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진리, 하나의 마음, 하나의 우주!
* 어떤 분들은 부처님 가르침을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부처님 가르침이 세상에서 가장 쉽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부처님 가르침은 조금도 무리가 없습니다. 또 사실을 생긴 대로 보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누구한테나 어디에서나, 또 자기 마음도 본래 생긴 대로, 대상도 생긴 대로 바로 보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닦을 수가 있습니다. 어느 누구나가 부처님 말씀 따라서 참다운 자기 성품을 닦을 수가 있습니다.
* 인간 존재라는 것은 생각하는 존재기 때문에, 누구나 다 행복을 구합니다. 동시에 참다운 진리가 무엇인가를 구합니다. 역사는 유구한 세월을 두고 어느 때나 참다운 것, 행복하고 안락한 세상, 평화로운 사회를 추구합니다. 이때에 잘 모르는 사람들은 행복과 진리가 따로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행복과 진리는 절대로 별개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하게 되려면 반드시 진리가 있어야 하고, 진리를 깨달으려면 그 진리에 행복이 뒤따라야 되는 것입니다.
* 우리는 지금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시대 같으면 복잡하지 않고, 복잡하지 않으니까 단순하게 살면 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정보사회입니다. 무서운 정보와 지식의 홍수 가운데서 살고 있기에, 우리 마음이 편안할 때가 없습니다.
* 이 시대를 자기 소외의 시대라고 합니다. 소외라는 것은 자기 스스로가 자기를 서먹하게 생각하고, 자기 스스로에 대해서 불안과 불만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른바 자기 문제에 대해서 항시 흐뭇하지 못하고, 불행을 느끼고 불안과 공포심을 느끼는 것입니다. 독일의 근대 철학자 헤겔은 이와 같은 현상을 자기 소외라고 합니다.
* 자기 소외는 범부 중생 어느 누구나 안고 있는 우리 마음의 갈등입니다. 그런데 이런 갈등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이것은 자기 존재에 대해서 확신을 못 갖는 데서 옵니다. 나라는 것이 대체로 무엇인가? 또 우리 주체에 대상으로 나타나는 것은 무엇인가? 즉 주체와 대상의 문제에 대한 고민이 생깁니다.
* 자기 존재의 가장 중요한 색심은 주체성입니다. 자기 존재의 주체성이 확립 안되면 당연히 불안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정보의 갈등이나 홍수 가운데서 어떤 정보가 가장 위대한 정보인가?또 그 복잡한 정보를 어떻게 정화시켜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등장하여 삶을 어렵게 만듭니다.
* 자기 주체성을 확실히 확립한다면 자기 주체성 가운데에 모든 해결 방법이 다 들어 있습니다. 어째서 그런가 하면, 이 우주 만유는 원래 이것이 다른 존재가 아니라, 모두가 하나의 진리에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의 진리에 담겨진 하나의 생명인 것이 우리 존재입니다. 우리가 이원론이나 일원론이라는 말을 쓰는데, 부처님 말씀은 불이법문不二法門이라, 모두가 둘이 아니라는 법문입니다. 진리라는 것은 절대로 둘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둘이 있다고 생각하면 벌써 진리와 멀어집니다.
* 그리스 철인으로 위대한 플라톤의 이른바 ‘이데아’라 하는 것도, 모든 사람이 다 경험은 못하지마는, 우주가 하나의 도리란 뜻입니다. 형이상학적인 하나의 도리를 이야기한 것입니다. 형이상학적이라는 것은 비단 사람 눈에 안 보이는 세계뿐만 아니라, 개별적 대상도 거기에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도 같은 하나의 도리, 우주를 관통하고 있는 하나의 ‘로고스’, 하나의 원리를 많이 역설했습니다.
* 신플라톤파라 하는 플로티노스도 위대한 분입니다. 이른바 신비주의로는 공로가 많은 분입니다. 이 분도 우주란 것은 오직 일자一者라, 하나의 진리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하나의 진리를 바로 알아 버리면, 아무리 정보가 복잡하고 자기 갈등이 심하다 하더라도, 모두가 다 풀려 버립니다. 이른바 홍로일점설紅爐一點雪이라, 벌겋게 달아 있는 화로에다 한 줌 눈을 던지면 순간에 녹아 버리듯이, 그와 같이 하나의 도리를 바로 알면 제 아무리 어려운 것도 다 풀려 버립니다.
