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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수행자료/ 왕생집

209.●본명(本明)스님

* 속록(續錄)

요즘 왕생(往生)한 분으로서 내가 직접(直接) 보고 들은 것을 이어서 기록(記錄)한다 그래서 2권(卷)의 끝에 붙이고 부류(部類)나 앞뒤를 나누지 않는다.


209.●본명(本明)스님 

대명(大明)의 본명(本明)은 통주(通州) 정가사(靜嘉寺)의 스님이 평소 고상(高尙)한뜻이 있고 범행(梵行)이 청정(淸淨)했으며 강학(講學)에 전념(專念)했던 분이다 나중에는 강학(講學)을 버리고 정토(淨土)에 전심(專心)하여 매일 예념(禮念)하는 일을 오래토록 거른 적이 없었다. 갑자기 경미(輕微)한 병(病)이 들자 스스로 때가 이른 것을 알고는 대중(大衆) 에게 고별(告別)하고 편안(便安)히 갔다 기이한 향기(香氣)가 7일(日) 동안 흩어지지 않았다


210. ●주강소부(朱綱少府)

대명(大明)의 주강(朱綱)은 경도(京都)사람이다 유업(儒業)을 익혀 향거(鄕擧)에 뽑혔고 세 번이나 춘관(春官)에 올랐으나 뽑히지 못했다 그리하여 이부(二府: 중서성추밀원<中書省 樞密院>)의 벼슬을 지냈다 관직(官職)에서 물러 나와서는 정토(淨土)를 전수(專修)하여 하루에 염불(念佛) 3만(萬)번을 15년(年)동안 조금도 게으름 없이 실행(實行)하였다 임종(臨終)에는 걸상에 앉아 두 손에 염주(念珠)를 들고 염불(念佛)을 끊이지 않더니 기이(奇異)한 향기(香氣)가 방에 가득하자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이 오셨다하고는 연신 염불(念佛)하며 갔다


211. ●우(于)의 어머니

대명(大明)의 우(于) 할머니는 북경(北京) 평창부(平昌府) 소촌(邵村)의 우귀(于貴)의 어머니로서 오랫동안 염불(念佛)로 공을 쌓았다 하루는 옷을 깨끗히 빨아 입고는 아들에게 내가 이젠 정토(淨土)에 왕생(往生)해야겠다 하였으나 아들은 믿지 않았다 때가 되자 책상(冊床)을 들어내 마당 가운데 놓고는 책상(冊床) 위에 앉아서 갔다 기이(奇異)한 향기(香氣)와 하늘 음악(音樂)을 온 마을사람들이 다 들었다.


212. ●고(顧)거사

대명(大明)의 고원(顧源)은 금능(金陸)사람으로 자호(自號)는 보당 거사(寶幢居士)다 어려서부터 시(詩)를 지을 줄 알았고 초서(草書)를 잘 썼다. 중년(中年)에는 한결같이 정업(淨業)에 뜻을 두었다 나중에 경미(輕微)한 병(病)이 들어 승속의 도우(道友)를 모우고 열 번의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염(念)하고는 사람들에게 나는 반드시 왕생(往生)할 것이다 하였다 누가 무엇 때문입니까? 하고 물으니 나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의 몸이 허공(虛空)에 가득하고 세계(世界)는 금색(金色)인데 부처님이 가사(袈裟)로 나를 덮어주시니 나의 몸이 이미 연화(蓮華)속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하였다


그 때 온 대중(大衆)이 연꽃의 향기(香氣)를 맡을 수 있었다 아들들이 슬피 울기를 마지않으니 거사가 너희들은 내가 어느 곳으로 간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어느 곳이나 곧 이곳이다 이곳에 만약 분명(分明)하면 어느 곳인들 확실(確實)하지 않겠느냐하고 말했다 그리고서 사람들을 물리치며 여러 말을 하지 말아라 내 마음이 어지럽다 공중(空中)에서 부처님이 나를 맞이하신다 삼고(三鼓)에는 가련다하였다 그 시각(時刻)이 되자 편안(便安)히 웃음을 머금고 갔다 소종백(少宗伯) 예부시랑(禮部侍郞)인 은추명(股秋溟)선생이 이러한 사실(事實)을 들려주었다


