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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수행자료/남호 송성수님의 100일 염불수행

4일 염불과 좌선을 대조하는 글

 


여기에 도경(道鏡)과 선도(善道)가 지은 《염불경(念佛經)》의 제10 석중의혹문(釋衆疑惑門)중에서 분류한 염불과 좌선을 대조하는 문(念佛對坐禪門)을 그대로 옮겨본다.


[문(問)]아미타불을 염하는 것과 좌선하면서 마음을 보며 무생관(無生觀: 일체 모든 현상은 그 본질에 있어 실체가 없고 공(空)하므로 생(生)하고 멸(滅)하는 변화가 없다고 관하는 것)을 짓는 것과는 어떠한가?


[답(答)]아미타불을 염하여 정토에 왕생하여 속히 부처님의 과보를 증득하는 것이 무생관문(無生觀門)보다 백 천만 배나 수승하다. 무엇으로써 알 수 있느냐 하면, 《유마경》에 의하면 허공에다 궁전을 세우려고 하면 끝내 이룰 수 없지만 땅 위에다 지으면 뜻대로 되어 장애가 없다. 비유하면 무생으로 마음을 관하는 것 또한 그와 같다. 왜냐하면 무생(無生)은 곧 무상(無相)이고 무상은 곧 허공이라 이루기 어렵지만, 염불하는 법은 이사(理事)를 같이 닦는 것이라 마치 지상에다 궁궐을 짓는 것과 같으므로 이루기가 쉽다. 마치 가난한 사람이 왕궁을 보고 집을 지으려 해도 조그만 목재만은 얻을 수 있지만 죽을 때까지 노력한다 하더라도 끝내 완공할 수 없는 것과 같아서 훗날 목재만 썩고 공력만 허비하고 성취하지 못한다. 무생관도 또한 이와 같아서 공덕의 법재(法材)도 성취하지 못하고 헛되어 공력만 들였지 이익이 없다.


염불하는 법문은 그와 같지 않아서 염불하는 한 입이 80억 겁 생사의 죄를 멸하고 도리어 80억겁의 미묘한 공덕을 얻는 것은 마치 부잣집 사람이 집을 지으려 하면 곧 이룰 수 있는 것과 같다.

《관무량수경》에서 “저 부처님의 전세 원력이 있기 때문에 극락왕생을 생각하는 사람은 반드시 성취한다”고 설하였기 때문에 무생관과는 같지않다.

왜냐하면《법화경》에서 “대통지승 부처님은 10겁 동안 도량에 앉아 있었어도 불법이 현전하지 않아 불도를 이룰 수 없었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현전하지 않은 것은 곧 무생이며, 이미 이 10겁 동안 성불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 만큼 성불이 늦는 줄 알 것이다.


염불은 늦으면 7일, 빠르면 1일이고, 속히 정토에 왕생하면 벌써 8지(地) 보살이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원력을 입기 때문이다.


[문] 마음을 관하는 공덕이 염불하는 공덕보다 많은가 적은가?


[답] 마음을 관하는 공덕은 염불하는 공덕보다 백 천만 배나 적다 무엇으로써 그런 줄 아느냐하면, 《관무량수경》에 준하여 말하면 한 번 입으로 염불하는 것이 80억 겁 생사의 죄를 멸하고 80억 겁의 미묘한 공덕을 얻는데 반해, 한 번 마음을 관하는 공덕이 얼마나 많은 죄를 멸하고 얼마나 많은 공덕을 얻는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 얼마나 많은 생사의 죄를 면하고 지옥을 다 멸하여 정토에 왕생하게 된다고 하는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염불하는 공덕보다 백 천 배나 적은 줄 알 것이다.


[문] 염불하여 왕생하면 무슨 과보를 얻으며, 무생관을 하면 무슨 과보를 얻는 것인가? 이 두 가지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수승한가?


[답] 염불하여 왕생하면 32상(相)을 얻고 여섯 가지 신통(六神通)을 갖추며 오랫동안  살면서 죽지 않고 삼계(三界)를 초월하여 바로 성불하기에 이르며 다시는 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보살들과 함께 반려자가 되며 아미타불께서 몸소 법을 설하신다.


반면에 무생관을 이루면 장수천(長壽天)에 태어나 8만 대겁을 지나 다시 악도에 떨어지며, 또 무생관은 만사람 가운데 한 사람도 제대로 이루는 사람이 드물며, 시대에 적절하지도 않고 가령 성취하여 장수천에 태어난다 하더라도 삼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러한 것으로 보아 아주 적게 잡아 말한다 해도  정토와는 백 천 배나 못하다.


[문] 무생관에 의하면 오직 마음을 관하게 하는데, 그 마음은 붉은 것인가 흰 것인가 누른 것인가? 관하면 그 사람은 당연히 성취하는 것인가. 성취하지 못하기도 하는 것인가?


[답] 무생으로 관하는 마음은 푸른색도 아니고 흰 색도 아니며 붉은 색도 아니고 누런색도 아니며, 또한 성취한다, 성취하지 못한다고 말 할 수도 없다. 마음은 모양이 없어 성취함이 없기에 헛되이 공력만 소비하고 한갓 수고로이 노력하기만 하는 것인데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힐문하여 따지자면, 마음을 관할 적에 곧 성불하는 것이라 하면 옷을 보고 따뜻함을 얻어야 하고 밥을 보고 배가 불러야 하며 금을 보고 보배를 얻어야 하는데, 마음을 관할 때 도를 얻는 사람이 옷을 보고도 입지 못하고 추위를 면치 못하며, 마음을 관할 때 과(果)를 얻지 못하지 않는가? 또 《상법결의경》에 의하면 좌선은 말법시대에 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경에서, “부처님이 멸도 하신 후 정법 5백 년은 지계견고요(持戒堅固)요, 상법 천년은 선정견고(禪定堅固)며, 말법 만년은 염불견고(念佛堅固)이다.” 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법왕본기》에 의하면, “말법에 들어간 지 200여 년 동안은 염불하는 시기이지 좌선하는 시기가 아니다.” 라고 하였다.

그러기에 대행(大行)화상에게는 날마다 여러 곳의 선사와 문도들이 화상의 가르침을 좇아 마음을 돌이켜 염불하는 사람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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