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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1. 실상 염불선

29. 4. 오지총관도(五智總觀圖)

 

4. 오지총관도(五智總觀圖)

 

 

 

 

 

 

<금강심인(金剛心印) 불심인(佛心印) 자륜(字輪) 금륜도(金輪圖)>

 

따라서 밀교에서는 오지여래를 관찰하는 법이 있습니다. 관찰하는 법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지만 우선 우리 몸을 중심으로 공부하는 것이 실감이 나고 빠르겠지요. 그래서 우리가 앉아 있다면 아래 부분인 배꼽 밑으로는 지(地)로 봅니다. 이렇게 관찰하는 것이 생각해 보면 아주 합리적이고 또 심심미묘한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수(水)는 둥그런 복부, 배꼽 위에서 심장까지를 말하고 화(火)는 심장에서 목까지이고 풍(風)은 얼굴 전체를 말하고 공(空)은 지나 수나 화나 풍이나 모두가 공간성이 있어야 존재성을 가질 수가 있으므로 모두를 합한 중심점에다 두는데 우리 머리의 정상으로 봅니다.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중심으로 해서 관찰하는 법은 밀교에서 오륜신관(五輪身觀) 또는 오자엄신관(五字嚴身觀)이라 합니다. '내 아랫도리는 지(地)로서 성소작지를 갖추었고, 내 복부는 대원경지이기 때문에 아주 원만스러운 지혜를 다 갖추었으며, 내 심장은 묘관찰지이기 때문에 모든 관찰하는 지혜를 다 갖추었고, 내 목 위에는 풍(風)이기 때문에 평등성지를 다 갖추었으며, 공(空)자리는 머리 꼭대기인 정상으로서 가운데 중심인 동시에 총덕을 온전히 갖추었다 ' 이렇게 관찰하는 법입니다.

 

그러나 복잡하니까 참선하는 분들은 '이런 것도 있구나' 하고서 자기 몸뚱이가 싫어질 때는 내 아랫도리는 정덕(淨德)이고 내 심장은 상덕(常德)이고 이와 같이 몸을 불성공덕에 비추어 생각하면 그때그때 싫증을 제거할 수가 있는 방편도 되겠습니다. 별덕으로는 자기 몸을 떠나서 지(地)덕으로 성소작지를 생각하고 수(水)덕으로 대원경지를 생각하고 이렇게 각기 오지여래에 마음을 두고 생각하는 법도 있습니다. 부처님의 법문은 모두가 우리에게 어떻게 번뇌망상을 없앨 것인가? 또는 혼침을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 하는 선교방편(善巧方便)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일체 공덕이 갖추어 있고 우주에도 조그마한 티끌 가운데도 모두 갖추어 있다고 느껴버리면 사실은 복잡하고 어려운 방편에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 가지 공덕을 다 모아서 표현한 것이 오지총관도(五智總觀圖)입니다. 네모진 것은 이 지(地)의 정덕(淨德)이요, 둥그런 원은 아덕(我德)이 되고, 또 삼각형은 상덕(常德)이며 묘관찰 지혜이고, 또한 반원은 이른바 낙덕(樂德)입니다. 그리고 공은 정상의 한 점이니까 가운데 점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5지총관도를 그려서 우리가 혼침이나 분별시비 번뇌 망상이 많을 때 이를 없애기 위해서 오지총관도(五智總觀圖) 곧 금강심인(金剛心印) 불심인(佛心印) 금륜도(金輪圖)를 공부하는 앞에다 붙여놓고 부처님의 무량공덕이 한량없음을 관조(觀照)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나와 있는 법문은 어느 개인적인 독단은 조금도 없으며 또한 금타 스님께서 말씀한 법문은 모두가 불경에 있는 말씀을 인용했고 다만, 현대적인 과학 이론이나 현기(懸記) 곧 미래에 대한 통찰 등은 금타 스님의 독창적인 법문입니다.

 

 

5. 우주(宇宙)의 본질(本質)과 형량(形量)

 

1) 서문(序文)

 

제가 이렇게 금강심론(金剛心論)을 말씀 드리니까 '자기가 받드는 스승이니까 치켜세우는구나' 하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런지 모르지마는 저는 이미 황혼이 짙은 수행자의 분상에서 그 정도로 속되지는 않습니다. 앞으로 과학과 불교와의 관계 설정은 우리 불교인들에게 필수적인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굳이 말씀을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서문(序文)

 

일미(一微)를 오견(誤見)하면 망상(妄想)이 되고, 정견(正見)하면 진각(眞覺)이 된다. 일체만사(一切萬事)가 자기(自己)의 견해(見解)에 의(依)하여 진망(眞妄)이 간별(揀別)될 뿐, 일미(一微)나 일체(一切)에 본래(本來) 진망(眞妄)이 없으며 기세간(器世間:현상세계(現象界)) 이대로가 일진법계(一眞法界)로서 일체중생(一切衆生)이 일불(一佛)의 화신(化身)이며, 개별적(個別的) 화신(化身)이 바로 본신(本身)의 불(佛)임을 망각(忘却)하고, 전도망상(顚倒妄想)하여 미혹인(迷惑人)이 되고 스스로 범부(凡夫)라 이름하나 일대인(一大人)에게는 성범(聖凡)이 없다.

