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선
1. 선(禪)이라는 것은 사유(思惟)를 말 합니다 우리가 다리를 포개고 허리를 곧추세우는 자세는 가장 사유(思惟)하기 좋은 자세라는 것입니다 사유라는 것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결국은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내 마음 보여야 내가 지금 화가 나는지 집착을 하고 있는지 어리석은지 알고 소멸 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하루에 20분만이라도 좌선을 한다면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나의 지혜로운 삶은 이웃과 더불어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왜 수행하여야 하는가”의 이유는 이웃과 더불어 행복하고자하는 것입니다 나의 무지(無智)한 삶은 이웃을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 한 권력자의 무지(無智)가 많은 국민을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이 그 이치입니다.
2. 자세
다리를 포개고 허리를 곧추 세우는 것이 가장 사유(思惟)하기 좋은 자세라고 말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다리를 포개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으나 가장 좋은 자세는 결가부좌 자세입니다 결가부좌 자세는 호흡을 바르게 하고 허리를 세워주며 수마(睡魔)를 벗어 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가부좌 자세를 조복 받기가 참 힘듭니다. 저도 결가부좌 자세를 조복 못 받았지만 꾸준하게 올려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가부좌 자세와 같은 효과를 내는 자세가 있습니다. 오른쪽 발등을 왼쪽 발 복사뼈 아래 홈파진 부분에 걸치는 방법입니다 이것이 흔히 하는 반가부좌 자세보다 더 안정된 자세입니다 다음은 평좌입니다 다리를 당기여 나란히 놓는 자세입니다 이 자세도 굉장히 편한 자세입니다 그리고 발을 한쪽으로만 포개는 것보다도 발을 바꾸어 가면서 포개주는 것이 좋습니다. 다리는 꼭 결정된 자세는 없고 각자 근기와 체질에 따라서 다리를 포개는 방법을 선택하시면 좋습니다.
좌선에 있어서 다리 포개는 것보다도 허리를 반듯이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허리를 반듯이 하고 앉자있는 자세만으로도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특히 위에서 위산이 가장 잘 조절 되는 자세라고 합니다. 허리를 반듯이 하고 음식을 먹으면 과식을 해도 소화가 잘된다고 합니다.
다음은 “손을 어떻게 하느냐” 묻는 사람이 많은데 손은 마음에 따라 변합니다. 보통 양 손을 단전(丹田)에 가지런히 포개는데 주먹을 가볍게 쥐고 양 무릎에 올려놓는 것도 허리를 편하게 합니다. 그러나 내면으로 들어가면 손 모양도 더욱 정밀해집니다. 처음부터 너무 틀에 집어놓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리를 적당히 포개고 허리를 반듯이 하며 손은 단전에 가볍게 포개고 눈의 시선은 2미터 전방 바닥을 바라봅니다. 보통 눈은 반개(半開)하라고 하는데 마음이 고요해지면 자연히 눈은 반개가 되는 것이고 눈을 감거나 뜨거나는 개인 취향에 따라하시면 됩니다.
이런 좌선 자세가 인간이 발견한 자세 가운데서 가장 이상적인 자세이며 가장 아름다운 자세입니다 언제인가 요가의 달인이 신문 나온 적이 있는데 요가 한 동작을 보여 달라고 질문하니 보여준 자세가 좌선자세였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좌선자세가 가장 쉬운 것 같으면서도 가장 어렵고 가장 이상적인 자세라고 했습니다.
