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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수행자료/김호성님의 정토행자의 편지

미타가 석가에 앞서다

김호성님의 정토행자의 편지 2(2017629)

 

                   

 

 

2015년 가을, 요코하마의 가나자와(金澤)문고에서 잇펜(一遍, 1239-1289)스님 관련 전시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가고 싶었으나, 뜻대로 되지 못했습니다.

그런 한(?)이 있었으므로, 그 당시 전시회의 도록이라도 사와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유감스럽게도, “다 팔리고 없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도서관 열람실에 있으니 읽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원효스님 탄신 1400년 기념 국제학술세미나에 참여하는 여가, 즉 아침의 시작 전 잠깐 동안과 점심 먹고 오후 발표를 시작하기 전 잠깐 동안, 그야말로 말 타고 달리면서 산에 피는 꽃들을 감상하듯이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두꺼운 도록(國寶, 一遍聖繪)이었으나 다 일별할 수 있었습니다. 대개는 잇펜스님의 전기를 그려놓은 그림이었는데, 시종(時宗)에서 전해오는 중요한 문서들도 있었습니다.

 

그 중에 특별히 저의 관심을 끄는 것, 아니 저를 놀라게 하는 것은 시종의 족보였습니다. 이 문헌의 이름을 잊어버렸습니다만, 잇펜 스님의 전후 계보가 어떻게 이어지는가 하는 것을 도표로 그린 것입니다. 법통(法統)에 관한 관심은 선종만큼은 아닐지 모르지만, 정토문에서도 있기는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그것은 정토문에서나 선종에서나 다 본질적인 것 같지는 않다고 봅니다만 ---.

 

시종도 현재 유행상인(遊行上人, 종정)73대라고 합니다. 잇펜 스님 이후로는 읽어봐야 누가 누군지 솔직히 알 수 없고 해서 보지 않았습니다. 잇펜 스님 위로 관심을 갖고 살펴 보았습니다. 다 아는 분들이고 해서 기억도 잘 됩니다. 잇펜 스님의 스승은 쇼타츠(聖達)인데, 큐슈지방에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쇼타츠 스님에게 출가를 하였던 것이지요. 쇼타츠 스님의 스승은 정토종의 개조 호넨스님의 제자 쇼쿠(證空, 1177-1247)스님입니다. 이 분이 정토종 서산파의 개조입니다. 야나기 무네요시의 나무아미타불에서도 자주 이야기되는 분이 쇼쿠 스님과 정토종 서산파이지요.

 

쇼쿠 스님의 스승은 호넨(法然, 1133-1212) 스님인데, 호넨 스님의 스승으로는 일본 스님을 그려 넣지 않았습니다. 에이쿠(叡空)와 같은 분이 있었지만, 안 집어넣고 당나라의 선도(善導, 613-681)대사에게 잇대어 놓았습니다. 선도대사는 도작(道綽) 스님의 제자이고, 도작 스님은 담란(曇鸞) 스님의 제자입니다. 중국에서도 정토문의 계통이나 흐름은 다양했습니다만, 일본 정토종의 계보는 이렇게 담란, 도작, 그리고 선도의 흐름을 이었습니다.

 

담란 이전의 중국 스님은 이름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인도로 갑니다. 담란은 인도의 천친(天親, 세친이라고도 합니다.)보살에게 법을 받은 것으로 봅니다. 천친 보살의 정토론에 대해서 주석서를 지은 분이 담란입니다. 신란 스님은 한자로는 親鸞인데, 각기 천친과 담란에게서 한 글자씩을 떼온 것입니다. 천친 보살은 용수(龍樹) 보살에게 계보를 연결하고, 용수는 그 앞에 마명(馬鳴)보살을 그렸습니다. 이 세 분이 인도 정토교의 조사들입니다. 용수는 십주비바사론에서 정토를 이행도(易行道, easy way)라고 하였으며, 마명은 대승기신론에서 염불을 이야기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마명은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연결됩니다. 물론, 이 사이에는 많은 시간적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직접 마명이 석가모니불로부터 정토법문을 받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렇게 시간적 간격을 무시하고 이 계보를 그린 것입니다. 보통 같으면 이런 식으로만 법통을 말하고 말았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제가 본 시종의 계보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석가모니불이 시작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그 앞에 아미타불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 계보를 화살표를 이용해서 한 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귀명무량수각(歸命無量壽覺) 인토(忍土)교주 석가모니불 마명 보살 용수 보살 천친 보살 담란 스님 도작 스님 선도 대사 호넨(法然) 스님 쇼쿠 스님 쇼타츠 스님 잇펜 스님

