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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경전,법문자료/7. 입보리행론

4.입보리행론강의 제 2장 죄업 참회품

[입보리행론] 제 2장 죄업 참회품


[입보리행론] 제1장 보리심 공덕 찬탄품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우리 마음속에 제일 소중하고 고귀한 것은 ‘보리심’입니다. 대근기 중생은 지혜가 뒷받침 되므로 매우 이성적이며 아주 용기도 뛰어납니다. 자신의 뜻을 이루는데 보리심 보다 더 뛰어난 것은 없으며 또한 타인의 뜻을 이루게 하는 데에도 보리심보다 더 수승한 것은 없습니다. 일시적으로 행복하고 또 도움이 되는 방법 가운데 이보다 뛰어난 것은 없으며 또한 궁극적으로 행복하고 도움이 되는 방법 가운데 이보다 더 뛰어난 것은 없습니다. 이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아티샤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해와 달과 같은 보리심을 비록 수많은 겁 동안 실천했다 해도, 도리어 아주 쉽게 얻은 것이라 하겠네.”

         

이같이 보리심과 공성에 대한 이해는 세세생생 노력해야 이룰 수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반드시 성취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인간의 몸을 받았으며 불법을 만났고, 조상 때부터 불법을 믿고 실천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소중한 가르침이기도 한 보리심을 우리 모두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실천하고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마음을 보리심으로 계속 습성을 들여가면서, 이에 대해 기도하고 생각한다면 이보다 더 나은 수행은 없습니다.


[입보리행론]의 제8장 선정품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오직 자신만 위하는 마음은 ‘번뇌’라는 허물의 뿌리와도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시작도 없는 이 윤회계가 생긴 이래, ‘나를 위하는 마음’은 당연히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수많은 방법으로,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실천해 왔습니다. 그렇게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기대했던 만큼 행복과 즐거움이 생기지 않는 까닭은 즐거움을 이루는 방법이 틀렸기 때문입니다.


오직 자신만을 위하고 다른 사람을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직 자신만을 위하는 이기심에 이끌려 간다면 단기적이든 궁극적이든 항상 행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다른 사람을 위하는 마음을 낸다면, 마음은 다른 사람을 위하지만 그 과보로 항상 단기적이건 궁극적이건 자신에게 행복이 올 것입니다.


요약하면 우리 모두 귀의하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모든 허물을 버리시고 지혜와 공덕을 얻으셨습니다. 어떠한 원인과 조건에 의해 이루셨는가? 공성이 깨달은 지혜의 핵심이긴 하지만 번뇌의 대치로 공성을 깨달은 지혜가 생길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보리심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아는 지혜를 성취할 수 있었던 핵심은 보리심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허물을 버리시고 모든 지혜와 공덕을 이루시게 된 것은 보리심 때문입니다. 이는 오직 다른 사람만을 위하는 자비심 때문입니다.


단기적으로 일상생활 속에서 하루하루 다른 사람을 위하는 생각을 조금만 내도 오랫동안 자신의 마음이 평안하고 즐겁습니다. 그래서 윤회계에서 우리가 하루하루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할 수 있는 중요한 원인과 조건은 ‘타인을 위하는 마음이 얼마나 생기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궁극적인 일체지를 이루기 전까지는 꿈속에서라도 마음이 편안하고 즐겁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도우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오직 나만을 위하는 마음으로는 꿈속에서도 두려움이 생길 것입니다.


그러므로 [입보리행론]에서 “자신의 행복을 타인의 고통과 완전히 바꾸지 않는다면, 부처를 이룰 수도 없고 윤회세계에서도 안락은 없네.” 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어제 말씀 드린 것 같이 인간으로 태어나는 기회를 얻기 어려움. 죽음의 무상. 인과응보. 윤회의 세계에서 헤매게 하는 허물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합니다.