 

"만약 사람이 삼세(三世)의 일체(一切)가 불(佛)임을 요지(了知)하고자 하면, 마땅히 법계성(法界性)을 관찰(觀)할지니, 일체(一切)가 유심(唯心)의 소조(所造)니라."(약인욕요지(若人欲了知) 삼세일체불(三世一切佛)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함은 화엄게(華嚴偈)이다. 법계성(法界性)을 견(見)하고 그 이하(以下)는 색법(色法)으로써 전간(全揀)하며, 이상(以上)은 심법(心法)으로 전수(全收)하니, 색즉시공(色卽是空)이요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 공(空)이란 색애(色碍)가 없는 부단공(不但空)인 진공(眞空)을 말하며, 색(色)이란 질애(質碍)이면서 그림자와 같이 진공체(眞空體)의 묘용(妙用)인 가상(假相)을 말하므로, 즉체(卽體) 즉용(卽用)으로서 성․상(性․相)이 일여(一如)이며, 즉심즉불(卽心卽佛)이므로, 삼세(三世) 일체(一切)가 보현경(普賢境)이다.

 

그러나, 미혹인(迷惑人)은 대일심체(大日心體)가 질애적(質碍的) 그림자에 가리워, 진지(眞智)의 증명(證明)이 없이 망견(妄見)을 세워서 진리(眞理)라고 생각하며, 주객(主客)이 전도(顚倒)한 사실(事實)마저 부인(否認)한다.

이에 몇 가지 예(例)를 들면, 열(熱)이 지륜계(地輪界)(지구(地球)와 지구(地球)의 반경(半徑)을 배증(倍增)한 구상(球狀)의 허공신(虛空身)을 운(云)함) 자신(自身)의 열(熱)임을 모르고, 열원(熱源)이 태양(太陽)에 있다고 하며, 광명(光明) 또한 지구(地球) 자아(自我)의 광명(光明)임을 모르고 태양(太陽)이 광원(光源)이라 한다. 그리고, 월(月)은 태양(太陽)의 반영체(反映體)라 한다.

 

그러나, 만근(輓近) 비행술(飛行術)이 발달(發達)하자, 태양을 향하여 상승(上昇)할수록 냉기(冷氣)가 다가오고, 또한 어둠을 느끼며, 달밤에는 온기(溫氣)가 느껴지는 사실(事實)은 무슨 이유(理由)인가? 또는 월(月)의 상현(上弦)과 하현(下弦)이 지구(地球)의 그림자에 가리운 표징(表徵)이라 하는데 과연 의문이 없을 것인가?

 

현대과학(現代科學) 문명(文明)을 자랑하면서, 아직도 은하수(銀河水)가 무엇임을 분명(分明)히 알지 못하며, 일월성수(日月星宿)가 어째서 허공(虛空)에 부유(浮遊)하고 있는지, 그리고 좌전(左轉) 또는 우전(右轉)하지 아니치 못할 이유(理由)가 나변(那邊)에 있는지, 이에 대(對)한 해명(解明)이 애매(曖昧)하며, 역년일시(曆年一時)가 365일(日)과 6시(時) 미만(未滿)임을 경험(經驗)하면서, 태양(太陽)과 지구(地球)의 거리(距離)와는 무관(無關)한 사실(事實)이라 생각하고, 굳이 지구(地球) 반경(半徑)의 23,440배(倍)라 말하며, 빛(光)이 태양(太陽)에서 지구(地球)까지 여행(旅行)하는데, 8분(分) 20초(秒) 걸린다고 한다. 아무튼 수자(數字)는 형식과학(形式科學)에 속(屬)하나 요(要)는 주관점(主觀點)이 어디에 있느냐가 문제(問題)이다.

 

20세기(二十世紀) 문명(文明)이 여지껏 우주(宇宙)를 해부(解剖)하지 못하며, 육안(肉眼)의 실성(實性)을 회복(回復)한 천안(天眼)에 의(依)해서만 발견(發見)할 수 있는, 양핵(陽核)의 칠분일(七分一)에 해당(該當)하는 금진(金塵), 곧 원자핵(原子核)의 본질(本質)을 분석과학(分析科學)에 의(依)하여 발견(發見)하려고 허로(虛勞)를 비(費)함은, 정안(正眼)이 있는 자(者) 입을 삼가하고 있을 수 없으니, 정견(正見) 있는 인사(人士)는 채찍을 들고 일어서라! 그리고 성인(聖人)들이 인정(認定)한 바, 장구(長久)한 세월(歲月)을 두고, 뼈가 되고 피가 되고 살이 된 정신문명(精神文明)을 등장(登場)시켜라!