 

여기서 놀라운 것은, 석가모니불이 아미타불 보다 뒤라는 점입니다. 아미타불이 석가모니불 보다 앞선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이 아닙니다. 역사적 사실로서는, 지금까지 우리가 배우기로는 석가모니불이야말로 아미타불의 어머니이지요. 정토삼부경 모두 석가모니불이 아미타불을 말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아미타불을 소개하는 화자(話者)가 바로 석가모니불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이해해 왔습니다. 그런데 시종의 계보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미타불이 석가모니불보다 앞선다고 본 것입니다. , 아마도 잇펜 스님의 가르침을 잇고자 하는 시종에서는 아미타불을 좀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흔히 아미타불을 우리는 보신(報身)이라고 봅니다. 정토삼부경에 따르면, 아미타불을 지금부터 15겁 이전에 발심을 해서 5겁 동안 수행한 뒤에 아미타불이 되었다. 그러니까 10겁 이전에 아미타불이 되었다고 합니다. 수행의 결과 부처가 되었으므로 보신불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신이라 보더라도 아미타불의 부처로서의 나이는 10겁이나 되어서 불과 25백 여 년 전에 인도에서 사셨던 역사적 존재인 석가모니불보다는 훨씬 오래 전의 붓다라고 볼 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시종의 계보에서는 석가모니불 앞에 아미타불(無量壽覺)을 자리매김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제 생각에는 그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것보다는 잇펜 스님이나 시종에서는 아미타불을 법신(法身)으로 보고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실제로 나무아미타불에 보면, 잇펜 스님은 귀명의 의미를 아미타불과 중생이 공유하는 명근(命根)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는 곧 부처와 중생이 공유하는 불성으로 돌아가는 것이 나무아미타불이라 했던 것입니다. 즉 어떤 부처님도 모두 불성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 불성, 법신을 잇펜 스님이나 시종에서는 나무아미타불이라 했고, 그 족보에서는 귀명무량수각이라 표현한 것 같습니다. 석가모니불도 역사적으로는 불교의 시작이지만, 불성론의 입장에서 본다면 불교의 시작일 수 없지요. 그것은 이미 석가모니불 자신이 언명한 것처럼, “이 법은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든 출현하지 않든 존재하는 것이라보아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나자와문고까지 오셔서 참석한, 교토의 용곡대학(정토진종 종립대학) 후지 요시나리(藤 能成) 선생에게, 진종에서는 아미타불과 석가모니불의 관계를 어떻게 이야기하는가? 여쭈어 보았습니다. 대답은 이하백도(二河白道)에서의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그 이야기 속에서는 결코 석가모니불 앞에 아미타불이 있다는 메시지는 아니지요.

 

그러고 보면, 야나기 선생도 나무아미타불에서 우리 모두는 사실은 법장(法藏)을 다 포함하고 있다. ‘김호성이라 하더라도 사실은 김호성(법장)’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될 때, 괄호 속 법장은 곧 괄호 속 아미타불이고, 그것은 우리 모두 아미타불이나 법장으로서 법신을 우리 안에 내장하고 있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그 법신의 아미타불로 돌아가는 것, 그것을 나무아미타불이라 잇펜 스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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