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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수행자료/염불수행대전

6. 정토법문(42)

 

 

* 「지난번 제가 오대산에 머물 때 스승께서 찾아오셔서 큰 자비심으로 저를 이끌어주셨습니다. 그후 스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갈수록 커졌습니다. 제가 오대산을 떠나 남쪽으로 만행(萬行)을 떠났을 때 스님을 뵙고자 했으나 저의 업력이 동쪽 바닷가로 이끄는 바람에 부득이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이곳(광동)에서 10년 세월을 보냈습니다. 지난날 제 도력이 약해 마구니에 크게 흔들리고 귀향까지 간 것은 지혜로운 사람에게 꾸짖음을 받을 만합니다. 그럼에도 아직 그곳에 연연하고 있으니 아마도 숙세의 업인 듯싶습니다. 정법이 쇠퇴하고 올바른 종지(宗旨)가 갈수록 흐려진다지만 우리 스님 법의 깃발 높이 들고 계율 지키며 염불에 진력하신다. 들었습니다. 저희 같은 중생들이 이와 같은 큰스님을 만나게 됐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가는 편에 향(香)을 보냅니다. 보잘 것 없지만 그 향기가 두루 스며들었으면 합니다. 자비롭게 제 편지를 받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위 편지는 감산대사가 유배에서 풀려날 무렵 운서주굉(연지대사)에게 보낸 편지다. 명나라 감산덕청(1546~1623)대사는 《화엄경》 《법화경》 등 대승경전을 비롯해 〈노자〉 〈장자〉 등 중국고전들을 탁월하게 해석한 고승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교학뿐 아니라 참선과 염불로 큰 깨달음을 얻었던 수행자이기도 했다. 14세에 이미 《법화경》을 비롯한 대다수 경전을 다 암송했던 감산은 19세에 지극한 염불로 아미타불과 관음보살을 친견했다. 이후 그는 천하를 떠돌며 여러 선지식을 찾아 견문을 넓히고 마침내 31세 때 오대산에서 참선수행으로 ‘마음이 텅 비고 경계가 고요한[心空境寂]’ 경지에 다다랐다.

 

감산대사 사는 오랜 만행(萬行)으로 수많은 선지식들을 만났다. 남들이 꺼리는 해우소 청소를 도맡아했던 평생의 도반 묘봉, 늘 힘들 때마다 도움을 주었지만 나중에 옥중에서 이적(異蹟)을 보이며 입적한 달관, 명나라 4대 고승 중 으뜸으로 꼽히는 연지대사 등이 그들이다. 이 중 감산대사가 훗날 아미타불의 후신이라고 극찬했던 연지대사를 만난 것은 막 깨달음을 얻은 1576년 3월이었다. 오대산의 한 토굴에서 하루 한 끼를 밀기울로 연명하던 감산이 깊은 삼매에 들었을 때 마침 연지대사가 찾아온 것이다.

 

연지대사는 돌아가신 부모의 은혜를 갚기 위해 서른이 넘어 출가한 늦깎이로, 걸망 속에 부모의 위패를 모시고 다니며 수행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또 우글거리는 뱀 떼를 내쫓기도 하고, 염불로 가뭄에 단비를 내리게 하는 등 자비행을 펼쳐 백성으로부터 큰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었다. 첫 눈에 상대방의 경지를 꿰뚫어본 이들에게 11년의 나이 차이는 아무런 장애도 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틀 밤낮을 꼬박 새워가며 이야기꽃을 피우게 되고 나중에는 서로가 서로를 깊이 존경하는 사이가 됐다. 그러나 연지대사가 총림(叢林)을 세워 후학양성에만 진력했던 것과는 달리, 감산대사는 세수(歲壽) 50세에 누명을 쓰고 10여년간의 긴 유배생활을 보내야 했다.

 

그는 연지대사의 덕과 행을 칭송하고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지만 겨울 다시 만나지는 못했다. 다만 연지대사가 입적한지 몇 년 지나 감산대사는 노구(老軀)를 이끌고 항주 운서산에 가 탑명을 쓰고 1000여 운서의 제자들에게 법문을 한다. 1623년 10월 11일 한 평생 후학들 지도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감산대사는 대중들에게, “나고 죽는 일이 큼을 잊지 말라. 죽음은 금방 닥쳐오느니라.[生死事大 無常迅速]” 라는 말을 남기고 입적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의 시신은 며칠이 지나도 산사람과 같았으며 땅 속에 묻고 20여년이 지잔 뒤 제자들이 호감(護龕)을 파냈을 때도 결가부좌로 앉은 모습이 꼭 산사람과 같았다. 감산대사의 육신은 현재 광동성(廣東省) 소관(韶關)에 위치한 남화사(南華寺)에 육조 혜능선사의 육신상과 함께 모셔져 있다.