* 부처님 가르침이 어렵지 않다는 것은, 하나의 진리를 가장 극명하게, 가장 뚜렷하게 말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 부처님 가르침은 철저하게 과학적입니다. 왜 과학적인가 하면, 우주의 인과의 도리를 부처님같이 확실히 말씀하신 분이 없습니다. 현대 물리학은 인과의 도리를 설명했지만, 체험할 수 있고 실험 실측할 수 있는 범위에서만 인과를 증명했을 뿐입니다. 인간 존재의 윤회, 눈에 안 보이는 세계,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 똑같이 위대한 진리 같은 것은 과학이 알 수가 없습니다.
* 윤회 사상은 부처님 뿐만 아니라, 피타고라스라든가 다른 그리스 철인들도 주장을 했습니다. 물론 부처님같이 윤회 사상을 확실하게 말씀한 분은 없습니다. 윤회 사상은 정말로 심리적으로 보나 물리적으로 보나, 정확한 수학적 도리입니다. 윤회 사상은 조금도 어긋남이 없습니다. 우리 인간이 도저히 피해 갈래야 피해갈 수 없는, 엄정하고 명명백백한 우주의 도리입니다. 꼭 그렇게 안되면 안되는 것이 윤회 사상입니다. 더 강조합니다마는, 윤회는 분명히 유구한 과거에서부터 금생을 통과해서 미래에까지 영원히 중단 없이 흘러갈 사상입니다.
* 여러분들께서는 영겁회귀란 말씀을 들으셨지요. 이것은 모든 존재는 영구히 윤회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사람뿐만 아니라 우주 자체도 텅텅 비어서 에너지만 남는데, 거기서 다시 중생의 공업력共業力으로 해서 성취가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이른바 성겁成劫입니다. 그때는 모든 존재가 거기서 살게 됩니다. 그것이 주겁住劫입니다. 그러다가 다시 모든 것이 차근차근 못쓰게 됩니다.
* 어느 존재나 모두 다 산화합니다. 철이고 무엇이고 산소화가 됩니다. 인간도 고기를 많이 먹거나 너무 음식을 많이 먹으면 산회되기 쉽지 않습니까? 산소라는 것은 불이나 같은 것이어서, 이른바 불가역성不可逆成 에너지입니다. 본래대로 돌아올 수 없는 에너지가 자꾸 쌓이면, 우주는 불타 버립니다. 이것이 이른바 괴겁壞劫입니다. 괴겁으로 파괴된 다음에 물질이 조금도 없이 비어 버리면 공겁空劫입니다.
* 우주는 이와 같이 텅텅 비어 버린 공겁空劫, 형체가 이루어지는 성겁成劫, 생물이 사는 주겁住劫, 파괴가 되는 괴겁, 다시 또 성주괴공을 되풀이합니다.
* 물리학은 오늘에 와서야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까스로 뒤쫓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불자님들은 부처님 가르침에 대한 자부심과 높은 긍지를 느껴야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위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에 감사해야 합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가장 과학적이고 가장 철학적인 가르침이며, 또한 가장 수승한 종교입니다. 인류 문화의 정수가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못하여 둘로 셋으로 쪼개서 보면, 그것은 부처님 가르침이 아닙니다.
* 오직 하나의 도리를 깨달으면 성자가 되고, 하나의 도리를 깨닫지 못하면 중생입니다. 그래서 유마거사도 이른바 입불이법문入不二法門, 둘이 아닌 법문을 역설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따지고 저렇게 따지고 자꾸 분할하는데, 우주는 조금도 분할하지 않습니다. 분할해 있지 않는 그 당체가 무엇인가? 이것이 바로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입니다. 이것이 진여불성眞如佛性입니다. 진여불성을 가리켜서 대총상법문이라 그럽니다. 그 속에 모두 다 들어 있습니다. 또 그것은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우리 마음이 자기 자성이요, 우리 마음이 바로 진여불성이기 때문에, 대총상법문은 바로 우리 마음입니다. 우리 마음은 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어디서 마음을 찾을 수 있습니까?
* 혜가 스님이 달마대사께 “제 마음이 불안합니다. 제 마음을 다스려 주십시오”하니까, 달마스님께서 “아, 그럼 그대 마음을 내놓아 보아라”그랬습니다. 마음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살아 있다고 생각할 때, 내가 생각하니까 내가 있다고 데카르트가 말했듯이, 우리 마음은 모양은 없지만 분명히 존재합니다. 생명 자체로 해서 마음은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 불자님들!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모양이 없으면서 분명히 존재 하는 것은, 우주에 가득 차 있는 것이나 똑같습니다. 그 마음 깨닫는 것이 성자고, 마음 깨닫지 못하는 것이 우리 중생입니다. 그런 마음 깨닫는 법은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우리는 부처님 말씀을 그대로 일백퍼센트 믿어야 됩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천지 우주가 오직 마음뿐입니다. 내 마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 저 사람 마음도 우주에 충만해 있습니다.