특히 행고(行苦)에 대해 잘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번뇌를 원수같이 여기며, 언제나 이런 원수-번뇌에게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마음도 생깁니다. 이로 인해 번뇌라는 원수에서 벗어나 해탈 즉 깨달음을 이루려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런 마음이 바탕이 되어, 또 내가 행하는 모든 선행이, 나중에 이룰 해탈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부처의 법인 해탈 즉 열반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삼선취-인간. 아수라. 천상계-에 이를 수 있는 법은 외도에도 있습니다. 하지만 해탈을 성취할 수 있는 법은 오직 무아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아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하는 종교로는 불교 밖에 없습니다. 진정한 부처님의 법은 해탈 즉 열반입니다.


열반은 모든 번뇌가 끊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이를 목표로 하여 이룰 수 있게 하는 방법을 ‘부처님의 법’이라 합니다. 원수인 번뇌의 허물에 대해 싫어하는 마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다른 중생을 위할 수 있습니다. 윤회계에 있는 중생은 번뇌의 힘에 의해 끌려 다닙니다. 번뇌를 끊은 아라한도 비록 거친 번뇌는 버렸지만 번뇌로 인한 법집의 습성은 아직 남아있기에 이들 역시 아직 윤회의 두려움 속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허공같이 수많은 중생이 지닌 고통의 뿌리인 그 습성조차도 완전히 없애길 바라는 마음이 점차 생길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키워야할 것입니다. 이로써 ‘내가 모든 중생을 고통의 원인인 법집의 습성까지 벗게 하겠다.’는 대자비의 성실한 마음이 생기고 이로 인해 허공과 같은 끝없는 중생이 고통의 원인인 습기에서조차 벗어나도록 ‘내가 일체지를 증득하겠다.’는 보리심 즉 오직 타인을 위하는 자비심과 ‘보리’를 바라는 마음이 동시에 생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은 인간으로 태어난 기회를 얻기가 어렵다는 것을 아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먼저 이해를 하고 꾸준히 생각하여 이런 모든 것이 매우 중요한 것임을 마음으로 터득하는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하고는 다시 해이해지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반복해서 잘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에 변화가 생길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음에 변화가 생기지 않습니다. 이를 차례대로 습성을 들이면 어느 순간부터는 이유를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냥 되새기기만 해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변화가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보리심을 생각하고 또 생각함으로써 서서히 그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한 중생을 보거나, 기억하기만 해도 내가 그를 위해 일체지를 이루었으면 하는 마음이 꿈에서도 생깁니다. 이때에 비로소 보리심을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마음을 중심으로 하는 수행을 대승에서는 ‘자량도’라 합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자량도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라 합니다. 상사도. 중사도. 하사도로 나눌 때, 자량도는 하사도의 경지를 이룬 것입니다. 반야심경에서 말씀하신 첫 번째 ‘아제’ 즉 ‘가자.’는 ‘자량도’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수행의 다섯 단계(오도五道)의 첫 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아셨습니까? 점차로 공성의 이해에 대해 수행함으로써 이를 깨치게 됩니다. 이는 ‘아제 아제’ 즉 ‘가자. 가자.’의 두 번째 ‘가자.’의 경지를 성취한 것으로 ‘가행도’입니다. 


더욱 수행을 함으로써 견도소단(見道所斷, 사성제를 관하여 번뇌가 끊어져서 도를 볼 수 있는 경지)의 길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십지 가운데 초지(初地)인 환희지를 증득한 것입니다. 이는 ‘아제 아제 바라아제’ 즉 ‘가자. 가자. 피안으로 가자.’의 ‘피안으로 가자.’를 성취한 것입니다. 그 세계를 두고, 이 세계와 비교해 볼 때 다른 피안으로 가는 첫 도(道)를 성취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제 아제 바라아제’인 것입니다. 이후 꾸준히 더 수행함으로써 ‘수도’의 경지에 이르고, 두 번째 이구지(離垢地)에서 칠지까지 즉 칠부정지(七不淨地)의 상태에 이르러서야 번뇌를 버릴 수 있는 능력이 서서히 커집니다.


