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4. 청화 큰스님 법문집/11. 실상 염불선

31. 2. 불교의 우주론(字宙論)

2. 불교의 우주론(字宙論)

 

불교우주론(佛敎字宙論)

 

1. 성겁(成劫)…유정(有情)의 공업증상력(共業增上力)으로 말미암아 공간(空間)에 미세(微細)한 금색풍(金色風:금장운(金藏雲))을 일으켜 차례로 풍륜․수륜․금륜(風輪․水輪․金輪)을 생(生)하며 처음 일증감겁(一增減劫) 동안에 초선천(初禪天)으로부터 지옥계(地獄界)에 이르기까지 차제(次第)로 성립(成立)하고 후(後)의 19증감겁(十九增減劫)에 광음천(光音天)으로부터 유정(有情)이 차제(次第)로 강생(降生)하여 무간지옥(無間地獄)에 일인(一人)의 유정(有情)이 생(生)함을 최후(最後)로 함. 즉(卽) 기세간(器世間) 및 유정세간(有情世間)이 성립(成立)한다. 합(合)하여 20증감겁(二十增減劫) 동안임.

 

2. 주겁(住劫)…기세간(器世間)과 유정세간(有情世間)이 안온(安穩)하게 존재(存在)하는 시(時)로서 20증감겁(二十增減劫)을 경과(經過)함.

 

3. 괴겁(壞劫)…역시(亦是) 20증감겁(二十增減劫) 동안이다. 그 중(中) 초(初)의 19증감겁(十九增減劫) 동안에 초선천(初禪天)에서 지옥(地獄)에 이르는 모든 유정(有情)은 각기(各其) 업인(業因)에 따라 이선(二禪) 이상(以上)에 나아가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않음을 유정세간괴(有情世間壞)라 함.

 

마지막 일증감겁(一增減劫)에 일곱해[7태양(七太陽)〕가 나타나 화재(火災)를 일으켜 먼저 지옥(地獄)에서부터 초선천(初禪天)까지를 태워버리고 다음 수재(水災)를 일으켜 이선천(二禪天) 이하(以下)를 떠내려 보내고 다음 풍재(風災)를 일으켜 삼선(三禪) 이하(以下)를 흩어 없앤다.〔표산(飄散)〕 ]

4, 공겁(空劫)…세계(世界)가 온전히 허공무일물(虛空無一物)이 되어 다시 다음 성겁(成劫)에 이르기까지의 20증감겁(二十增減劫)동안을 말함,

- 기세경(起世經)․지도론(智度論)․구사론(俱舍論) -

 

그러면 우리 불교의 우주관(宇宙觀)은 어떤 것인가?

불교의 우주관을 대강 검토해 보도록 합시다. 불교 우주관은 우주가 이루어지는 성겁(成劫)과 또는 우주에 모든 중생들이 존재하는 주겁(住劫)과 또는 허물어져 파괴되는 괴겁(壞劫)과 제로(zero)가 되어 텅텅 비어버리는 공겁(空劫)과 다시금 성겁이 되는 이른바 영겁순환(永却循環)이요, 영겁 동안 사겁(四劫)이 되풀이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겁은 어떻게 되었는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유정의 공업증상력(共業增上力)이라, 모든 중생들의 공동의 업력인 공업(共業)이 점차 증가되는 힘으로 말미암아 공간에 미세한 금색 바람을 일으켜, 금색 바람을 금장운(金藏雲)이라고 합니다. 즉 금색광명을 구름이란 뜻입니다.

 