 

본설(本說) “우주(宇宙)의 본질(本質:법계성法界性)과 형량(形量:행상行相)"인 편언척구(片言隻句)가 만(萬)에 일(一)이라도 정도(正道)를 지시(指示)하는 조도적(助道的) 자량(資糧)이 될 수 있다면, 행심(幸甚)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본설(本說)을 육절(六節)로 대별(大別)하고 백항(百項)으로 소분(小分)하였으나, 일관(一貫)된 도리(道理)로 시종(始終)하였으며, 더욱이 태장계(胎藏界)의 수치(數値)로써 일율적(一律的)으로 계산(計算)한 수자(數字)이므로, 백중기일(百中其一)을 인정(認定)할 때, 백(百)을 또한 부인(否認)할 수 없을 것이므로, 췌언(贅言)이면서 이를 부언(附言)하는 바이다.

 

임오(壬午:1942년) 6월(月) 9일(日)

어(於) 정읍(井邑) 내장산(內藏山) 벽련선원(碧蓮禪院) 석금타(釋金陀) 식(識)

 

제가 금타 스님의 우주론(宇宙論)의 서문을 읽어 드렸습니다. 그리고 혹 참고가 되실까하여 저의 '머리말'을 소개해 드립니다.

“금타화상(金陀和尙)께서 저술한 바, 미증유(未曾有)한 파천황(破天荒)의 우주론은 단순한 사변적(思辯的)인 소산이 아닐 뿐 아니라, 경험 과학적인 시도와는 그 차원을 달리한 순수 직관적인 현묘(玄妙)한 선정(禪定)을 통한 통찰이기 때문에, 그 내용에 있어 현행 천문학과 현격한 차이가 있음은 도리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현대천문학 또한 아직도 암중모색(暗中摸索)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니, 설사 금타 스님의 천문설이 하나의 가설(假說)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너무나 거창하고 합리적인 체계를 어느 뉘라서 감히 부정할 수가 있을 것인가?

또한, 화상의 우주론은 어디까지나 불설(佛說)에 그 근저(根抵)를 두었으며, 불교 우주관인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곧 10억 우주에 관한 초유(初有)의 체계화임을 감안할 때, 참으로 귀중한 불교 문헌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특히 불교인으로서는 불교 우주관에 대한 깊은 고려 없이 다만 일지반해(一知半解)한 천문상식만으로 천박한 비판을 함부로 한다면, 도리어 방불훼법(謗佛毁法)의 허물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그런데, 화상의 우주론이 저으기 난해한 것은 천문학 본래의 성격상 어쩔 수 없을 뿐 아니라, 본 저술이 구체적인 주해(註解)가 없는 원리(原理)만의 논술이기 때문에 부득이한 일이니, 모름지기 진지한 구도인(求道人)의 자세로 숙독(熟讀) 음미한다면, 반드시 귀중한 조도(助道)의 자량(資糧)이 될 것임을 확신하는 바이다.”

 

우주의 본질(本質)과 형량(形量)은 백항(百項)으로 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서 몇 항목만 골라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2) 좌선진(左旋塵)과 우선진(右旋塵)

 

좌선진(左旋塵)과 우선진(右旋塵)

 

지진(地塵)의 4/5는 수진(水塵)이며 1/5은 화진(火塵)이므로 이를 해체(解體)할 경우는 지성(地性)을 얻을 수가 없다. 수진(水塵) 혹(或)은 화진(火塵)의 진체(塵體)란 또한 지성(地性)을 대(帶)하므로 지성(地性)을 떠나서는 수․화(水․火) 이진(二塵)을 인정(認定)할 수가 없다. 냉열(冷熱)의 차(差)가 풍진(風塵)이므로 수․화(水․火) 이진(二塵)을 인정(認定)하지 않고서는 풍진(風塵)을 찾을 수가 없다.

 

아무튼 사대진(四大塵)이 일신(一身)이 되어 떠날 수 없는 사실(事實)이므로 사대(四大)를 또한 객진(客塵)이라고 할 수 없으며 다 같이 일금진(一金塵)의 사대(四大) 작용(作用)이다. 좌선금진(左旋金塵)이 수진(水塵)이며 우선금진(右旋金塵)이 화진(火塵)이다. 그리고 그 진체(塵體)가 지성(地性)이며 좌선(左旋) 혹(或)은 우선(右旋)이 풍성(風性)으로서, 좌선(左旋)은 우선(右旋)에 대(對)해서만 좌선(左旋), 우선(右旋)은 좌선(左旋)에 대(對)해서만 우선(右旋)이다. 결국(結局) 좌우(左右)의 명(名)과 선회(旋廻)의 상(相)이 남을 뿐으로서 명․상(名․相)을 떠나면 공(空)인 것이다.

 

그러나 다만 공(단공但空)이 아닌, 질신(質身)의 궁경(窮竟)으로서 분석(分析)할 수 없는 하나의 주진(主塵)을 이에 금진(金塵)이라 운(云)한다.

그리고 좌선진(左旋塵)은 동성상인(同性相引), 이성상척(異性相斥)의 특성(特性)이 있고, 우선진(右旋塵)은 동성상척(同性相斥), 이성상인(異性相引)의 특성(特性)이 있기 때문에 드디어 사성(四性)의 차별(差別)이 기(起)하므로 동성상인(同性相引)을 수성(水性), 이성상척(異性相斥)을 지성(地性), 동성상척(同性相斥)을 화진(火性), 이성상인(異性相引)을 풍성(風性)이라 운(云)하므로, 사진(四塵)이라 할지라도 일금진(一金塵)이 좌선(左旋) 혹(或)은 우선(右旋)으로 말미암아 사상(四相)을 정(呈)하는 것이다.