그리고 칠지의 마지막 순간, 팔지인 부동지(不動地)의 첫 순간에 들어서야 비로소 번뇌장을 완전히 없앨 수 있는 것입니다. 부동지에서 법운지(法雲地)로 처음 들어섰을 때 소지장(所知障)*의 대치법이 생겨 소지장을 없앨 수 있습니다. 법운지의 마지막 순간에는 아주 미세한 소지장조차도 없앤 상태가 됩니다. 그 다음 순간에 일체지의 경지를 이루는 것입니다. 대승에서 말하는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즉 ‘가자. 가자. 피안으로 가자. 피안으로 완전히 가자. 보리에 완전히 안주하자.’를 성취한 것입니다.


이런 마음은 스스로 생각하여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마음의 변화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저도 이런 방법으로 마음이 변하는 것을 확실하게 경험했습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생각을 반복하면 마음의 변화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제가 아는 친구 중에도 생각하고 또 생각함으로써 변화가 오고, 이에 그치지 않고 특이한 경험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티베트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서양 사람들도 있습니다. 누구라도 수행을 한다면 눈에 보이는 결과를 얻을 것입니다.


하지만 잠시 수행을 하고는 순식간에 마음의 변화가 생기길 바라는 것은 안 됩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셀 수 없는 겁 동안 삼독과 같은 번뇌의 허물로 습을 들여왔습니다. 한편, 전생에 이런 번뇌를 없앨 수 있는 습성(습기習氣)을 아마도 조금씩 쌓아왔겠지만 이 또한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생에서부터 다시 습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예전부터 습성을 들인 것과 이 생에서 습성을 들인 것은 그 습성을 경험하는 데 있어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경에서도 “우리 몸은 아주 쓴맛만 나는 나무줄기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아주 쓴맛이 나는 나무줄기에 단물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고 해서 그 쓴맛을 없앨 수 없는 이치와 같은 것입니다. 이것이 그 예로써, 헤아릴 수 없는 겁 동안에 삼독과 같은 번뇌의 습을 들인 우리가 이 생에서 번뇌와 정반대가 되는 선한 마음으로 단지 몇 번 습을 들인다고 해서 순식간에 변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생에서 시작해, 가능하다면 이생에서 그 과(果)를 경험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겠지만, 그렇지 못한다 해도 세세생생을 통해서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수행으로 습성을 들인다고 해서 몇 년 사이에 부처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그릇된 것입니다.  깨달음에 이르기까지는 세세생생 많은 세월이 걸리므로 경전에서도 “삼아승지겁 동안 수행해 오셨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을 굳건히 하고 수행에 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 소지장(所知障)

불교수행의 장애가 되는 것의 하나. 번뇌장과 함께 해탈을 방해하는 2가지 근본적 장애이다. 자아에 대한 집착 때문에 인무아를 알지 못하는 것이 번뇌장이며, 법에 대한 집착으로 법무아를 알지 못하는 것이 소지장이라고 한다. 소지(所知)란 알아야할 대상을 말한다. 따라서 소지장은 알아야할 것을 알지 못하는 장애라는 의미이다.


이제 우리 마음속에 있는 ‘보리심’이라는 것이 아주 소중하고 고귀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이 생각으로 발심 즉 원을 세우고 기도를 한다면 반드시 보리심이 마음에 일어날 것입니다. 예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헤아릴 수 없는 삼아승지겁 전에 처음 발심을 하시고는 그 마음을 반복하여 일으키셨습니다. 부처님 생애에 대해 들어보면 “이때 부처님께서는 발심을 하셨으며” “이때에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발심을 하셨으며” 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도 그와 같이 반복하여 발심하고 보리심을 일으킨다면, 많은 겁 후에 어쩌면 부처가 되어 ‘이때에 나는 처음 발심을 했다.’ 고 말할 수 있을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복하여 마음을 일으켜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발보리심을 하겠습니다.