차례로 풍륜(風輪) 또는 수륜(水輪) 또는 금륜(金輪)을 생(生)하여 처음 일증감겁(一增減劫), (수명이 팔만사천세(八萬四千歲)부터서 100년 만에 한 살씩 나이가 줄어서 10세에 이르는 동안을 감겁(減劫)이라고 하고, 그 반대로 10세로부터 100년에 한 살씩 더 늘어 팔만사천세에 이르는 동안을 증겁(增劫)이라 합니다. 일증감겁은 그와 같이 감겁과 증겁을 합한 기간입니다.) 이런 기간에 초선천(初禪天)으로부터 지옥계에 이르기까지 차제(次弟)로 성립됩니다. 지옥(地獄) 등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공겁 때는 모두가 다 없던 것이 점차로 중생의 좋다 싫다 하는 등의 업력 따라서 환경, 지구, 하늘의 별들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에 더 오랫동안인 19증감겁 동안에 색계(色界) 이선천(二禪天) 중의 제 3천인 광음천(光音天)으로부터 유정(有情)이 차제로 강생(降生)합니다. 광음천은 광명으로 이루어진 색계(色界)입니다. 광음천에는 말도 필요 없이 생각만하면 입에서 광명이 나와서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서 통할 수 있는 하늘이라고 합니다. 광음천으로 부터서 유정이 차례로 아래로 내려와서 음식을 찍어 먹고 하는 것은 어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는 무간지옥에 한 사람의 유정이 생겨남을 최후로 기세간계(器世間界) 즉 우주와 유정세간(有情世間)이 성립한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성겁에는 겨우 유정이 오직 한 사람이 나온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복(福)이 다 되어서 또는 성품이 경망스러워서 새로운 것을 바라고 유정이 내려 왔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 주겁(住劫)이라. 기세간(器世間)은 불교 술어로서 형식적인, 물질적인 우주를 말합니다. 또 유정세간(有情世間)은 우리 인간이나 천인(天人)이나 유정 곧 의식이 있는 존재들입니다. 주겁은 기세간과 유정세간이 안온하게 존재하는 때로서 20증감겁을 경과한다고 합니다. 처음 성겁(成劫)도 일증감겁(一增減劫) 동안에 형식적인 지구나 천체 등 우주가 이루어지고 나머지 19증감겁 동안에 유정이 이루어지므로 합하면 20증감겁입니다.

그 다음에 괴겁(壞劫)인데 파괴될 때의 말입니다. 현대 물리학도 장차 우리 지구나 각 천체가 파괴되어 가는 것을 추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국의 호킹(Stephen Hawking) 박사 같은 분들은 우주가 이루어져서 완전히 파괴될 때까지 100억년 정도라고 계산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역시 천재이기 때문에 물리학자에 지나지 않지마는 부처님 말씀과 상당히 가까운 말이 많이 있습니다. 천재란 마음이 여느 사람들보다 한결 맑아서 불심(佛心)에 가까운 사람들이라 불교를 안 믿는다 하더라도 그와 같이 부처님 가르침에 가까워지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천재란 쇼펜하우어 말이 아니라도 기억력이 좋아서 많이 아는 것이 천재가 아니라 우리 마음이 얼마만치 본질적인 진리에 가까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출가사문들은 이미 천재의 범주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괴겁(壞劫)도 역시 20증감겁 동안인데 처음 19증감겁 동안에 초선천(初禪天)에서 지옥에 이르기까지 모든 유정은 각기 자기가 지은 바 업력(業力)에 따라서 2선천 이상에 나아가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않음을 유정세간괴(有情世間壞)라, 유정세간이 다 허물어진다고 합니다. 지금 기독교에서 이른바 시한부 종말론(終末論)을 부르짖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앞으로 곧 종말이 온다고 그것을 믿고서 떠들어대고 하니 참으로 딱한 사람들 아닙니까? 우리는 부처님을 믿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스러운가를 감격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호킹 박사도 100억 년이라니까 아직은 멀었고 부처님 말씀은 방금 말씀한 바와 같이 20증감겁 동안에 파괴된다는 것인데 또 파괴되려고 할 때는 사람과 함께 마구 다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천지 우주는 진여불성의 대자비(大慈悲)로 뭉쳐 있는 완벽한 생명체입니다. 부처님은 대자대비(大慈大悲)가 근본이기 때문에 초선천에서 지옥에 이르기까지 모든 유정은 각기 자기 지은바 업에 따라서 2선천 이상으로 간 뒤에야 점차로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만일 사람을 그대로 태운 채로 무너져버리면 불성(佛性)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자비하겠습니까. 따라서 우리는 진여불성을 지향하여 점차로 정화(淨化)되어 가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가 출가사문과 부처님 제자가 되겠지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들이 선택받았다고 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선택받은 사람들입니다.

 

초선천에서 지옥에 이르기까지 모든 유정은 각기 자기가 지은 업력 따라서 더디 가고 빨리 가고 하는데 2선천 이상을 올라간 뒤에야 비로소 모든 유정세간이 파괴된다고 하니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이선천(二禪天) 이상으로 승천(昇天)하고 나서 파괴된다는 사실이 얼마나 자비로운 도리입니까? 우주의 도리는 그러한 자비가 근본인 것입니다.