3. 호흡
다리를 포개고 허리를 곧추세우며 눈의 시선은 2미터 전방 바닥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아랫배를 넣으면서 숨을 내 쉽니다
좌선에 첫 호흡은 날숨(내쉬는 숨)으로 시작 합니다 들숨(들여 쉬는 숨)보다는 날숨을 먼저 하는 것이 마음의 평화를 더욱 가저옵니다 청정도론에 의하면 모든 태로 태어나는 중생의 첫 호흡은 날숨이 먼저라고 합니다. 역시 청정도론에서도 날숨을 먼저 시작 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날숨은 천천히 깊게 하면 들숨은 자동적으로 몸에 맡기면 됩니다. 분명한 것은 날숨에는 아랫배가 들어가야 하고 들숨에는 아랫배가 나와야 합니다. 흔히 말하는 복식호흡입니다. 복식호흡이 반듯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흔히 말하는 “배짱 좋다”는 말은 복식호흡이 이루어진 사람이 경계에 흔들리지 않은 것을 말 합니다 마음과 호흡은 일치 합니다 우리가 마음의 평화를 이루어 졌을 적에는 자연히 호흡이 깊게 복식호흡이 되며 긴장이나 흥분했을 적에 호흡이 짧게 가슴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간경, 절, 진언, 염불수행 등은 자연히 호흡을 깊게 복식호흡을 이루어지게 합니다.
옛 어른께서 기도 3년하고 선방가라는 이야기가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기도 3년 정도하면 저절로 복식호흡이 이루어집니다. 좌선하시면서 보조수행으로 간경도 좋고 절도 좋고 염불도 진언도 함께하시면 거친 호흡을 안정된 호흡으로 교정 될 수가 있고 안정된 호흡이란 경계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안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4. 식계(食戒)
우리가 먹는 음식은 꼭 수행이 아니더라도 중요한 것입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부처님께서는 하루에 한 끼 만드시는 일 종식을 하시였습니다. 당신의 아들 라훌라가 어린나이에 출가 하루에 한 끼 먹은 고통을 못 이기고 아침에 울자 아침에 죽 먹는 것을 허용, 이후에 승가는 전통적으로 아침은 죽 사시에 정식 그리고 오후는 불식 이였습니다.
육식에 대해서 말은 많으나 부처님당신께서는 공양 올리시는 분들의 배려하는 마음으로 공양을 올리기 위해서는 짐승을 살생하지 말라고 하시고 이미 죽은 고기는 공양을 울리여도 좋다고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좀 특이한 것은 점심공양을 정오이전에 끝내라는 규정입니다 아미 이것도 수행에 도움이 되는 것이기에 정오이전에 공양을 끝내라고 하시였을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승가의 전통은 아침은 죽 공양 점심은 12시 이전에 공양을 마치고 저녁은 약석이라 해서 먹고 있습니다. 식단은 순수한 채식으로 되어 있고 또 채소 중에서도 파, 마늘, 부추, 달래를 사용하지 않으며 육식을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가장 이상적인 먹 거리라 생각 합니다 흔히 말하는 오신채는 독한 채소입니다
육식을 하면 몸이 무거운 것은 사실입니다 짐승이 죽임을 당할 때 억울한 마음이 독이 되어 온 몸에 퍼저있다가 고기를 먹으면 사람에게 전달된다는 것입니다 또 오후에 과식, 음식을 먹으면 아침까지 부담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먹은 것 역시 마음의 그림자입니다 군대가보신분들은 졸병 때 엄청나게 먹은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과식하고 음식도 거친 술, 고기, 담배를 하게 되는 것이고 수행을 통하여 마음이 정화되면서 자연히 음식도 정갈하게 먹게 되는 것입니다. 가능한 적게 먹고 가능한 채식하는 것이 수행에 도움이 되고 건강에도 좋은 것입니다.
5. 마음
앞에서 말한 다리를 포개고 허리를 곧추세우는 것 호흡을 복식 호흡해야 하는 것 적게 먹고 채식하는 것 이 모든 것이 마음을 최선의 컨디션을 유지하기위한 방법입니다.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수행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하늘과 땅입니다 우리가 등산 할 적에 목표지점을 정확히 나침판으로 각도를 재어서 각도를 알고 올라가면 목표지점에 도착 할 수 있듯이 수행도 견해를 바로 세워서(正見) 정진하여야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쉽게 생각하는 올바른 마음 즉 정견을 세우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한 생각 일으키는 데서도 수없는 전생의 업이 작용하는 것입니다.
