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필독!경전,법문자료/3. 수행자료

자황스님의 염불선 (2)

염불선(2)

 

 

2.염불선 중급-소리듣기(호흡)

 

 

원 칙

 

1)

들리는 소리를

온 몸으로

찰나도 놓치지 않고

전심전력 하여

듣는다

 

 

2)

공부가 깊어지면서

들리는 소리의 길이가

호흡과 함께 늘어나고 깊어지는데

소리가 시작 될 때부터

소리가 끝나고 사라져

여운이

극의 상태에 이를 때까지

찰나도 놓치지 않고

온 몸과

온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여 듣는다.

 

 

 

설 명

염불선 초급(소리하기)을 충실히 하고 성실히 하게 되면 의지를 일으키지 않거나 애를 쓰지 않아도 저절로 소리가 들리는 단계에 이르게 되는데, 이 때 염불선 중급(소리듣기)을 진행한다. 여기까지 도달하면 온 몸과 온 마음을 다해 소리듣기에 전력투구해야 한다.

 

소리를 시작하여 소리가 사라질 때까지는 일정정도 시간이 걸리는데 순간순간 찰나찰나 시종일관 한 치의 틈이나 오차 없이 사력을 다해 균일하게 소리듣기에 집중해야 하며, 음이 사라지고 난 뒤의 남은 여운까지도 한 치의 틈도 없이 끝까지 잘 들어야 한다.

 

이와 같이 전력투구하여 공부가 무르익어 가면 소리가 늘어나고 호흡이 늘어나며 소리 길이와 호흡 길이가 깊어지게 된다.

 

그리하여 호흡이 깊어지고 소리도 길어지면 지극한 상태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져 삼매가 익어간다. 이렇게 되면 몸과 마음이 안온해지고 그윽해져 선열의 기쁨에 머물게 된다. 이와 같이 하다가 스스로 반문해야 한다.

‘이 소리가 어디에서 나오는가?’ 하고,

‘그러면서 내 의식의 공간 어디에서 나오는지?’, ‘그 자리는 어디인가?’ 하면서 ‘소리 이전 자리’, ‘생각 이전 자리’를 반드시 찾아 확인하고야 말겠다는 비장한 마음으로 그 소리가 나오는 소리 이전 자리를 찾아야 한다.

 

그러나 생각으로 찾지 말고 눈으로 확인하려는 듯 마음 속 눈으로 찾아나서야 한다. 화두선도 수승하지만 이 점에 있어서는 염불선이 더 뛰어난 것이다.

 

정혜쌍수에서 혜慧공부가 제대로 되고 안 되고의 문제는 생각으로 찾느냐? 실제 눈으로 보듯이 찾느냐의 차이에 있다.

 

의식전체를 통찰하는 공부를 하지 않고서는 혜慧공부가 되지 않으며 정혜쌍수가 되기 어려운 것이다.

육체의 눈은 감고 의식의 눈으로 의식공간 전체를 총력을 다해 살펴야 한다. 왜냐하면 소리가 튀어 나오는 것은 순간이며 공간 전체 중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마치 넓은 운동장 어디에선가 공 하나가 불쑥 튀어나오는 것과 같기에 그 출발 지점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또 그 공이 나를 죽이는 아주 빠른 화살이거나 총알이라면 얼마나 긴장하며 얼마나 온 몸의 신경을 곤두세우겠는가?

 

이미 튀어나왔다면 생각 차원 현상세계이고 나타나지 않으면 생각 이전 차원 진여세계이지만 생각이라는 것이 결국은 물질적이고 입자적 공간을 점유하는 요소이기에 아주 세밀히 관찰한다면 반드시 생각의 현상세계와 생각 이전의 진여세계가 동시에 만나는 지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지점을 포착한다면 생각으로 진여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상황이 될 것이라는 가정 하에 소리가 튀어나오는 그 지점을 포착하기 위하여 전의식 공간 전체를 살피는 공부에 총력을 기울여야 되는 것이다.

‘소리하기’, ‘소리듣기’가 정혜쌍수에서 정定을 닦는 공부였다면 소리보기 공부는 정혜쌍수에서 혜慧공부가 시작되고 익어가는 공부라 하겠다.

 

소리는 듣는 것인데 소리를 본다는 것은 현상세계의 인식으로는 있을 수 없으나 그것을 통하여 공부가 가능하니 묘법妙法인 것이다.

