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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2. 진리의 길

진리의 길.14(3)

 

 

* “망녕된 말을 하지 말라. 너희 불자들이여, 보지 못한 것을 보았다 말하거나, 본 것을 보지 못했다고 거짓말을 하지 말지어다. 보살은 항상 바른 말을 하고, 바른 소견을 가져야 하며, 또한 일체 중생들에게도 바른 말과 바른 소견을 갖게 해야 할 것이어늘, 도리어 일체 중생에게 삿된 말과 삿된 소견, 삿된 업을 내게 하는 자는 보살의 바라이죄니라, 보살의 무거운 죄니라” 하였습니다.

 

* 우리는 마땅히 진리에 걸 맞는 말을 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이 너무나 짧지 않습니까? 이래저래 다 제해 버리면, 정말로 수행할 시간은 지극히 짧습니다. 우리 불자님들 이번 사박오일 동안 공부하신 것은 정말로 대 용단이었습니다. 그렇게 하기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시간을 가급적이면 많이 가지셔야 합니다.

 

* 우리가 과거 전생에 심은 습관성도 많지만, 금생에 나와서 잘못 생각하고 잘못 배우고 잘못 행동한 습관성도 많습니다. 이것을 녹이기 위해서는 별시수행別時修行이라, 사흘이고 나흘이고 한 달이고 몇 년이고, 이렇게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됩니다. 그래야 업이 녹아집니다. 업이 녹아져야 본래적인 성품인 불성이 바로 나옵니다. 흐린 물을 자꾸 휘저어 버리면 맑을 겨를이 없지 않습니까? 가만 두면 앙금이 가라앉고서 바닥이 보입니다.

 

* 우리 마음은 본래로 무량無量의 자비와 지혜와 행복과 능력을 갖춘 불성입니다. 그런데 우리 불성을 중생이 자꾸 잘못 생각하고 분별시비 하기 때문에 흐려 놓습니다. 그런 마음을 안정을 시켜야 됩니다. 안정을 시키려면, 사흘이고 나흘이고 닷새고 한 달이고 몇 년이고, 우리 마음을 고요하니 명상 체험을 해서 수련을 시켜야 됩니다.

 

* 평생 내 마음 수련하는 것이 금생에 태어난 보람이 됩니다. 이렇게 생각하시고 하셔야 기회를 낼 수 있는 것입니다. 막연히 살면 그런 기회가 오지를 않습니다. 정말로 이번 사박오일 동안 오십이 넘으신 원로 교수님들도 계시는데, 여러분께서 굉장히 훌륭한 경험을 하셨습니다.

 

* 우리 중생들은 버릇 때문에 너무나 필요 없는 짓을 많이 합니다. 술이 우리 건강에 대해 좋은 것이 아닌데도, 술 때문에 이루어진 해악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마음이 영롱하게 철두철미 맑아야 할 것인데, 잘못된 버릇 때문에 상당히 혼탁합니다. 여기에다 술을 먹고 어영부영 하면, 그것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소중한 자기 생명을 그마만큼 훼손하고, 그마만큼 자기 스스로 파멸할 뿐입니다. 그것은 또 우리 마음만 해害를 입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 건강이란 것은 우리 음식과도 굉장히 관계가 있습니다. 음식을 바로 먹고 절제해서 먹는다면, 웬만한 병에는 걸리지 않습니다. 우리 불자님들은 너무 음식을 많이 자십니다. 너무 많이 자시고 거기다가 고기고 뭣이고, 굉장히 많이 먹지 않습니까? 참 주의하셔야 됩니다. 아무런 도움이 안됩니다. 여러 가지 병이 거기에서 발생합니다.

 

* 부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제일 좋고 제일 가볍고 제일 쉽습니다. 마음도 몸도 제일 건강한 법입니다. 부처님은 팔십세에 가셨는데 팔십세까지 평생 동안 손수 탁발을 하셨습니다. 그 따가운 인도에서 머리에다 아무 것도 쓰지 않고 맨발로 다니면서 탁발했습니다. 부처님이나 예수님이나 공자님이나 다 대표적인 분들입니다.

 

* 성인들 사는 대로 우리가 살아야 됩니다. 우리에게 표본이 없으면 어렵겠지만, 표본이 있어서 우리는 그렇게 따르면 됩니다. 술 장사하는 불자님이 계시면 대단히 미안합니다. 그러나 그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할 수 없이 하시게 되면 “아, 내가 지금 파는 술을 마시고서, 불심을 보다 돈독히 내 가지고 깊은 수행을 하시라”고 기원드리면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하십시오.