그리고는 마지막 일증감겁(一增減劫)에 일곱 해[太陽〕가 나타나서 화재(火災)를 일으켜 먼저 지옥에서부터 초선천까지 태워버리고 다음에 수재(水災)를 일으켜 2선천 이하를 떠내려 보내고 다음 풍재(風災)를 일으켜 3선천 이하를 불어 없앤다고, 경에는 표산(飄散)이라는 말로 쓰여 있습니다.

 

공겁(空劫)이라, 세계가 온전히 허공무일물(虛空無一物)이 되어서 다시 다음 성겁(成劫)에 이르기까지 또 역시 20증감겁 동안을 요합니다. 그래서 성 ․ 주 ․ 괴 ․ 공 4겁을 합하여 80증감겁이 소요됩니다. 이러한 우주론은 기세경(起世經)이나 용수보살 지도론(智度論)이나 또는 구사론(俱舍論)에 있습니다.

 

3. 색(色:物質)의 근본구조(根本構造)

 

불교의 교리에서 나온 물질의 구조를 알아보겠습니다. 현대 물리학에서 물질의 가장 미세한 소립자인 광량자(光量子)의 본질이 불교에서 물질의 근본으로 삼는 금진(金塵)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금진(金塵)의 구조(構造)…우주(宇宙)의 본질(本質)인 물심일여(物心一如)의 심체(心體)에는 본래(本來)로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의 사성(四性)과 사상(四相)이 갖추어 있는데 그 사성(四性)과 사상(四相)이 화융(和融)하여 일극미(一極微)를 이루어 서로 분리(分離)할 수 없으므로 팔사구생(八事俱生)하여 수일불멸(隨一不滅)이라 칭(稱)한다. 이 극미(極微)를 사방․상하(四方․上下)의 육방(六方)과 중심(中心)의 칠미(七微)가 합성(合成)되어 처음으로 천안소견(天眼所見)의 아누색(阿耨色)이 되는데 바로 금진(金塵)이다.

이 금진(金塵)은 천안(天眼)과 윤왕안(輪王眼)과 불과(佛果)를 득(得)한 보살안(菩薩眼)에만 견득(見得)할 수 있다. 금진(金塵) 곧 일아누색(一阿耨色)은 금중(金中)에서 왕래(往來)하여도 무장무애(無障無碍)하며 백사십(百四十)의 사체공덕(事體功德)을 갖추고 있다. 또한 원상(圓常)하여 다시 생멸(生滅)이 없고 공겁(空劫) 시(時)에는 이산(離散)하여 공중(空中)에 부유(浮遊)하나 체법(體法)은 항유(恒有)하며 그 작용(作用)에 있어서 생멸무상(生滅無常)하다.

-대일경소(大日經疏)․구사론광기(俱舍論光記)․승론(勝論)-

 

우주의 본질인 물심일여(物心一如)의 심체(心體)에는 지 ․ 수 ․ 화 ․ 풍(地水火風) 4대(大)의 네 가지 성품과 사상(四相)이 본래로 갖추어 있습니다. 우리는 우주의 본체에 있는 근본적인 본 성품을 생각해야 합니다. 근본 성품에는 지수화풍 4대를 비롯한 일체 만덕이 본래로 원만히 갖추어 있습니다. 그 성품은 인연 따라서 상(相)으로 나오는데 지수화풍 4대의 4성(性)과 4상(相)이 서로 원융무애하여, 거리낌 없이 섞이어서 일극미(一極微)를 이루어 서로 분리할 수 없으므로 팔사구생(八事俱生)한다는 것입니다.

 

팔사구생이란 구사론 등에 나오는 말로 여덟 가지 기운이 한 번에 화융(和融)하게 뭉쳐서 나온다는 말입니다. 팔사구생의 여덟 가지란 앞에 든 지수화풍 4대의 네 가지 성품과 4대의 상인 네 가지 상이 함께 어울려서 나오므로 팔사구생입니다. 그래서 수일불멸(隨一不滅)이라, 뭉쳐진 그 하나가 멸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방(四方)과 상하(上下)의 육방(六方)과 가운데 중심(中心)을 합하면 일곱 군데인데 불교에서는 일체가 역동적인 생명력이므로 사방과 상하 그리고 중심의 7이란 수치를 생명 활동의 중요한 수치로 중요시하는 것입니다.

일극미(一極微)인 물질도 아닌 하나의 기운, 에너지가 사방 상하 중심의 칠미(七微) 합성이 되어 처음으로 천안소견(天眼所見)이라, 중생의 오욕의 때 묻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천안통으로 볼 수 있는 아누(Anu 阿耨)색이 되는데 이것이 바로 금진(金塵)이라고 합니다.

