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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청화 큰스님 법문집/4. 금강륜

성륜사법종불사 회향법문(1998년1월25일)


19981025-성륜사범종불사회향법어-DA-원주-자성-본정.pdf




19981025-성륜사범종불사회향법어-DA-청화(淸華)대종사 설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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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Word: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실상세계(實相世界), 삼계(三界)를 초월(超越)한 극락세계(極樂世界), 사바세계(娑婆世界) 즉 감인세계(堪忍世界), 세상만사가 무상(無常), 일체개고(一切皆苦), 영생(永生)의 행복(幸福), 색즉시공(色卽是空),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음성불사(音聲佛事), 이계위사(以戒爲師), 사물(四物), 범성(梵聲), 인간은 스스로 자기를 내다볼 수 있는 힘이 있다. 인간의 바른 말은 미묘한 음악보다도 훨씬 더 힘이 있습니다. 어느 누구나 분명히 존재의미가 있다. 생명 자체는 나지 않고 죽지를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만 본다면 불행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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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의(不可思議)한 실상세계(實相世界)>

 

우리 부처님 법은 미묘 불가사의(不可思議) 합니다. 미묘 불가사의하기 때문에 우리 중생들의 상식적인 범위 내에서는 다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들이 눈에 보이는 세계라든가 또는 눈에 안 보이는 세계나 그러나 심오(深奧)한 세계가 있는 것인데 우리 중생들은 업()에 가리어서 눈에 보이는 세계만을 실존적인 사실로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따라서 우리 중생들이 아는 것은 경험적인 그런 감각적(感覺的)인 세계, 또는 좀 나아가서 이성적(理性的)인 세계 이런 세계만을 긍정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 인간이 눈에 안 보이는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인 실상세계(實相世界)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런 실상 세제도 현실을 떠나서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중생들이 사는 세계는 아직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또는 아직 번뇌를 여의지 못한 그러한 무명(無明) 세계이기 때문에 이른바 사바세계(娑婆世界)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 중생들이 본다고 생각할 때는 모두가 다 사바세계, 사바세계 아님이 없습니다. 사바세계는 번뇌가 아직도 끝나지 못한 그러한 세계입니다.

 

<삼계(三界)를 초월(超越)한 극락세계(極樂世界)>

 

구분해서 말씀드리면 욕심을 미처 못 떠나는 우리 욕계(欲界) 세계가 있는 것이고, 조금 더 올라가서 욕심은 떠났다 하더라도 그 물질적인 색의 근본적인 관념을 미처 못 떠난 그런 색계(色界) 세계가 있는 것이고, 또는 물질적인 그런 여러 가지 관념이라든가 욕심을 떠났다 하더라도 아직 우리 의식에서 -- 우리 마음은 본래로 조금도 차이가 없는 부처님인 것인데 본래로 부처님인 줄을 미처 모르고서 -- 자기 생각이 이것이 바른 것이다 자기란 것이 분명히 있다 이런 마음이 완전히 가시지 못하면 아직도 무색계(無色界)에서 헤매는 것입니다.

 

따라서 참다운 깨달음은 욕계세계, 또는 색계세계, 무색계세계, 삼계(三界)를 초월한 참다운 영생불멸(永生不滅)한 그런 세계, 이른바 연화장(蓮華藏) 세계라, 또는 극락세계(極樂世界), 그러한 세계가 참다운 세계입니다.

 

<사바세계(娑婆世界) 즉 감인세계(堪忍世界)>

 

그러하기 때문에 우리 중생들이 미혹(迷惑)되어서, 미혹한 번뇌 때 묻은 그런 눈으로 생각하고, 그런 눈으로 말도 하고, 그런 눈으로 행동하고, 그러니까 이런 세계는 사바세계(娑婆世界), 번뇌 때 묻은 세계라고 합니다. 사바세계는 다른 말로 하면 감인세계(堪忍世界). 구태여 감(), 참을 인(), 감인세계라. 감인세계란 말은 여러분들이 좀 생소할지 모르지만 외워두시면 좋습니다. 사바세계의 다른 이름이 바로 감인세계 입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구태여 감()자와 참을 인()자를 써서 감인세계라고 했는가 하면 이 사바세계는 고통의 바다란 말입니다.

