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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경전,법문자료/3. 수행자료

현장스님의 염불선.7

佛日會報 서기 1990년 4월 1일 제 112호

 

염불선⑦

부처의 염불, 부처의 좌선

玄藏/ 송광사 스님

 

 

㉰실상문(實相門)

모든 종교는 신심을 첫째로 한다.

선(禪)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선에서 요구하는 신심은 일반종교의 신심과는 180도 다르다.

선의 신심은 불교를 믿고 부처님을 믿는 차원이 아니다. 선의 신심은 자기 생명의 본체가 바로 번뇌에 물듦이 없는 부처이고 우주의 성품이 바로 부처님의 법신임을 확신하고 자각하는 일이다.

중생의 근심걱정과 무명번뇌는 실상을 알지 못해서 생겨나는 마음의 그림자이다.

염불삼매 속에서 광명세계를 체험하게 되면 마음의 그림자는 사라지고 무한 공덕의 문이 열린다. 생명과 우주의 참모습을 통찰하게 되면 미혹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세 가지 독한 마음〔탐욕, 분노, 어리석음〕이 정화된다.

실상을 통찰하기 위한 염불선의 몇가지 행법(行法)을 소개한다.

A)실상염불(實相念佛)

바른 수행을 꾸준히 하게 되면 몸도 마음도 점점 가볍고 안락하게 된다. 마음에 욕구가 사라지면 걸음 걸을 때에도 허공을 닫는 느낌이 온다. 그것은 수행이 깊어질수록 물질, 그대로 공(空)이라는 진리에 계합되어 가기 때문이다.

은행나무가 자기 그림자에 속아 열매 맺듯이 본래 존재하지 않는 자기를 집착하여 고통받는 것이 중생세계이다.

육조혜능은 “본체(本體)를 여의지 않는 것이 (禪)” 이라고 하였으며 육조단경의 부촉품에도 “그대들이 만약 부처의 일체 종지를 얻으려면 마땅히 일상삼매(一相三昧)와 일행삼매(一行三昧)를 참구할 지니라”하였다. 영가대사는 증도가(證道歌)에서 “현상은 무상(無常)하여 일체가 공(空)이니 이것이 부처님의 깨달음이다.”고 노래하였다.

또 조선조 말의 백파(白坡)선사는 수행자들에게 “화두를 들되 일체법이 공(空)한 진리를 알고 허공 가운데 화두를 들라”고 깨우쳤다.

실상염불 또한 마찬가지이다.

자기의 몸도 마음도 우주도 텅 비어버린 일체공(一切空)의 진리를 사무치게 체득하여야 한다.

천지우주가 티끌만한 간격도 없는 부처님의 법신(法身)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러한 최상승의 이치를 담박 깨닫게 됨을 돈오무생(頓悟無生), 일념왕생(一念往生)이라고 한다.

마음을 열어 버리지 못하고 자기의 소견으로 염불하고 좌선하는 것을 “중생의 염불, 중생의 좌선”이라고 한다. 이러한 수행은 자아의식만 강화되고 편협한 마음이 되기 쉽다.

그러나 몸도 마음도 떨쳐 잊어버리고 우주법계에 충만한 불성광명(佛性光明)을 관하면서 염불자체가 되어 염불하는 것을 “부처의 염불, 부처의 좌선” 이라고 한다.

그것은 범부중생인 내가 염불하는 것이 아니고 내 안의 부처가 염불하는 것이다. 부처가 부처를 부르는 것이다. 부처가 염불하여 부처가 성불해 가는 것이다. 이것이 실상염불이고, 염불선이며, 최상승선이다.

“수행과 깨달음이 하나가 아닌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외도(外道)이다. 불법에서는 수행과 깨달음이 하나라고 말한다. 즉 수행이란 깨달음상의 수행이기 때문에 맨 처음의 발심이 곧 본래의 깨달음 전체이다. 이런 의미에서 수행에 정진해도 수행 이외에 깨달음을 기대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수행하는 바로 그곳에 이미 본래의 깨달음이 있기 때문이다. <수행의 깨달음>이기 때문에 깨달음에는 끝이 없으며 <깨달음의 수행>이기 때문에 수행의 시작도 없다.

<道元, 正法眼藏 >

 

B) 수식염불(隨息念佛)

호흡과 마음은 하나의 채널이다.

마음이 흥분되면 호흡 또한 격해지고 마음이 고요해지면 호흡 또한 고요해 진다.

우리의 마음은 원숭이와 같아 잠시도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있지 못한다.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언짢아 하기도 하고 공상에 잠기기도 한다.

그러나 호흡은 “지금 여기” 이다.

고요히 정좌하여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에 맞추어 염불을 한다. 들어오고 나가는 호흡의 존재만을 분명하게 느끼고 들숨날숨에 맞추어 <아․미․타․불>을 염한다.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과 주시하는 의식이 순일하게 이어질 때 몸과 마음은 고요해 진다. 그때 호흡은 자연스럽게 깊고, 길고, 가늘고, 고르게 〔深長細均〕된다.

몸과 마음이 고요해 지면 기쁨이 솟게 되는데 그것은 인간 존재의 본질이 기쁨이요, 광명이요, 축복이기 때문이다.

