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 세계의 온갖 유위법은
마치 꿈과 같고 허깨비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또한 이슬과도 같고 번개와도 같나니
마땅히 이와 같이 관해야 한다.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금강경⟫에 있는 말씀이다.
유위(有爲)의 ‘함[爲]’이란 ‘조작’이란 뜻이다. 이것들은 인(因)과 연(緣)으로 말미암아 조작되는 모든 현상이다. 이런 현상에는 반드시 생기고[生], 머무르고[住], 달라지고[異], 없어지는[滅] 형태가 있다. 만유의 온갖 법은 모두 났다가 없어지고[生滅] 변하여 달라진다.[變異] 그러므로 이와 같은 현상계의 모든 생멸하는 법은 마치 꿈과 같고 허깨비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또한 이슬과도 같고 번개와도 같다고 관해야 한다는 것이니, 모든 것이 무상(無常)하다 함을 말씀한 것이다.
이 인생은 백년도 다 채우지 못하므로 꿈과 같이 덧없고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허깨비와 같으며, 잠깐 일었다가 스러지는 물거품이요 실체가 없는 그림자이며,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이슬과 같고 번개와도 같은 것인데, 이 가운데서 우리 인간은 오욕의 욕락을 위하여 아득바득 죄악을 짓고 삼계를 윤회하고 있는 것이다.
인생이 덧없고 부귀공명이 무상하다는 비유의 꿈에는 남가몽(南柯夢)의 고사나 한단몽(邯鄲夢)의 고사가 있는데 여기서는 ⟪삼국유사⟫에서 나오는 조신(調信)대사의 꿈 얘기를 하기로 한다.
신라 때 강원도 명주 땅에 서라벌 세달사(世達寺:지금의 홍교사)의 장원(莊園)이 있었다. 그 곳에 젊은 스님 조신을 보내 관리하게 하였다.
조신은 장원에 이르러 태수 김흔(金昕)의 딸을 한 번 보고 그만 깊이 연모하게 되었다. 그래서 여러 번 낙산사 관음보살 앞에 나아가 남몰래 부부의 인연을 맺게 해 달라고 간절히 빌었으나 몇 년 뒤 그녀는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말았다. 조신은 다시 관음보살 앞에 나아가 관음보살이 자기의 뜻을 이루어 주지 않았다고 몹시 원망하며 날이 저물도록 슬피 울었다. 그렇게 그리워하다 지쳐 얼마 뒤 선잠이 들었다. 그런데 꿈에 갑자기 김 씨의 딸이 기쁜 모습으로 문안으로 들어오더니 활짝 웃으면서 말하였다.
“저는 일찍이 스님의 얼굴을 본 뒤로 사모하게 되어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부모의 명을 이기지 못해 억지로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었지만, 이제는 같은 무덤에 묻힐 벗이 되고 싶어서 왔습니다. 속히 이 몸을 데리고 어디로 가 주세요.”
조신은 기뻐서 어쩔 줄 모르며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 40여년을 살면서 자식을 다섯을 두었다. 그러나 변변한 끼니도 댈 수 없어 마침내 실의에 찬 나머지 가족을 데리고 사방으로 다니면서 입에 풀칠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10년 동안을 유리걸식하다가 강릉 해현령(蟹縣嶺)을 지날 때 열다섯 살 된 큰 아들이 굶주려 그만 죽고 말았다. 조신은 통곡하며 길가에다 묻고 남은 네 자식을 데리고 우곡현(羽曲縣)에 도착하여 길가에 띠풀을 엮어 집을 짓고 살았다. 부부가 늙고 병들어 굶주려 일어날 수 없게 되자, 열 살 난 딸아이가 돌아다니며 구걸하여 먹고 살게 되었다. 그러다가 딸이 마을의 개에 물려 부모 앞에서 아프다고 울며 드러눕자 부모는 탄식하며 하염없이 울고 또 울었다. 부인은 눈물을 씻더니 갑자기 말하였다.
“내가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는 얼굴도 아름답고 꽃다운 나이였습니다. 집을 나와 함께 산 지 50년에 정분은 가까워졌고 은혜와 사랑이 깊었으니 두터운 인연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굶주림과 추위도 날로 더해 오는데 이젠 구걸하는 아이들조차 추위와 굶주림에 죽게 되었으니, 젊은 날의 사랑과 정도 풀잎 위의 이슬이 되었고 지초와 난초 같은 약속도 회오리바람에 눌리는 버들 솜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내가 있어서 근심만 쌓이고 나는 당신 때문에 걱정만 많아지니 이만 헤어지기로 합시다.”
조신도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각기 아이들을 둘 씩 나누어 데리고 떠나려 하는데, 아내가 말하였다.
“저는 고향으로 향할 것이니, 당신은 남쪽으로 가십시오.”
그리하여 조신은 이별을 하고 길을 가다가 꿈에서 깨어나니, 희미한 등불이 어른거리고 밤이 깊어만 가고 있었다.
아침이 되어서 보니 수염과 머리카락이 하얗게 새여 있었다. 조신은 망연자실하여 세상일에 전혀 뜻이 없어졌다. 그는 부끄러운 마음으로 관세음보살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깊이 참회하는 마음이 끝이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해현령으로 가서 아이를 묻었던 곳을 파 보았더니 돌미륵이 나왔다. 물로 깨끗이 씻어서 가까운 절에다 모시고 서라벌로 돌아와 장원 관리하는 직책을 사임하였다. 그리고 사재를 모두 털어 정토사(淨土寺)를 짓고 세상을 마칠 때까지 정토업을 부지런히 닦았다. 그 후에 아무도 조신 대사의 종적은 알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꿈과 같은 인생의 덧없음을 깨닫고 정토업을 부지런히 닦아 틀림없이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에 갔을 것이다.
일연 스님은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다. “이 이야기를 읽고 나서 책을 덮고 지난 일을 곰곰이 돌이켜보니 어찌 반드시 조신대사의 꿈만 그러하겠는가? 지금 모든 사람들이 인간 세상의 즐거움에 취하여 기뻐하면서 애만 쓰고 있을 뿐 특별히 깨닫지 못하고 있구나.”
그리고 노래를 지어 경계하였다.
즐겁던 한 시절 다 가고
남모르는 근심 속에 말없이 늙었어라.
매조밥 다 되기를 기다리지 말지니
세상사 꿈결인줄 내 이제 알았노라.
快適須臾意已閑 暗從愁裏老蒼顔
不須更待黃梁熟 方悟勞生一夢間
'염불수행자료 > 남호 송성수님의 100일 염불수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36일 인과(因果) (0) | 2013.10.03 |
---|---|
35일 윤회(輪廻) (0) | 2013.09.26 |
33일 업(業) (0) | 2013.09.12 |
32일 삼귀 ∙ 오계 ∙ 십선 (0) | 2013.09.05 |
31일 오역(五逆)과 십악(十惡) (0) | 2013.08.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