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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수행자료/남호 송성수님의 100일 염불수행

77일 관세음보살 염불(2)

 

 

중국의 관음도량, 즉 보타락가(補陀落迦)는 절강성 정해현(定海縣) 주산열도(舟山列島)중 보타도의 보타산(補陀山)이다.

이 보타산은 중국의 4대성산(聖山)의 하나인데, 산서성 오대산(五臺山)은 대지문수(大智文殊)도량이요, 사천성 아미산(峨嵋山)은 대행보현(大行普賢)도량이요, 안휘성 구화산(九華山)은 대원지장(大願地藏)도량이며, 이 보타산은 대비관음도량이다.

 

이 보타산을 관세음보살이 친히 유행지로 선택해서 관음도량으로 개산(開山)한 연기(緣起)설화가 있는데, 불긍거관음원(不肯去觀音院), 즉 가기를 싫어했던 관세음보살을 모신 절에 대한 연기설화이다.

 

중국 오대 후량(後粱) 정명 2년(916)때의 일이다. 일본 스님 혜악(慧嶽) 화상이 정법을 구하는 유학승으로서 양나라에 들어가 도승을 찾고 도를 배웠다. 화상은 성지를 두루 편력하다가 하루는 산서성 오대산 문수보살의 도량에 이르러 참배하고 그 성지를 두루 참관하다가 한 관음대사(觀音大士)의 성상이 청정하게 장엄되어 있음을 친견하고 순간적으로 ‘이 성상을 일본으로 모시고 가서 관음신앙을 전포한다면 일본 백성들로 하여금 신심을 계발케 하고 염불심을 내게 하면 복덕이 한량없이 더해질 것이요, 많은 죄악이 소멸될 것이 아니겠는가!’하는 생각이 불현듯 일어났다. 혜악화상은 곧 본국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하고 행장을 꾸려 관음성상을 몰래 추심한 뒤에 오대산을 떠나 배를 타고 귀국길에 올랐다.

 

배를 항해하여 절강성 정혜현에 소속되는 주산열도의 여러 섬 가운데 있는 신라초(新羅礁)라는 곳에 이르니 바다에서 쇠로 생긴 연꽃들이 솟아올라(지금은 연꽃바다라고 한다) 배의 항로를 가로막았다. 그러나 혜악 화상은 이를 헤쳐 나가려고 밤이 되면 정지했다가 날이 새면 배를 젓기를 4일간이나 되풀이하며 헤매었으나 오직 멀리 보타산만 보일 뿐 배는 연꽃에 밀려 빙빙 감돌기만 하였다. 마침내 혜악 화상은 성상 앞에 나아가 엎드려 기원하였다.

 

“대성 관세음보살님이시여! 미련한 제자가 거룩한 성상을 뵈옵고 저의 나라에는 불법이 두루 선전되지 않았으므로 모시고 가서 봉공 선전하려고 하였사오나 이와 같이 조난을 당해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사오니, 우리나라 중생들이 아직 성상을 뵈올 인연이 미숙하기 때문인가 하옵니다. 원하옵건대 보살님께서 가고 싶은 곳으로 가시면 제자가 모시고 따라가서 그곳에 법당을 짓고 성상을 모시고 봉공하겠나이다.”

이렇게 지성으로 기도를 드렸더니, 마침내 배가 다시 출발하여 보타산 범음동에 이르러 조용히 닿으므로 혜악 화상은 이곳이 연토(緣土)라 생각하고 내렸다.

 

혜악화상은 곧 인가를 찾아 헤매다가 범음동에서 멀지 않은 산 변두리에 일간 초옥을 발견하고 주인을 찾았더니 고기잡이 어부 장씨(張氏)영감이었다. 장 씨는 혜악 화상으로부터 그 동안 겪은 사연을 자세히 듣고 크게 감동하여 말하였다.

“보살님께서 일본에 갈 뜻이 없고 이 외로운 섬 산중에 계시려 하니 이곳이 바로 보살님이 계실 연토인가 합니다. 우리 고장 백성들에게 큰 복덕과 선근이 내렸습니다그려! 스님이시여, 귀국하실 땅의 백성들이 보살님을 뵈올 인연이 없어서 이 섬으로 오셨으니, 스님께서 우선 암자라도 짓고 보살님을 봉공하십시오. 제 몸은 비록 늙었지만 성시(城市)를 돌며 권선하면 신도들이 와서 보살님께 예배드리고 스님께도 공양을 올리게 될 것이니, 염려마시고 일본에 돌아갈 생각은 아예 단념하십시오.”

 

혜악화상은 하는 수 없이 귀국할 생각을 아주 단념하고 이 산에 암자를 짓고 관음 시자로 있게 되었는데, 절 이름을 불긍거관음원(不肯去觀音院)이라고 붙였다.

이로써 혜악화상은 보타산의 제1대 개산조사(開山祖師)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