 

* “너희 불자들이여, 출가한 보살이나 재가한 보살이나 비구나 비구니의 허물을, 자기 입으로 말하거나 남을 시켜 말하지 말지니라. 보살은 외도학인과 이승학인二乘學人, 성문연각승聲聞緣覺乘입니다. 성문연각승이 불법에 대하여 비법비율非法非律을 말하더라도, 항상 자비심으로 이들을 교화하여 대승에 대한 신심을 내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보살이 도리어 불법승의 허물을 말하는 자는 보살의 무거운 죄니라” 하였습니다.

 

* 사부 대중은 곧 재가불자님들, 이른바 우바새ㆍ우바이, 또는 출가한 불자들, 비구ㆍ비구니 합해서 사부 대중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부 대중 가운데도 역시 그때그때 비판적인 안목을 가지고서 험담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이런 점들은 주의하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불법을 믿는다는 것은 이 세계에 있어서 굉장히 귀중한 의미가 있습니다.

 

* 부처님 법은 우주의 진리기 때문에, 우주의 진리가 더욱 융성하고 보다 더 빛나야 합니다. 조금 허물이 있다고 해서 사부 대중끼리 서로 비방하고 비판한다는 것은, 부처님 법을 그만큼 약하게 만듭니다. 따라서 이것은 부처님 법에 배치가 되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진리를 실현시키기 위한 것이 우리의 사명이니까, 마땅히 허물이 있으면 직접 만나서 은근하게 우리 정성을 다해서 충고를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상호 비방을 할 때는, 필요 없이 오해를 사게 되고, 또 소중한 우리 부처님 가르침을 그만큼 약화시킵니다.

 

* “너희 불자들이여, 자기를 칭찬하고 타인을 비방하거나, 또한 남을시켜 자기를 찬탄하고 다른 이를 비방하게 하지 말지니라. 보살은 응당 일체 중생을 대신하여 남의 훼방을 받아서, 나쁜 일을 자기에게 돌리고 좋은 일을 다른 이에게 양보해야 할 것이어늘, 도리어 자기의 공덕을 드러내고 남의 칭찬稱讚할 일을 숨겨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훼방을 받게 하는 자는 보살의 무거운 죄니라”하였습니다.

 

* 우리 불자님들은 관포管鮑의 지극히 훌륭한 우정을 들으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관포란 것은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인데, 서기전 육백 여년 경의 분이에요. 공자보다 백년 이상 먼저 사시던 분인데, 관중과 포숙아는 아주 친한 친구입니다.

 

* 처음에는 포숙아라는 친구가 먼저 사회적으로 출세를 했습니다. 그래서 이른바 제환공齊桓公을 섬겨서 상당한 지위로 올라갔었는데, 그 포숙아가 보니까, 자기 친구인 관중이 자기보다 훨씬 더 총명해 보입니다. 그러다가 관중이란 분이 나라를 비판하다가 불경죄不敬罪에 걸려서 죄를 받게 되었습니다.

 

* 관중이 죄를 받아서 귀양 가서 죽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포숙아가 제환공한테 말을 해서, “저 관중이 나보다 훨씬 총명해서, 내가 제환공 당신을 모시는 것보다, 지금 죄를 받아서 귀양가게 된 관중을 기용하시면, 나라에 훨씬 도움이 되고 당신한테는 큰 공덕이 될 것”이라고 건의를 했습니다.

 

* 그 제환공도 총명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당장 직위를 만들어 가지고 줄 수가 없어서, 포숙아가 자기 직책을 양보했습니다. 자기 직책을 내놓으면서 포숙아가 제환공에게 간청을 드리니까, 제환공도 감동해서 포숙아보다 더 높은 자리를 관중에게 주었습니다.

 

* 관중은 훌륭한 분이라, 제환공을 섬겨서 정말로 제나라를 그 당시 중국에서 가장 세력이 강한 이른바 패자覇者로 만들었습니다. 주나라의 튼튼한 초석을 놓은 것이 관중입니다. 그래서 백년 후의 공자도, 문화민족인 한족이 관중 덕택으로 오랑캐한테 유린당하지 않고서 문화를 건설하게 되었다고 찬탄했습니다.

 

* 위대한 사람들은 남을 함부로 비방하지 않습니다. 신의 있게 친구를 위해서, 또 나라를 위해서 공평무사합니다. 오늘날 정치인들을 보면 참 딱하지 않습니까? 자기가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끌어내리기 위해서 선거운동을 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딱합니다. 많이 배운 사람들이 왜 그러는지,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 부처님의 보살계, 남을 비방하지 말라는 보살계를 단 한번이라도 염두에 두면 좋을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는 못 지키더라도, 이론적으로라도 알면 좋을 것인데, 너무 모르기 때문에 지나친 행동을 취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마땅히 어떤 경우라도, 꼭 남을 찬탄해서 보다 더 높은 쪽으로 향상되어, 결국은 성자가 되고 부처가 될 수 있는 인연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 야스퍼스란 철인도 참다운 우정이 무엇인가, 실존적인 우정은 그 사람을 참다운 실상인 영원적인 해탈로 인도하는 것이 그 사람에 대한 참다운 우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참다운 우정은 역시 성자의 가르침을 따라서 성자의 길로 편달시켜 주고, 그 길을 더불어서 가는 것이 참다운 우정입니다. 내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간이 되었으면 서로 격려해서 애정만 쏟으려고 하지 말고서, 정말 참다운 우정, 서로 피차 성불로 가는 그런 도반이 되어서, 서로 책선責善도 하고 서로 충고도 하셔야 될 것입니다.

