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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행자의 편지/자유게시판

[스크랩] 관세음보살 위신력 / 종범스님

다음카페 : 『 가장행복한공부 』



    "관세음보살 위신력" 
                                            / 종범스님
     
    무상심심미묘법(無上甚深微妙法)’이라고 『천수경』에 나오지요. 
    그저 높고 깊고 미묘한 부처님 법입니다. 
    나무 속에 불이 있다는 것을 알듯이 사람 속에도 
    불성(佛性)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 불법(佛法)입니다. 
    그렇다면 불성이란 무엇입니까?
    행복을 마음대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에 삼독과 육진이 중독돼서 
    지금까지 불행을 만들고 있는 것이 범부들의 모습입니다. 
    나의 불행이 어디서 왔는가 하는 문제는 
    나의 삼독으로부터 왔다는 대답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청정심을 일으키는 것을 발심이라고 하는데 
    그 청정심은 태양이 암실을 환하게 비추어 어둠을 없애주는 것과 
    같이 우리 마음속에 있는 불행을 사라지게 합니다. 
    본래 모습을 찾는 것이지요.
    이렇게 본래의 모습으로 되찾아진 상태를 해탈(解脫)이라고 합니다. 
    「관세음보살 보문품」 게송 부분에 
    “관음묘지력(觀音妙智力) 능구세간고(能救世間苦)하니 
    “관세음보살의 미묘한 지혜의 힘이 능히 세간의 고통을 구제하니 
    구족신통력(具足神通力) 광수지방편(廣修智方便)하고 
    신통력을 구족하고 지혜방편을 널리 닦아서 
    시방제국토(十方諸國土) 무찰불현신(無刹不現身)이니라.” 
    시방세계 모든 국토 나타나지 않는 법이 없다.”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중생의 한결같은 특징은 안으로부터 삼독이 중독되어 있고 
    밖으로는 수많은 고통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평생 욕망과 고통의 굴레를 안고 살아야 합니다. 
    욕망이 없고 고통이 없는 건 도인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관세음보살을 늘 생각하고 공양하고 예배하게 되면 
    밖의 재앙이나 안의 재앙이 다 소멸하게 되고 소원을 이루게 된다는 것이 관음신앙입니다. 
    우리는 흔히 대자대비 관세음보살로 알고 있는데 
    「관세음보살 보문품」에서는 관세음보살의 오관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관(觀)이라는 게 ‘본다’라는 뜻으로 관세음보살이 갖고 있는 다섯 가지 보는 힘을 뜻합니다. 
    첫째는 진관(眞觀)으로 참세계를 보는 능력입니다. 
    둘째는 청정관(淸淨觀)으로 청정함을 보는 능력이고, 
    셋째는 광대지혜관(廣大智慧觀)으로 지혜로써 보는 능력이고, 
    넷째는 자관(慈觀), 
    다섯째는 비관(悲觀)으로 자비로써 본다는 것입니다. 
    이 관세음보살의 오관을 계환 선사라는 분이 해석하기를 진관은 
    모든 허망한 습관들을 다 여읜 상태, 즉 심망이라고도 하는데 망을 쉰다는 뜻입니다.  
    중생들은 부질없는 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벗어나지 못합니다. 
    쓸데없는 줄 알지만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요. 
    그게 중생입니다. 진관이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진실을 보는 힘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죠. 
    청정관은 관세음보살이 중생들의 물든 상태, 오염된 세계를 다스린다는 말입니다. 
    지혜관은 관세음보살이 지혜를 통해서 
    중생들의 어리석고 미혹한 상태를 벗어나게 한다는 뜻입니다. 
    미혹함에서 벗어나는 것을 파혹이라고 합니다. 미혹함을 깨뜨린다는 말이죠. 
    사람들은 미혹하니까 속게 됩니다. 
    속인 사람이 이러저러해서 속였다고 신문에 내고 방송에 내는데 
    해마다 똑같은 방법으로 속는 사람이 나옵니다. 
    속이는 사람보다 속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혜가 부족해서 순간적으로 속는 거죠. 
    흔히 나는 부모를 위해서 잘 해 드린 것도 없으면서 자식들이
     “어머니, 아버지를 평생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경우를 봅니다. 
    부모들은 그 순간 속게 됩니다. 
    어느 자식이 제 볼일 내팽개치고 부모만 모시겠습니까? 
    인간이라는 것은 그렇게 안 되게끔 돼 있어요. 
    다 제 볼일이 있고 제 자식이 있고 그런 거예요. 
    그런데도 순간적으로 어머니 아버지를 아무 고통없이 모시겠다고 하면 속아 버립니다. 
    지혜가 환하게 밝으면 미혹하지 않습니다. 
    지혜관을 갖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비관은 고통에서 건져 주는 능력입니다. 
    자관은 여락이라고 해서 기쁨을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사자성어에 ‘발고여락’이란 말이 있습니다. 
    즉, 고통에서 빼내어 즐거움을 준다는 뜻이죠.
    고통받는 중생에게 손길을 펼쳐 주는 것, 
    그것이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의 많은 손이 하는 일입니다. 
    이처럼 오관으로 중생을 보살피는 것이 관세음보살입니다. 
    쥵 . 『삼국유사』에는 우리 나라 관음신앙의 내력을 
    살펴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영험사례가 실려 있습니다. 