 

‘아누다라삼먁삼보리’에서도 나오는 그런 개념 하나 하나가 모두가 다 의미 심중합니다. 우리 인간이 알고 있는 원자핵이나 그런 물질적인 존재가 아니라 그보다 더 훨씬 더 저편에 있는 즉 생명 에너지의 근본 구성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금진인 것입니다.

 

이 금진은 천안(天眼)과 전륜성왕(轉輪聖王)의 안목과 또는 견성오도(見性悟道)해서 삼매에 들어가 불과(佛果)를 얻은 보살의 눈에만 견득(見得)이라, 보아서 얻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벌써 견성오도를 확실히 했다면 금진인 한량없는 금색광명을 훤히 현관(現觀)이라, 현전(現前)하게 체험하게 되겠습니다.

 

금진 곧 일아누색(一阿耨色)은 금(金) 가운데서 왕래하여도 무장무애하여 거리낌이 없으며 140의 사체공덕(事體功德)을 갖추고 있다 합니다. 불성공덕(佛性功德)은 무량공덕이나 편의에 따라서 법수로서 140의 공덕으로 구분하여 일일이 말씀한 법문이 불경에 나와 있습니다. 티끌만도 못하고 원자핵보다 한결 근원적인 미세한 에너지로 응집된 그 가운데에 벌써 140의 부처님의 무량공덕을 다 갖추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이라는 말씀이 성립되지 않겠습니까.

 

또한 원만하고 항상 하여 다시 생멸이 없고 공겁(空劫)시에도 금진은 존재하는 것입니다. 공중에 흩어져 있기는 하지만 체(體)는 소멸이 안 되어 체법(體法)은 항유(洹有)하며 그 작용에 있어서는 생멸무상(生滅無常)입니다.

또는 유식론(唯識論)에는 일체 현상을 아뢰야식(阿賴耶識) 종자의 변현(變現)이라고 합니다. 모두가 다 유식(唯識)이라, 만법이 유식이요, 일체가 유심조(唯心造)라는 사상에서 본다면 물질은 체(體)가 있는 것이 아니며 금진도 또한 마음의 묘유(妙有) 현상이니 물질의 체성(體性)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금진은 금강(金剛) 또는 금륜(金輪)이라고도 하며 묘유(妙有)의 본질이라는 말입니다.

 

 

4. 물질(物質)의 분석(分析)․석공관(析空觀)

 

물질(物質)의 분석(分析)[석공관(析空觀)]

물체(物體)

욕계진(欲界塵)

 극유진(隙遊塵) (성분成分)

 우모진(牛毛塵) (분자分子)

 양모진(羊毛塵)(원소元素)

 토모진(兎毛塵)(전자電子)

 수진(水塵) (양핵陽核)

 금진(金塵) (핵核의 본질本質)

색계진(色界塵)

 미(微) (식립識粒)

무색계진

(無色界塵)

 극미(極微) (색구경色究竟)

 인허(隣虛) (염심근染心根)

 

불교에서 구사론 등 근본 논장(論藏) 가운데 석공관(析空觀)이 있습니다. 우리 중생들이 공(空)을 느끼기가 어려운 것이니까 색(물질)을 분석하는 방편을 써서 공을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물체를 분석하여 우선 극유진(隙遊塵)이라 하는데, 날씨가 좋을 때 문틈으로 태양 광선이 비춰오는 것을 보면 그 광선속에 헤아릴 수 없는 티끌이 떠 놀고 있어 보이지 않습니까. 그런 정도의 작은 것을 말합니다. 현대적인 말로 표현한다면 물질의 성분(成分)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다 더 미세한 것이 우모진(牛毛塵)입니다. 마치 소 터럭 끄트머리 같은 그 정도로 작다는 말입니다. 이런 말은 그와 꼭 같다는 것이 아니고 옛날 사람이 비유로 표현한 것입니다. 현대적인 술어로는 분자(分子) 정도가 되고 더 작은 것은 양모진(羊毛塵)으로 양털 끄트머리 정도로 눈에 안 보이는 원소(元素) 정도입니다. 그 다음에 토모진(兎毛塵)으로 토끼털 끄트머리 정도로 전자(電子) 정도에 비유됩니다. 그 다음은 수진(水塵)으로 양성자(陽性子), 중성자(中性子) 정도이고, 앞에서 말한 금진(金塵)은 원자핵(原子核)의 본질(本質)을 의미합니다.