 

자기 몽둥이나 또는 자기 관념이나 모두가 집착된 그런 세계가 이 중생세계 아니겠습니까? 본래는 집착이 없는 청정 자유로운 그런 세계인데, 우리 중생이 견해가 짧아서 이른바 무명 번뇌 때문에 스스로 지어서 자기 마음을 구속하고 자기 말도 제한을 시키고, 자기 행동도 그런 구속된 우리 번뇌의 범주(範疇)에 따라서 행동을 한 단 말입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악을 행사면 반드시 악이 보복을 해서 고통이 있는 것이고, 선을 행하면 선이 보답을 해서 그때는 안락이 있단 말입니다. 이런 선악의 차원을 미쳐 못 떠나고 이런 세계가 중생세간이기 때문에 이런 세상에선 필연적으로 고통이 따릅니다.

 

<세상만사가 무상(無常)>

 

세상만사가 무상(無常)이 아닌 것이 없는 것을, 순간 찰나에서 일어났다가 순간 찰나도 머물지 않고서 변화무상(變化無常)한 것이 중생세계인 것을, 이러한 세계는 따라서 우리 인간이 추구하는 상주부동(常住不動)하는 그런 것은 어느 것도 없습니다.

 

다만 그림자 같이 잠시간 행복(幸福)으로 보인다 하더라도 그런 것은 찰나의 환영(幻影)에 불과합니다. 허깨비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우리 중생세간은 고통 세계인데, 모두가 다 제법개공(諸法皆空)이라.

 

따지고 보면 안락하다고 느끼는 것도 근본은 고통에서 비롯된단 말입니다. 고통이 없이 안락이 있을 수 없고 안락 같은 것이 있다가 하면 금방 지나면 또 고통이 온단 말입니다.

 

<일체개고(一切皆苦)>

 

그러기에 이러한 고통의 세계 일체개고(一切皆苦). 모두가 고통세계에서 우리가 참아야 합니다. 참지 않으면 베길 수가 없습니다. 우리 중생들이 참지를 못하니까 모든 고통이 오면 다른 사람 탓이나 하고, 또는 다른 사람 비방이나 하고, 모든 불행을 또는 자기 맘으로 느끼는 그런 부조화한 그런 의식형태를 다른 사람의 책임으로 돌린단 말입니다. 이런 것은 참지 못하기 때문에 그럽니다.

 

인생은 어차피 무상하고 또는 우리 몸뚱이도 무상하니까 본래 있다고 할 수가 없단 말입니다. 사실 무상하다는 것은 굉장히 심심미묘(甚深微妙)한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느 한 가지도 고유한 것이 없단 말입니다. 고유한 것이 없다는 것은 바로 이것은 공()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른바 제법이 공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 인간이 사는 그런 세계가 고통세계 참기만 하고 아무런 행복이 없다고 생각할 때는, 우리 인간이 살 가치가 없습니다.

 

<영생(永生)의 행복(幸福)>

 

그러나 부처님 같은 그런 성자의 길로 해서 인생과 우주의 본래면목(本來面目) 자리, 본래면복 자리는 그때는 영생(永生)의 행복(幸福)자리란 말입니다. 모든 만법(萬法)이 다, 모든 만물이 다, 마음이라는 하나의 순수 생명으로 딱 귀일(歸一)이 됩니다. 우리 불자님들, 만법귀일(萬法歸一) 이라고 아시지 않습니까.

 

또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이런 말씀이 간단한 것 같지만 굉장히 심심미묘한 진리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모든 법이 다 마음 법으로 하나가 된단 말입니다. 따라서 모든 천체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라 하는 그런 광대무변(廣大無邊)세계도 역시 따지고 보면 우리가 본질적으로 본다면 모두가 다 하나의 세계입니다. 하나의 마음 세계입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물질이 아니지 않습니까? 물질이 아닌 것은 구분을 못한단 말입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국한도 못 시킵니다.