 

발심을 하는 데 있어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 스스로 생각하여 마음을 일으켜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스승 앞에서 발심을 하면 스스로 마음속에 또 다른 힘이 생길 수 있습니다. 라마 앞에서 기도하고 발심했기 때문에 그 힘이 좀 더 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달라이 라마 앞에서 여러분께서 ‘발보리심’을 내는 의식이 있겠습니다. 보리심을 일으킬 때 여러분 바로 앞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계신다고 관하십시오. 그리고 그 둘레에 석가모니 부처님의 불법을 지키고, 부흥시켜 전파하신 분들이 계신다고 관하십시오. 큰 지혜와 도를 깨친 수행자들은 많지만 그 중에서도 스승 나가르주나와 아상가(Asanga, 무착無着)*께서 중심이 됩니다. 이 두 분을 중심으로, 인도의 큰 지혜와 도를 깨친 모든 분이 계신다고 관하십시오.


이와 같이 중국에서 불법을 보존하고, 부흥시키고, 전파하신 큰 스승들도 앞에 계신다고 관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한국의 불법을 보존하고, 부흥시키고, 전파하신 큰 스승들도 계신다고 관하십시오. 또한 티베트의 불법을 보존하고, 부흥시키고, 전파하신 큰 스승들도 계신다고 관하십시오. 아셨습니까? 한편, 허공과도 같이 끝없는 중생을 완전한 자리인 부처의 경지로 이끌기 위해 내가 이런 발심을 하겠다는 발원을 하십시오. 이 분들 앞에 칠지(七地)의 공양을 올림으로써 자량을 쌓고 악업을 정화시켜야 합니다. 


* 아상가(Asanga, 무착無着 395~470)

북인도 출신.초기 유식사상을 조직화하고 체계화한 최초의 논서이다. 그 대표적인 논서가 [섭대승론]이다. 동생 바수반두(세친, 400~480)가 초기 유식사상을 집대성하였다. 처음에는 빈두라스승에게서 소승을 배우다가 나중에 중인도의 아유타국에서 미륵보살에게 [유가사지론] 등을 듣고 대승으로 전환하였다. [섭대승론] [현양성교론] [대승아비달마집론] [유가사지론] [대승장엄경론] 등을 저술하였다.


이제 [입보리행론]의 제2장 제3장을 읽겠습니다. 제가 읽을 때 여러분도 같이 읽어주십시오. 독송은 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읽겠으니 이때 여러분도 같이 읽으면서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중간 중간 끝나는 부분에서 제가 약간씩 설명하겠습니다.

        

    보배로운 이 마음을 간직하기 위해

        모든 여래와 정법

        티 없는 삼보와 불보살의

        공덕의 바다에 자성으로 공양을 올립니다.

    이 세상의 모든 꽃과 과일과

        갖가지 모든 약초와

        이 세상의 진귀한 보석과

        마음을 흠뻑 젖게 하는 맑은 청정수와

3  보석으로 장식된 산과

    고요한 숲 속의 대지와 푸른 나무,

    아름다운 꽃과 탐스러운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나무 가지와

4  천상과 센간의 모든 향기와

    여의수와 보배로운 나무들,

    경작하지 않아도 저절로 자라는 탐스러운 곡식들.

    또 다른 공양물로는

5  호수와 연못, 그곳에는 만발한 연꽃 꽃과

    아주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백조가 있으며,

    끝없는 허공계를 가득 채우는,

    그 누구도 차지할 수 없는 이 모든 것을

6  마음을 다해

    가장 수승한 부처님과 보살님들께 공양하오니.

    최상의 복전인 자비하신 분이시여!

    대자비로 저의 이 정성을 받아주소서.

7  저는 박복하고 몹시 가난하여

    공양을 올릴만한 재물이 없습니다.

    그러나 항상 이타행이 원만하신 보호자께서는

    저를 자비로이 받아주소서.


여기까지는 공양을 올리는 것입니다.

다음의 8송에서는 우리의 이 몸은 본인 스스로에 의해 다스려지는 것이기에 이 또한 공양물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자신의 몸 역시 공양으로 올리는 부처와 불보살 역시 오직 ‘끝없는 중생을 위하는 뜻’만 가지고 계십니다. 이런 부처님과 보살님께 자신의 몸을 바침으로써 얻는 이로움에 대하여 나가르주나께서 지으신 [고귀한 화환]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대지와 물과 불과 약과 보병과 나무와 같이 언제나 중생을 위하여 내 몸까지 그들이 이용하도록 하소서!” 이와 같이 불보살께서는 오직 중생을 위합니다. 자신의 몸을 공양 올리는 것조차도 오직 중생을 위하기 때문입니다.