 

이런 불교적인 분석은 옛날에 도인들이 중생들이 물질에 대해서 너무 집착을 하니까 '분석하면 모든 존재들이 다 허망하게 비어버린다'고 하기 위한 법문을 시설하여 이른바 석공관(析空觀)이라, 물질을 분석해서 공으로 돌아가는 관법(觀法)을 제시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금진(金塵)은 미(微)로 구성되고, 미는 극미(極微)로 구성되고, 극미는 인허(隣虛)라는 공간성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는 기운으로 구성되었다고 분석을 했습니다.

 

따라서, 금진은 핵의 본질이지요. 미는 식의 알갱이〔식립(識粒)〕요, 또는 극미는 색구경(色究竟) 즉 색의 가장 끄트머리고 인허(隣虛)는 염심근(染心根)이라, 우리 마음이 오염되어 있는 가장 시초인 것입니다.

물체에서 수진(水塵)까지는 욕계에 있는 티끌, 욕계진(欲界塵)이라 하고, 또 금진은 광명체 즉 광명이 본질이기 때문에 이것은 색계진(色界塵)이라 하고, 또 우리 의식의 헤아림의 흔적들은 무색계진(無色界塵)이니까 내나 우리의 식(識)도 물질화 될 수가 있고 물질도 결국은 식이고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풍(地風) 사대(四大)의 조(構造)

 

---

--()---

---

-

---

--()---

--- ---

 

 

앞에서 물질의 구조 같은 것은 대강 살펴본 셈입니다만 불교에서 말하는 지․수․화․풍 4대(四大)가 어떻게 구성이 되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순수한 우주의 기운인 금진(金塵)이 좌선(左旋) 곧 좌편으로 진동하면 수진(水塵)이 되고 우편으로 진동하면 화진(火塵)이 된다는 것입니다. 화진은 현대적으로 대비해서 말하면 전자(電子)고 수진은 이른바 양자(陽子)가 되는 것입니다. 원자핵 즉 양성자, 중성자는 불교에서 말하면 수진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자라든가 또는 이 양성자 중성자가 어떻게 나왔는가 하는 원리를 현대 물리학자들은 거의 비슷하게 말을 합니다. 가사 라듐(radium)을 분석하면 전자의 흐름은 오른쪽으로 구부러지고 양성자의 흐름은 왼쪽으로 굽어지고 또는 감마(gamma:r)선은 구부러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어렴풋이나마 현대 물리학에서도 좌선(左旋)과 우선(右旋)의 도리를 말합니다.

불교 가르침 가운데서 금진이란 말은 원래 있으나 좌선진, 우선진이나 수진은 양자와 같고 화진은 전자와 같다는 이런 말씀을 한 것은 금타 스님이 처음입니다. 현대에 태어난 분이기 때문에 현대 물리학과 대비 회통(會通)을 시킨다는 의미에서 필수적으로 밝혀야겠지요.

 

아무튼, 우리 마음의 싫어하는 기운은 금진을 오른쪽으로 돌려서 전자를 창조한다고 할 수 있고 또 좋아하는 마음은 그 반대로 금진을 왼쪽으로 돌려서 양성자 등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주에너지인 금진(金塵)은 우리 심리 여하에 따라서 전자화(電子化)되고 양자화(陽子化)되어 형상화되는 것입니다.

저명한 의학자들 말도 성을 내면 몸에 해로운 요소인 아드레날린(adrenalin)이 더 증가되고, 웃고 기분 좋으면 우리를 건강하게 해주는 엔돌핀(endorphines)이 생긴다고 합니다. 그런 것이 모두가 다 부처님 원리에서 본다면 수긍이 가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성겁초기(成劫初期)에 광음천(光音天)이라든가 더 위의 무색계(無色界)에 있는 중생들이 좋다 궂다 하는 분별이 시초 동력(動力)이 되는 이른바 중생들의 공업력(共業力)이 쌓이고 모이니까 전자가 되고 양자가 되어 우주를 구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모든 것들이 생명이니까 의당 역동성(力動性)이 있어야겠지요. 따라서 양자인 수진은 같은 성질끼리는 서로 이끌고 또 다른 성질과는 서로 배척하는데 수진 즉 양자에 있어서 같은 성질끼리 이끈 것은 수(水)라고 하고 다른 성질을 배척하는 것은 지(地)라고 합니다. 가사, 중성자와 양성자가 서로 어우러져서 원자핵이 되는 것도 서로 이끌어서 된 것입니다. 또 우편으로 도는 금진인 화진(火塵) 즉 전자는 성질이 수진(水塵)과는 반대로 동성끼리는 서로 배척하고 또는 이성끼리는 서로 이끄는데 동성끼리 서로 배척하는 것은 화(火)라고 하고 이성끼리 이끄는 것은 풍(風)이라고 합니다.