 

앞에서 대강 윤곽을 말씀드렸으므로 짐작이 되시리라 믿습니다마는 지․수․화․풍 사대(四大)는 물질인데 그것이 시초에 어떻게 나왔는가 하는 것은 현대과학 문명시대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것은 일체 물질의 근원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34항 좌선진(左旋塵)과 우선진(右旋塵)은 그 대목입니다. 우주의 순수 에너지가 말하자면 금진(金塵)인데, 이 금진이 왼편으로 도는 것과 또는 오른편으로 도는 것에 따라 사대(四大)가 형성된다는 내용입니다.

지진(地塵)은 산소나 수소나 질소 등 지구나 대류권에 있는 물질들을 말합니다.

 

지진의 4/5는 수진(水塵)이며 1/5은 화진(火塵)이므로 이를 해체할 경우는 지성(地性)을 얻을 수가 없다. 4/5의 수(水)와 1/5의 화(火)가 적당히 인연 화합되어서 지(地)가 되었으니 지(地)를 해체할 때에는 지(地)라는 성품은 없다는 말입니다. 마치 우리 몸뚱이가 지․수․화․풍 4대가 화합되어 몸이라고 하는데 지․수․화․풍 4대를 분석해버리면 우리 몸뚱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와 똑같은 이치입니다.

 

수진(水塵) 혹은 화진(火塵)의 진체(塵體)란 또한 지성(地性)을 띠므로, 지성이란 질료가 될 수 있는 하나의 요소를 말합니다. 지성(地性)을 떠나서는 수․화 2진(塵)을 인정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화진이나 수진도 그 가운데 벌써 지성을 하나의 성품으로 갖추었다는 말입니다. 나 가운데 네가 있고, 너 가운데 내가 있고 일미진중 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이라, 조그마한 티끌 가운데도 우주의 모든 성품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상(相)만 보니까 구분해 보는 것이지 본 성품으로 본다면 무장무애(無障無得)라, 이것 가운데 저것이 들어 있고 저것 가운데 이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냉열(冷熱)의 차가 풍진(風塵)이므로 수(水), 화(火) 2진(塵)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풍진을 찾을 수가 없다.

 

냉은 수(水)적 성질이고 열은 화(火)적인 성질이 되므로 즉 수 ․ 화의 차가 풍진인데 풍은 에너지학에서 말하는 하나의 동력 이른바 운동 에너지로서 수 ․ 화 2진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동력 즉 풍진을 얻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수 ․ 화의 차가 있으니까 풍진이 나오는 것인데 수 ․ 화 2진이 먼저 선행적으로 인정되지 않고서는 풍진을 얻을 수 없겠지요.

아무튼, 지 ․ 수 ․ 화 ․ 풍 4대진(四大塵)이 한 몸이 되어 떠날 수 없는 사실이므로 사대(四大)를 또한 객진(客塵)이라고 할 수 없으며, 다 같이 한 금진(金塵)의 사대(四大)작용이다.

 

그러니까 원래는 우주의 순수 에너지, 순수의 정기인 금진인데, 금진이 인연 따라서 이렇게 움직이고 저렇게 움직이는 작용으로 4대가 나왔다는 말입니다.

좌선금진(左旋金塵)이 수진(水塵)이며 우선금진(右旋金塵)이 화진(火塵)이다. 그리고 그 진체(塵體) 즉 질료가 지성(地性)이며, 좌편으로 도는 것이나 혹은 우편으로 도는 동력이 풍성(風性)으로써 좌편으로 도는 것은 우편으로 도는 것에 대해서만 좌선(左旋)이고 오른편으로 도는 것은 왼편으로 도는 것에 대해서만 우선(右旋)이다. 결국 좌(左), 우(右)의 이름과 도는 상(相)이 남을 뿐임으로서 이름과 상을 떠나면 공(空)이라.

 

그러나 다만 공(但空)이 아닌, 질신(質身)의 궁경(窮竟)으로서, 가장 미세한 끄트머리로서 분석할 수 없는 하나의 주진(主塵)을 이에 금진(金塵)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좌선진은, 좌편으로 도는 금진(塵)은 동성(同性)끼리 서로 이끌고 이성(異性)끼리 서로 배척하는 특성이 있고, 또는 우편으로 도는 금진은 동성끼리 서로 배척하고 이성끼리 서로 이끄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드디어 지․수․화․풍 사성(四性)의 차별이 생기므로 동성끼리 서로 이끄는 것을 수성(水性), 이성끼리 서로 배척하는 것을 지성(地性), 동성끼리 서로 배척함을 화성(火性) 이성끼리 서로 이끄는 것을 풍성(風性)이라 말하므로 지․수․화․풍 4진(四塵)이라 할지라도 한 금진이 좌편으로 도는가 혹은 우편으로 도는가에 따라서 사상(四相)을 보이는 것이 지․수․화․풍 4대(四大)라는 말입니다.