 

 

 

 

3. 염불선 고급-소리보기(의식)

원 칙

 

1)

소리듣기가 깊어지면서

소리 시작 전,

그 소리가 어디에서 나오는가? 를

생각하며

의식 공간 전체를 샅샅이 관찰하며

그 소리가 나오는 자리를

마음의 눈으로

기필코 보고야 말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찰나도 방심하지 않고

마음 속 의식 공간 전체를 구석구석 정밀하게

살피며 찾는다.

 

 

 

설 명

소리가 길어지면 호흡도 길어진다. 소리와 함께 호흡이 깊어지면서 마음이 지극한 상태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날 때 염불선-고급(소리보기)과정을 시작할 수 있다. 참선에서는 염念하는 목적이 염念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염念이 나오는 자리, 염念 이전의 상태에 접근하고 도달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투철한 자각하에 이 공부를 해야 한다.

 

소리는 마음 속에서 청각적聽覺的 형태로 인지되기도 하고 시각적視覺的형태로도 인지된다.

 

소리를 마음 속에서 입자粒子로 전환하여 시각적으로 공부할 때 효과는 더 커진다. 소리를 입자粒子형태로 인지하려면 소리인 입자가 마음 속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찾기 위해 마음 속 의식 공간 전체를 주도면밀하고 세밀하게 통찰해야 한다. 그러다 공부가 무르익고 때가 되면 개체의식의 크기가 극대화 되어 감당하기 어려울 때, 최종적으로는 개체의식의 막이 터져 없어지면서 전체의식 즉, 우주의식과 하나 되어 항시적으로 깨어 있음(覺)을 성취한다.

 

 

마무리

지금까지 소리를 통해 집중하여 축적된 마음의 힘으로 소아적 개체의식의 막을 터트리고 무아, 대아적 해탈 자유의 삶을 살게 하는 의식 대전환의 염불참선법을 설명하였다. 이것은 깨달음에 대한 명철한 자각과 기필코 성취하리라는 투철한 각오가 전제된 후 순차적이고 단계별로 성실히 수행함으로서 가능한 일이다.

그리하여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수행의 길을 통하여 해탈자유와 동체대비의 거룩한 보살행, 그리고 성불 도생 국토완성이라는 대승의 큰 이상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가기를 희망하며 이만 줄인다.

 

경험이나 체험을 대상들과 직접 대화하며 말로 전달하는 것은 그래도 쉬운데, 이해와 근기가 서로 다른 여러 대상을 상대로 글을 통해 전달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임을 누구나 다 이해할 것이다.

 

이 책은 이 자체로 새로운 방식의 염불선법을 공부할 수 있도록 목적 두었으나 실제 수행을 할 때는 불충분한 이해로 의문과 의심이 수반되어 심청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새로운 염불선법의 방법을 세상에 알려 호응하는 인연에 따라 차후 부연 설명을 하는 안내자 역할을 하길 바란다.

 

혹여 추가 설명과 공부에 더 자세한 이해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연락주기 바란다.

성실히 응하겠다.

 

 

 

 

 

 

깨달음의 파편

 

 

 

‘나’를 살펴야 세상을 느낀다

 

내 자신을 항상 되돌아보고 매순간 자신을 잘 느껴야 한다. 자기 자신을 잘 느끼는 것은 세상을 잘 느끼는 것이다. 잘 느끼는 것은 세상이 무료하지 않고, 따분하지 않고, 의미를 갖게 하고, 감동을 받게 하고, 기쁨을 느끼게 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 인간은 존재의 분류상 고정된 식물이 아닌 움직이는 동물에 속한다. 그 동물 중에서도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하여 우리 자신들을 다른 동물들과 특별히 구별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이 ‘생각’이라는 지각과정을 거쳐서 행위를 하는 것은 동물의 삶과는 다르게 사람으로서 넓고 크게 살게 하는 특별한 삶이 된다.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만큼 우리들의 삶도 다양하지만 모두가 지향하여야 할 바는 우리들 삶의 행위가 보다 자각되고 충분히 느껴지는 가운데의 생활인 것이다. 그 자각되고 느껴지는 정도가 보다 깊고 밀밀해져야 함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자각과 느껴지는 정도가 바로 자기 삶의 의미와 감동을 갖게 하는 정도가 되며 인생에 기쁨과 행복을 느끼게 하는데 큰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행위를 자각하고 잘 느끼기 위해서 전제되어야 할 조건은 다름 아닌 자신을 지속적으로 세밀히 관찰해야 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을 돌이겨 살펴보는 일이다. 마치 사물과 타인을 관찰하듯이 자신이 자신과 거리를 두고 세밀히 보고 느끼며 살피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으로 살면서도 막상 자신에 대하여는 관심이 적고 외부적 대상과 외향적인 목적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어 자신에 대하여 막연하고 애매하며 무의식적인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무자각적이고 무감각적으로 살고 있을 수도 있다.