8  부처님과 보살님께

    저의 온 몸을 온전히 바치오니

    중생 가운데 가장 뛰어난 분이시여! 저를 받아주소서!

    공경하는 당신의 백성으로 귀의합니다.

9  당신께서 안전하게 지켜주시니

    윤회의 두려움이 없습니다.

    중생을 도우며, 예전에 지은 악업을 완전히 소멸하고

    다시는 악업을 짓지 않겠나이다.

10  깨끗한 방에는 오묘한 향기로 가득하고,

      유리로 덮인 대지는 반짝이며,

      찬란한 기둥은 보석으로 빛나며,

      보개의 진주 장식이 빛나니.

11  모든 불보살님께

      보배로운 보병에 향수를 가득 채워,

      갖가지 노래와 음악과 함께

      씻겨드리오리다! 

12  불보살님의 몸을 더없이 깨끗하고

      향기로운 천으로 닦아드리오리다.

      그리고 아름다운 빛깔과

      좋은 향기가 나는 법의를 올리오리다.

13  얇고 부드러운 여러 벌의 훌륭한 법의와

      온갖 진귀한 장신구로

      거룩한 보현보살님. 문수보살님. 관세음보살님,

      모든 보살님을 장식하오리다.

14  삼천대천세계에서 가장 향기롭고, 가장 좋은 향으로

      모든 부처님의 몸을

      티끌 한 점 없는 순금으로 닦아내듯이

      그렇게 빛나게 바르오리다.

15  공양의 대상 가운데 가장 뛰어난 부처님께

      아름다운 만다라 꽃. 연꽃. 우담바라와 같은

      향기로운 꽃으로

      그윽하고도 아름다운 화환을 만들어 바치오리다.

16  마음마저 앗아가는 향기 그윽한 향료를

      모두 드리오리다.

      세상의 진귀한 음식과 천상의 음식까지도

      당신들께 공양 올리오리다.

17  황금의 연꽃 봉우리를 엮어

      보배로운 등불과 함께 올리오리다.

      사방의 대지를 고르고, 향을 뿌리고,

      향기로운 꽃잎도 뿌리오리다.

18  아름다운 노래가 끊이지 않는 무량궁에

      진주와 귀한 보석들을 주렁주렁 늘어뜨려

      무한한 허공 전부를 장엄하여,

      그 또한 대자비의 근원이신 당신께 올리오리다.

19  보배롭고 아름다운 화개 손잡이는 황금으로,

      (화개) 가장자리를 멋지게 장식하고서

      우아하게 받쳐 들어

      모든 부처님께 바치오리다.

20  또 다른 것들도 공양을 올리오니

      청아한 소리를 내는 악기로

      중생의 고통을 기쁨과 행복으로 바꾸어줄 (소리의) 구름이

      곳곳에 머물게 하소서,

21  모든 고귀한 법보와

      불탑과 불상에

      보배로운 꽃비가

      한량없이 내리게 하소서.

22  문수보살 같은 분들이

      모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신 것처럼

      저 또한

      여래와 보살님께 공양을 올리오리다.

23  공덕의 바다이신 부처님께

      제가 여러 가지 음성과 곡조로 바다와 같이 찬탄하오니

      감미로운 찬탄의 구름이

      그들에게 언제나 생겨나게 하소서.

        다음은 절을 하는 것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24  삼세의 모든 부처님 법과

      거룩한 승보에

      우주에 있는 먼지 수만큼

      몸을 낮추어 절을 합니다.

25  보리심의 터전과 불탑을 향해

      저는 절을 합니다.

      계사와 같은 큰 스승과

      수승한 수행자들께도 절을 합니다.


        다음은 ‘귀의’에 대한 것입니다.

