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목(天目) 중봉(中峰)선사는 〈산방야화(山房夜話)〉에서 「남에게 이익을 주려 하는 것이면 모두 선(善)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하는 짓이면 악(惡)입니다. 결과적으로 남에게 이익을 주면 일하는 과정에서 설사 욕을 먹고 배척을 당한다 해도 그것은 선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아무 말 안 해도 자신에게만 이로운 일이면, 그것은 악입니다. 이 때문에 성현이 중생들을 교화하여 세상을 구제하느라고 쉴 겨를이 없었던 것은 모두 지극히 선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이와는 반대입니다. 겉으로 성현처럼 언행을 아름답게 꾸며도 남에게 이익을 주겠다는 생각이 없으면, 이것은 악입니다. 그런데 더욱이 겉모습마저도 포악하고 성낸 모습으로 쉬지 않고 날뛰는 것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행동은 이렇게 하명서도 칭찬을 바라는 것은 말이 되질 않습니다.」 라고 하였다.
* 고덕께서 「오직 아미타불 명호만 부른다면 성인이건 범부건 선한 자건 모두 다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다. 윤회를 벗어날 뿐만 아니라 또한 인천(人天)의 중생들을 널리 제도 할 수 있으니, 어찌 세간을 벗어나는 묘도(妙道)가 아니겠으며, 성불의 정인(正因:직접원인)이 아니겠는가.」 라고 하였다.
* 고덕께서 「눈이 있어도 등(燈)이 없으면 보이지 않고 등이 있어도 눈이 없으면 볼 수 없다. 염불은 삼계(三界)에 매인 업(業)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고, 염불 공덕은 오계(五戒)를 지킨 공덕이나 십선(十善)을 쌓은 공덕이나 사선팔정(四禪八定)을 닦은 공덕보다 훨씬 뛰어나다. 고로 염불은 인도(人道)와 천상(天上)의 안목이다. 만약 염불하지 않으면 인천(人天)의 소경과도 같아 염불이 삼계를 벗어나는 묘도(妙道)임을 보지 못한다. 고로 염불이 곧 명심견성(明心見性)인 것이다. 염불은 자성(自性)을 보고 부처를 이루는 지혜의 등(燈)이니, 염불하지 않으면 성불을 언제 기약할 것인가. 고로 염불하여 왕생하면 어리석은 자라 하더라도 지혜로운 사람임을 알 수 있고, 염불하면 왕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지혜로운 자라 하더라도 어리석은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라고 하였다.
* 고덕께서 「설령 일생에 불연(佛緣)을 만나지 못한 채 부처님을 배우고, 또 선연(善緣)을 만나지 못한 채 선(善)을 행하면 어떤가. 하지만 오직 악연(惡緣)을 만나 악행(惡行)을 하면 임종 시에 지옥의 불이 별안간 이른다. 부처님 명호를 한 번 부르면 지옥의 불이 붉은 연꽃으로 변하고, 모든 사악한 업에 묶였어도 걸림이 없으며, 많은 마구니와 원통해 하는 친족들은 멀리 숨어버린다. 염불 소리는 마치 사자의 울부짖음과도 같음을 알 수 있다. 사자가 한 번 나오면 모든 짐승들이 종적을 감추어버린다. 또한 등(燈) 하나가 (어두운) 집에 들어가면 긴 세월의 어둠이 단박에 밝아지는 것과 같다. 한 번의 염불이 많은 마구니들을 물러나게 한다.」 라고 하였다.
* 고덕께서 「부처님께서 한평생 설하신 법을 모두 합하여 팔만사천법문이라 한다. 팔만사천법문이 모두 아미타불 넉자에 들어간다. 아미타불 넉자가 팔만사천법문을 모두 지니고 있다. 고로 아미타불이라는 명호에만 만 가지 공덕이 돌아간다. 고로 아미타불이라는 명화는 대장경의 골수이자 다라니(陀羅尼)의 요문(要門)이다. 아미타불 넉자는 세간을 벗어나는 묘도(妙道)이고, 성불의 정인(正因)이며, 인간과 천상의 안목이자 견성(見性)의 지혜로운 등(燈)이며, 삼보(三寶)의 결정(結晶)이자 만 가지 공덕이 귀의한다.」 라고 하였다.