 

* 모든 행[百行] : 성불에 이르기 위하여 수행자가 닦는 모든 수행. 곧, 오계(五戒)/십선(十善)/육바라밀(六波羅密)/사무량심(四無量心)/사선팔정(四禪八定)/보현행원(普賢行願)/팔정도(八正道)/십념(十念)/참선/간경(看經)/지관(止觀)/참법(懺法)/절하기/위파사나 등 팔만사천법문이 있음. 이 중에서 부처님을 생각하거나 부처님 명호를 부르는 칭명염불이 단연 우위에 있으며 다른 모든 수행을 포섭함.

 

내가 멸도한 뒤에 말법이 되면 헤아릴 수 없는 중생이 행을 일으켜 도道를 닦겠지만, 한명도 도를 증득하지 못할 것이니라. 지금이 바로 말법이니라. 지금은 오탁악세인데 오직 정토법문을 닦아야 도를 증득하는 길에 들어설 수 있느니라. -《월장경月藏經》

 

* 고덕께서 「만약 지극히 간단하고 가장 쉽고 가장 뛰어난 방편인 염불법문이 아니라면, 지금 사람들이 어찌 도(道)에 쉽게 들어갈 수 있겠는가. 지명염불은 ‘이근(耳根)’과 ‘자성을 듣는 것[聞性]’을 원융하게 합하여 섭지(攝持)하는 교묘한 수행법이자, 착수하기가 가장 간단하고 쉬우며, 언제라도 염불할 수 있고, 어디서라도 닦을 수 있으며, 수행이 번거롭지 않고, 일에 장애가 없으며, 공덕은 지극히 크고, 성취는 빠르니, 실로 방편 중의 최고의 방편이니, 말법시대에 장애는 많고 의심은 많은 지금의 수행자들에게 딱 들어맞는다.」 라고 하였다.

 

다른 생각 없이 아미타불 넉자만 부르면 손가락 튕길 수고도 없어 서방정토에 왕생한다. 삼아승기 동안 복과 지혜를 닦지 않아도 단지 나무아미타불 여섯 자에만 의지하면 생사를 벗어나며 한 번 염불에 십지보살을 뛰어넘음을 의심하지 말라. 나무아미타불 여섯자가 삼승三乘과 삼장십이부와 팔만사천법문을 포함하고 있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것을 일러 위없이 깊고도 묘한 선禪이라 한다. -고덕

 

* 십지(十地)보살 : 보살이 수행하여 성불하기까지 총 51단계의 수행이 있는데, 그중에서 제40계위(階位)부터 제50계위까지 보살을 십지보살이라 한다. 십지에 이르러서야 보살은 비로소 불성(佛性)을 보며 중생을 구제하고 지혜를 갖추기 때문에 십성(十聖)이라는 성인의 칭호를 받는다. 참고로, 십지의 앞 단계에 있는 보살들은 현(賢)이라 한다.

 

* 51단계의 수행단계에서 부처님을 믿고 불교를 공부하는 우리 불자(佛子:부처님의 제자)들은 과연 몇 단계에 해당할까. 참고로 51단계에서 맨 처음 단계는 십신(十信)의 제1단계인 신심(信心)으로, 이는 부처님의 말씀을 한 치의 의심 없이 믿는 믿음을 가리킨다. 정공법사는 신심단계를 1학년이라 보고, 51단계를 51학년이라고 본다면, 우리 불자들은 1학년에도 들지 못하는 그야말로 자격미달이라고 말씀하신다. 정공법사는 88가지 견혹(見惑)을 다 끊어야 1학년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하였다.

 

* 삼아승기(三阿僧祇) : 아승기(또는 아승지)는 1, 10, 100, 1000, 10000∙∙∙ 하고 세어서 60번째에 나오는 수를 말하므로, 삼아승기는 이 숫자에 3을 곱한 것이다. 즉, 삼아승기 = 3×10의 56승(乘)이다. 보살의 경지에 오른 자가 삼아승기동안 육바라밀을 수행하고, 다시 100겁 동안 32상(相)의 복덕인연을 쌓아야 부처의 지위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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