 

3) 자금진(磁金塵)과 전금진(電金塵)

 

자금진(磁金鹿)과 전금진(電金塵)

 

좌선금진(左旋金塵)이 우선금진(右旋金塵)에 대(對)하여 자기(磁氣)가 생(生)하고, 우선금진(右旋金塞)이 좌선금진(左旋金塵)에 대(對)하여 전기(電氣)를 발(發)하므로 좌선금(左旋金)을 자기진(磁氣塵), 우선금진(右旋金塵)을 전기진(電氣塵)이라 말한다.

그리고 일구(日球)와 수성(水星)은 좌선체(左旋體)이므로 우선체(右旋體)인 월(月) 또는 화성(火星)에 대(對)하면 자기(磁氣)가 생(生)하여 이것이 인력(引力)이 되고, 우선체(右旋體)는 좌선체(左旋體)에 대(對)하여 전기(電氣)를 발(發)하여 이것이 척력(斥力)이 된다.

 

요(要)컨대 자기(磁氣)는 좌선력(左旋力)에 반(伴)하고, 전기(電氣)는 우선력(右旋力)에 반(伴)한다. 따라서 우주(宇宙)의 평형적(平衛的) 인력(引力)은 성무계(星霧系) 좌선진체(左旋塵體)의 자기(磁氣)에 말미암은 좌선력(左旋力)이며, 기울음(의歪)을 생(生)하는 척력(斥力)은 유성계(遊星界) 우선진체(右旋塵體)의 전기(電氣)에 말미암은 우선력(右旋力)이다.

 

그 다음은 자금진(磁金塵)과 전금진(電金慶)은 자기와 전기, 이른바 플러스(+) 마이너스(-)라는 말입니다.

좌편으로 도는 금진이 우편으로 도는 금진에 대해서 자기(磁氣) 즉 플러스(+)가 생기고 우편으로 도는 금진이 좌편으로 도는 금진에 대하여 전기 즉 마이너스(-)가 생기므로, 좌선(左旋) 금진을 자기진, 우선(右旋) 금진을 전기진이라 말한다.

그 다음은 전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생략하겠습니다.

 

 

4) 금진(金塵)과 대천세계(大千世界)

 

금진(金塵)과 대천세계(大千世界)

 

<일우주(一宇宙)의 체적(體積)으로서 이것이 일체(一切)의 근거(根據)인 등체(等體)의 금진량(金塵量)> × 1000000000(10003) =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의 근거(根據)인 십억(十億) 우주(宇宙)의 전체적(全體積)으로서 이것이 무량무변(無量無邊)의 세계해(世界海)에 부구(浮漚)가 되어 아우주(我宇宙)와 성․주․괴․공(成․住․壞․空) 사겁(四劫)의 기간(期間)을 함께 한다.

× 7 = 십억우주(十億宇宙)에 따른 윤계(輪界) 체적(體積)

+ = 이것이 여기에 취급(取扱)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이다. 마치 무량무변(無量無邊)의 금해(金海)에 십억(十億)의 금구(金漚)가 부유(浮遊)하고 있는 중(中)에, 또한 무량(無量)의 금구(金漚)가 인다라망(因陀羅網)을 이루고 있는 것과 같다. 실제(實際)는 일우주(一宇宙)의 팔십억배(八十億倍)이나 대수(大數)로써 백억세계(百億世界)라 운(云)한다.

 

금진(金塵)과 대천세계(大千世界)에 나와 있는 어마어마한 수치는 현상적인 사바세계 수치와는 다른 것입니다. 태장계(胎藏界) 수치, 곧 밀교(密敎) 수치이기 때문에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수치는 아닙니다. 이것은 산수(算數)적 수치가 아니라 대수적(代數的) 수치입니다.

 

이것이 본문에서 취급하는 삼천대천세계이다. 마치 무량무변의 금색 바다엔 10억의 금색 거품이 떠돌고 있는 가운데, 삼천대천세계는 이른바 10억 우주인데 한 우주를 한 거품으로 보았습니다. 따라서 그 한 우주 가운데에는 지구가 들어 있습니다. 또한 무량의 금색 거품이 인다라(1ndra 因陀羅:帝釋天) 망(網)을 이루고 있는 것과 같다.

 

삼천대천세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또 이런 삼천대천세계가 한도 끝도 없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세계라는 것이 얼마나 넓은가는 우리가 상상을 할 수가 없는 무량무변한 세계입니다.

헤아릴 수 없는 무수한 금구(金漚) 곧 금색거품이라, 무량무변의 금색 바다에 물리적인 때묻은 보통 광명이 아니라 청정적광(淸淨寂光) 광명의 바다에, 조금도 거리낌이 없이 유동하기 때문에 바다라는 표현을 썼겠지요. 십억의 금색 거품이 뛰놀고 있는 가운데 또한 무량의 금색 거품이 인다라망을 이루고 있다.