 

의식하지 못한 삶은 자기 자신에 대한 어두움이며, 이 어두움은 세상의 행복을 느끼는, 자기 자신 행복감도의 어두움이다. 언제 어느 시대에나 마찬가지이만, 기본적으로 생명존립에 필요한 물질이 넘치는 이 시대에도 세상을 행복하게 느끼지 못하는 것은 행복을 일으키는 요소의 부재에 있다기보다는 행복을 느끼는 자기 자신의 기쁨감도의 둔화에 있음을 우리 모두는 크게 주목하고 자각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물질적 충족으로 행복을 느끼기 위해 쏟는 노력보다 훨씬 더 적은 노력으로, 더 큰 만족을 누릴 수 있으며 양적인 추구의 행복위주에서 질적인 의식의 변환의 행복추구의 길로 나아가는 의도적이고 자각적인 거룩한 시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사실 자기 자신이라 하면 무엇을 자기 자신이라고 하는 것인지 막연해지는데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세 가지로 집약할 수 있다.

 

첫째, 자기 자신 몸의 움직임

둘째, 자기 자신 속에서 일어나는 감정

셋째, 자기 자신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

 

이것이 자기 자신을 규정짓는 전부이다. 이 세가지 요소를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살펴야 한다. 하루에 세 번 자신을 되돌아보라는 반성과 같은 개념이다.

반성과 관찰은 좀 다를 수 있다. 반성은 생활이 정지된 상태에서 과거를 살피는 일을 말하는 것이라면 관찰은 움직이는 삶 속에서 행해지는 순간순간의 생각, 느낌, 행동을 놓치지 않고 꾸준히 살피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세상의 질감을 구체적으로 느끼는 몸과 마음의 행복감도를 높이는 중대한 작업이 된다.

 

이 방법은 우리 모두에게 지금 여기의 찰나적 삶에서 온전히 느끼고 살게 하여 영원무궁한 기쁨의 길로 이끌어낸다. 순간순간의 자각이 영원한 행복의 길인 것이다.

 

 

마음의 해를 밝히다

자신과 가족과 이웃과 지역과 국가와 세계와 우주 안 모든 만물의 번영과 행복을 위하여 가슴 깊이 꿈꾸고 가슴 깊이 희망해야 한다. 우주만물은 한 덩어리의 살아 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손가락 끝 조그마한 가시가 박힐 때도 순간의 고통이 전신 구석구석을 휘감아 버리듯 우주 안의 개체 하나하나는 그렇게 정신의 신경망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물질세계에서 하늘의 해가 있듯이 정신세계에도 마음의 해가 있다. 그것이 물질의 해보다 더 크다는 의미로 대일大日이라 한다. 또 심일心日이라고도 한다.

 

그 빛은 물질적인 빛이 아니기에 우리들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마음의 눈으로는 보고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어던 물질적 장애나 제한을 받지 않고 우주전체를 속속들이 비추고 있으며 물질 속에서도 어두움 속에서도 찬란히 빛나고 있다.

 

하늘의 태양이 빛나면 밝음과 따스함이 자리하여 우리를 윤택하게 하듯이 마음의 해가 빛나면 우리들에게 지혜와 사랑이 가득하여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물질세계에서 해가 새로 밝아오듯이 우리들 정신세계에서도 해가 뜨고 밝아져야 한다. 물질 세계에 하늘의 해가 새롭게 빛나는 새해가 된다고 해도 마음의 해가 뜨지 않는다면 이 세상의 새로운 밝음도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으며 의미도 주지 못한다.

 

하늘의 해는 항상 떠 있으나 지구의 자전에 의하여 뜨고 지고 하듯이 마음의 해도 항상 빛나고 있지만 자기 자신을 돌이켜봄에 따라 뜨고 지고 한다. 마음의 해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돌이켜볼 때 서서이 떠오르고 서서히 빛난다.

 

자기 자신을 돌이켜봄이 없을 때는 마음의 해는 사라져버린다. 마음의 해를 뜨게 하고 지게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돌이켜봄에 있다.

 

지금 잠깐이라도 고개를 들어 자기 자신을 돌이켜보라.

 

시야가 넓어질 것이다.

 

하늘이 자신을 보고 있음을 느낄 것이다.

 

몸 속에 매몰되었던 마음의 해가 몸 밖으로 튀어 올라 온 천하를 두루 비출 것이다.

 

천하를 훤히 비출 것이다.