마음이 어디가 있고, 어디가 없는 것이 아니라 천지 우주가 마음으로 충만해 있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도 충만해 있고, 저 사람 마음도 충만해 있고, 우리의 마음은 모두가 다 우주에 충만해 있습니다. 충만한 것은 이것이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무변무량(無邊無量)하단 말입니다. 갓도 없이 끝이 없는 것이 우리 마음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이 우주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본체(本體)를 본다고 할 때는 오직 마음의 세계인 것이고, 그 마음 가운데는 만공덕(萬功德)을 다 갖추고 있어서 이것이 인연(因緣) 따라서 마음의 법칙 따라서 형상화 되면 그 때는 태양계요, 은하계요, 또는 지구요, 또는 달이요, 별이요 한단 말입니다.

 

마음 세계라는 것은 그냥 아무 것도 없는 그런 세계가 아니라 만공덕을 갖춘 세계이기 때문에 그 만덕(萬德)이 형상화 한단 말입니다. 형상화를 한다 하더라도 마음 자체가 본래로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본래로 공()이기 때문에 우리 중생의 몸이나 또는 태양계나 은하계나 각 별 세계이나 모두가 이것도 사실은 바로 보면 공()입니다.

 

우리 중생이 잘못 보아서 있다고 보는 것이지 모두가 다 마음이라 하는 물질이 아닌 순수생명(純粹生命), 순수생명으로부터 잠시간 모양을 나툰(나타낸) 것이기 때문에 나툰 모양 그대로 입니다.

 

<색즉시공(色卽是空)>

 

그러기에 반야심경(般若心經)에서 말하는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는 것도 그런 도리입니다. 물질이 천차만별이 있다 하더라고 따지고 보면 그 본질적으로 본체에서 본다고 하면 다 이란 말입니다. 이런 것을 우리 중생은 보지를 못합니다. 보지를 못하니까 사실은 있지 않은 허깨비 같은 그림자에 불과한 그걸 보고 있다고 생각을 한단 말입니다. 불자님들, 불교를 공부하실 때는 상식적으로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불법이 아닙니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세속적인 가르침과 불법의 차이는 무엇 인고 하면, 우리 세속적인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 불법에서 본다면 본래로 없다는 것입니다. 본래로 없다는 것을 모르면 사실은 불법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우셔도 꼭 제법이 공이다, 모두가 본래로 공이다 이런 것을 아셔야 불법을 음미할 수가 있습니다.

 

<음성불사(音聲佛事)>

 

오늘은 범종불사(梵鐘佛事) 회향식입니다. 참 장엄한 범종을 조성해 주셔서 여기 주지스님이라든가 여러 신도님들 대단히 참 감사합니다. 범종이 꼭 커야만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크면 큰 만치 많은 불자님들의 정성이 거기에 응집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공덕이 더 많다고 봐야 되겠지요.

 

사바세계는 음성불사(音聲佛事). 사바세계는 소리를 불사로 합니다. 우리가 마음을 닦아서 성불하는 것은 마음을 닦으면 되겠지만, 사바세계 불사라는 것은 그 마음자리를 문자라든가 말로 표현을 못하면 불사가 안 됩니다.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서 성도(成道)하시고서, 녹야원(鹿野苑)에서 사제팔정도(四諦八正道) 법문을 설파하셨지만, 모두가 다 말로 하셨습니다. 음성으로 하셨단 말입니다.

 

<이계위사(以戒爲師)>

 

열반(涅槃) 들어서 마지막 법문, 유교경(遺敎經)에서 마지막에 하신 법문까지 모두가 다 말로 하셨습니다. 마지막 법문이 무엇 인고 하면 이계위사(以戒爲師), 계율로써 스승을 삼으라. 이런 말씀을 하셨단 말입니다.

