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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경전,법문자료/3. 수행자료

현장스님의 염불선.6

佛日會報 서기 1990년 3월 1일 제 111호

 

염불선⑥

念佛禪의 실천수행법

玄藏/ 송광사 스님

 

 

1. 수행은 왜 필요한가?

산에 큰 바람이 지나간 뒤엔 몇 그루 나무들이 중간이 꺾이거나 뿌리채 뽑혀 넘어진 모습을 볼 수 있다.

넘어진 나무들을 잘 살펴보면 원인이 있다. 중간이 꺾인 나무들은 속이 썩어 비어있고 뿌리채 뽑힌 나무들은 그 뿌리가 깊지 못하다.

 

큰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꺾이거나 뽑혀져 나간 나무들을 보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나무들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의 거센 바람은 물론 자기 내면에서 일어나는 탐욕과 증오, 애욕과 질투의 바람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 제대로 꽃피어 보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고 탐스런 열매를 맺기 위해선 무엇보다 뿌리내림이 든든해야 한다.

댐을 막는 것은 그때 그때 필요한 곳에 물을 사용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신앙생활과 수행을 하는 것도 일상생활을 보다 탄력있게 하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다.

 

모든 인간은 고통을 싫어하고 행복을 추구한다. 그러나 행복을 위해 추구한 일이 불행을 초래하고 옳다고 한 일이 결과는 옳지 못한 경우를 당하기도 한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참된 성품과 마음의 작용을 모르기 때문이다.

수행은 자기 자신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성찰함으로 해서 자신을 얽어매는 족쇄에서 벗어나 참된 자유와 행복을 맛보게 한다. 수행은 무엇보다도 자기 마음을 자기가 쓰는 일이다. 참된 실재를 깨우칠 때 자기를 속이지 않고 자기에게 속지 않는 지혜가 생겨난다.

 

불교는 자기 실현의 가르침, 수행의 종교, 깨달음의 길이다.

그러나 전문적인 수행자가 아닌 재가 불자들이 바쁜 현대생활을 하면서 실천할 수 있는 적합한 수행법은 무엇일까? 그것이 염불선이다. 염불은 하면 하는 만큼 우리의 감성이 만족을 하고 마음이 기쁨을 느낀다. 현대와 같이 긴장과 불안이 계속될 때 선과 염불의 조화적인 염불선의 수행은 마음의 평정은 물론, 불교의 근본을 실현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불자들은 경전과 전통에 의거한 수행의 실천을 통하여 잔잔한 삶의 기쁨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고요한 마음속에서 생겨나는 삶의 지혜와 기쁨을 이웃과 나누어야 한다.

 

광명의 세계로 나아갈 때 두려움과 미혹은 사라진다. 진리의 기쁨을 체험할 때 고정관념과 편견은 사라진다. 진리가 그 모습을 드러낼 때 모든 의심의 안개는 걷혀진다.

우리의 조상들이 원왕생가(願往生歌)와 보현십원가(普賢十願歌)를 부르며 자기를 비우고 국토를 밝혔듯이 이 시대의 불자들은 선(禪)과 정토(淨土)와 화엄(華嚴)이 조화된 <그리움의 노래>와 염불선의 수행법으로 자기 자신을 다스리고 현대문명의 병폐를 치유하는 지혜를 일궈내야 한다.

 

 

2. 은행나무의 교훈

홀로 있는 은행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러나 은행나무 아래 못을 파서 자기 그림자가 비치게 하면 못에 비친 자기 그림자를 이성으로 감응하여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은행나무의 신비한 생태이다.

은행나무가 자기 그림자를 착각하여 열매를 맺듯이 우리 중생도 없는 것을 있다고 착각하여 고통을 받는다.

 

무상한 것을 영원한 것으로 집착하고, 괴로운 것을 즐거운 것으로 집착하는 뒤바뀐 소견 때문에 중생의 병과 고통이 생겨난다.

그래서 반야심경에 ‘뒤바뀐 생각을 멀리 여읠 때 완전한 깨달음의 지혜를 얻게 된다「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중생들의 뒤바뀐 생각 때문에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 생겨난다. 세 가지 독한 마음은 열 가지 허물「十惡」을 범하게 된다.

 

염불선의 수행은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삼업(三業)을 정화하여 생명의 참모습을 깨우치고 그 광명과 기쁨의 세계를 모든 이웃들과 함께 하는 데 있다. 자기정화와 중생정화를 위한 염불선의 네 가지 실천 수행법을 소개한다.

㉮ 예배문: 공경. 겸손

자기자신의 정화

㉯ 염불문: 친절. 찬탄

㉰ 실상문: 평등. 정직

인간관계와 환경의 정화

㉱ 회향문: 자비. 헌신

 

㉮ 예배문(禮拜門)

부처님은 지혜와 자비의 광명이다.

