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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수행자료/김호성님의 정토행자의 편지

부산(賦算)은 권력이 아니다

편지 3(201772)

 

부산(賦算)은 권력이 아니다

 

 

일본 가마쿠라(鎌倉)는 제가 참으로 좋아하는 곳입니다. 작은 도시인데, 거기는 헌 책방이 두 곳 있습니다. 이번에도 그 중 한 곳에서 책을 2권 샀습니다. 그 중에 다카노 오사무(高野 修)라는 분의 시종교단사(時宗敎團史)(岩田書院)를 좀 읽다가 왔습니다. 아직 덜 읽었습니다. 다카노 오사무라는 분은 시종의 학자로서 유명한 분입니다. 시종이라는 불교 종파는 일본의 정토불교 종파 중의 하나입니다. 잇펜(一遍, 1239-1289) 스님의 제자들이 만든 종파가 시종입니다. 잇펜 스님 자신은 종파를 만들 생각이 없었습니다. 늘 말씀하시기를, “나의 교화는 내 일생에 있을 뿐이다라고 말씀하시고는 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종파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좋다고 봅니다. 스승 중에 어떤 분도 자기를 중심으로 하는 종파를 만들어 달라고 한 분도 없고, 그런 생각을 하신 분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 입장에서는 또 종파를 만들지 않은 경우도 없었습니다. 스승의 입장과 제자의 입장이 서로 달랐기 때문입니다. 중세 시대에 한 때는 이 시종이 대단한 교세를 떨쳤다고 합니다만, 현재는 교세가 미미한 편입니다. 정토진종의 절이 약 2만 개를 넘는다고 하는데, 시종의 경우는 겨우 절이 한 400개 정도 밖에 안 되니까요.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선생이 나무아미타불(김호성 책임번역, 모과나무, 2017)을 집필하게 된 취지를 세 가지로 밝히고 있습니다만, 그 중에 하나는 사람들에게 잇펜 스님의 가르침과 역사적 위상을 알리고 싶어서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그런 효과는 충분히 얻었습니다. 나무아미타불출판 이후에 잇펜 스님은 일본의 문화계나 지식인 사회, 일반 독자들에게 많이 알려지게 되었으니까요.

 

야나기 선생은 탄식을 합니다. 이렇게 훌륭한 잇펜 스님의 가르침을 잇는 교단이 어쩌다가 이렇게 미미하게 쇠퇴해 버렸는가 하는 점에서입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저 자신도 알 수 없었기에 각주를 달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다카노 선생의 책 시종교단사를 읽으면서, 아하 그랬구나 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 나름으로는, “이것이야말로 시종이라는 교단이 쇠퇴한 결정적인 원인이었겠구나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부산권의 문제입니다. 부산권, 이라는 말도 저는 이 책을 통해서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제가 요즘 붓펜으로 종이에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써서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 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이 들어가는 명함을 만들어서 나누어 드리기도 합니다. 또 글이나 메일 끝에는 나무아미타불이라고 말합니다. 이 모든 것이 곧 잇펜 스님의 부산을 본받아서 하는 것입니다. ‘부산이라고 할 때의 는 나누어 주다라는 의미가 있고, ‘이라는 것은 ()’과 같은 뜻입니다.

 

잇펜 스님은 실제로 南無阿彌陀佛 決定往生 六十萬人”(나무아미타불350쪽에 그 그림이 있습니다.)이라는 글을 판화로 찍어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것을 이라고 하였고, 일본어로는 후다라고 하였습니다. 후다를 나누어 주려고 잇펜 스님은 일본 전역을 다니셨습니다. 절에서 살지 않았던 이유가, 길에서 길로 떠돌아다녔던 이유가 이 후다를 나누어 주기 위해서입니다.

 

부산을 하기 위해서 다니는 것이 유행(遊行)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봅시다. 이렇게 나무아미타불을 판화로 찍어서 그 종이를 전해준다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구체적으로 판화로 찍은 종이를 처음으로 나누어 주신 분은 잇펜 스님이지만, 우리 중생들에게 최초로 나무아미타불을 나누어 주신 분은 누구일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아미타불입니다.

 

18원에서 우리 중생들에게 당신의 이름을 열 번이나 한 번이나 염불하라고, 그러면 왕생할 수 있다고 해주신 분이 아미타불입니다. 그러한 아미타불의 행위를 바로 권진(勸進)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잇펜 스님은 아미타불의 권진을 받아서, 다시 다른 중생들에게 토스해 주시기 위해서 다닌 것입니다. 그렇게 토스해 주시는 것, 배달해 주시는 것 --- 그것을 우리는 부산이라고 하였고, 권진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누가 어떤 자격으로 아미타불의 권진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해 줄 수 있는가? 잇펜 스님은 누구에게 그러한 자격을 부여 받았던 것일까요? 지난 편지 2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잇펜 스님에게도 많은 스승이 있었습니다. 그분들에게 염불의 법문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끝내, 마침내 그렇다. 아미타불의 제18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다시 전달해야 하겠구나. 그래서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칭명할 수 있게 해야 하겠다라고 서원을 세운 것은 스스로일 뿐입니다. 여기에는 선종에서 선사들이 인가(印可)를 해주는 것과 같은 허가절차는 필요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그렇게 느끼고, 그렇게 나설 뿐입니다. 그러므로 나무아미타불을 부산하는 데 자격조건이 필요 없습니다. 자격증 시험도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어떤 특정한 사람만 그 부산의 권리를 갖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스스로 신심으로 부산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부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더욱이 그것이 하나의 권력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유감스럽게도, 시종 제2조 타아미타불(他阿彌陀佛) 신쿄(眞敎, 1237-1319) 때부터, 부산이 권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2조 신쿄로부터 허가를 얻은 스님만이 부산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도 특정 지역으로 부산의 지역을 나누어 주기도 하고 ---.

 

저는 그러한 행위는 아미타불의 뜻에 반하는 것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기서 시종은 쪼그라들기 시작했다고 봅니다. 누구나 부산을 할 수 있고, 누구나 부산을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빛이 왔다면, 우리 역시 다시 그 빛을 누군가에게 보내주어야 할 것입니다. 진실로 우리가 그 빛으로 밝아졌다면, 따스해졌다면 말입니다.

 

여러분께서도 말로나 글로나 어떤 수단과 방편으로나 자유롭게 나무아미타불을 다른 이웃들에게 발신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나무아미타불

 

                                                                             김호성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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