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치 원수가 칼을 들고 뒤쫓아 오는 걸 피해 달아나듯이, 또한 물속이나 불속에 빠져 다급하게 구원을 구하듯이, 그렇게 사바고해 벗어나기를 발원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이렇게만 간절히 발원한다면, 어떠한 경계나 연분도 결코 우리 마음을 끌어당겨 뒤흔들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한 다음에 이러한 믿음과 발원의 마음을 가지고, ‘나무아미타불’ 이라는 명호를 단단히 붙잡고 지송합니다. 부처님 명호를 한번 지송할 때마다 구품연화의 종자가 하나씩 심어지며, 한 구절 염송할 때마다 극락왕생의 정인正因이 하나씩 다져집니다. 부처님 명호를 염송할 때에는, 모름지기 곧장 마음과 마음이 계속 이어지고, 생각과 생각이 조금도 어긋나지 않도록 하며, 오직 염불에만 전념하고 오직 부지런히 염불하여, 조금도 잡념망상이 끼어들거나 염불이 끊이지 않도록 닦아야 합니다.
염불을 오래 할수록 믿음이 더욱 견고해지고, 지송을 계속할수록 발원이 더욱 간절해져서, 그렇게 오래오래 지속하다 보면, 저절로 한 덩어리가 되어 한 마음 흐트러지지 않는 일심불란一心不亂의 경지에 들게 됩니다. 진실로 이와 같이 염불하고서도 만약 극락정토에 왕생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석가여래는 곧 거짓말쟁이가 되고, 아미타불은 부질없는 발원을 한 셈이 되는데, 과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 철오선사
사바세계의 중생이 염불수행의 공덕으로 서방극락에 왕생하는 것은 곧 횡橫으로 삼계를 뛰어 넘는 것이다. 그러면 생사윤회를 빨리 벗어나며 문득 삼불퇴三不退를 증득하고, 수명이 부처님과 같이 무량무변한 아승기겁이다. 위로 삼계를 벗어나는 것은 마치 개미가 높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지만, 횡으로(옆으로) 삼계를 초월하는 것은 마치 돛단배가 순조롭게 물 위를 가는 것과 같다. 비유를 하면 이렇다. 죽순 속에 애벌레도 자라서 대나무 밖으로 나가려고 애쓴다.
만약 그 벌레가 위로 올라가려고 대나무의 마디를 물어뜯어 구멍을 내면 다시 그 위에 마디가 있다. 그 마디를 뜯어서 구멍을 내면 계속해서 그 위에 마디가 있어서,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대나무 끝에 도달하기 전에 죽고 마는 것과 같다. 이것이 바로 중생이 구차제정九次第定을 닦아 위로 생사에서 벗어나려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대나무 옆에 구멍을 내게 되면 구멍이 뚫리자마자 바로 대나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중생이 일념으로 염불수행을 하여 횡橫으로 생사를 초월하는 것이다.
- 원영대사〈勸修念佛法門〉
무엇을 가로로 생사를 뛰어 넘는 것이라고 하는가.
염불하여 극락에 가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극락과 사바세계는 연화장세계 제 13층에 같이 있는데, 연화장세계는 20층으로 되어 있다. 《아미타경》에 여기서부터 서쪽으로 십만 억 국토를 지나 극락세계가 있다고 했으니, 사바세계 중생이 염불공부가 성취되어 극락에 왕생하면 이것이 곧 가로로 삼계를 뛰어나서 빨리 생사를 벗고 세 가지 불퇴를 증득하고 수명이 무량하니 이것이 최후의 몸이라 다시 생사를 받지 않지만, 원력願力으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다른 세계에 가서 몸을 받기도 한다.
위로 삼계를 벗어남은 개미가 높은 산에 오르는 것과 같고, 가로로 삼계를 벗어남은 순한 바람에 배를 띄우는 것과 같다. 또 비유하면 죽순 안에 벌레가 하나 있는데, 죽순이 커서 대나무가 되어도 벌레는 대나무 속에 있다. 밖으로 나가려 하는데 만일 위로 나가려고 한 마디를 뚫으면 또 한 마디가 있고 또 여러 마디가 있어 아무리 뚫으려 하나 힘이 약해서 끝까지 뚫지 못하고 결국 죽고 마는 것이니, 이것은 중생이 구차제정九次第定을 위로 닦아 생사를 벗어나는데 비유한 것이오.
만일 벌레가 대껍질을 용맹스럽게 뚫으면 쉽게 밖으로 나올 수가 있다. 이것은 중생이 염불 법문을 닦아 가로로 생사를 벗어나는데 비유한 것이니, 그 어렵고 쉬운 것이 하늘과 땅 차이다. 염불법문이 빨리 생사를 벗어나지만 명을 마칠 때에 가장 큰 관문이 있다. 과연 생전에 신심과 원력이 깊고 간절하며 깨끗한 수행이 성취되어 일심불란一心不亂을 얻으면, 가히 때가 되는 줄 밀리 알고 바른 생각이 들어나서 일체 경계와 인연에 걸림이 없어져서 그 왕생하는 것이 선정에 들어가는 것과 같으며, 잠깐 동안 연꽃에 화생하여 세 가지 물러가지 않음을 증득하는 것이다. 만일 일심불란이 되지 않으면 반드시 도반道伴들이 도우는 염불을 해서 정념正念을 도와줘야 왕생할 수 있게 된다.
가장 두려운 것은 임종 시에 여러 가지 일로 마음을 요란하게 하여 정념을 잃어버리면 왕생을 못하게 되니, 무릇 도반들과 집안 권속들은 이 이치를 잘 알아서 반드시 조념助念 염불을 해야 한다. 재가在家 거사들은 평생에 염불하여 왕생을 원하였으면 집안일과 죽은 후에 여러 가지 일을 미리 권속에게 부탁하고 임종할 때는 일체 마음이 걸림이 없어야 한다. 애정으로 울고 슬픈 기색을 내어 병자의 마음을 요란케 말고 오직 염불만 도와 줄 것이니, 이와 같이 하면 틀림없이 왕생할 것이요, 이렇게 못하면 큰일을 그르치는 것이다.
- 성암省庵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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