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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2. 진리의 길

제2편 마음이 바로 부처요, 부처가 곧 마음인 것을(5)


 

부처님의 일대사 인연

 

 

* 인간을 비롯한 우주 만유의 모든 존재들은, 저마다 그 인연에 따른 목적이 있고 삶의 의미가 있습니다.

최상의 성인이시며 사생(四生-胎卵濕化)의 어버이시고 삼계의 스승이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출현하신 서원과 목적은 크고 깊어서 이루 헤아릴 수 없으나, 그것을 한 말로 요약하여 ‘일대사인연’이라고 합니다.

 

*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인생의 고난을 벗어나서 해탈의 바다에 노닐게 하시기 위하여, 짐짓 고생 바다인 사바세계에 화신(化身)의 몸을 나투신 것입니다.

 

* 부처님께서 사십구 년 동안 설법하신 가르침, 곧 일대시교(一代時敎)는 중생들의 근기에 맞추신 이른바 팔만사천법문인데, 이를 세 시기로 나누어 삼시교판(三時敎判)이라 합니다.

 

* 제일 시교(時敎)란, 이를 유교(有敎)라고 하는데, 나와 너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하는 범부 중생의 뒤바뀐 생각을 깨우치기 위하여, 우리 인간이란, 물질인 사대[地水火風]의 마음 작용인 사온[受想行識]이 인연 따라 잠시간 화합한 것에 지나지 않으니, 필경 나와 너의 인간 존재는 무상하고 허무하여, 다만 사대와 오온[色受想行識]등의 법만이 실재한다는 가르침으로써, 이는 근기 낮은 중생들을 일깨우는 소승교라고도 합니다.

 

* 제이 시교란, 이를 공교(空敎)라고도 하는데, 물질과 마음의 온갖 현상을 만드는 사대 오온의 법이 실제로 있다고 집착하는 소승들의 소견에 대하여, 일체만법이 모두 공(空)하다고 부정하는 제법공(諸法空)의 가르침으로써, 반야심경이나 금강경 등의 요지인 반야사상을 의미합니다.

 

* 제삼 시교란, 바로 중도교(中道敎)로써, 제일 시교와 같은 너와 나의 실재를 고집하는 편견과, 제이 시교에서 말하는 바, 일체 만법이 다만 허망무상하다고 하는 공의 한편만을 집착하는 그릇된 견해를 다시 부정하여, 인생과 우주의 참다운 실상은 유(有)의 개념과 공(空)의 개념을 초극한 중도의 묘한 이치, 곧 진공묘유(眞空妙有)의 불성 경계를 말씀하신 가르침입니다.

 

* 오랜 인류 역사를 통하여, 가지가지의 고난과 갈등과 불안의 어두운 그림자는 다만 한시도 개일 날이 없었으나, 그것은 마치 물에 비친 달[月]이나 거울에 나타난 현상이 실상이 아님을 모르고 실재한 사실로 착각하는 것과 같은 무명과 번뇌의 소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 유무의 집착을 여의고 중도의 진여실상을 깨달은 성자의 경계에는, 우리 인생의 모든 고난과 생로병사의 한계 상황마저도, 한결같이 꿈과 거품 같고 허깨비 같고 그림자같이 허망하고 무상하여, 그 어떠한 현실적 시련도 마음을 얽매는 밧줄이 될 수는 없습니다.

 

* 일찍이 중국의 승조(僧肇)대사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삼십 일세의 젊은 나이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때, 그 마지막 게송(偈頌)에서 “사대로 이루어진 이 몸은 원래 주인이 없고, 의식의 작용인 오온 또한 본래 비었거니[空], 이제 퍼런 서슬 아래 목을 내미니, 봄바람 베는 듯 무심하여라[四大元無主 五陰本來空 以首臨白刃 猶如斬春風]”라고 초연한 자세로 애꿎은 죽음의 인연을 흔연히 받아들였습니다.

 

* 범신론의 위대한 철인으로서 신에 도취하였다고까지 일컬어지는 스피노자는 말하기를, “영원한 상념으로 현실을 관찰하라, 그러면 우리의 마음은 그때그때 영원에 참여하리라”고 하였습니다.

 

* 우리들이 허망한 상대적 현실에 집착하는 편견을 떠나서, 매양 중도실상의 바른 인생관으로 현실을 살아갈 때, 정치적 경제적으로 사뭇 술렁거리는 삶의 현장에서도 오히려 순간순간 영생의 삶을 창조해 나갈 수가 있습니다.

 

* 진실한 깨달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선 먼저 자기 마음과 우주만유가 본래 진선미를 원만히 갖춘 동일한 불성임을 굳게 신인(信認)하고, 우주적 대아인 불성에 걸맞는 무아 무소유의 생활을 애써 지속할 때, 편견과 집착으로 굳어진 업장의 응어리는 무너지고, 인생과 우주의 본래 고장인 장엄한 연화장(蓮華藏)세계, 곧 극락세계의 영원한 지평이 거침없이 열리게 됩니다.

 

* 영생불멸한 진여자성(眞如自性), 곧 부처님을 순간 찰나에도 여의지 않는 생활은, 그것이 바로 순수한 참선 생활이요, 진정한 염불생활이며, 거기에 우리 종교인 숭고한 자랑과 솟음 치는 환희와 초인적인 강인한 힘이 있습니다.

 

* 의상대사는 법성게의 끝부분에, “중도실상의 도리를 사무쳐 깨달음이 영원히 변치 않는 부처님경계로다[窮坐實際中道床 舊來不動名爲佛]”라고 원만한 깨달음의 경지를 찬탄하였습니다.

 

* 그 어디에도 치우침이 없고 그 무엇에도 걸림이 없는 지혜와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을 두루 갖춘 영원히 변치 않는 중도실상의 법성의 지혜, 곧 부처님의 일체종지(一切種智)를, 나와 남이 다 함께 깨닫게 하는 ‘일대사인연’이야말로, 바로 우주 자체의 목적이요, 삼세 모든 부처님이 출현하신 인연이며, 우리 삶의 가장 순수하고 고귀한 구경(究竟)목적이기도 합니다.

 

 

[불기 2530년 9월 『금륜』 제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