26  보리의 정수를 이룰 때까지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정법과 보살님께도

      귀의합니다.


        다음은 ‘참회’에 대한 것입니다.

27  시방 세계에 머무시는

      완전한 부처님과 보살님들!

      대자대비하신 모든 분께

      두 손 모아 청하오니

28  끝도 시작도 없는 윤회 가운데

      이 생 뿐만 아니라 다른 생에서

      저도 모르게 지은 악업과

      남을 시켜 저지른 죄악과

29  무명에 싸여

      자신을 해치는 것들을 희희낙락거리면서 좇아다녔던

      그런 허물을

      수호자 앞에서 진실로 참회합니다.

30  제가 삼보와 부모,

      스승과 타인에게

      번뇌의 문(門)인 몸과 말과 마음으로 저지른

      모든 악행은

31  허물이 더없이 많은

      사악한 제가 지은 죄로

      정말 참기 힘드니

      모두를 이끌어 주시는 분들께 참회합니다.


위로는 삼보께 아래로는 중생에게 지은 악업들을 진심어린 마음으로 반성하고 참회해야 합니다. 32, 33송부터는 만약 참회하지 않는다면 아주 위험하다는 말씀을 하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죽는 것은 당연하고, 언제 죽을지 알 수 없으며, 죽을 때는 오로지 법(法)만이 도와줄 수 있는 데도 악업만 짓다 죽으면 아주 위험하다는 말씀입니다. 악업을 참회하는 마음을 크게 일으키기 위한 것입니다.


32  제가 지은 악업들을 없애기도 전에

      죽을지 모릅니다.

      여기서 온전하게 벗어날 수 있도록

      저를 속히 구원해 주소서.

33  믿을 수 없는 이 저승사자는

      할 일을 다 했건 못했건 간에

      병이 들었거나 병들지 않았거나

      언제라도 불쑥 찾아드니 믿을 수가 없습니다.

34  모든 것을 버리고 가야 하는데

      제가 그것을 알지 못하여

      친한 사람과 미운 사람들 때문에

      수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35  미운 사람들도 사라질 것이요

      친한 사람들 또한 사라질 것이요

      나 또한 사라질 것이니,

      모두 사라질 것입니다.

36  마치 꿈을 꾼 것처럼

      어떤 일이건

      그저 기억으로 남을 뿐

      과거를 다시 볼 수는 없습니다.

37  잠시 사는 일생 동안에도

      좋아하고 미워했던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그들에게 지은 죄악들은 ‘참을 수 없는 것’이 되어

      사라지지 않고 제 앞에 남아있습니다.

38  저 또한 찰나를 오가는데

      제가 아직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무지와 집착, 분노 때문에

      죄악을 참으로 많이도 저질렀습니다.

39  낮과 밤은 멈추지도 않고,

      이 목숨은 줄어만 가고,

      더해지거나 늘어나는 일도 없는데

      제 어찌 죽지 않겠습니까?

40  제가 병상에 누워

      친척과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어도

      목숨이 다하는 순간의 고통은

      저 혼자만이 겪어야 하는데

41  염라대왕의 저승사자에게 붙잡혔을 때

      친척이 도움이 되오리까? 친구가 도움이 되오리까?

      그때는 공덕만이 저를 구해줄 수 있는데

      저는 이 또한 쌓지 않았습니다.

42  구원자이시여!

      방일한 저는 이런 두려움을 모르고

      무상한 이 삶을 꾸려가기 위해서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43  누군가가 오늘,

      손발이 잘리는 곳으로 끌려간다면

      그는 두려움에 입이 마르고, 눈에 핏발이 서며

      예전과 다르게 구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인데

44  저승사자가 매섭게 쳐다보고

      채찍을 든 이에게 붙잡혔을 때

      두려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그 비참한 꼴을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45  이렇게 큰 두려움으로부터

      저를 누가 온전히 구해 주겠나이까?

      넋이 나가고, 놀라고 두려운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지만

46  그 어디에도 구원해 줄 사람은 없습니다.