* 우리 불자님들, 하나의 원자가 어떻게 생겼습니까? 하나의 원자란 것이, 물리학자의 말을 들어보면, 굉장히 기기묘묘합니다. 어떻게 기기묘묘한가 하면, 마치 태양을 중심으로 해서 지구나 각 행성이 뱅뱅 돌지 않습니까? 그와 똑같이 원자핵을 중심으로 전자가 돌고 있습니다. 사람 눈으로는 절대로 볼 수가 없습니다. 물리학적으로 가까스로 실험 실측해서 알 수 있는 원자핵입니다. 또 원자핵의 힘이 얼마나 무섭습니까? 원자폭탄같은 것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힘 아닙니까?
* 원자력이 없으면 현대 문명은 유지될 수가 없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원자, 눈에 보이지도 않은 원자 가운데서, 원자핵을 중심으로 해서 그 밖을 빙빙 돌고 있는 전자가, 꼭 태양을 중심으로 해서 지구나 달이 돌고 있는 것과 똑같다고 말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가 불가사의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 전자는 무엇인가? 원자핵은 무엇인가? 순간순간 변환變換되고 순간순간 생겨났다 없어졌다 하는 그것은 무엇인가? 우리 눈에는 안 보이는 기기미묘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중생의 도리에서는 그걸 절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 우리 중생은 아무리 물리학이 발달해도, 실험 실측할 수가 있어야 무엇이라고 규정합니다. 모양도 없고 시간 공간을 초월한 것은 알 수가 없습니다. 일체 존재는 하나의 우주 에너지, 우주 생명입니다. 산소ㆍ수소ㆍ질소 어느 것도 원자로 구성되어 있으니까, 우주는 원자로 깔려 있다고 봐야지요. 더 들어가면 우주는 에너지뿐이다고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주는 생명뿐입니다.
*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전에는 사람들이 잘 안 믿었겠지요. 분명히 쇠(鐵)는 쇳덩어리고, 다이아몬드는 다이아몬드라 그럴 것인데, 다 모두가 마음뿐이라고 하니까 누가 곧이 듣겠습니까? 그러나 현대 물리학이 증명을 다 하니까, 그런 부처님 말씀을 이제는 안 믿을 수가 없습니다.
* 만법萬法이 유식唯識이라, 모두가 의식뿐입니다. 모든 것이 마음뿐이란 말씀과 같습니다.
* 우리가 윤회사상을 잘 모를 때는, 내가 살다가 갑자기 죽어버리면, 내 목숨이 영 그만 아닌가 하지만, 사실은 부처님사상에서 본다면 죽음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 현재 존재가 과거의 무수 시간을 거쳐 여러 생을 건너왔듯이, 미래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금생에 우리가 죽는다 하더라도, 생명은 절대로 소멸되지 않습니다. 몇 만생을 두고 태어나고 또 태어나고 그러는 것입니다.
* 불교인들이나 일반 사람들도 다른 것은 미처 긍정을 못하고 잘 모른다 하더라도, 꼭 두 가지 문제만은 확실히 알아 두어야 합니다. 그것은 모든 생명이 본래로 하나의 생명이어서 둘이 아니라는 도리입니다. 둘이 아닌 도리는 비단 불교뿐만 아니라 인도의 힌두교 사상도 마찬가지입니다. 힌두교에서 말하는 것은, 일체 존재가 다 본래는 ‘브라만’입니다. 브라만이란 우주의 본래 생명을 말합니다.
* 기독교 역시 교리는 다르다고 하더라도 모든 것을 다 하느님이 창조 했다고 합니다. 예수의 본뜻은 부처님의 본뜻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 가르침이 이천년이상 융성한 것을 보면 틀림없이 그것은 성자의 가르침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 종교는 우리 인간의 참다운 화해와 평등과 평화를 추구합니다. 다종교 사회에서 자기 종교만 옳고 남의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하면, 무지의 표현밖에 안됩니다. 우리가 부처님 계율 가운데서 보살계가 있는데, 보살계를 가끔 받으셔서 잘 아시지마는, 보살계 가운데에 십중금계十重禁戒라, 열 가지 무거운 계가 있습니다. 그 무거운 금계의 일곱 번째 계가 자찬훼타계自讚毁他戒입니다. 이 계는 자기를 칭친하고 남을 비방하지 말라 했습니다. 이것은 다종교 사회에서 다른 종교에도 그것이 해당됩니다. 자기가 믿는 종교는 옳고 다른 것은 그르다 하는 것도, 역시 자찬훼타계를 범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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