바른 견해를 정립하였다면 그것이 해오(解悟)이며 각자 인연에 따라 수행을 통하여 완성이 증오(證悟)입니다 해오(解悟) 없는 증오(證悟)는 외도수행일 뿐입니다 대승불교의 핵심은 아뇩다라삼막삼보리심(阿耨多羅三藐三菩堤心)입니다 줄여서 보리심(菩堤心)이라고 합니다.
아미타불의 48원을 압축한 것이 사홍서원(四弘誓願)이고 사홍서원을 더욱 압축하면 보리심입니다 좀 더 쉬운 말로 풀어서 이야기한다면 “이웃에 대한 배려하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을 가꾸어 나가는 것이 수행의 최종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이웃이란 일체중생을 말하는 것입니다 일체중생이란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를 말하는 것이며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의 평등성, 존귀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일체중생이란 불교만이 간직한 위대한 언어입니다
보리심을 간직하고 수행에 임할 때 이웃과 더불어 행복해질 수 있고 사바세계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6. 행법(行法)(1)
어느 분이 말씀하시길 “처음에는 화두를 했다 그러나 화두에 흥미를 못 느끼고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했다 그러나 그것도 큰 힘을 얻지 못하고 옴마니 반메흠을 했다 옴마니반메흠을 해서 큰 힘을 얻었다 옴마니반메흠만이 깨달을 수가 있고 나머지 수행법은 별스럽지 않은 것이다”란 말씀을 하시였는데 그것은 당신의 인연은 “옴마니반메흠”에 있는 것이지 화두나 나무아미타불에 문제는 없는 것입니다
또 어느 분은 무자 화두를 복사해놓고 찾아오는 사람마다 화두만이 깨달을 수가 있다며 복사한 무자 글씨를 나뉘어 주었는데 역시 화두는 그렇게 성의 없이 주고받는 것이 아니고 행법의 인연이 다 각각인데 한 가지만 주장하면 마치 의사가 많은 환자들을 처방할 적에 소화제 하나만 가지고 처방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행법은 깨달음의 수단이 되는 것이지 전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옛 글에 어떠한 사람이 스승이 될 수 있느냐 물음에 계행이 바른 수행자도 스승이 될 수 없고 오직 숙명통이 열려야 가르칠 수 있는 스승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숙명통이 열린 스승은 제자가 전생에 무슨 공부를 했다는 것을 알고 전생에 공부한 것을 일러주어서 빨리 성취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음 차선책으로 양심적인 스승은 제자를 면밀히 몇 칠 몇 달을 관찰하고 저 제자는 어떠한 행법이 맞게다 하여 일러준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차선책으로는 본인이 선택하는 방법입니다 스스로가 잘 생각하여 관심이 있는 것을 선택하여서 하는 것입니다 잠재의식은 나의 전생입니다 잠재의식과 일치하면 싫증 없이 오래오래 하면서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수행하다가 싫증네고 행법을 자주 바꾸고 나태해지는 것은 전생공부 인연이 박복한 것입니다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것이 마음 닦는 공부이며 공부인연이 박복해도 해야 하고 인연이 깊어도 해야 합니다 급하지 않게 나태하지 않게 꾸준히 지어나가는 것입니다.
7. 행법(2)
오정심관(五停心觀)이라고 있습니다. 수행자의 기질에 따라 5가지의 수행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⑴부정관(不淨觀:탐욕이 많은 사람) ⑵자비관(慈悲觀:진심이 많은 사람) ⑶인연관(因緣觀:어리석은 사람) ⑷염불관(念佛觀:번뇌가 많은 사람) ⑸수식관(數息觀:산란한 사람)입니다 이 가운데서 수식관과 자비관 그리고 염불관을 소개 하겠습니다.