 

인다라망은 모든 악을 제하고 모든 선을 다 갖춘다는 뜻입니다. 즉 말하자면 일체 공덕을 다 갖춘다는 뜻입니다. 상(相)으로 말하면 제석천에 걸려 있는 마니보주로 된 그물입니다. 제망중중(帝網重重)이라고 할 때의 제망이란 제석천의 보배 그물인 인다라망입니다. 이것은 그냥 물질로 된 것이 아니라 영롱한 광명체로 된 그물이라는 뜻이고 또 나쁘고 때 묻은 것은 흔적도 없고 좋은 것만이 서로서로 장애 없이 원만하게 갖추어져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바르게 본다면 한도 끝도 없는 금색 광명의 바다에 십억 세계가 마치 금색 거품과 같이 뛰놀고 있기에, 지구나 태양이나 다 똑같은 광명체인 금색 광명이고 제 아무리 작은 가운데에도 무량의 공덕이 다 갖추어 있어서 인다라망을 이루고 있다. 곧 무량공덕을 이루고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우주의 팔십억 배이나 대수(大數)로서 백억 세계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까지 해서 금강심론의 법문을 간추려 대강만 말씀하게 되어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마는 횡설수설 이 정도로 끝마치도록 하겠습니다.

 

5) 수묘게 (數妙偈)

 

數妙渴

수묘게

一是不空萬法起焉滿十俱空非空而空

일시불공만법기언만십구공비공이공

 

二假相應非本非迹三法輾轉因果同時

이가상응비본비적삼법전전인과동시

 

本具四大居常五位四大互因二八成實

본구사대거상오위사대호인이팔성실

 

七依一實六輪常轉二四三三互爲因果

칠의일실육륜상전이사삼삼호위인과

 

五位三法含藏一實九果八因包和常住

오위삼법함장일실구과팔인포화상주

 

胎藏十六隨緣比周一地三水五火七風

태장십육수연비주일지삼수오화칠풍

 

三五爲本一七示迹七三滿數五一過半

삼오위본일칠시적칠삼만수오일과반

 

滿者欲平過半生歪離垢一地十五金剛

만자욕평과반생의이구일지십오금강

 

等體金塵遍滿十方一切萬有隨器分資

등체금진편만시방일체만유수기분자

 

雖現此身內外正依地水火風四界攝持

수현차신내외정의지수화풍사계섭지

 

金塵合空性相難分細根麤境隱顯左右

금진합공성상란분세근추경은현좌우

 

金塵一七便成水塵三七陰火五七陽性

금진일칠변성수진삼칠음화오칠양성

 

七七起風又七化土地塵五分四水一火

칠칠기풍우칠화토지진오분사수일화

 

左轉水地引同斥異右轉風火引異斥同

좌전수지인동척이우전풍화인이척동

 

地下風動水貪火嗔緣起若存緣滅若亡

지하풍동수탐화진연기약존연멸약망

 

隱性顯相二名一實欲隱無內欲顯無外

은성현상이명일실욕은무내욕현무외

 

수묘게(數妙偈)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것은 수치에 묘한 진리가 포함돼 있다는, 말하자면 수(數)자체가 바로 우주에 있는 생명의 상징이라는 것입니다. 철학자로서는 그리스의 피타고라스(Pythagoras)가 수(數)가 생명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하였다는데 주역(周易)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주는 바로 수(數)로 구성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소리나 또는 사이클(cycle) 즉 단파, 장파 같은 주파수(周波數)등 어떻게 진동하는가? 하는 것이 모두 수입니다. 우리는 수라는 것에 신비로운 영감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가사, 현대는 기술 문명, 기술의 싸움이라고 하는데 기술이란 것이 모두가 다 수에서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수학을 못하면 물리학을 못하는 것 아닙니까. 또 철학을 할 때도 수학은 항시 기본이 됩니다.

 

수묘게(數妙偈)는 하나부터 열까지 그 수(數)의 원리를 풀이한 것입니다.

일시불공 만법기언(一是不空 萬法起焉)’ 하나〔一〕이것은 공(空)이 아니어서 만법이 일어나나,

‘만십구공 비공이공(滿十俱空 非空而空)’이라, 만수(滿數)인 십(十)이 되면 공이 되는데 공이 아니면서 바로 공이 되는 것이다. 즉 본래 공이 아닌 존재가 어느 한계에 이르러 만수(滿數)가 갖추어지면 공으로 돌아간다는 말입니다. 성겁이 되고 주겁이 되고 괴겁 동안에는 (-), (+)가 차이가 있으니까 활동이 되는 것이지 합해져 버리면, 다 차버리면 공겁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움직이는 싸이클이 완전히 (-), (+)가 동등히 되어서 합(合)해져버리면 공겁이 되는 것입니다.

 

‘이가상응 비본비적(二假相應 非本非迹)’이라, 공과 공 아닌 것, 즉 공(空)도 유(有)도 가(假)인데 두(二) 가(假)가 서로 같이 응하면서 결국은 근본도 아니고 결과도 아니다. 이 말은 공이 근본이 되거나 또는 유가 근본이 되는 것도 아니고 색(色:有) 즉 공(空)이요 공즉색이니 서로 같이 겸해있다는 말입니다. 인연에 따르면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은 인연이 소멸되면 공이 되는 것입니다.