 

우리 불자님들, 우리는 함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함부로 살면 사바세계의 그런 인생고를 더욱더 심화를 시킵니다. 동시에 우리가 우리 본래면목 자리, 그런 부처님 성불할 기약이 없습니다. 부처님 마지막 설법이 계율로써 도덕률(道德律)로 해서 스승을 삼으라고 이랬단 말입니다.

 

계율이라는 것은 우주의 법, 우주의 법에 맞는 우리 인간, 우리 인간 존재의 하나의 도덕률입니다. 인간 존재의 도덕률 가운데 무슨 세간법이 있고, 여러 가지 법이 있습니다만 부처님 법이 가장 완벽한 법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재가불자이든 출가불자이든 간에 부처님 계율은 꼭 지켜야 합니다. 계율을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세간적인 화합도 못하고 또는 화합을 못하니까 평화도 얻을 수 없는 것이고, 화합과 평화 없으면, 참다운 자유도 없습니다.

 

우리 생명의 본바탕이 우리 마음인데, 우리 행동을 함부로 하고서 우리 마음이 고요하게 안정이 될 수가 없습니다. 계율이라는 것은 이것은 세간적인 평화나 자유나 행복이나 그런 것도 가장 큰 공덕이 되겠지만 그에 못지않은 공덕이 계율을 지키면 우리 마음이 정화(淨化)가 됩니다. 우리 마음이 파도가 바람이 없이 잔풍하듯이 우리 마음이 정화가 되어서 고요해 집니다.

 

고요해 져야 우리 마음이 고요해야, 참다운 진리(眞理)를 아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들이 느끼는 그런 분별지(分別知)가 아니라, 성지(聖智), 성자의 지혜, 성자의 지혜는 고요한 마음에서 비로소 아는 것입니다. 따라서 먼저 철저한 도덕률로 해서 우리의 계율을 지키고, 또는 계율을 기본으로 해서 우리의 마음을 고요히 하고, 마음을 고요히 함으로 해서 영원히 나지 않고 죽지 않는 영생의 진리를 우리가 아는 것입니다.

 

<사물(四物)>

 

우리 불가(佛家)에서 사물(四物)이라고 해서 범종을 첫째로 치고, 범종(梵鐘)은 큰 종입니다. 종을 첫째로 치고. , 그 다음에는 법고(法鼓), 절에 가서 보시면 큰 북이 있지 않습니까? 큰 북을 가리켜서 클 홍자, 북 고자를 써서 홍고(弘鼓)’라고도 하고, 또는 법 법자. 이것은 모든 중생들에게 법을 알리는 신호라고 해서 법고라고도 이야기를 합니다. 또는 한 가지는 운판(雲版)이라, 구름 운자, 판자 판자, 운판이라고 하는 것은 판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동()으로 만들어서 우리 절집에서 공양 시간이라든가 적당한 시간을 알릴 때 운판을 씁니다. 또 한 가지는 목어(木魚), 목어 이것은 시속말로 해서는 목탁인데, 본래 말은 나무 목자, 고기 어자, 목어라고 합니다. 이러한 연유에 대해서는 시간이 없어서 다 말씀을 못 드립니다만, 이것이 네 가지 중요한 절집에서 법에 관한 하나의 도구입니다.

 

범종 대종이라는 종이 있고, 법고라 큰 북이 있고, 작은 북도 법고라고 합니다. 크고 작은 것은 우리 중생이 구분하는 것이지 본래 그러한 가치로 해서는 크다고 해서 꼭 좋은 것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운판, 또는 목어. 목어는 목탁인데 이것이 네 가지가 절집의 중요한 불구(佛具)란 말입니다.

 

그런 가운데도 각기 구분해 보면, 사실 본래는 구분할 것도 없지만, 구태여 구분해 본다고 생각하면, 범종은 지옥중생을 제도(濟度)합니다. 동시에 육도(六途)중생을 제도합니다. 육도라는 것은 우리 중생들이 생사윤회(生死輪廻)하는 것이 제일 나쁜 데서부터, 지옥(地獄), 아귀(餓鬼) 또는 축생(畜生), 또는 아수라(阿修羅), 인간(人間), 천상(天上) 아닙니까. 육도중생을 맡아서, 그 범종이라 하는 맑은 음성이 제도를 한단 말입니다.