1. 호흡수행(아나빠나삿띠)
역사적으로 부처님의 수행법은 아나빠나삿띠 수행이라고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당시 요기들이 수행하는 지식(止息)호흡수행(호흡을 멈추었다가 하는 수행)하시였는데 별 진전이 없고 몸만 쇠하고 망가 지였습니다(당시 지식호흡으로 받은 고통은 아함경에 나와 있습니다) 결국은 지식호흡을 포기 지나가던 애기보살에게 우유 한 그릇 얻어 드시고 강으로 나가 목욕하시고 몸을 추스르신 다음 보리수아래서 자연호흡으로써 들숨과 날숨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시여서 결국에는 삼명육통이 열리는 대 아라한이 되신 것입니다.
“비구들이여 들숨과 날숨을 관찰하라 그러면 많은 이익 있다”
부처님 육성의 법문입니다 중국에서도 최초로 번역된 경전이 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안반安般은 수식관數息觀을 말한다)인데 중국에서는 민족 기질 때문인지 별 주목을 못 받았던 경전 이였고 다만 천태종에서 육묘문(六妙門)이라 하여 호흡수행으로 열반에 들어가는 수행법을 소개했습니다.
호흡수행은 초심자가 쉽게 접근 할 수 있는 수행법입니다 과학적으로도 마음을 가장 모우기 쉬는 방법이 호흡을 세고 관찰하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자세한 것은 단행본 「붓다의 호흡법 아나빠나삿띠」(불광출판사) 「붓다의 명상과 호흡」(정신세계사) 등입니다.
1. “제자들이여 들숨과 날숨을 생각하는 것을 잘 익혀야한다 그러면 몸이 피로하지 않게 되고 눈이 아프지도 않으며 관하여 즐거움에 머물 수가 있고 애착에 물들지 않게 되리라 이와 같이 들숨과 날숨을 닦으면 좋은 결실과 큰 복덕의 이익을 얻을 것이며 이렇게 하여 선정에 들면 드디어 자비심을 얻을 것이며 미혹을 떠나 깨달음에 들어 갈 것이다.”
-잡아함경 29권-
2. “수행승들이여, 이교도의 수행자들이 그대들에게 ‘벗들이여, 수행승 고따마는 무엇을 닦고 무엇을 익히며 우안거를 지냈는가?’ 라고 질문한다고 하자. 이와 같은 질문을 받으면,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은 이교도의 수행승들에게 ‘벗들이여, 세존께서는 우안거에 호흡에 대한 알아차림의 수행을 하고 호흡에 대한 알아차림의 집중을 익힌다.’라고 대답하라.
수행승들이여, 호흡에 대한 알아차림의 집중을 수행할 때 다음과 같이 분명하고 확고하게 알아차려야 한다. 길게 숨을 내쉴 때 ‘길게 숨을 내쉰다.’라고 알아차리고, 길게 숨을 들이쉴 때 ‘길게 숨을 들이쉰다.’라고 알아차린다. 짧게 숨을 내쉴 때 ‘짧게 숨을 내쉰다.’라고 알아차리고, 짧게 숨을 들이쉴 때 ‘짧게 숨을 들이쉰다.’라고 알아차린다.
‘온몸을 체험하면서, 숨을 내쉰다.’라고 자신을 다잡아 수행하고, ‘온몸을 체험하면서, 숨을 들이쉰다.’라고 자신을 다잡아 수행한다. ‘몸의 형성을 고요하게 하면서 숨을 내쉰다.’라고 자신을 다잡아 수행하고, ‘몸의 형성을 고요하게 하면서 숨을 들이쉰다.’라고 자신을 다잡아 수행한다.
