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담스님 역주 / 불교문예
‘내 나이 일흔 하나, 다시는 풍월을 일삼지 않을 것이다. 경전을 보는데 눈이 피곤하고, 복을 지으려니 빠른 세파가 두렵다. 무엇으로 심안을 건널까? 아미타불을 한 번 부르는 일이네. 걸어다닐 때에도 아미타불, 앉아있을 때에도 아미타불, 늘어지게 넉넉하고 바쁘기가 화살 같아도, 아미타불을 그치지 아니하고 날이 저물고 길이 멀고, 나의 생이 이미 잘못되었다 할지라도 아침저녁으로 청정한 마음으로 다만 아미타불을 읊는다. 통달한 사람이 나를 보고 웃더라도 아름답게 여기며 아미타불. 통달한들 무엇하겠으며 통달하지 아니한들 또한 어찌하겠는가? 널리 법계중생들에게 권하니, 다함께 아미타불을 생각하세.’

중국 시인 백거이(772~846)의 시 ‘염불게’ 전문이다. 시인 정안스님이 우리말로 풀어냈다. 문단에선 로담스님으로 통한다. <나 너답지 못하다고> <젊은날에 쓰는 편지> 등의 시집을 낸 스님은 자신을 시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시인은 언어의 연금술사이어야 합니다. 시대적 언어를 만들어 내지 못하면 시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까닭에 나는 시인이 아닙니다. 부처님의 경전과 수행방식으로 시(詩) 밭을 일구는 일꾼일 뿐입니다. 부처님이 최고의 시인입니다.”

로담스님〈사진〉이 번역한 <연방시선>은 중국 주대부터 청대까지 시편 가운데 찬불과 찬법, 귀의와 영험을 제재로 한 작품 514편을 가려뽑아 엮은 염불시 선집이다. 처음 명나라 광귀스님이 383수를 묶어 <연화세계시>라 했다. 속간으로 우익의 시 16수를 더해 399수가 됐다. 청나라 비구 스님 진한스님이 후에 115수를 추가해서 제명을 <연방시선>이라고 붙였다.

가슴에 극락정토를 품고 있다는 의미를 가진 ‘회정토(懷淨土)’는 다음과 같이 번역했다. ‘부처님을 찬탄하는 말과 글을 귀하게 펴니, 꽃과 비단을 모아 수를 놓은 듯 새롭다. 자연히 윤택해 몸에 가득차고, 무수한 광명이 혀에서 솟아나 성품을 일컬어 의보토를 장엄하며 근기를 따라 신심을 발하기를 권하고 원컨대 공덕의 연못 가운데에서 구한 물로 사바세계의 상진까지도 다 씻어낸다.’

로담스님은 “부처님 가르침이 팔만사천인 까닭은 중생의 근기가 팔만사천이기 때문”이라면서 설명을 시작했다. “중생들의 모습과 사고, 행동과 욕망이 각각 다르다는 이야기다. 증 중생 하나하나를 외면하거나 버리지 않고 모두를 사랑하고 아끼며 보살펴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을 수행방법으로 분류하면 계율을 기본으로 하여 세 가지로 나뉜다. 참선문(參禪門)과 관경문(觀經門), 염불문(念佛門)이 그것이다.”

이 세가지는 무엇인가. “참선은 스스로가 느끼는 문제의식에 따른 참구로 선정에 들어 참 지혜를 얻는 것이라면, 관경은 부처님이 설하신 경전을 자신의 마음에 계합하는 것이며, 염불은 지혜와 복덕으로 설하신 부처님을 공경하고 찬탄하며 존경하여 닮기를 원하는 것이다.”

연방시선은 염불문에 속한다. 로담스님은 “연방시선의 시들은 염불을 하는 발원과 원력이며 염불하여 얻은 연방 시인들의 영험담으로 시 한 수 한 수가 읽는 이로 하여금 환희와 복락을 느낄 수 있으리라 여긴다”고 했다.

결론은 마지막장 스님의 자작시 한 편에 담겼다. ‘아~ 나 누구와 더불어 사랑하고/ 사랑하는 이 있어 어디서 살까/ 그리움으로 그린 사십팔 원/ 우담발화 꽃피고 진주빛 물결로 팔십종호 그리며/ 우(憂) 비(悲) 고(苦) 뇌(惱) 없는 아름다운 정토에서/ 무상보리 얻어 아미타불과 함께하리라.’

                                                                                          [불교신문 2733호/ 7월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