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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2. 진리의 길

진리의 길. 11(1)

진리의 길 11(1)

 

염불, 가장 쉽고 확실하고 보장받은 성불의 길!

 

 

* 우리 인생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이 가장 소중한 가르침일 것인가를 아는 일입니다. 부처님 법문 가운데에 화엄경 문수보살품에 심시보장제일법心是寶藏第一法이라는 법문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바른 믿음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보배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바른 믿음이 부족하고 바른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 행동도 거기에 따라서 바르게 나갈 수가 없습니다.

 

* 무지를 극복하고 바른 믿음이 되어야, 우리 행동도 거기에 따라 순수하고 거룩한 행동이 됩니다. 우리 인간의 근본 성품에 대해서, 사람들은 “아 나는 내 근본 성품을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우리 중생은, 누구나 다 근본적으로 교양이 있고 많은 수행을 했다 하더라도, 인간성의 순수성과 순수한 성품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범부 중생의 통상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성자가 되어야 비로소 참다운 자성을 압니다. 자성, 이것은 우리 인간성의 본래면목 자성청정심, 인간성의 순수한 자리입니다.

 

* 우리 자성은 금생에만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세나 현재나 미래에도 영원히 존재합니다. 그러기에 불교에서 말하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 나지 않고 죽지 않아요. 무시이래無始以來라, 과거에 시작함이 없어서 비롯함이 없어요. 무시무종無始無終이라, 미래도 끝도없이 불생불멸로 존재하는 것이 이른바 우리 자성의 본질입니다.

 

* “자성은 인간에게는 인간성의 본질이요 본래면목이지만, 다른 동물이나 일반 무생물에는 어떨 것인가?” 이렇게 의문을 갖는 분이 계시겠지요. 그러나 인간성의 본질인 이 자성은,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이나 무생물 등 모든 존재의 본질인 동시에 실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급박한 것은 우리 자성을 깨닫는 것입니다. 자성을 깨달으면 성자고, 깨닫지 못하면 범부 중생이 되기 때문입니다.

 

* 자성이 비록 이와 같이 소중하고 우리가 깨달아야 한다 하더라도, 일반 사람들은 “너무나 어려운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성인들은 업장이 가볍고 업장을 소멸시킨 분들이고, 다른 전생에서 많이 닦아서 금생에 성인이 된 것이지, 쉽게 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을 품습니다.

 

* 우리 불자님들, 우리 인간성 본래 자리인 자성 불성을 깨닫는 것은, 사실은 가장 쉬운 것입니다. 가장 쉬운 것을 잘못 배우고 잘못 느끼고 잘못된 습관성으로 버릇이 잘못 굳어져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것 뿐이지, 자성이 어디로 도망가는 것이 아니고, 어느 순간도 자성은 우리한테서 떠나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부르는 지장보살ㆍ나무아미타불ㆍ대세지보살 등 보살님들 이름도 많고 부처님 명호도 많습니다. 그 보살님들이나 부처님 명호의 실상이 바로 우리 자성인 동시에 우주의 본성입니다.

 

*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근원적인 생명 자체가 바로 자성이고 불성이기 때문에, 제일의적으로 우리가 되찾고 깨달아야 할 것이 불성인 동시에 자성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성에 대해서 너무 소홀히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 내 안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소홀히 하는 것입니다. 많은 도인들 가운데서 특히 조주스님 같은 분은 자성에 대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추구하고 그때그때 공부하는 것은 “마치 소를 탄 사람이 소를 찾고 있는 격”이라고 말입니다.

 

* 우리 본성이 자성이니까 불성이 자성을 떠나 있는 것이 아닌데, 우리 중생들은 잘못 알아서 불성이나 본래면목이 저 피안이나 저 하늘에 있다고 생각하고, 멀리 구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자성은 바로 불성이고 법성이며, 또 그 자리는 바로 생명 자체기 때문에, 내 생명인 동시에 우주 생명입니다.

 

* 우리가 할 일은, 밥 먹고 결혼하는 것보다, 먼저 진리를 구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여러 불경에도 나와 있듯이, 바로 자성이 내 성품이고 우주의 성품이고 도리기 때문에, 자성을 구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요긴한 일입니다. 일상생활을 보다 더 효과적으로 승화, 장엄시키는 공부가 바로 자성을 구하는 공부입니다.

 

* 자성ㆍ불성이라 하는 것은, 이른바 만공덕의 자리입니다. 지혜로 보나 능력으로 보나, 행복으로 보나, 어떤 자리보다 완벽한 것이 자성 자리입니다. 곧 불성 자리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한걸음씩 나아간다면, 나아간 만큼 행복도 지혜도 건강도 훨씬 더 좋아지는 것입니다.

 

* 부처님 가르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오직 일원적으로 우주가 하나의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하나의 생명이 아닌 이원적 삼원적인 말들은 모두 다 진리가 아닌 것입니다. 일원적 진리를 아시게 되면, 우리 인생에 있어서나 모든 문제에 있어서도, 마치 홍로일점설紅爐一點雪이라, 뜨거운 화로에다 눈을 넣으면 금세 녹아 버리듯이 녹아서 전혀 어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 우주가 오직 하나의 생명인 것이고, 하나의 생명은 만덕을 갖춘 자리입니다. 학문적으로 아무 것도 배우지 않았더라도, 이 불성ㆍ자성은 물듦이 없습니다. 오히려 학문을 많이 알고 이것 저것 따지면, 자성을 성취하는 데 거리가 멀고 소홀해지는 것입니다.

 

* 우리는 무명심을, 무지한 마음을 떠나야 합니다. 학문을 많이 알지 못한다 해서 무지가 아닙니다. 아무리 지식이 많더라도, 그 일원적인 우주의 생명, 내 생명의 본체를 모르면 무지한 것입니다. 무명입니다. 무지 무명은 자기 행복을 위해서도 아무런 도움이 못되고, 자기 부부간이나 가정을 위해서도 도움이 못됩니다.

 

* 자기가 아는 것을 고집 부리면, 무명 때문에 또다시 윤회의 길로 들어갑니다. 개나 소나 돼지나 그런 것도, 우리 사람과 절대로 다른 것이 아닙니다. 잠시간 업의 차이 때문에, 전생에 지은 업의 차이 때문에, 개의 명을 받고 소의 명을 받는 것이지, 사람과 다르지 않습니다.

 

* 우주가 하나의 생명이라고 생각을 하면, 너와 내가 본래로 둘이 아니고, 성품으로 본다면 다 모두가 하나입니다. 우리가 모두 하나의 자리인 것을 안다면, 자기 이익을 위해서 남을 소홀히 대하는 그런 이기심을 절대로 가질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우주의 도리대로 산다는 것입니다. 성인들은 다른 분들이 아닙니다. 성인들은 우주의 도리 그대로 사는 분들이고, 우주의 도리는 자성 불성을 떠나지 않고, 자성 불성의 도리대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 자성을 깨닫는 것은 절대로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자성을 깨닫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가장 쉬운 방법인가를 알아야 됩니다. 자성을 깨닫는 방법은 부처님께서 여러 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가르침 가운데도 난행문難行門과 이행문易行門, 즉 쉬운 문과 어려운 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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