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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2. 진리의 길

제2편 마음이 바로 부처요, 부처가 곧 마음인 것을(6)


 

마음이 바로 부처요, 부처가 곧 마음인 것을

 

 

 

* 벌써 가을입니다. 북녘에서 자란 호마(胡馬)는 북풍이 불 때마다 고향을 그리워한다고 하였는데, 이제 선들바람이 가슴에 스며올 때 잊어버린 마음의 고향을 그리는 근원적인 향수를 지울 수가 없습니다.

 

* 일찍이 달마대사는 인도의 향지국 왕자였는데, 제 이십칠 조인 반야다라존자를 스승으로 하여 진리를 깨닫고, 바른 불법을 중국에 펴기 위하여 천신만고 끝에 중국 광주 땅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때, 중국 불교는 경론(經論)의 교리에만 집착하고 정작 마음공부는 소홀히 하여, 달마대사를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대사는 숭산 소림사 뒷산에 있는 석굴에 들어앉아, 걸식하러 나가는 외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벽을 향하여 바윗덩이처럼 깊은 선정에 잠겼습니다. 이러구러 구년 세월 동안 말 한마디 없는 벙어리로 일관하였습니다.

신광(神光)이라는 젊은 스님이 달마대사의 위대함을 전해 듣고, 눈보라를 무릅쓰고 소림 석굴을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신광은 달마대사의 등 뒤 석굴 어귀에 앉아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 한 밤을 지새웠습니다. 눈발이 무릎을 덮고 온 몸이 얼어붙어 사뭇 저려왔으나, 죽음을 각오한 신광의 뜨거운 구도의 열기는 추호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 호젓한 침묵 가운데 하루해가 지나자, 그토록 목석 마냥 앉아만 있었던 달마대사는 넌지시 돌아앉아 신광을 굽어보았습니다. 신광은 반색하여 큰 절을 올리고 나서, 이렇게 여쭈었습니다.

“스승님, 이 어리석은 제자가 법을 구하고자 왔습니다. 불쌍히 여기시어 거두어 주옵소서.”

 

* 달마대사는 오랜 침묵을 깨뜨리고 대답했습니다.

“위없는 대도는 엷은 지혜나 가벼운 덕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니라.”

이에 신광은 비장한 마음으로 허리춤에 차고 있던 칼을 빼어 단숨에 왼팔을 잘라서 달마대사께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솟음치는 선혈로 하얀 눈은 붉게 물들고, 이내 상처에서 희부연 젖이 솟아나와 상처를 아물게 하였습니다. 이때 사납게 울부짖던 눈보라도 숨을 죽이고, 달마대사의 엄숙한 표정에도 깊은 감동의 빛이 역력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신광의 지극한 구도의 정성은 받아들여졌습니다.

 

* 신광의 마음은 좀체로 안정을 얻을 수가 없어서, 스승 앞에 나아가 이렇게 여쭈었습니다.

“스승님, 저의 마음은 아직도 편안하지 않사옵니다. 자비를 베푸시어 제 마음을 다스려 주옵소서.” 하고 아뢰었습니다.

 

* 달마대사께서 “그러면 편안치 못한 그대 마음을 가져 오너라, 내가 편안케 하여 주리라.”

그러자 신광의 마음은 당혹하여 어리둥절하였습니다.

‘본시 마음이란 형체가 없거니, 불안한 마음이나 흐뭇한 마음이나간에, 마음이란 아예 형상화시킬 수 없는 것이 아닌가?’

 

* “스승님, 마음이란 모양이 없사옵기에 드러내 보일 수도 얻을 수도 없지 않사옵니까?”

“그렇다, 마음이란 필경 더위잡을 자취가 없는 것이니라, 그것을 분명히 깨달았으면, 그대 마음은 이미 편안해졌느니라.”

 

* 이리하여, 어두운 무명에 갇힌 신광의 불안한 마음은 활짝 열리고, 맑은 하늘같은 훤칠한 마음으로 정진을 거듭하여, 마침내 대도를 성취하여 제 이조 혜가(慧可)대사가 되었습니다.

 

* 혜가 대사의 회상에 오랜 병마에 찌들어 몹시도 초췌한 젊은 수행자가 찾아와서 이렇게 여쭈었습니다.

“스승님, 저는 죄업이 무거워서 불치의 풍병으로 여러 해를 앓는 몸입니다. 아무쪼록 불쌍히 여기시어 저의 죄업을 소멸하여 주시고, 가엾은 목숨을 구제하여 주옵소서.”

“정작 그렇다면, 그대의 죄업을 이리 내놔보게, 내가 바로 소멸시켜줄 터이니.”

 

* 말문이 막힌 젊은이는 이윽히 생각에 잠겼습니다. ‘마음이란 본래 허공과 같이 텅 빈 것, 이미 마음이 그 자취가 없거니, 죄업인들 어디 흔적이나 있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젊은이는 다시 이렇게 여쭈었습니다.

“죄업을 아무리 찾으려 하여도, 도무지 그 형상이 없사옵니다.”