‘희열(기쁨)을 체험하면서, 숨을 내쉰다.’라고 자신을 다잡아 수행하고, ‘희열을 체험하면서, 숨을 들이쉰다.’라고 자신을 다잡아 수행한다. ‘행복을 체험하면서, 숨을 내쉰다.’라고 자신을 다잡아 수행하고, ‘행복을 체험하면서, 숨을 들이쉰다.’라고 자신을 다잡아 수행한다.
‘마음의 형성을 체험하면서, 숨을 내쉰다.’라고 자신을 다잡아 수행하고, ‘마음의 형성을 체험하면서, 숨을 들이쉰다.’라고 자신을 다잡아 수행한다. ‘마음의 형성을 고요히 하면서, 숨을 내쉰다.’라고 자신을 다잡아 수행하고, ‘마음의 형성을 고요히 하면서, 숨을 들이쉰다.’라고 자신을 다잡아 수행한다.
‘마음을 체험하면서, 숨을 내쉰다.’라고 자신을 다잡아 수행하고, ‘마음을 체험하면서, 숨을 들이쉰다.’라고 자신을 다잡아 수행한다. ‘마음을 기쁘게 하면서, 숨을 내쉰다.’라고 자신을 다잡아 수행하고, ‘마음을 기쁘게 하면서, 숨을 들이쉰다.’라고 자신을 다잡아 수행한다.
‘마음을 집중하면서, 숨을 내쉰다.’라고 자신을 다잡아 수행하고, ‘마음을 집중하면서, 숨을 들이쉰다.’라고 자신을 다잡아 수행한다. ‘마음을 자유롭게 하면서, 숨을 내쉰다.’라고 자신을 다잡아 수행하고, ‘마음을 자유롭게 하면서, 숨을 들이쉰다.’라고 자신을 다잡아 수행한다.
‘무상(無常)을 관찰하면서, 숨을 내쉰다.’라고 자신을 다잡아 수행하고, ‘무상(無常)을 관찰하면서, 숨을 들이쉰다.’라고 자신을 다잡아 수행한다. ‘사라짐[離貪]을 관찰하면서, 숨을 내쉰다.’라고 자신을 다잡아 수행하고, ‘사라짐을 관찰하면서, 숨을 들이쉰다.’라고 자신을 다잡아 수행한다.
‘소멸[滅]을 관찰하면서, 숨을 내쉰다.’라고 자신을 다잡아 수행하고, ‘소멸을 관찰하면서, 숨을 들이쉰다.’라고 자신을 다잡아 수행한다. ‘보내버림(出離)을 관찰하면서, 숨을 내쉰다.’라고 자신을 다잡아 수행하고, ‘보내버림을 관찰하면서, 숨을 들이쉰다.’라고 자신을 다잡아 수행한다.
수행승들이여, 거룩한 삶, 청정한 삶, 여래의 삶에 대하여 말한다면 거룩한 삶, 청정한 삶, 여래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곧 호흡에 대한 마음 챙김의 수행에 집중하는 삶이라고 올바르게 말해야 한다.
수행승들이여, 만약 그들 수행승들이 아직 학승으로서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했더라도, 속박에서 벗어난 위없는 안온을 소망하면서 호흡에 대한 마음 챙김을 닦고 익히면 그것은 그들을 번뇌의 부숨으로 이끈다. 또, 수행자들이여, 만약 그들이 거룩한 이로서 번뇌를 부수고, 청정한 삶을 영위하고, 해야 할 일을 해 마치고, 짐을 내려놓고, 깨달음을 구현했으며, 윤회의 속박을 끊고, 올바른 지혜로써 해탈을 얻은 거룩한 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이 호흡에 대한 마음 챙김을 닦고 익힌다면, 그들은 현세에서 지복한 삶을 누리게 되고 올바른 마음 챙김과 올바른 앎이 있는 여래의 삶을 산다고 말할 수 있다. “
쌍윳따 니까야 11권
8. 행법(3)
자비관
자비관도 부처님께서 직접 제자들에게 일러준 수행법입니다. 안거를 지네기 위해 제자들이 숲에서 정진하는데 나무 목신(木神)들이 비구 스님 네들을 싫어했습니다. 목신은 불편해도 몇 칠만 버티면 가겠지 했는데 스님 네가 몇 칠이 지나도 떠나지를 않자 목신들이 심술을 부렸습니다.
