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타행자의 편지/미타행자의 편지

인연(因緣)


인연(因緣)이란 비유하자면 인(因)은 씨앗이고 연(緣)은 조건입니다. 씨앗이 있고 물과 온도와 빛이라는 조건이 주어지였을 때 비로소 식물이 싹이 터서 나오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시고 삼라만상을 비추어 보았을 적에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고 모든 존재, 현상은 인(因)과 연(緣)이 만나서 현상으로 나타나고 존재한다는 연기론(緣起論)입니다. 또한 인(因), 씨앗을 아는 것이 숙명통(宿命通)입니다. 이런 사바세계의 진리를 생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깨친다면 내가 짓고 내가 받는 인과(因果), 인연에 의하여 눈앞에 잠시 모였다 흩어져다 일어났다 소멸하는 현상일 뿐 세상에 억울한 일, 서운한일은 없는 것입니다.


그 옛날, 84년 그 유명한 서울 풍납동 홍수로 다 털어먹고 88년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리는 해 꽃 수요가 많을 것이고 이번에는 그 동안 진 빚을 꼭 만회한다는 결심으로 용맹정진 하듯이 일을 했으나 올림픽이 끝나고 찬바람이 불면서 결산을 보니 여전히 수익은 제로입니다. 그 동안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땀 흘리며 1년을 고생한 내 인건비가 없는 것입니다. 그 때의 허망도 하고 분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한 마음, 한탄스럽지만 그래도 그 해 다 들 돈 벌었다고 해도 어느 분은 집까지 팔아먹었는데 하는 위안을 삼을 뿐입니다. 작게는 88년 한 해 재물 씨앗도 없는데 부지런히 땀 흘리며 물주고 가꾼 꼴이고 길게는 세속에서의 세월이 재물 씨앗(因)도 없는데 그렇게 애쓰고 고생하며 애써 가꾼 것입니다 결국은 빈손인 것을,

 

“노력하면 누구나 성공 할 수 있다”는 세속에서 하는 흔히 말하는 진리이지만 부처의 안목으로 볼 적에는 노력도 노력이지만 인연이 있어야 성공 한다는 것입니다 노력보다도 인연이 1순위인 것입니다 선원에 올라가서 차 한잔하는데 한주스님께서 “스님 얼굴 좋습니다.” 하며 덕담하는데 인연 터에서 버티고 있으니 얼굴이 좋아지는 것입니다 인연 터가 천만다행으로 법당이고 선방이니 선방과 법당을 오가며 채 바퀴 돌듯이 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절 집에 인연 있는 사람은 재물 복이 원래 없는 것이고 그 가운데서도 더 재물 복 없는 사람이 정진(精進) 복 있는 것입니다. 열이면 열, 백이면 아흔아홉은 돈 벌고 쓰는 재미, 권력 누리는 재미에 내일 죽는 줄도 모르고 빠져 사는 것 아닙니까.? 절집에서도 이름 있게 사시다 가신 분보다도 평 대중으로 정진하며 사시다가 가시는 분이 더 여법이 가시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또 역(逆)으로 보면 절 집안이 밖에서 보면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시주받아가며 무위도식(無爲徒食) 하는 것 같지만 깊은 인연이 있어야 절집에서 안심(安心)을 얻는 것이고 인연이 아니면 지옥과 같이 버티기 힘든 곳이 이곳입니다 세속에서야 “난 체질이 아니야” 해도 대추나무 연 걸리듯이 걸린 권속 때문에 사표도 못 쓰고 결국은 체질을 바꾸지만 절집에서는 붙잡는 사람도 막는 사람도 없으니 인연이 아니면 다 떠나는 것입니다. 절집에 인(因:씨앗)이 없는 사람이 인(因:씨앗)을 심기 위해서는 처절한 몸부림에 가까운 것입니다 처절한 몸부림에 갈증이 나기에 곡차도 한 잔하는 것이고 도끼나물도 먹는 것입니다. 다 들 절집에 들어 올적에는 한 소식하겠다고 왔지만 막상 큰 방에 앉고 법당에 서보면 박복한 인연으로는 힘든 곳이고 부처님이 내려주시는 밥이 그냥 목구멍에 넘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구정물이라도 쓰면서 버티면서 금생에 씨앗을 심어서 다음 생은 일 보 전진하는 것이고 버티다, 버티다 결국은 못 버티고 속퇴하면 다음 생에도 기약이 없는 것입니다. 개인 생각으로 어느 분야이든 한 분야에 각(角)을 이루려면 3생 정도는 연속으로 해야 한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악업(惡業)은 짓기 쉬워도 선업(善業)은 짓기가 힘든 것입니다 한 번 떨어진 씨앗(因)은 선업이던 악업이던 반드시 언제인가는 나오는 것입니다. 굳이 옛 어른들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정진하면서 나오는 재치기하나도 그냥 나오는 것은 없다 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숙명통이 열려서 인연을 다 안다면야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돌고 돌아 늦게 찾아온 절집인연 그 동안 헤맨 세월이 억울하지는 않습니다. 처처(處處)가 공부터이기에 무상함을 인연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 곳이 파란만장(波瀾萬丈)한 세속이기 때문입니다.


늘 즐거이 염송하는 구절입니다.

“아미타불을 항시 생각하면서 안팎으로 일어나고 없어지는 모든 현상과 헤아릴 수 없는 중생의 덧없는 행동들을 마음이 만 가지로 굴러가는 아미타불의 위대한 행동 모습으로 생각하고 관찰할지니라.”


* 다음카페 무주선원에 회원으로 가입하시면 “미타행자의 편지”와 큰 스님의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http://cafe.daum.net/mujuseonwon

 * 스마트 폰으로 트위터 @muju5에 들어가시면 무주선원에서 매일 올리는 자료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미타행자의 편지 > 미타행자의 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주에서 인사드립니다.   (0) 2011.08.18
민들레  (0) 2011.08.12
검정고무신   (0) 2011.07.27
보리방편문(菩提方便門) 공부   (0) 2011.07.20
집착   (0) 2011.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