 

‘삼법전전 인과동시(三法輾轉 因果同時)’라, 혹(惑)업(業)고(苦)를 삼법(三法)이라 합니다. 혹은 번뇌요, 업은 번뇌 따라서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으로 짓는 행위요, 업으로 받는 과가 고(苦)입니다. 번뇌에서 업을 짓고 고를 받는 3법이 전전(輾轉)이라, 구르고 굴러서 같이 인이 되고 또는 과가 된다는 말입니다.

 

가사, 우리가 누구를 미운 사람이라고 할 때는 그 미운 생각이 혹이고, 미운 이를 비방하거나 때리는 행위 등이 업이며, 그 업으로 인하여 받는 보복 등이 고(苦)입니다. 그러한 번뇌와 업은 또한 우리 잠재의식에다 미운 종자를 심는 것입니다. 양자역학의 도리로 본다면 밉다고 생각할 때는 우리 생리에 전자를 더 증가를 시키고 좋다고 생각하면 양자를 증가를 시키는 것입니다. 욕심이나 진심(嗔心)을 많이 내면 낼수록 더욱 더 증가되다가 욕심이나 진심(嗔心)이나 굳어지면 응어리가 생기는 것입니다. 성을 많이 내고 욕심을 많이 내면 결국은 응어리가 생겨 몸의 조화가 깨져서 병이 생기는 것입니다. 암(癌) 등도 역시 욕심이나 진심이 모이고 모여서 응어리진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본구사대 거상오위(本具四大 居常五位)라, 본래 지 ․ 수 ․ 화 ․ 풍 4대가 근본 성품(佛性)에 갖추어 있고 일체 만법을 5위(位)로 포괄하는데 그 5위도 또한 근본 성품에 온전히 갖추어 있다는 것입니다. 5위는 근본 불교의 법상(法相)풀이로서 색법(色法) ․ 심법(心法)․ 심소유법(心所有法) ․ 심부상응법(心不相應法) ․ 무위법(無爲法)입니다.

‘사대호인 이팔성실(四大互因 二八成實)’이라, 지수화풍 사대가 서로 이끌어서 2⨯8=16, 16의 도리로 실상(實相) 세계가 이루어지도다. 16의 수치(數値)는 1지(地) 3수(水) 5화(火) 7풍(風)을 합하여 16이 되는데 밀교(密敎)에서 원만무진(圓滿無盡)을 의미합니다.

 

‘칠의일실 육륜상전(七依一實 六輪常轉)’이라, 순수한 일금진(一金塵)이 제7식〔末那識〕또는 7풍에 의지하여 육도중생으로 항시 윤회한다는 말입니다. 본래는 순수 생명인 금진자리인데 제7 말나식(末那識)인 망식(妄識)에 의하여 지옥 ․ 아귀 ․ 축생 ․ 아수라 ․ 인간 ․ 천상 등 6도(六途)를 끊임없이 윤회하는 것입니다.

 

이사삼삼 호위인과(二四三三 互爲因果)’라, 2×4=8의 팔식(八識)과 3× 3=9의 9식(九識)이라, 9식은 청정식(淸淨識)으로 근본 바탕인 진여불성이고 8식은 아뢰야식(阿賴耶識)으로서 일체 유정(有情)의 근본심식(根本心識)을 말하는데 이 8식과 9식이 서로 인이 되고 과가 된다는 뜻입니다.

‘오위삼법 함장일실(五位三法 含藏一實)’이라, 아까 말한 심법 ․ 색법 ․심소유법 ․심부상응법 ․ 무위법의 5위(五位)와 혹업고(惑業苦)의 3법(三法)이 돌고 돈다 하더라도 일실(一實)인 청정 한 금강불성은 다 언제나 갖추어 있다는 뜻입니다.

 

구과팔인 포화상주(九果八因 包和常住)’라, 청정식인 9식은 과(果)이고 8식인 아뢰야식은 일체 업(業)을 갈무리하는 장식(藏識)인 인(因)인데 항시 서로 포함하여 조화롭게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태장십륙 수연비주(胎藏十六 隨緣比周)’라, 태장계는 16수로 되어 있다는 말인데 16수는 1지(地) ․ 3수(水) ․ 5화(火) ․7 풍(風)의 수를 합하면 16이 됩니다. 이런 법수(法數)는 여기서 설명을 다할 수는 없고 하여튼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 공덕수(功德數)가 16입니다. 태장계란 밀교(密敎)에서 말하는 원리의 세계입니다. 생명의 본체인 성품 공덕이 인연 따라 두루 미치게 된다는 뜻입니다.

 

일지삼수 오화칠풍(一地三水 五火七風)’이라, 생명적인 수치 곧 태장계 수치로 봐서 1은 지(地)에 해당하고 3은 수(水)에 해당하고 5는 화(火)에 해당하고 7은 풍(風)에 해당합니다.

삼오위본 일칠시적(三五爲本一七示迹)’이라, 3인 수(水)와 5인 화(火)가 근본이 되고 1인 지(地)와 7인 풍(風)이 자취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칠삼만수 오일과반(七三滿數 五一過半)’이라, 7인 풍(風)과 3인 수(水)가 합하면 만수인 10이고 또는 5인 화(火)와 1인 지(地)가 합하면 6이 되니 반(半)을 넘는다는 뜻입니다.