    자비관음의 모습은 분황사에 모셔진 관세음보살님의 영험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실명한 어린아이가 어머니를 따라 분황사에 와서 노래로 기도를 합니다. 
    신라 향가 대부분이 관세음보살님께 노래한 내용으로 전달되고 있듯이 
    이 노래도 향가에서 중요한 대목 중의 하나입니다. 
    “즈믄(천)손 즈믄(천)눈을 가지고 계신 관세음보살님 당신은 눈이 천개인데 
    우리 아이는 한 개도 없습니다. 
    한 개도 없는 우리 아이에게 눈 하나만 주세요.” 
    이 노래는 자식의 눈을 뜨게 하고 싶은 모정이 철철 넘치고 있습니다. 
    반면에 그렇게 해 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한(恨)이 담겨 있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은 눈을 천개나 갖고 있으면서 
    우리 아이에게 한 개도 안 주면 안 된다고 하는 감정이 바탕에 깔려 있는 셈입니다. 
    아주 간절하게 호소하면서도 한편에서는 안 들어주면 재미없다는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이죠. 
    정(情)과 한(恨)을 동시에 노래하고 있는 것으로 우리 민족의 감정이 담겨 있습니다. 
    다행히 관세음보살님은 한을 남기지 않고 아이의 눈을 뜨게 했습니다. 
    정과 한의 감정은 ‘왕생가’라는 노래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서방정토 극락세계 아미타불께 극락세계에 가고자 하는 
    사람이 동방에 있다고 전해 주시오. 
    만약 나를 버려 두신다면 당신의 원이 이루어지겠습니까?” 
    이처럼 달님에게 간절하게 호소를 하면서도 동시에 한까지 묻어 보내고 있는 셈이죠. 
    다음은 중생사의 관세음보살에 얽힌 일화를 소개합니다.
    먼저 중생사에 관세음보살을 조성하게 된 배경을 들려 드리면, 
    중국 당나라 황실에서 우리 나라의 유명한 화가를 초청합니다. 
    중국의 황제가 총애하는 여인을 그려 달라는 부탁을 받고 화가는 인물화를 그리지요. 
    그런데 그만 무심결에 붓을 떨어뜨리고 맙니다. 
    그것도 빨간 물감이 묻은 붓을 여인의 배꼽 밑에 떨어뜨린 것이죠. 
    아무리 지우려 해도 도저히 지울 수가 없었어요.
     화가는 할 수 없이 황제에게 여인의 배꼽 밑에 빨간 사마귀가 붙은 미인도를 올립니다. 
    황제는 ‘인물은 그대로 그렸는데 
    배꼽 밑에 그려진 사마귀는 어떻게 그렸을까?’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네가 여인의 얼굴은 그릴 수 있다지만 
    몸 속에 있는 사마귀는 어찌 그릴 수 있었느냐?”며 호통을 쳤습니다. 
    화가는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황제는 믿지 않고 그를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대신들은 황제에게 화가는 어질고 정직하니 의심하지 말고 풀어 줄 것을 간청합니다. 
    그렇지만 황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그려낸 화가를 탓하며 
    만약 안 본 것도 그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젯밤 황제 자신이 꿈에 본 것을 그려보라고 억지를 부립니다. 
    그러면 풀어 주겠다는 말이죠. 화가는 할 수 없이 십일면관세음보살님을 그립니다. 
    황제는 이것이 바로 꿈에 본 부처님이라면서 화가를 풀어 줍니다. 
    화가는 신라로 돌아와서 중생사에 십일면관세음보살님을 조성합니다. 
    그 이후로 이 관세음보살님은 영험이 많아서 기도 끝에 아들을 얻은 사람도 많고 복 받은 사람, 
    소원 성취한 사람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 한 예로 견훤이 포석정을 공격해 난리가 났을 때의 일입니다. 
    최을함이란 사람이 기도를 해서 아들을 얻었는데 
    석달밖에 안 된 아이를 피난길에 데리고 갈 수 없었어요. 
    할 수 없이 관세음보살님 탁자 밑에 숨겨 놓고 아버지 최을함은 한 달 이상 피난갔다가 돌아옵니다. 
    와서 보니 아이는 젖 냄새를 그대로 풍기며 살아 있었습니다. 
    볼에는 젖 먹은 흔적이 묻어 있고 방실방실 웃고 있었던 거죠. 
    또 한 번은 절에 양식이 떨어졌어요. 
    절을 지키는 스님들은 다른 절로 옮겨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죠. 
    그때 주지 스님의 꿈에 관세음보살님이 나타나서는 조금만 기다리고 있으라는 겁니다. 
    며칠 후에 스님 몇 분이 김해에서 찾아왔습니다. 
    왜 오셨냐고 물었더니 이곳 스님이 김해로 오셔서 화주를 나와
    지금 소금하고 쌀을 소에다 싣고 왔노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생사에서는 한 명의 스님도 밖으로 나간 일이 없었기에 그런 일이 없다고 했죠. 
    그랬더니 무슨 소리냐며 조금 전까지 분명 이곳 스님들이 길을 인도해서 왔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법당문을 열더니 관세음보살님 저 분이 우리를 인도하신 분이라는 겁니다. 
    그 이후로 김해 지방에서는 매년 양식을 중생사로 보내줬다고 합니다. 
    이처럼 『삼국유사』에 나오는 관음신앙의 영험담은 아이가 눈이 어두웠을 때 
    현실적으로 조화시키고 피난을 만났을 때 
    아이를 보호하는 등 현실을 구제하는 대비관음의 위신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유명한 설악산의 오세암 같은 경우도 
    오세 동자가 관세음보살님의 자비력으로 
    겨울삼동에 아무 탈없이 살았다 해서 오세암이지 않습니까? 
    현실을 조화시키는 위신력이 바로 관음신앙의 영험입니다. 
    다음카페 :『가장 행복한 공부』
    
출처 : 가장 행복한 공부
글쓴이 : 참마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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