      혼절을 해보지만

      구해줄 사람, 하나 없으니

      그때 제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47, 48송부터는 ‘귀의’에 대한 것입니다.

47  중생의 구원자시여!

      중생을 구하는

      탁월한 능력으로 두려움을 전부 없애주시니

      오늘부터 귀의합니다.

48  보살의 마음 그 자체인 명백한 법은

      윤회계의 두려움을 없애주시니

      보살님들께도

      귀의합니다.

49  저는 두려움에 떨면서

      보현보살님께 제 자신을 바칩니다.

      문수보살님께도 이 몸을 바칩니다.

50  오류 없는 자비를 행하시는 구원자!

      관세음보살님께도

      가련하게 울부짖으며 외치나니

      죄 많은 저를 구원해 주소서.

51  수승한 허공장보살님과

      지장보살님과

      대자비의 구원자이신 모든 보살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구원을 청합니다.

52  누구든 보기만 해도 무서워하는

      염라대왕의 저승사자 같이, 무서운 이들조차도 두려워하며

      사방으로 줄달음치게 하는

      금강지보살께도 귀의합니다.

53  이전에는 당신의 말씀을 어겼으나

      이제 큰 두려움을 보고는

      당신께 귀의하오니

      이 두려움을 속히 없애주시길 간청합니다.

54  사소한 병에도 두려워하며

      의사 처방대로 따라하거늘

      탐욕같이 크나큰 허물의 병을

      항상 키우고 있었으니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55  한갓 탐욕만으로도

      세간의 모든 사람을 병들게 하는데

      그것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은

      그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어라.

56  모든 것을 치료할 수 있는 의사가 있어

      아픔을 송두리째 뿌리 뽑을 수 있는데

      그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다면

      지극히 어리석고 부족한 사람입니다.

57  야트막한 언덕에서도

      조심스럽게 굴진대

      천 길 낭떠러지에서야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58  오늘, 제가 죽지 않는다 하여

      편하게 지내는 것은 당치도 않습니다.

      죽는 그 순간은

      반드시 올지니!

59  어떻게 이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언젠가 사라질 제가

      어찌 마음 편히 지낼 수 있겠습니까?

60  지난 날, 내가 즐겼던 것들 가운데

      무엇이 남아 있는가?

      저는 덧없는 것들을 탐하여

      스승의 말씀을 거역했습니다.

61  삶을 낭비하고

      친척과 친구들을 남겨두고

      저 홀로 알 수 없는 곳으로 갈 때

      친한 사람이든 미운 사람이든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62  좋지 않은 행위(불선업不善業)에서 고통이 생기나니

      어떻게 거기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까?

      밤낮으로 저는

      오로지 이것만을 생각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63  저의 무지로 알지 못하여 지은

      근본적인 죄악(성죄性罪)*은 물론

      부처님께서 금하신 죄악(차죄遮罪)* 가운데

      어떤 것이든

64  부처님 앞으로 나아가 합장하고

      고통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거듭거듭 절을 올리며

      모든 것을 참회합니다.

65  이끌어주시는 분이시여!

      저의 죄와 잘못을 어여삐 여기소서!

      악업은 선한 것이 아니기에

      이 순간 이후 다시는 저지르지 않겠습니다.


* 성죄(性罪)

성죄는 행위 자체가 나와 남을 고통으로 떨어뜨리는 죄악을 말하는데 살생. 투도. 사음. 망어 등으로 주로 육체와 입으로 짓는 큰 죄를 말한다. 살생 중에도 부모나 아라한에 대한 것은 특히 죄가 무겁고 출불신혈(出佛身血) 및 파화합승(破和合僧) 등과 더불어 오역(五逆)이라는 중죄로 여긴다. 대승불교에서는 여기에 비방정법(誹謗正法)을 더하여 10중계(重戒)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 차죄(遮罪)

차죄 그 자체는 죄가 아니지만 그 행위로 말미암아 성죄를 저지르게 되므로 금지한 죄이다. 원래 죄악은 아니지만 계율로 금지되어 있는 것을 어긴 행위로 예를 들면 음주가무와 화장 등이 해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