 

‘만자욕평 과반생의(滿者欲平 過半生歪)’라, 7과 3이 합해진 만수(滿數)는 가만히 있으려고 하지만 5와 1인 즉 화(火)와 지(地)가 6이 되어서 반수를 넘으니까 삐뚜름하게 반발한다는 뜻입니다. 마이너스(-) 프러스(+)가, 음양이 같으면 역동적(力動的)인 성겁(成劫)이 안 되나 우주 에너지가 똑같지가 않으니까 움직이고 결합하고 하여 성겁(成劫)이 되는 것입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와 같이 똑같지 않으니까 사람으로 나와서 우리가 있는 것이지 같았으면 항시 공겁에 머물러 인간으로 나올 수 없습니다.

 

리구일지 십오금강(離垢一地 十五金剛)’이라, 1인 지(地)에서 모든 번뇌를 여의면 15금강이라, 15야(夜) 만월(滿月)같이 일체 공덕을 갖춘 훤히 트인 금강세계가 된다. 그래서 태장계 16공덕은 변함이 없습니다.

등체금진 변만시방(等體金塵 遍滿十方)’이라, 우주와 같은 체성(體性)인 금진이 온 세계에 편만해 있으니 우주가 바로 금진 세계입니다.

일체만유 수기분자(一切萬有 隨器分資)’라, 일체 만유는 각기 그릇 따라서 곧 업(業) 따라서 공덕을 달리 받고 있습니다.

‘수현차신 내외정의(雖現此身 內外正依)’라, 비록 이 몸을 나투어도 정신과 육체, 성품과 환경을 다 갖추었으며

 

지수화풍 사계섭지(地水火風 四界攝持)’라, 우주란 것은 지와 수와 화와 풍과 이런 것이 서로 어우러져서 구성이 되었다.

‘금진합공 성상리분(金塵合空 性相離分)’이라, 금진은 본래 허공과 합해 있으니 성품과 상(相)을 나누기 어렵다.

‘세근추경 은현좌우(細根麤境 隱顯左右)’라, 세근은 성품으로 있는 능조사대(能造四大)에 해당하는 것이고 추경은 현상으로 나툰 소조사대(所造四大)인데 능조사대와 소조사대가 서로 인연 따라 나타났다 숨었다 자유자재로 한다는 뜻입니다. 상(相)과 성품이 본래 둘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지 않겠습니까? 중생이란 업력으로 상(相)이 나타나는 것이고 업력이 다하면 성품으로 숨어지는 것입니다.

 

금진일칠 변성수진(金塵一七 便成水塵)’이라, 1금진이 7풍(七風)으로 동(動)하면 수진(水塵)이 되고

삼칠음화 오칠양성(三七陰火 五七陽性)’이라, 3수(三水)가 7풍(七風)으로 동(動)하면 음화(陰火)요 5화(五火)가 7풍(七風)으로 동(動)하면 양성(陽性)이다.

‘칠칠기풍 우칠화토(七七起風 又七化土)’라, 7풍(七風)이 7풍을 만나면 더욱 풍(風)이 세고 다시 7풍(七風)을 더하면 토(土)가 된다.

 

지진오분 사수일화(地塵五分 四水一火)’라, 토(土)를 구성한 지진(地塵)을 분석해 본다면 5분지 4가 수(水)가 되고 5분지 1이 화(火)가 된다.

좌전수지 인동척이(左轉水地 引同斥異)’라, 금진(金塵)이 좌편으로 진동하면 수(水)와 지(地)가 되는데 같은 것은 서로 이끌어 수(水)가 되고 다른 것은 배척하여 지(地)가 되며,

‘우전풍화 인이척동(右轉風火 引異斥同)’이라, 금진(金塵)이 오른편으로 돌면 풍(風)과 화(火)가 되는데 다른 것은 이끌어 풍(風)이 되고 같은 것은 배척하여 화(火)가 된다.

 

지하풍동 수탐화진(地下風動水貪火嗔)’이라, 지진(地塵)경계에 수(水)가 동하면 탐(貪)이 되고 화(火)가 동하면 진(瞋)이 된다.

연기약존 연멸약망(緣起若存 緣滅若亡)’이라, 인연이 있으면 존재하는 것 같고 인연이 멸(滅)하면 없는 것 같으나 실지로 멸하는 실멸(實滅)이 아니고 실지로 있는 실유(實有)가 아니다.

‘은성현상 이명일실(隱性顯相 二名一實)’이라, 숨어 있는 성품과 나타난 현상이 이름만 둘이지 본래로는 하나인 실상(實相)이다.

 

욕은무내 욕현무외(欲隱無內 欲顯無外)’라, 숨고자 해도 안이 없고 나타나고자 해도 밖이 없거니 본래 진리란 상하 내외가 없는 원만구족(圓滿具足)한 진여실상(眞如實相)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수묘게를 저자로부터 설명들은 일이 없기 때문에 산승의 해설이 미흡한 데가 많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