 

지수화풍 사대(四大)가 이렇게 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지수화풍 사대가 어디서 나왔는가? 하는 것도 역시 금타 스님이 처음으로 발설을 했습니다. 옛날에야 이렇게 할 필요가 없었겠지요.

물질이란 그 근본이 어떻게 나왔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 불교인들이 꼭 풀어야 할 문제입니다. 세속인인 물리학자들이 푸는 우주의 근본 문제를 풀지 못하면 그마만치 불교를 불신하는 것입니다. 마땅히 그들이 아는 것보다도 훨씬 더 앞서서 이끌어야 할 과제가 현대 불교가 당면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또한 물질의 근원이 본래 공(空)하다는 도리를 분별 지혜인 간혜(乾慧)로라도 알고 있으면 우리들의 상(相)을 여의는 데도 크게 조도(助道)가 될 것입니다.

 

5. 삼천대천세계 (三千大千世界)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일소세계(一小世界)…수미산(須彌山)을 중심(中心)으로 칠산팔해(七山八海)를 교호(交互)로 두루고 철위산(鐵圍山)을 외곽(外廓)으로 한 세계(世界)를 말함.

1, 소천세계(小千世界)…일소세계(一小世界)를 천(千) 합(合)함을 말함.

2. 중천세계(中千世界)…소천세계(小千世界)를 천(千) 합(合)함을 말함.

3. 대천세계(大千世界)…중천세계(中千世界)를 천(千) 합(合)함을 말함.

모두 합(合)하여 대천세계(大千世界)의 수량(數量)은 십억세계(十億世界)이다.

(一小世界×1000=小千世界, 小千世界×1000=中千世界=1000000小世界, 中千世界×1000=大千世界 즉 1000000×1000=1000000000소세계=10億世界가 三千大千世界임.)

※ 이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는 제사선천(第四禪天)과 같으며 성(成)도 괴(壞)도 동시(同時)임.

-지도론(智度論)․불지론(佛地論) -

 

불교 우주관은 생성소멸(生成消滅)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성겁, 주겁, 괴겁, 공겁입니다만 천체가 얼마나 큰가 하는 공간적인 의미에서 본다면 삼천대천(三千大千)세계입니다.

 

불교에서 한 세계를 일소세계(一小世界)라 하는데 이는 태양계를 중심으로 하는 한 세계를 말하는 것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일소세계란 수미산(須彌山 Sameru - parvata)을 중심으로 7산(山) 8해(海)를 교호(交互)로 번갈아 두루고 철위산(鐵圍山 Cakravada)을 가장 밖에 있는 외곽으로 한 세계를 말합니다. 그래서 구산팔해(九山八海) 즉, 아홉 산과 여덟 바다인데 그 이름이 다 있습니다. 수릉엄삼매도에 보면 같이 번갈아 둘러 이루어지는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아무튼, 이런 말씀은 그 당시에는 세밀한 분석이 필요 없고 다만 어떻게 중생들이 망상을 안 내고 성불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이기 때문에 상징적으로 말씀을 했습니다. 부처님이 아시는 그대로 말해서는 중생들이 알 수가 없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중생들은 세계가 어떻게 생겼는가? 나는 대체로 어디서 태어났는가? 물질의 근본은 무엇인가? 그런 의문은 그 당시 미개한 때에는 품을 수가 없었겠지요. 따라서 그때그때 대응해서만 말씀을 했던 것입니다.

현대 천문학에서도 태양계(太陽界) 밖에 은하계(銀河界)가 또 끝없이 많이 전개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태양계를 중심으로 여러 유성이 도는 한 단위의 세계 즉 일소세계(一小世界)를 천개 합한 것이 소천세계(小千世界)요, 이 소천세계를 다시 천개 합해서 중천(中千)세계고 중천세계가 천개 합해서 대천(大千)세계입니다. 그러니까 한 세계의 천개에 천배가 십만이고 다시 천배가 십억이 됩니다. 그래서 대천세계는 수치로 보면 십억 세계인데 소천 중천 대천으로 합해서 말하면 천이 세 번 있으므로 삼천대천(三千大千)세계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삼천대천세계는 이른바 사선천(四禪天)과 같으며 성주괴공(成住壞空)의 시기도 똑같이 합니다. 4선천은 물질세계를 다 통합한 세계인 것입니다.