 

* “너희 불자들이여, 너희는 인색하지 말며, 남을 인색하도록 가르치지도 말지니라. 보살은 일체 가난한 사람이 와서 구걸하거든, 그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주어야 할 것이어늘, 보살이 나쁜 마음과 미워하는 마음으로 돈 한 푼, 바늘 하나, 풀 한 포기라도 보시해 주지 아니하고, 법法을 구하는 이에게 한 구절의 법문도, 한마디의 게송도 일러 주지 아니하고, 도리어 나쁜 말을 욕설하는 자는 보살의 무거운 죄니라” 하였습니다.

 

* 보살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남이 달라고 할 때는 모든 것을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어려운 문제 아닙니까? 모든 것을 주어야 한다는 말은 무엇이냐 하면, 자기와 남을 절대로 둘로 생각하지 말고서, 자기 스스로 하고자 하는, 자기가 요구하는 것을 남한테도 똑같이 베풀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깊은 뜻으로, “모두가 다 하나의 생명, 하나의 존재, 하나의 실상이다, 저 사람과 나는 원래 한 몸이다”라고 생각하며 베풀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한 몸으로 생각 하고 베푸는 것이 참다운 보살입니다.

 

* 한 몸으로 알지 못하고 구분해서, “저 사람은 저 사람이고 나는 나다”고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자기 우얼감에서 “저 사람은 나보다 못하니까 내가 좀 베풀어야겠구나” 하고 베풀면, 결국 하나의 위선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위선이 안 되려면, 철학적으로 기본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것은 나와 더불어서 꼭 하나입니다. 이와 같이 이론적으로 따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진리와 진리 아닌 차별이 어디 있는 것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진리는 천지 우주를 하나의 존재로 봅니다. 하나의 생명으로 봅니다. 하나의 진리로 봅니다. 그러나 진리가 아닌 것은 둘로 보고 셋으로 보고 나누어서 봅니다.

 

* “너희 불자들이여, 보살은 마땅히 이체 중생에게 착하게 대하여 다투는 일이 없게 하며, 항상 자비심과 효순심孝順心을 내어야 할 것이어늘, 도리어 일체 중생이나 중생 아닌 물질에 대해서라도 나쁜 말로 욕설하고 폭행과 구타를 하고, 좋은 말로 참회하고 사과하여도 성난 마음을 풀지 않으면, 보살의 바라이죄니라” 하였습니다.

 

* 우리가 자칫하면, 자기가 좀 계행을 잘 지키는 사람은, 계행을 못 지키는 사람을 굉장히 멸시합니다. 이래서는 안됩니다. 이것도 역시 참다운 진리에 대한 소양이 없어서 그럽니다. 진리에서 본다면, 뭘 잘 몰라서 계행을 파괴한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겉 행동만 파괴가 되는 것입니다. 근본적인 그 사람 생명은 똑같이 다 진여불성입니다. 바탕에서 본다면 오염될 것이 없습니다.

 

* 겉으로 봐서 선이 있고 악이 있고, 내가 있고 남이 있지, 바탕에서 본다면 다 모두가 한결같이 하나의 생명입니다. 때문에 그런 자리에서 봐서, 저 사람이 하루 빨리, 한시 빨리 참다운 계행을 지키도록까지 도와줄망정, 덮어놓고 다른 사람하는 것을 멸시하고 함부로 비방해선 안됩니다. 자기는 지킨 둥 마는 둥 하면서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땅히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 “너희 불자들이여, 자신이 삼보를 비방하거나, 남을 시켜 비방하지 말지어다. 보살은 한 마디라도 부처님 비방하는 소리를 듣거든, 마치 천 백 자루의 창검으로 자기 심장을 찌르는 것처럼 여겨야 할 것이어늘, 하물며 자기 입으로 비방하리오? 신심과 효순심을 내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견, 삿된 견해를 가진 사람을 도와서 삼보를 비방하는 자는 보살의 무거운 죄니라” 하였습니다.

