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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행자의 편지/자유게시판

[스크랩] 아미타불 가피 - 전생의 빚을 염불로 녹이다



전생의 빚을 염불로 녹이다
    10년 전 2월 초순으로 기억된다. 대아의 용선사 주지스님과 대중의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만났다. 그분은 2월 29일 자기의 절에서 법문을 해 줄 것을 요청했는데, 나는 즉시에 갈 것을 약속하였다. 법회일에 나는 "무상지보"(無上至寶) 즉 극락세계의 삼존불의 그림과 염불하는 방법을 적어놓은 책과 정토법문에 관한 소책자들을 법문이 끝나고 골고루 나누어 주어 법회에 참여한 신도들과 좋은 인연을 지었다. 다음 해 2월 대중에 있는 영산사에서 7일 기도를 할 때였다. 그 날은 혜번스님이 담당하는 날이었다. 오후 3시 무렵 내가 염불당에서 염불을 하고 있을 때였다. 혜번스님이 내게 다가와 장삼을 슬쩍 당기는 것이었다. 나는 그를 따라서 밖으로 나갔더니 거기에는 50세 가량의 시골 부인이 한 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 부인을 전혀 알지 못하겠기에, 물어보았다. 「당신은 어디에 살고 있으며, 무슨 일로 저를 찾습니까?」 그가 말하길... 「저의 남편이 저에게 스님을 뵙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라고 했습니다. 아침 일찍 이 도시에 와서 사방으로 스님을 물어보았는데 어떤 분이 여기 계시다고 하여 이렇게 왔습니다. 한가지 일을 스님에게 알려드려서 당신의 은혜에 보답을 하려는 것입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한 두 마디의 말로 끝나지 않을 것 같고, 또 영산사는 7일기도 중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도량에서 대화를 하기에는 불편하여 밖으로 나갔다. 그 부인이 말하길...「저는 대아의 부근 시골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스님이 작년 2월 대아의 용선사에서 법문을 할 때 저의 아들 뢰흥복도 그 자리에서 법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상지보"라는 소책자를 가지고 돌아오더니 그 날부터 불교를 믿고, 매일 예불과 염불을 "무상지보"의 방법대로 실천하였습니다. 아침과 저녁 뿐 아니라 거의 하루종일 낮과 밤 동안 부처님을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고, 마음도 부처님을 떠나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너무나 신기하게 생각했다. 사바세계에 어떻게 이런 복 많은 사람이 있어서 한번 불법을 듣고, 곧바로 실천수행을 할 수 있었는지? 내가 다시 물었다.「 당신 아들의 나이는 몇이며,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발심을 했는가?」 부인이 말하길... 「저의 아들은 작년에 25세 였습니다. 그는 대학을 23세에 졸업했습니다. 집에 돌아오자 폐결핵에 걸려서 매일 악을 먹고 침을 맞는 등 3년 동안 적지 않은 재산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염불을 시작한 뒤부터 몸은 비교적 건강해 졌고, 정신적인 것도 낙관적으로 변했습니다. 그는 가끔 시내에 가서 불교서적을 구해보기도 했습니다.」 내가 또 물었다...「당신 집안에는 몇 식구가 살아요?」 부인이 말했다...「남편과 저 그리고 소실(첩)과 아들 이렇게 넷입니다. 아들이 병에 들자 우리 세 사람은 모두 정성을 다해서 간호하였고, 속히 완치 돼서 우리 세 사람의 의지처가 되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러나 작년 12월 초순에 흥복이 갑자기 우리 세 사람을 함께 부르더니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버님과 두 분의 어머님, 저는 오늘 낮에 서방극락세계로 가게될 것입니다. 당신들 세분은 절대로 상심하지 마시고, 아들 없는 것에 근심하지도 마세요. 우리 형님이 일본에 건너간지 수 십 년이 되어도 소식이 없었지만,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현재 일본에서 가정과 사업을 세우고, 결혼하여 아들이 있습니다. 형님은 2월 초순에 소식이 올 것이며, 일본과 왕래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들은 더 이상 적막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의 남편이 말하길... 『너의 몸이 이전에 비해서 아주 건강해 졌는데 왜 떠나려 하는가. 