무색계는 의식만 있으니까 물질세계의 공간적인 의미가 없겠지요. 공간도 실존적인 고유한 공간이 아니라 다만 상(相)을 나툰 거품 같고 안개 같은 허망상만 있는 공간입니다. 내 몸뚱이도 거품 같고 안개 같은 것인데 우리가 있다고 집착하듯이 삼천대천세계 4선천도 또한 본질적으로는 그림자 같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6. 열반진색(涅槃眞色)

 

열반진색(涅槃眞色)

 

∘열반(涅槃)은 색․성․향․미․촉․생․주․괴․남․여(色․聲․香․味․觸․生․住․壞․男․女)의 십상(十相)이 무(無)함.

 

∘색시무상(色是無常)이나 인멸시색(因滅是色)하여 획득해탈상주색(獲得解脫常住色)

-열반경(涅槃經)-

 

∘여래장중(如來藏中) 성색진공(性色眞空) 성공진색(性空眞色) 청정본연(淸淨本然) 주변법계(周遍法界 -능엄경(楞嚴經)-

 

∘일모공중(一毛孔中)에 무량불찰(無量佛刹)이 장엄청정(莊嚴淸淨)하여 광연안립(曠然安立)이라 -화엄경(華嚴經)-

 

∘찰찰진진(刹刹塵塵)이 구설구청(俱說俱聽)하여 설청(說聽)을 동시(同時)하니 묘재(妙哉)라 차경(此境)이여

-사명교행록(四明敎行錄)-

 

∘묘색담연상안주(妙色湛然常安住) 불이생노병사천(不移生老病死遷)

-명의집(名義集)-

 

우리는 색(色)이라 하면 색즉공(色卽空)인 허망한 색이 아닌가? 이렇게만 생각하고 진색(眞色) 또는 묘색(妙色)을 보통 무시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색즉공 제법공하는 그러한 색과 묘색과 진색은 경을 보면 엄연히 구분되어 있습니다. 이른바 진공묘유(眞空妙有)는 공(空)의 실체로 나타나는 실존적인 실상(實相)의 색 곧, 진색(眞色)이요 묘색(妙色)인데 이것을 부정하면 대승불법(大乘佛法)이 성립이 안 되는 것입니다.

 

열반(涅槃)은 색 ․ 성 ․ 향 ․ 미 ․ 촉 ․ 생(生)․ 주(住) ․ 괴(壞) ․남(男) ․여(女)의 십상(十相)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열반은 무상(無相)이라, 상을 여읜 영생(永生)의 자리요. 번뇌가 멸해 버린 자리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열반은 현상적이고 물질적인 색이나, 소리나, 향기나, 맛이나, 촉감이나, 또는 우주가 생기고 사람이 생기고 무엇이 생겼다는 생상(生相)이나, 또는 머물러 산다는 그런 머무름[住〕이나, 머물다가 다시 파괴되는 괴상(壞相)이나, 또는 남자다, 여자다, 하는 상(相)도 열반경계에는 없는 것입니다. 남, 여가 뚜렷이 구분이 있는 것은 욕계의 범주 내에서 뿐입니다. 욕계를 떠나면 벌써 남, 여의 상이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십상(十相)이 없는 것이 열반상(涅槃相)이라는 말입니다.

 

열반경에서는 '색시무상(色是無常)이나' 물질적인 색은 덧없지마는, '인멸시색(因滅是色)하여' 이 무상한 색이 멸함으로 말미암아 '획득해탈상주색(獲得解脫常住色)이라' 변함없이 영원히 존재하는 모든 번뇌를 해탈한 진실한 색(色) 곧 무량무변한 청정광명을 얻을 수 있다는 법문입니다.

 

현대 물리학에서 증명하는 바와 같이 저 물질의 끄트머리, 물질의 근원에는 광명만 남습니다. 따라서 일체의 존재란 것은 사실은 광명 위에 이루어진 광명의 파동입니다. 색이 비록 무상하나 이 무상한 색(色)이 멸함으로 말미암아서 해탈상주색 즉 성 ․ 주 ․ 괴 ․ 공에도 상관없고 또는 생(生)․주(住)․이(異)․멸(滅)에 상관없고, 인간의 생 ․ 로 ․ 병 ․ 사에도 상관이 없이 항시 영원히 머무는 해탈상주색인 묘색, 진색인 무량광명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능엄경』에는 '여래장중(如來藏中)에 성색진공(性色眞空)이요 성공진색(性空眞色)이라' 무량공덕을 갖춘 불성(佛性) 성품의 묘색(妙色)은 바로 진공이요, 여래장중에는 성품 곧 본체가 비어 있는 공(空)한 자리가 그대로 실상인 진색(眞色)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청정본연 주변법계(淸淨本然 周遍法界)라' 본래 청정한 진여 불성이 우주에 두루해 있는 것입니다.