 

절에서 들려오는 맑은 종소리를 듣고서 마음을 깨달은 분이 한 두 분이 아닙니다. 우선 가장 쉽게 말하면 일본 불교 임제종에서 가장 위대한 스님이라고 하는 백운(白雲) 혜학선사, 이 분도 원사종음(遠寺鐘音)이라,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를 듣고 깨달았단 말입니다.

 

<범성(梵聲)>

 

따라서 모든 음성 가운데 범성(梵聲) 이라하는 음성이 제일 청정하고, 모든 중생의 심금을 울려서 마음을 깨닫게 하는 그런 본래의 뜻이 갖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종을 범종이라 이릅니다. 범상한 이것은 맑을 범()자입니다. 맑은 소리란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애쓰고 이 범종불사 대종불사를 했다하더라도 종소리가 좋지 않다면 사실은 가치가 없습니다. 맑은 소리를 내는 것이 범종의 한 본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행히 이 성륜사 대중스님 그리고 사부대중 우리 불자님들이 선근공덕으로 해서 이번 대종은 청아한 맑은 음률을 내서 이것은 여법한 부처님 법도에 맞는 정말로 육도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 훌륭한 범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과 더불어서 축복을 드리는 바입니다.

 

그리고 법고(法鼓)는 주로 쇠가죽으로 만듭니다. 그래서 소는 네 발 달린 짐승 가운데는 굉장히 법도 있고 한 동물이기 때문에 네 발 달린 그런 이른바, 짐승, 소나 말이나 개나, 범이나, 사자나, 아무튼 네 발 달린 그런 짐승 그런 금수(禽獸)들을 제도하는 것도 북의 소임입니다.

 

그리고 목탁은 이것은 나무 목(), 고기 어()자를 써서 원래 수중중생이라, 물 속 고기들을 제도한다고 해서 이른바 목어(木魚)라고 한 것인데, 지금은 이제 목탁(木鐸)이라 합니다. 아무튼 꼭 수중중생만 제도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육도중생에 해당이 되겠지마는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범종은 지옥중생을 제도하고, 또는 법고는 이것은 네 발 달린 그런 짐승, 금수를 제도하고, 또는 목탁은 이것은 수중중생, 그런 어물을 제도하고, 또는 운판(雲版)은 이것은 공중에 달린 새들을 제도한도고 해서 우리 불가에서는 그것이 전래가 되어있습니다.

 

아무튼 그러한 그 맑은 음성들이 우리 중생의 마음을 정화하는데서 범종 공덕이 나오고 법고의 공덕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러한 공덕보다도 더 위대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 인간은 의식을 갖고 있고, 일반 동물들도 갖고 있으나 범종이나 그러한 것은 훌륭한 음성을 낸다하더라도 우리 인간 같은 의식이 없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자기를 내다볼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의식을 갖고 있단 말입니다.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자기 스스로 자기를 내다볼 수 있는 힘이 있단 말입니다. 미개한 때는 자기 스스로 자기를 내다보는 힘이 별로 깊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나 차근차근 인지가 발달하면서 또는 깨달은 성자들이 나와서 우리 마음을 더 파고 들어가면 우리 인간의 의식보다도 더 깊은 그 제7말나식(末那識)이라, 그런 의식도 잠재해 있고, 또 깊이 우리 마음을 파고 들어가면 제8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 보다 깊은 식도 있단 말입니다. 또 더 깊이 들어가 아뢰야식의 근본은 무엇인가? 그래서 탐구해 들어가면 제9암마라식(菴摩羅識)이라 이러한 청정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 암마라식이 무엇인가? 바로 부처입니다. 바로 불심(佛心)이란 말입니다.

 

우리 중생 마음이 지금 의식이라 하는 별로 좋지 않은 차원에 머물러 있다 하더라도 우리 마음의 본래는 다 이것이 불성(佛性)이자 불심(佛心)입니다.