 

 

정신-육신-환경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정신-육신-환경 이 세 가지 요소는 삶의 질을 가늠하는 가장 근본요소이고 중심요소이며 핵심요소이다. 이 세 가지 요소는 서로 연결 되어 있고 맞물려 있어서 상호 밀접한 영향을 받는다. 어느 한 요소라도 개선 될 때는 다른 것도 동시에 서로 영향을 받는다.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선행되고 근본되는 요소로는 그 사람의 정신과 생각이다.

그 사람의 정신이 얼마나 밝고 투명하고 깨끗하며 힘차고 바른 생각을 하는가는 우리들 모든 삶을 이끌어 가는 가장 근본적인 힘이 된다. 맑고 밝고 힘차고 투명한 정신을 가졌더라도 바른 생각을 갖지 못한다면 운전을 잘못하여 여러 좋지 않은 상황을 만드는 것과 같다.

 

‘어떤 것이 바른 생각인가’에 대한 깊은 통찰은 너무나 필요한 과정이다. 바른 생각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이야기할 수가 있으나 가장 근본적인 바른 생각의 출발로서는 나와 이 세상 모두는 한 몸이며 한 생명이라는 우주 연기적인 사고의 바탕으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와 모든 대상 어느 것 하나도 소외시키지 않고 나의 일과 세상의 일 또한 제외시키지 않고 모두가 나로, 모두가 나의 일로 함께 생각하는 대인의 마음을 갖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존재 모두는 거대한 하나의 유기체라는 것, 이것은 진정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정신적 기반 위에서 자신의 일상적인 일과 다가오는 대외적인 일들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이 바른 삶 아니겠는가?

육신은 정신이라는 주인을 담고 있는 집과 같다. 집이 불편하면 마음이 편하지 않듯이, 육신의 구조나 상황에 따라 정신의 유동성과 뜻을 관찰하는데 영향을 받는 것이다.

 

현대 일반인들이 대체적으로 운동의 부족과 과다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증가로 신체적 기능과 순환이 떨어지고 활력이 부족한 편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잘 풀고 지속적으로 근력을 키우는 운동이 필요하다고 본다.

육신을 잘 다스리고 건강하게 하는 것은 육신 자체를 위하는 것 보다는 정신의 능력을 온전히 발휘시키기 위한 기초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육신의 힘이 바로 정신의 힘이라고 하여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온전한 건강의 상태는 병이 없는 소극적인 상태가 아니라 활발하고 기운이 왕성한 건강의 상태이다. 자라나는 현 세대들의 나약하고 소극적인 개개인의 의식들도 모두가 신체적 단련이 거세된 사회 전체적 상황 속에서 나오는 것임을 우리들은 재삼 자각해야 한다.

 

자기 자신의 활발한 육체적 건강상태는 자신의 올바른 정신을 온전히 그리고 투철히 세상에 실현시킬 수 있는 기틀인 것이다.

 

자신의 정신적인 힘에 따라 자신의 신체적 상황이 결정되듯이 자신이 거처하는 주택이나 공간 또한 자신 마음과 의식의 그림이다. 자신이 거하는 건물이나 공간 속 집기나 물건들의 배치는 배경되는 자연적인 흐름이나 공간이용의 흐름 속에 자연스럽고 순조로이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가 거하는 건물이나 공간이 자연배경적 흐름이나 공간이용적 흐름에 순조로울 때는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나 생활이 순조롭고 부드럽게 이루어지나, 그 흐름이 순조롭지 않을 때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기도 하고 역부족하여 일을 성취시키지 못하기도 하는 것이다.

 

정신과 육신 그리고 환경은 우리들 삶의 질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이다. 늘 점검하고 점검하여 밝고 맑고 투철한 정신 속에 건강한 육신을 갖고 흐름에 맞게 순조롭고 깨끗한 환경 속에서 우리 모두의 꿈이 실현되었으면 한다.

 

시간과 인생

세월은 우리들의 뜻과 아무런 상관없이 쉼 없이 흐르고 있다. 우리들 인생도 세월과 같이 잠시도 머물지 않고 흘러가고 있다. 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우리의 제한된 인생의 시간들을 과연 무엇으로 채우며 살아가고 있는지 또 무엇으로 채우며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하여 되돌아보며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죽음이 전제된 우리들 인생에서 소중하게 채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생각하려 하니 현재 우리들 생명의 시간들이 사뭇 더 소중하고 진지해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가장 먼저 주변의 사람들이 떠오르고, 인연됐던 사람들과 교류된 여러 가지 상황들이 그려진다. 그리고 그 사이의 원활하지 못했던 관계들, 마음의 정을 다 나누지 못한 아쉬움이 가장 크게 떠오른다.