 

* 이 우주에 가장 큰 보배가 삼보입니다. 이른바 부처님과 부처님법과 부처님법을 지키는 불자들이 삼보입니다. 그래서 독경삼보篤敬三寶라, 항시 삼보를 공경해야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할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부처님 법은 바로 일체 중생이 다 공경하고 받들어야 될 우주의 법입니다. 바로 그 자리는 생명 자리입니다.

 

* 부처님이란 것은, 우리가 어떻게 표현하든지 간에, 법성ㆍ진여ㆍ법계입니다. 진리에 대한 여러 가지 표현법입니다만, 모두가 다 하나의 생명 자리란 말입니다. 현대말로 하면, 우주 에너지의 자리입니다. 이런 자리는 변동이 있지 않습니다. 그때그때 사회 변천 따라서 이렇게 표현하고 저렇게 표현하고 했지만, 위대한 철인들이 말한 것은 다 똑같습니다.

 

* 근세 철학의 아버지라고 하는 스피노자같은 분도 가까스로 마흔을 넘기고 작고했습니다. 그 천재들은 과거 전생을 많이 닦아서, 금생에 말한 것들이 모두 다 진리에 수순隨順합니다. 진리에 벗어나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독신 생활이라 다른 친구들이 도와주려고 했으나, 받지를 않았습니다. 도움을 받으면 구속된다고, 하숙방에서 안경을 갈아서 자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자기 하숙방에서 안경을 갈고 있으니, 위생적으로 좋을 수가 있습니까? 그런 먼지 구덩이에서 안경알을 갈다가 폐병에 걸려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위대한 철학을 남겼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들은 하나 하나의 것을 영원의 차원에서 관찰하라, 다시 말하면 본체에서 보라”는 가르침입니다. 즉 실상에서 보라는 말입니다.

 

* 우리 중생들은 하나하나의 것을 현상적으로 봅니다. 그러나 영원한 차원에서, 본래면목적인 차원에서 보면 다 하나입니다. 그래서 스피노자도 “하나 하나의 존재를 모두 다 영원의 차원에서 관찰하라. 그러면 모두가 영원에 참여한다”고 했습니다. 나쁜 사람, 좋은 사람 모두를, 이 사람 저 사람 모두를 영원의 차원에서 본다면, 모두 다 부처 아님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위대한 분들은 틀림없이 과거 전생부터 닦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런 분들 말씀은 다 똑같습니다.

 

* 그리스의 소크라테스 이전에도 훌륭한 철학자가 많이 있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 또는 엠페도클레스라든가 그런 분들은, 그 당시도 모든 존재를 존재 자체에서 보았습니다. 즉 모든 존재를 실상에서 보았습니다.

 

* 부처님 가르침은 어느 철인의 가르침보다 확실하고 보다 더 간단하고 철저합니다. 이른바 진여 연기라, 진여 연기는 천지 우주의 모든 본래 자리가 진여불성이기 때문에, 일체 존재는 진여불성에서 나왔다는 말입니다. 진여불성은 오염이 안됩니다.

 

* 우리가 현상적인 자리에서는 오염되고 변질되는 구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본래의 자리, 본래의 바탕에서 볼 때는, 오염이 되고 안되고가 없습니다. 물자체物自體, 존재 자체에서 본다면 그것이 바로 불성이고 진여고 또는 허공이기 때문에, 그런 자리는 오염될 턱이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런 바탕 자리에서 봐야 됩니다. 그런 자리에서 보는 것이 바로 나무아미타불이고 바로 관세음보살입니다. 그런 자리가 인격화된 상징적인 표현이 부처님입니다. 관무량수경에 보면 “염불행자念佛行者 인중분다리화人中芬陀利花라”는 말이 있는데, 염불하는 사람은 사람 가운데 아주 향기로운 분다리화, 연꽃이라는 말입니다.

 

*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염불이라는 것은, 자기 생명의 근원자리를 우리가 환기시키는 것입니다. 동시에 우주의 본래 자리를 현실적으로 상징화시키는 것입니다. 내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이 염불”입니다. 또한 우주의 본래 생명本來生命을 부르는 것이 염불입니다.

 

* 우주의 근본 자리에다 마음을 두는 염불 수행자는 인중분다리화라, 사람 가운데서 가장 향기로운 연꽃이나 같습니다. 따라서 관음세지위기승우觀音勢至爲其勝友라, 관세음보살이나 대세지보살이 염불하는 사람, 우주의 본체, 자기 본래면목을 부르는 그런 사람을 가장 훌륭한 벗으로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들, 진정으로 나무이마타불, 관세음보살을 하신다면, 관세음보살이나 문수보살이나 또는 보현보살이나 다 우리를 참다운 벗으로 알게 됩니다.

 

[2001년 8월 성륜사 보살계 수계식 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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