몸과 마음을 바쳐 부처님에게 절하는 일은 모든 불자들의 가장 중요한 수행이다. 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생각하고 절할 때에 이 몸은 이미 부처님의 광명속에 있게 된다. 예배의 수행을 통하여 몸으로 저지를 세 가지 허물 〔살생죄, 도둑질한 죄, 사음(邪淫) 죄〕이 정화된다.

또 불전에 나아가 매일 아침저녁으로 시간을 정해 놓고 108배를 실천하면 세 가지 병을 고친다고 하였다.

 

첫째, 몸의 일체 병을 고친다.

절하는 자세는 요가의 모든 포즈를 하나로 종합한 것이다. 절할 때 나오는 땀은 죄업의 찌꺼기가 빠져 나오는 것이다. 절을 마치고 난 후의 상쾌함과 희열은 절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규칙적인 생활과 조화로운 온몸의 운동으로 몸 안에 있는 병은 사라지고 새로운 질병은 침범하지 못한다.

 

둘째, 마음의 병을 고친다.

예배의 두 글자는 “공경할 禮,” “굴복할 拜” 이다. 예배의 근본은 모든 생명에 깃들어 있는 부처의 마음, 불성(佛性)을 공경하고 자기의 어두운 마음, 교만한 마음을 굴복시키는 행위이다.

예배를 통하여 마음 속의 미운 생각, 이기심과 헛된 궁리, 교만 등 마음의 때가 씻겨져 나간다.

 

셋째, 팔자병을 고친다.

중생의 병과 복은 업보에서 생기는 것. 지극한 참회 속에 업보가 소멸되고 지혜가 밝아지면 무량공덕의 문이 열린다. 에배문을 통한 마음의 덕목은 공경과 겸손이다.

 

㉯ 염불문(念佛門)

아미타불(阿彌陀佛)이란 온 우주에 충만한 부처님의 무한광명을 인격화한 것이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이후 가장 널리 알려진 말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다. 그 의미는 불교의 양 날개인 지혜와 자비의 체득과 그 실천을 상징한다.

 

불, 보살의 명호는 명호 그 자체에 무량공덕이 담겨 있어 염불만 자꾸 해도 중생의 업장이 가벼워지고 마음은 기쁨으로 충만해 간다.

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생각하고 염불하는 일은 입으로 지은 네 가지 허물〔거짓말, 번드르한 말, 이간질, 악담〕을 정화시켜 준다. 부처님을 찬탄하는 일은 이웃들의 삶을 찬탄하는 일로 이어진다. 염불은 입으로 하는 예배이다.

 

염불할 때는 눈을 감고서 연꽃 위에 앉아 합장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관상한다. 그때 부처님이 미간에서 광명을 놓아 염불하는 자신을 비추는 모습을 관상한다. 지극한 마음으로 하는 염불 속에 부처님의 광명이 함께하는 것이다. 지극한 마음으로 하는 염불 속에 자기 안의 불성이 깨어나는 것이다. 지극한 마음으로 하는 염불 속에 축복으로 이르는 문이 열리는 것이다.

그래서 염불하는 그 순간은 부처님의 순간은 부처님의 순간이 되고 염불하는 그 마음은 부처님의 마음이 된다. 부처님의 광명 속에 미혹의 그림자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염불선을 통한 삶의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는 <그리움의 노래>를 아침 저녁으로 한 차례씩 읽거나 공책에 옮겨 적어 보는 일도 소중하다.

염불하고 사경하는 지극함에 산란심은 사라지고 고요와 기쁨의 마음이 충만하게 된다. 취침 전에 하는 염불은 잠이 편안하고 아침기운을 상쾌하게 해 준다. 짧은 수면 속에서도 깊은 휴식을 취할 수 있고 불면과 악몽에 시달리지 않게 된다. 아침에 일어나서 정좌하고 염불하게 되면 그 맑은 기운과 밝은 마음이 하루생활을 원만하게 이글어 줄 것이다. 마음으로는 항상 부처님의 형상을 생각하고 입으로는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른다. 생활을 통해서 부처님의 중생을 위한 헌신의 삶을 실천해야 한다.

 

<그리움의 노래>는 염불선 수행의 이치와 실상의 진리를 표현한 것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기쁨과 광명이 생겨나므로 몸에는 질병이 사라지고 마음은 평안을 얻게 된다. 밝은 지혜가 생겨나서 근심고 ㅏ걱정은 사라지고 삶이 즐거워진다.

염불문을 통한 마음의 덕목은 친절과 찬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