점점 미세해지는 호흡과 주시하는 의식이 일체가 되는 순간 그때 몸과 마음은 사라진다. 내가 쉼쉬는 게 아니라 우주가 나를 숨쉬게 된다. 내 한 사람이 정(定)에 들 때 우주가 함께 정에 드는 것이다.

호흡의 주시를 통하여 얻지 못한 바를 얻고, 이루지 못한 바를 이루고 깨닫지 못한 바를 깨닫게 된다.

호흡과 함께 있을 때 자신을 호흡과 함께 멈출 수 있다. 이때 환희에 가득찬 빛을 볼 것이다. 이것은 인간 자아의식의 멈춤이고 우주 혼돈의 멈춤이다. 이때 자신의 참 성품 진여를 보고 우주 속의 자신을 본다.

C) 주시염불(注視念佛)

염불하는 그 당체를 주시하면서 하는 염불. 몸으로는 절을 하고 입으로는 염불을 하면서도 망상에 빠지는 수가 있다. 염불하는 그 당체를 예리하게 주시할 때 번뇌는 끼어들지 못한다.

 

D) 미간응시염불(眉間凝視念佛)

제3의 눈, 부처의 눈을 각성시키기 위해 양 눈썹사이에 의식을 집중하고서 하는 염불. 미간의 에너지 센터가 완전히 각성되면 자아의식은 사라지고 이원성이 초월된다고 한다.

 

E) 보행염불(步行念佛)

경행을 통한 수식염불(隨息念佛).

두 손을 모아 명치에 대고 시선은 자기 키 정도의 전방에 떨군다. 한 호흡에 반 걸음씩 내디등며 코끝에서 발끝까지 전해지는 호흡을 느끼며 아미타불을 염한다. 실상문을 통한 마음의 덕목은 평등과 정직이다.

 

㉱회향문(廻向門)

예배문과 염불문, 실상문은 자기정화의 길이다. 자기가 닦아 얻은 수행의 체험을 통하여 이웃들의 고통과 미혹을 깨우쳐주는 일이야 말로 참다운 법공양이고, 부처의 길이며, 보살의 삶이다.

염불선의 수행을 통하여 자기의 행위와 말과 생각의 삼업(三業)이 청정해질 때 이 몸이 바로 부처님의 청정법신(淸淨法身)이요, 내 생명이 바로 부처님의 영원한 생명임을 깨닫게 된다.

부처님의 무한한 광명과 영원한 생명을 체험할 때 인간고뇌와 질병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기쁨과 축복의 물결만이 넘쳐나게 된다. 염불선의 수행을 통하여 우리는 늙지 않을 수 없는 몸으로 늙음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염불선의 수행을 통하여 우리는 병들지 않을 수 없는 몸으로 질병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염불선의 수행을 통하여 우리는 죽지 않을 수 없는 몸으로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염불선의 수행을 통하여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진리와 제법실상(諸法實相)의 밝은 지혜가 넘쳐나서 상․락․아․정(常樂我淨)의 열반의 기쁨을 수용하게 된다. 넘쳐나는 기쁨과 자비는 이웃에 대한 헌신의 마음은 다함께 열반의 바다로 나아가게 된다.

지난해 여름 태안사 선원에서 정진하는 틈틈이 염불선 수행의 요체를 우리말 게송으로 정리해 <그리움의 노래>라고 이름하였다. 산책길에 나서면 장엄염불가락에 맞추어 혼자 읊조리며 법열(法悅)에 잠기곤 하였다.

화두선 일변도의 우리 조계종 풍토에서 수행에 흥미를 잃어버린 불자들을 위해서 염불선의 역사적인 고찰과 그 위상을 정립해야 할 어떤 의무같은 것을 느꼈다.

분수에 넘는 일인 줄 알면서도 정진 틈틈이 선종사(禪宗史)를 뒤적이고 의문되는 것은 청화(淸華) 큰스님께 여쭤가며 다달이 원고를 만들었다.

혹자는 반문하기도 하였다.

“염불은 염불이지 무슨 염불선이냐?”

그건 화두선도 마찬가지이다.

화두는 화두일 뿐 화두가 선은 아니기 때문이다.

달마대사나 육조대사는 화두선도, 묵조선도, 엄불선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분들의 가르침 속에는 세 가지 수행의 이치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임제종(화두선), 조동종(묵조선), 황벽종(염불선)을 통하여 세 가지 선수행 방식이 그대로 전해져 오고 있다.

우리나라는 화두선 방식만이 전해지고 묵조선과 염불선의 수행방식이 단절됐을 뿐이다. 예전부터 우리나라 큰 절에는 빠짐없이 염불당이 있었다. 다시금 모든 절마다 염불당이 부활되고 염불선의 신앙과 수행이 꽃 피어나서 이 시대 모든 불자들이 잔잔한 삶의 기쁨을 누리기 발원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선정쌍수(禪淨雙修)와 염불선 수행을 주장해온 중국과 한국의 선사들을 소개하지 못하고 끝맺게 되었음을 밝혀둔다.

이 글을 있게 해준 불일회보와 독자들에게도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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