 

우리들 제한된 생명의 시간을 자각하고 인식함으로써 현재의 삶이 더 진지해지며 삶을 보다 새롭고 소중하게 받아들이는 그 출발이 됨을 본다.

 

또 현재와 현재에 연결된 모든 존재와 인연들에 대하여 보다 더 소중하게 느껴지고, 애틋하게 느껴진다. 내 곁에 항상 가까이 있고 늘 함께 있기에 가볍게 생각하고 진지하게 바라보지 못한 채 소홀히 대한 점들에 대해 미안하고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우리 인생의 행복과 불행이 바로 눈앞의 현실과 그 공간에 존재하는 인연들과의 관계에 있음이 더욱 실감난다. 가까이서 마음 나누며 살고있는 존재들에 대해 가슴 저며오는 감동을 금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존재들과의 미진한 마음들을 어떻게 온전히 다 풀어낼 수 있을지 깊이 생각하게 하며, 관계의 진정성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이것은 모든 존재들과 내면 깊이 하나 되기를 원하는 생명본연의 바램일 것이다.

 

타인과 하나 되는 것도 우리들 모두의 바람이지만 존재 하나하나의 밑뿌리까지 하나 되는 것 또한 우리들 모두의 바람이기 때문이다.

 

너무 가까이 있기에 유심이 바라보지 못하고 존재의 의미를 놓치고 살아 온 사람들의 눈을 다시 한 번 자세히 바라보게 된다. 곁에 있는 사람들의 존재의미를 일깨우고 잃어버린 관심과 사랑을 회복할 때이다.

 

본래 하나였고 본래 하나의 행복 속에 있으므로, 그 하나 됨을 위한 열망과 서로 깊게 스며들려고 하는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죽음을 전제로 한 자신의 인생과 인연된 관계들을 생각하니 소중하지 않을 수가 없다. 현재 순간순간이 경이롭고 아름다우며 하나하나의 생명이 모두 고귀하고 소중할 뿐이다.

 

지금 이 순간에 더 깊은 의미를 찾고 현재와 인연된 사람들에게 보다 깊은 관심을 가져 삶의 의미와 활로를 활짝 열어 나아가야 하리라.

 

 

허공의식

(살아있는 허공)

우리 인간에게는 근본자리가 있다.

그 근본자리의 주체는

형상을 갖고 변화하는 무상한 몸이 아니고

알고 느끼고 의지하는, 그 변화하는

의식도 아니다.

오직

담담히 지켜보는,

담담히 지켜보며

변화하는 자신의 몸과

자신의 의식과

자신의 주변 상황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고 있는

그것,

변화하지 않는 의식이다

 

변화하지 않는 의식

이것은 곧바로

불변의 의식이며

불멸한 의식이며

영원한 의식이다.

영원한 자기인 것이다.

 

현 실존적 자신 속에서

무상한 자기와 영원한 자기를

명철히 구별하여 알고

영원한 자기를 회복하고 획득했을 때

이것을 불교에서는

‘깨달음’이라고 한다.

 

오직

담담히 지켜보는 변화하지 않는 의식,

이것은

자기 육신의 껍질을 벗어나

허공으로 존재한다.

 

살아있는 허공으로 존재한다.

살아있는 허공!

이것은

형상이 없이 살아 존재하는

천지 우주를 한눈으로 살피는

하나님이며

법신 비로자나 부처님이다.

우리 모두는 살아있는 허공이

육신이라는 껍질을 쓰고 있는 것이다.

 

육신이 있되

허공의식이 살아 있으면

하나님이며 부처님이다.

 

육신적인 눈만 있고

허공적인 의식은 상실했을 때

그 때는 중생이며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허공이

우리 자신의 진짜 몸이고

우리 모두의 삶과 생명의

근본뿌리임을 깨닫고

허공을 나로 삼고

허공을 항상 느끼며

허공을 의식의 주체로 삼으라.

 

허공이 생각하고

허공이 생활하도록 하라.

 

허공은 걸림이 없기 때문에

너와 나에 걸리지 않으며

허공은 걸리지 않기 때문에

내 것 네 것에 얽히지 않는다.

 

세상적인

모든 갈등과 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허공을 자기의식을 주체로 삼고

너, 나를 벗고

내 것 네 것을 넘어설 때

해결되고 해소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 허공되어

허공으로 살자.

'필독!경전,법문자료 > 3. 수행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애 수행의 이익  (0) 2022.04.07
자황스님의 염불선   (0) 2014.04.23
왜 나무아미타불인가(불광출판사)  (0) 2014.03.22
현장스님의 염불선.7  (0) 2014.01.19
현장스님의 염불선.6  (0) 2014.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