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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2. 진리의 길

제2편 마음이 바로 부처요, 부처가 곧 마음인 것을(4)


 

 

부처님의 마지막 설법

 

 

* 부처님께서는 열반[소승에서는 죽음을 의미하고, 대승에서는 번뇌의 속박을 벗어난 영생의 경계]에 드시기 위하여, 구시나가라 성 밖에 있는 발제하(拔提河)의 맑은 시냇물이 속절없이 흐르는 강 언덕에 우거진 사라수나무 숲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는 아난으로 하여금 사라쌍수나무 사이에 베개를 북쪽으로 향해서 자리를 잡도록 하시고, 머언 여행길에 피곤하신 몸을 오른쪽으로 두발을 포개고 누우셨습니다.

 

그때에 사라쌍수나무는 때 아닌 하얀 꽃이 피고 꽃잎이 떨어져, 부처님의 몸 위에 눈같이 쌓이고, 허공에서는 만다라화, 만수사화의 하늘나라 꽃들이 부처님의 몸에 비 오듯이 내리며, 애틋하고 평온한 하늘 음악이 은은하게 울려 퍼졌습니다. 이러한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아난은 부처님의 침상을 등지고 하염없이 흐느끼며 슬픈 상념에 잠겼습니다.

 

* “부처님께서는 어찌하여 이렇게 빨리 열반에 드신단 말인가? 나는 누구보다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장 많이 듣고 배우지 않았던가? 그런데 나는 아직도 깨달음을 성취하지 못한 몸이니, 부처님께서 열반하신다면 장차 어떻게 깨달음을 얻을 것인가? 아아! 참으로 애달픈 일이로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아난아, 내 곁으로 오너라.”고 부르시어, 아난을 위로하셨습니다.

 

* “아난아, 그렇게 한탄하고 슬퍼하지 말아라. 사람은 누구나 다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지 않을 수 없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한결같이 인연 따라 이루어진 허깨비 같이 허무한 가상에 지나지 않으니, 필경 허물어지고 만다고 일러주지 않았더냐? 아난아, 너는 나를 섬긴 지 이십여 년 동안 지극한 정성으로 여래[부처님]인 나를 보살펴 준 공덕이 그지없으니, 부다 게을리 하지 말고 공부에 전력하여라. 그러기만 하면, 머지않아서 번뇌의 습기를 없애고 반드시 해탈을 얻으리라.”

 

* 아난은 가까스로 마음을 수습하여 바른편 무릎을 꿇고 왼편 무릎을 세워 합장하여 여쭙기를, “부처님께서 생존해 계실 때는 부처님을 스승으로 삼아 왔으나, 열반하신 뒤에는 누구를 스승으로 삼으오리까?”

“아난과 여러 제자들은 잘 듣거라. 내가 열반에 든 뒤에는 이미 설법한 교법과 계율을 스승으로 삼도록 하여라.”

 

* “부처님이시여, 저희들은 앞으로 공부하는 수행법을 어떻게 하오리까?”

“그대들은 다 함께 깊이 새겨들어라. 그대들이 의지할 수행법은 주로 사념처관(四念處觀)을 닦도록 하여라.

그것은 첫째로 신념처(身念處)로써, 이 육신은 살과 뼈와 피와 고름 등 여러 더러운 것들이 인연 따라 잠시 모인 것이니, 부정하다고 관찰하고,

둘째는 수념처(受念處)로써, 중생들이 낙이라고 여기고 집착하는 재물이나 음행이나 권속이나 권세 등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고, 필경 고통의 결과를 맺는 근원으로 관찰하고,

셋째는 심념처(心念處)로써, 인간의 마음은 잠시도 쉬지 않고 항시 전변하여 마지않는 무상한 것이라고 관찰하며,

넷째는 법념처(法念處)로써, 일체 모든 것은 허망하고 무상하기 때문에 고정된 실체가 없고 자재로운 것도 아니니, 나[我]라고 할 것이 없는 무아이며, 나의 소유란 아예 없는 무소유임을 관찰하도록 하여라.”

 

*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에, 저 난폭한 육군 비구(六群比丘)들이 번번이 나쁜 짓을 저지르면, 그들을 어떻게 징계하고 대처해야 하옵니까?”

“그러한 사나운 무리들이 아무리 충고하여도 뉘우치지 않고 그 버릇을 고치지 않을 때에는, 그대들은 그네들과 절교하고 모든 일에 상대하지 않으면 종당에는 뉘우칠 것이니, 이른바 침묵으로 다스리는 묵빈대치(黙擯對治)를 하도록 하여라.”

 

*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 설법하신 교법을 모아서 정리하여야 하겠사온데, 그 경전 첫머리와 끝말에 무슨 말로써 적으오리까?”

“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이 어느 곳에서 설법할 적에 모여든 대중들은 누구 누구임’을 밝힐 것이며, 끝말에는 ‘여러 대중이 환희심으로 법문을 듣고, 믿고 받들어 수행할 것을 다짐하고 물러갔느니라’고 적도록 하여라.”

이와 같이 부처님의 간곡하신 마지막 설법은, 인간과 천상 등 모든 제자들의 흐느끼는 오열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는 이 날 이월 십오일, 숲속의 보름달도 비창한 눈물에 어리고, 엄숙하고 처량하게 슬픈 침묵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차례대로 사선정(四禪定)을 거쳐 멸진정(滅盡定)에 드시어 영영 대반열반(大般涅槃-화신인 몸을 버리고 법신 부처님과 하나가 되는 것)에 들어가시고 말았습니다.

이때 애끓는 슬픔을 참고 참았던 모든 제자들은 땅을 치고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여 마지않았습니다.

 

* 진여법성의 바다, 해탈의 고향에서 화신을 나투신 석가모니 부처님! 그 님은 가셨습니다.

그러나 가고 옴이 없고 생사가 없는 법신 부처님은, 어느 때 어느 곳에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살아 있는 생명의 실상이며, 바로 우리 인간의 참다운 자아입니다.

 

* 이제, 사뭇 술렁거리는 위험한 현대를 사는 우리들이, 부처님께서 마지막으로 타일러 주신 사념처관(四念處觀)의 바른 인생관으로 우리들의 착잡한 현실을 통찰할 때, 역사적 사회에 전개되는 그 모든 것은 다 한결같이 무상하고 허무하여 나라고 고집할 실체가 없고, 내 것이라고 우겨댈 엉터리가 없습니다.

따라서 너와 나의 분별망상으로 꾸며낸, 얽히고설킨 주의 사상이나 이데올로기의 갈등이 싹틀 터무니가 없으며, 야당과 여당의 적대적인 질시와 반목이나, 자본가와 노동자의 살벌한 시비가 생겨날 겨를이 없을 것이며, 낡고 젊은 세대 간의 생흔(生舋)이 일어날 까닭이 없습니다.

 

* 우리들이 진정한 자아인 부처를 성취하고, 고해에 헤매는 이웃들을 또한 부처님이 되게 하는 가장 공변되고 보편타당한 영원한 행복의 길, 그 길을 가는 일보다 더 급박하고 더 소중한 일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정녕, 부처님이 되는 길이 아닌 그 어느 길도, 오직 한번 살다 가는 우리 생명을 낭비하고 불태울 만한 값어치는 없는 것입니다.

 

 

[불기 2530년 8월 『금륜』 제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