아미타불에게 너를 보호해줄 것을 기도할 것이니, 절대로 가려고 하지 말아라. 』 이때 흥복이 말하길... 『나는 본래 빚을 받으러 온 것입니다. 당신들 세 사람은 과거에 저와 깊은 원한 관계를 맺었고, 저에게 많은 책무를 지고 있었습니다. 금생에 당신들의 아들이 돼서, 대학까지 나온 상태에서 바로 나쁜 병에 에 들었습니다. 3년 동안의 투병생활에 아직 책무가 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본래는 이 집과 소유한 땅도 다 팔아치우고 당신 세 사람이 완전히 걸인이 돼서 살아도 죽은 것만 못한 상태에 이르러야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목숨을 걸고 일심으로 염불하여 여러 생 동안 지었던 죄업을 소멸시키고, 극락세계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 네 사람은 원한도 없고 빚도 없습니다. 당신들 세분도 지성으로 아미타불을 염하여 극락세계로 가십시오. 그런 다음 우리가 다시 만나면 영원히 함께 살면서 헤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분명히 기억해 주세요. 시간이 다 됐어요. "무상지보"를 이리 주세요. 당신들 세분도 저를 도와서 염불해 주세요. 그리고 울어서는 안되며, 저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대지도 마세요. 등을 저에게 보이고 절대로 돌아보지 마세요. 저도 염불을 하겠습니다.』 흥복이 "무상지보"를 두 손바닥에 사이에 두고 합장하였고, 처음에는 큰 소리로 염불하였습니다. 우리들도 따라서 염불했는데, 그가 돌아보지 말라고는 했지만 저는 가끔 슬쩍 슬쩍 돌아보았습니다. 대략 20분이 지나자, 흥복의 소리가 점점 줄어들더니 숨이 끊어질 무렵에 합장이 풀리고, "무상지보"는 그의 가슴 앞에 떨어지고, 편안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부인은 잠시 쉬었다가 다시 말했다... 「저희 집은 방이 많아서 모두 여러 사람에게 세를 주었습니다. 본래 흥복이 폐병으로 고생하는 것을 보고 모두 전염될까보아 겁을 내면서 다른 곳으로 이사할 곳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흥복이 임종할때의 모습을 지켜본 다음에 모두가 마음 한곳에 느끼는 바가 있었으며, 이구동성으로 불교의 영험이 불가사의 하다고 하며 이사가는 일을 그만 두었습니다. 다만 그가 임종할 때 말한 큰형에 관한 이야기는 최근까지 우리들 누구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일본에서 친척을 찾는다는 편지가 왔습니다. 참으로 흥복의 예언이 완전히 들어맞았습니다. 그러나 저의 남편이 말하길... 『만약 스님이 사람들에게 염불을 권하는 법문을 하지 않았다면, 흥복이 임종전에 어떻게 이 많은 인과의 일을 알 수 있었을 것이며, 원한을 해결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의 큰형이 일본에서 예언한 날에 맞추어 편지가 온 것을 보아 흥복이 유언한 일은 모두 믿을만 한 것입니다.』 저의 남편이 또 말하길... 『이후에 우리가 행복하게 노년을 보낼 수 있는 것은 모두 스님의 공덕을 입은 것이니, 이 은혜와 이 정은 반드시 갚아야 하는데, 우선 스님을 찾아서 이 기이한 영험의 사실을 말씀드려서 기적을 알게 하고, 당신에게 기쁨을 전해드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은정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 내가 그 부인과 남편의 이름을 물었는데 그가 주소와 이름을 말했는데, 그동안 함께 듣던 혜번스님이 부인의 남편과는 가까운 친척이라고 말해서 한번 더 놀랐다. 우리 세 사람은 영산사의 담 밖에서 두시간 가량 시간을 보냈다. 이미 5시가 넘었다. 이상에 말한 두 가지의 이야기에서 확실히 아미타불이 계시며, 극락세계도 존재한다는 확신할 수 있다. 아미타불을 부르면 원수 맺은 업도 해결할 수 있으며, 다겁동안 지은 죄업도 소멸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미타경에 보면... 『그 국토(극락세계)의 중생들은 항상 새벽마다 새 옷을 입고, 여러 가지 꽃을 모아서 다른 세계의 10만억 부처님을 공양올리고, 식사시간이 되면 본국으로 돌아간다.』라고 하였으니, 극락세계의 중생들은 왕생한 다음에 신족통(몸을 자유로이 움직이는 신비한 힘)을 얻기 때문에, 이 세상으로 자유롭게 올 수 있을 것이다. 더 자세한 일은 현명한 독자들이 나를 위하여 해석해 주길 바란다. -1983년 대만에서 발간한 [念佛感應見聞記]라는 책에서 발췌- 가장행복한공부
출처 : 가장 행복한 공부
글쓴이 : 참마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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