* 고덕께서 「인간과 천상의 밤은 길고 우주는 어둡다. 오직 아미타불만이 밝게 빛난다. 염불은 가히 삼계의 기나긴 밤을 깨부순다. 부처님 법은 높고 낮음이 없어서 중생의 병을 다 치료해주니 다 훌륭한 것이다. (그런데) 오직 아미타불 염불만이 견사혹(見思惑)을 끊지 못하더라도 또한 생사윤회를 벗어날 수 있다. 또 열반의 세계인 극락에 왕생한다. 고로 염불은 어리석은 범부가 성인의 경지에 오르고 부처와 조사가 되는 훌륭한 방편인 것이다. 오탁악세를 살아가는 범부들이 이 염불 없이는 생사윤회를 어찌 벗어나리오.」 라고 하였다.
* 고덕께서 「육도는 고통으로 가득 찬 바다인데, 오직 부처님만이 능히 건널 수 있다. 모래 한 알이 비록 가볍다 하나 떨어뜨리면 곧바로 바다 밑에 가라앉는다. 무거운 돌을 배에 실으면 가히 저 언덕에 이를 수 있다. 삼계는 기나긴 밤이다. 오계와 십선과 사선팔정을 닦아도 오히려 벗어날 수 없다. 오직 아미타불 염불만이 십 만억 떨어진 극락이라도 한 생각이면 이를 수 있으니, 고덕께서 염불을 일러 지름길 중의 지름길이요, 또 지름길 중에서도 질러가는 길이다.」 라고 하였다.
* 고덕께서 「아미타불이라는 명(名)과 아미타불의(體)는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다. 명(名)과 체(體)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법신(法身)은 형체도 없고 소리도 없으며 말로써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분별심과 차별심을 여의었다. 중생을 제도하시기 위하여 (굳이) 이름이 있는 것이고 (법계에) 모습을 나투시는 것이니, 이것이 곧 나무아미타불이라는 만 가지 공덕을 갖춘 위대한 이름인 것이다. 고로 아미타불이라는 명호는 아미타불의 화신(化身)이고, 또한 염불수행자의 본사(本師)이며 본불(本佛)이고 본존(本尊)이다. 아미타불이라는 명호를 떠나고서 어느 곳에서 아미타불을 찾을 것이며, 어느 곳에서 본사(本師)를 찾을 것인가.」 라고 하였다.
* 고덕께서 「아미타불 명호가 곧 법체(法體)다. 명(名)과 체(體)는 분리할 수 없고 서로 융합하여 차별이 없다. 또 삼신(三身)이 곧 일신(一身)이고 의보(依報)와 정보(正報)도 하나이다. 고로 부처님 명호만 부르면 공덕이 허공과 같고 광대하여 끝이 없다. 진여일성(眞如一性)의 원명(圓明)은 부처님 명화와 떨어 질 수 없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
* 일성(一性) : 만물(萬物)의 본성(本性)을 뜻하기도 하고, 불성(佛性)을 이르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 「현전(現前)하는 일체의 법이 다 연생(緣生)이요, 연생(緣生)이기 때문에 무생(無生)이며, 무생(無生)이므로 무성(無性)이다. 무성(無性)이므로 일성(一性)이며, 일성(一性)이므로 평등하다. 만법(萬法)을 무심(無心)히 적조(寂照)할 수 있어야 구경(究竟)에 이른다.」 라는 말씀이 있다.
* 당나라의 영가(永嘉) 현각(玄覺)선사의 〈증도가(證道歌)〉에 「일성(一性)이 모든 성품에 원만히 통하고, 하나의 법인 모든 법을 두루 포함하고 있다. 한 개의 달이 모든 물에 두루 나타나고, 모든 물에 비친 달을 한 개의 달이 포섭한다.」 라는 구절이 있다.
* 자성원 아미타불
'염불수행자료 > 염불수행대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6. 정토염불(50) (0) | 2016.02.04 |
---|---|
6. 정토염불(49) (0) | 2016.01.28 |
6. 정토염불(47) (0) | 2016.01.14 |
6. 정토염불(46) (0) | 2016.01.08 |
6. 정토법문(45) (0) | 2015.12.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