 

우리 인간중생의 그런 마음뿐만 아니라 다른 개나 소나 돼지나 의식이 미처 발달 못한 5식만 가지고 쓰는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 5식만 가지고 쓰는 그런 중생도 역시 원래 마음자리는 모두 부처님 마음입니다. 다른 자연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의 원소라든가 하나의 소립자라든가 어떠한 미세한 그런 미물들도 모두가 다 무생물 유생물 상관이 없이 모두가 다 근본적인 생명 자체는 바로 불심입니다.

 

<인간의 바른 말은 미묘한 음악보다도

훨씬 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의 바른 말은 이것은 어떠한 것보다도 어떠한 미묘한 음악보다도 훨씬 유능한 훨씬 더 가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남한테 봉사하고 또는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기원을 드리고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찬탄하고 이런 것은 범종 소리보다도 또는 법고 소리보다도 훨씬 더 우리 인간을 위해서 우리 인간의 참다운 행복을 촉진시키는 그런 힘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 가운데 가장 불행한 사람은 어떠한 사람인가 하면, 우리가 자기 이웃들을 본다고 생각할 때에 이웃의 좋은 점을 못 보고서 나쁜 점만 본단 말입니다. 이런 사람이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다. 가장 위대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그 반대입니다. 다른 사람의 단점을 보지 않고, 장점을 본단 말입니다. 다른 사람의 장점만 본다고 할 때, 그 사람은 얼굴을 찌푸릴 만한 아무런 이유도 없습니다. 남과 다툴만한 아무 까닭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무명(無明) 중생의 때 묻어 있는 우리 중생들은 다른 사람의 장점만 보고 살 수가 없지 않습니다. 어떠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장점만 볼 것인가 이것은 부처님이나 성자들은 다 그렇습니다. 부처님이나 성자는 그 사람의 장점만 봅니다. 그 사람의 장점을 보면, 다른 사람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 사람을 부처님 같이 본 단 말입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가 다투지 않고 서로 인화하고 화합하기 위해서 본래는 부처가 아닌데 다른 사람을 부처같이 억지로 봐야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 말씀은 그런 억지 말씀은 조금도 없습니다. 부처님 말씀은 사실을 사실대로 본단 말씀입니다.

 

제가 좀 목이 쉬어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조금 감기 기운이 있어서 목이 쉬었습니다.

 

<어느 누구나 분명히 좋은 존재의미가 있다.>

 

아까 말씀 드린 바와 같이, 가장 불행한 사람은 어느 누구나가 다 본래 부처님 자리가 이것이 본래면목(本來面目)인 것이고, 어느 누구나가 다 좋은 점이 있습니다. 성자가 되지 못했으니까 부처님처럼 완벽한 사람은 못 되었다 하더라도 어느 누구나가 사람은 분명히 좋은 점이 존재의미가 있는 것인데, 그 덕이 부족한 사람은 나쁜 점만 꼬집어서 본 단말입니다. 이런 사람은 참 불행한 사람입니다. 내외간도 화합이 될 수 없고, 부자지간 모녀지간 이런 사이도 화합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기성세대 후진세대, 신진세대 이런 세대 차이도 화합이 될 수가 없습니다. 같은 여당 야당도 화합이 될 수가 없습니다. 공부도 많이 한 분들이 서로 삿대질을 하고 그 다른 사람의 약점만 꼬집어서 보려고 하면 참 불쌍하게 생각이 듭니다. 자기 마음에 다른 사람들의 단점을 한 번 보고, 그걸 느끼고, 그걸 말로 옮기고, 이 순간에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 스스로의 마음이 그만만치 혼탁(混濁)하게 됩니다. 마음이 혼탁하게 되면 우리 몸도 그만큼 오염을 받습니다.

 

우리 불자님들 우리가 행복(幸福)하게 사는 것은 별로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성인들의 마음을 따르면 당장 모든 것이 완전무결하게 해결이 됩니다.