 

『화엄경』에는 '일모공중(一毛空中)에 무량불찰(無量佛刹)이' 미소(微少)한 터럭 구멍 속에 한량없는 부처님의 나라가, '장엄청정(莊嚴淸淨)하여 광연안립(曠然安立)이라' 장엄하고 청정하게 조금도 줄어지지 않고 그대로 광활하게 보존돼 있다는 법문인데 『능엄경』, 『화엄경』, 『유마경』 등에 있는 법문입니다.

 

상대를 초월한 세계에는 크다, 작다, 많다, 적다 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일즉일체(一卽一切) 일체즉일(一切卽一)이라, 하나가 일체요 일체가 하나입니다. 삼천대천세계가 즉 나요, 내가 즉 삼천대천세계이고, 하나의 티끌이 삼천대천세계요, 삼천대천세계가 바로 한 티끌입니다. 이런 심심미묘한 가운데서는 하나의 터럭 구멍 가운데 무량불찰(無量佛刹)이, 삼천대천세계가 장엄 청정히 들어 있지마는 그것이 조금도 축소도 안 되고 그대로라는 말입니다.

 

'진진찰찰(塵塵刹刹)이 구설구청(俱說俱聽)하여' 우주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 땅이나 저 땅이나, 적광토나 사바세계나 극락세계나, 또는 이것이나 저것이나 일체 모두가 다 함께 설법하고 함께 듣는다는 말입니다.

 

저 영국의 18세기 시인 월리암 블레이크(Blake, William 1757~1827) 시(詩)에도 모래알 한 톨에서 우주를 보고 장미꽃에서 천지조화를 본다는 시 구절이 있지 않습니까마는 도인이 아니더라도 위대한 시인은 이와 같이 신비한 우주의 조화를 느낍니다. 어느 국토 어느 나라, 사바세계나 극락정토나, 또는 나무나 풀 한 포기를 보더라도 그렇게 범연히 보아 넘기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바로 보면은 모두가 진여불성 아님이 없기 때문에 서로서로 설법하고 설법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는 본래로 유기적(有機的)인 원융무애한 생명체입니다.

자연을 훼손하지 말라고 여러 모로 캠페인을 하는 것은 좋으나 철학적으로 모든 .존재의 동일(同一)한 생명관을 가르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대책입니다. 중국의 황하(黃河)를 저 하류(下流)에서 제아무리 맑히려 해도 맑힐 수가 있겠습니까? 저 황토층에서 황토가 내려오니 상류(上流)를 맑혀야 하는데 무슨 일이나 근원을 맑히는 데는 철학적 종교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근본 원리를 파악해 버리면 저절로 자연 훼손을 하지마라고 안 해도 일체가 동일한 생명이라고 생각할 때 어떻게 함부로 파괴하겠습니까? 지금 사회 운동권에서 고생하는 분들은 더러는 헛고생, 서투른 짓을 많이 합니다.

 

찰찰진진 두두물물이 모두가 서로 설법하고 서로 듣고 있습니다. 풀도 설법하고 풀도 듣고 있고, 돌멩이 하나도 설법하고 같이 듣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설청(說聽)을 동시(同時)하니' 먼저고 나중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서로 동시에 설법(說法)하고 청법(聽法)한다는 말입니다. '묘재(妙哉)라 차경(此境)이여!' 이 경계가 얼마나 신묘한 것인고! 이 게송은 사명지례(四明知禮,송시대宋時代) 존자라고 하는 분의 게송입니다. 천태교의 위대한 분이라서 존자라고까지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묘색담연상안주(妙色湛然常安住)하여' 묘색이 고요하고 맑게 항시 안주한다는 말인데 신묘한 진공묘유의 색, 청정미묘한 생명의 광명이 항시 안주해서 '불이생로병사천(不移生老病死遷)이라' 생로병사에 따라서 옳기지 않는다. 생로병사야 있든 말든 일체 차별 경계를 초월하여 영원불멸하게 빛나는 청정광불(淸淨光佛) 바로 아미타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