찬(讚)

폼이 이미 연꽃 속에 있었다 하니 왕생(往生) 하기는 반드시 왕생(往生)했을 것이요 어느 곳이나 곧 이곳이라 하니 가는 것이 실제(實際)로는 가는 것이 아니리랴 거사(居士)의 왕생(往生)은 당연(當然)히 중하품(中下品)에 머물지는 않았을 것이다.



213. ●방(方)씨

대명(大明)의 방(方)씨는 생원(生員) 오웅도(吳應道)의 부인(婦人)이었다 30세(歲)에 홀로되어 절개를 지키며 부처님께 귀의(歸依)하여 정토(淨土)를 전수(專修) 하였다 한 노파(老婆)가 있었는데 이이도 재계(齊械)하며 20년 동안 그를 따랐다 만력(萬歷) 을유(乙酉)<1585>에 그때 나이가 50세(歲)이었는데 대수롭지 않은 병(病)이 들었다


노파(老婆)를 불러 서로 마주보고 한마디 말이나 그 외(外) 잡무(雜務)도 일체(一切) 멀리하고 염불(念佛)에만 전념(專念)하였다 죽기 하루 전(前)에 목욕(沐浴)하고 옷을 갈아입고는 다음날 새벽에 향(香)을 피워 예불(禮佛)하고 자리에 앉아서 갔다 아들용선(用先)은 진사(進士)에 급제(及第)한 이로 결코 거짓말할 자(者)가 아니다 나에게 시말(始末)을 이렇게 말해 주었다


214. ●장(張)군의 어머니

대명(大明) 장(張)군의 어머니인 도(陶)씨는 장수(長水) 수약거사(守約居士)의 후처(後妻)였다 거사(居士)가 불법(佛法)을 신봉(信奉)했으므로 장(張)군의 어머니도 거사(居士)에게 감화(感化) 되어 하루에 예송(禮誦)을 정해놓고 어김없이 실행(實行)하였다 거사(居士)가 보타산(普陀山)으로 기도(祈禱)차 떠난 사이에 어머니가 두 아들에게 나는 평생(平生) 이 마음이 부처가 되니 이 마음이 바로 부처다 하는 두 마디 말을 참구(參究)하여 오늘 비로소 깨달았다 초(初) 4일(日)날 나는 간다하였다


그날이 되어 단정(端正)히 앉아 갔다 다음날 거사(居士)가 돌아와 시신(屍身)을 염습을 하였는데 잠시(暫時) 후(後)에 관(棺) 위에 청연화(靑蓮華)다섯 송이가 피었다 거사(居士)가 매우 놀라며 늘 같이 지내면서도 그의 도행(道行)이 이런 줄 알지 못했다하며 부끄러워하였다 원근(遠近)에서 이 사실(事實)을 보고 들은 자(者)들이 찬탄(讚嘆)하고 경모(敬慕)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215. ●조향(祖香)

대명(大明)의 조향(祖香)은 강서(江西) 신유(新喩) 사람으로 산동(山東) 용담사(龍潭寺)에서 정업(淨業)을 정수(精修)하였다 왕걸(王傑)어라는 거사(居士)가 암자(庵子)를 짓고 그를 맞이해 갔으므로 그곳에서 살게 되었는데 얼마 후 왕걸(王傑)에게 말하기를 내일 집으로 돌아가야겠소. 하였다. 대중(大衆)이 더 머물러 주기를 간청(懇請)했더니 안양(安養)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오. 하였다 그날이 되어 자리를 펴고 서(西)쪽을 향(向)해 앉아 갔다 감실(龕室)을 들고 산(山)으로 들어갔더니 불이 일어나 저절로 다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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