 

<생명 자체는 나지 않고 죽지를 않는 것입니다.>

 

내 아들이랑 딸이 당장에 아파서 암에 결려서 죽는데 어떻게 행복할 것인가? 이런 때도 행복합니다. 이런 때도. 왜냐하면 본래로 본다면 생각하면 죽음이 없단 말입니다. 생명 자체는 나지 않고 죽지를 않는 것입니다. 다만 허상만 허깨비 같은 것만 때 묻어서 종단에 벗어버려야 할 옷 같은 우리 몸뚱이 이것만 바꾸는 것이지 우리 생명은 본래 나지 않고 죽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불생불멸(不生不滅)아닙니까? 반야심경(般若心經)의 그 짧은 법문 가운데도 부처님의 심오한 뜻이 다 들어 있습니다. 정말로 우리 생명 자체는 나지 않고 죽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떤 경우도 당장에 원자폭탄이 떨어져서 수 천 명이 한 번에 죽는다 하더라도 그 생명이 죽지를 않습니다.

 

금생의 유한된 생명이 인연을 따라서 정지된다 하더라도 바로 그 즉시에 보다 더 훨씬 훌륭한 생명으로 승화가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 당시에 석가족(釋迦族)이 과거 전생에나 또는 석가족이 상당히 계급적인 의식으로 해서 많이 다른, 그보다 더 밑에 있는 계급에게 학대를 많이 했단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업()을 많이 지었지요.

 

비유리(毘瑠璃)왕자가 침범해서 부처님을 탄생시킨 그 고귀한 족속이 굉장히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단 말입니다. 땅에다 사람을 파묻은 채로 모두 죽이고 해서 수 천 명이 한 번에 죽음을 당했단 말입니다.

 

그럴 때에 목건련(目健蓮)존자 그러신 분들이 세존이시여, 저네들을 제가 신통으로 해서 저 지구 밖으로 던져버리면 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말 할 때에, 부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네들은 그네들의 업장(業障)에 따라서 자업자득(自業自得)으로 죽지마는 죽은 즉시 자기들 빚을 갚아서 자기들 업장의 빚을 갚아서 바로 천상(天上)에 태어나느니라.”

 

<우리가 바로만 본다면

불행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 중생들은 눈에 보이는 세계만 보는 것입니다. 자기 아들이나 딸이 그 가엾은 죽임을 당한다 하더라도 그대로 가엾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죽은 즉시에 바로 더 훨씬 좋은 생을 받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경우나 우리가 바로만 본다고 생각할 때는 형이상학적인 것까지 동원해서 바로 본다고 생각할 때는 불행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중생은 이 겉만 본단 말입니다. 알맹이이나 본 바탕이나 본체(本體)를 보지를 못합니다. 겉만 보고 울고불고 울고불고, 서로 미워하고 서로 다투고 아귀다툼하고 이것이 중생이란 말입니다.

 

오늘 이 범종불사 거룩한 범종불사, 지옥중생을 제도하는 맑은 그런 종성을 우리가 오늘 낼 수 있는 거룩한 범종불사입니다.

비록 이 범종의 소리가 저쪽 옥과(玉果)까지 밖에 안 들린다 하더라고, 일파가 만파라. 우리가 못에다가 돌을 하나 던지면 거기서 파문이 나지 않습니까? 그 파문은 못 전체에 미칩니다. 그와 같이 이 맑은 종소리가 한 번 울리면 비록 우리 가청적인 우리 중생이 듣는 소리는 옥과면 정도까지 밖에 안 갈지 모르지만 그 일파만파(一波萬波)로 해서 온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에 이 맑은 음성이 다 거기에 미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범종의 맑은 종소리가 울리고 울려서 온 세계에 다 두루 미쳐서 사바세계 모든 중생이 다 하루 속히 성불(成佛)하여 지이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마하반야바라밀!

 

19981025-성륜사범종불사 회향식법문-청화큰스님

19981025-삼영불교 녹음

20180111-이원주 녹취워드작업

20180207-자성 1차교정

20180218-본정 2차교정

 

 

 


19981025-성륜사범종불사회향법어-DA-원주-자성-본정.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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