 

* “진정 그러하니라. 마음이란 본래 공하여 형체가 없고 이름 붙일 수도 없는 것이니, 그대를 괴롭히는 죄업 또한 그 뿌리가 없느니라. 그대가 정녕 그러한 도리를 깨달았으면, 이미 그대는 죄업을 참회하여 소멸해 버렸느니라.”

이 말씀에 총명한 젊은이의 마음은 활연히 열렸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는 혜가 대사에게 여쭈었습니다.

“스승님, 저는 앞으로 스승님을 섬기려 하옵니다.”

“그대 같은 풍병 환자가 나를 따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 젊은이는 이렇게 여쭈었습니다.

“몸은 비록 병이 있사오나, 제 마음은 스승님의 마음과 조금도 다르지 않사옵니다.” 그래서 혜가대사는 그를 대견하게 받아들이니, 젊은이는 차차 건강도 회복하고 더욱 정진에 노력하여, 드디어 제 삼조 승찬(僧璨)대사가 되었습니다.

 

* 몇 십 년의 세월이 흘러 승찬 대사가 환공산에 머무를 때, 아직 십 삼세의 영특한 사미 동자가 찾아왔습니다. 그는 큰 절을 하고 대뜸 여쭈었습니다. “스승님, 자비를 베푸시어 저에게 번뇌를 해탈하는 길을 일러 주옵소서.”

 

* 승찬 대사는 기특하게 여긴 나머지 이렇게 물었습니다.

“누가 너를 속박하였기에 풀어달라고 하는 것이냐?”동자는 불현듯 가슴이 막혀,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참으로 생각해 보니, 스승님의 말씀대로 그 누가, 그 무엇이 내 마음을 구속했단 말인가? 그저 마음 안에서 공연스레 일고 스러지는 번뇌 망상이 아닌가? 마음 자체가 형상이 없고 가뭇없으니, 대체 번뇌 망상이 그 어디에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 “스승님, 아무 것도 제 마음을 속박하는 것이 없사옵니다.”

“속박하는 것이 없다면, 다시 무슨 해탈을 구할 필요가 있겠느냐?”

이 한 마디에 갸륵한 동자는 문득, 본래 비어 있는 허공 같이 장애 없는 마음자리를 훤히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 동자가 장차 대도를 성취하고 제 사조 도신(道臣)대사가 되었습니다.

 

* 도신 대사는 출가하여 육십 여 년 동안이나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정진하여, 아예 자리에 눕는 일이 없었습니다. 평소에 눈을 감은 듯 지냈으나, 눈을 바로 뜨고 사람을 바라보면, 그 위엄 있는 촉기에 사람들이 움츠러졌다고 하는데, 그것은 깊은 삼매에서 우러나온 초인적인 도력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부처님의 정통 법맥은 끊임없이 이어져, 제 오조 홍인(弘忍)대사를 거쳐 제 육조 혜능(慧能)대사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 달마대사로부터 혜능 대사까지는, 오로지 순수하게 마음의 해탈만을 문제시하였다고 하여 순선(純禪)시대라 하고, 그 무렵에 주로 제창한 법문을 안심법문(安心法門)이라 합니다.

 

* 마음이란 허공과 같이 광대무변하고 무장무애(無障無礙)하여, 그 무엇에도 걸림이 없고 아무런 자취도 없는 것인데, 그렇다고 다만 허무하게 비어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실상은 무한한 능력을 원만히 갖춘 생명의 광명으로써, 바로 불성 곧 부처님인 것입니다.

 

* 경전에 이르신 바, “마음이 바로 부처요, 부처가 곧 마음[心則是佛 佛則是心]”입니다. 그리고 인간을 비롯한 일체만유는 모두 한결같이 불성의 광명으로 이루어진 부처님이며, 우주의 실상은 바로 장엄 찬란한 연화장세계요 극락세계인 것입니다.

 

* 어두운 번뇌에 가린 중생들이 그러한 자기 근원을 모르고 만유의 실상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잠시 인연 따라 이루어진 전변 무상한 가상만을 집착하여, 너요 나요 내 것이요 하며 탐착하고 분노하고 아귀다툼하면서, 파멸의 구렁으로 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 오늘날 온 누리에 넘실거리는 역사적 위기를 극복하는 가장 근원적이고 유일한 길은, 이미 부처님과 정통 조사들이 순선 시대에서도 극명히 밝히신바, 중생 차원에서 인식하는 일체 만법은 바로 그대로 비어 있는 공한 도리 곧, 제법공상(諸法空相)을 번연히 깨달아서 우선 불안한 마음을 여의고 안심입명을 확립해야 하는 것입니다.

 

* 다만 공만이 아닌, 그 공(空)의 근본성품인 부처님을 성취하기 위하여, 공의 도리에 걸맞은 무아· 무소유의 생활에 안간힘을 쓰고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인류의 파멸을 면하고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약속하는 오직 하나의 청정한 백도(白道)인 것입니다.

 

[불기 2530년 10월 『금륜』 제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