숲에서 정진하는 스님 네들이 정신집중도 안되고 악취도 나고 해서 부처님을 찾아가 사정 이야기를 하니 부처님은 혜안으로 살펴보시고 자비관을 일러주시었습니다. 대중 스님 네가 다시 가서 자비관을 하면서 한철을 잘 지네고 떠나려하자 목신들이 나타나 스님 네를 붙잡으면 스님 네가 이곳에 오시기전에는 우리들이 매일 싸움만하고 지냈는데 스님 네가 오시여서 정진하면서 숲이 평화로웠는데 가시지 마시고 더 머무르면서 정진하기를 간청했다고 합니다.
상좌부불교의 교과서인 청정도론에 보면 수식관과 자비관에 대해서 많은 양의 글이 소개 되어 있습니다. 현재도 남방에서는 기초수행으로 자비관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자비관 수행이란 “일체중생을 위하여 애민(哀愍)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자비한 마음을 방사하는 것입니다” 정신과 의사인 호킨스박사의 의식혁명이라는 책에서도 인간이 자비심을 일으키는 것이 가장 좋은 에네지을 만든다고 합니다. 시중에 책으로는 자비관이란 고요한소리에서 나온 소책자가 있습니다.
자비관 수행
고통의 사바세계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고자 한다면 명상을 하십시오. 많은 명상 중에서도 특히 자비관 수행은 몸과 마음의 평화를 빨리 얻을 수 있습니다.
먼저 명상의 첫 걸음은 소식(小食)입니다 적게 먹어야 집중이 잘 이루어집니다. 좀 더 명상을 심도 있게 하고자 한다면 오후 불식(不食)이 좋습니다. 저녁에는 효소 음료수 한잔 이것이 힘들면 간단한 과일 한 조각 이면 다음날 아침까지 몸과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위장이 좀 비워진 상태에서 좌복에 앉자 서 첫 호흡을 길게 내 쉬십시오 태로 태어나는 모든 중생은 첫 호흡을 내쉰다고 합니다. 그리고 천천히 또박또박 염송합니다.
1)“나로 인하여 고통 받는 모든 중생들이 고통을 여위고 행복하십시오 ”길거나 짧거나 아니면 중간 치기거나 미세한 것이나 거대한 것이나 눈에 보이거나 눈에 안 보이거나 멀리 살거나 가까이 살거나 태어났거나 태어나려 하거나 모든 중생들이 고통을 여의고 행복하십시오.
- 아 - 이 마음 한번 일으킨 공덕으로 알게 모르게 나로 인하여 고통 받았던 모든 중생들이 나를 용서 합니다
나로 인하여 불편한 중생이 있다면 나의 공부는 모래로 밥을 짓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2) 도량 내에 있는 모든 중생들이 고통을 여위고 행복하십시오 길거나 짧거나 아니면 중간 치기거나 미세한 것이나 거대한 것이나 눈에 보이거나 눈에 안 보이거나 멀리 살거나 가까이 살거나 태어났거나 태어나려 하거나 모든 중생들이 고통을 여의고 행복하십시오.
3) 도(제주도) 내에 있는 모든 중생들이 고통을 여위고 행복하십시오 길거나 짧거나 아니면 중간 치기거나 미세한 것이나 거대한 것이나 눈에 보이거나 눈에 안 보이거나 멀리 살거나 가까이 살거나 태어났거나 태어나려 하거나 모든 중생들이 고통을 여의고 행복하십시오.
4) 남쪽에 있는 모든 중생들이 고통을 여위고 행복하십시오 길거나 짧거나 아니면 중간 치기거나 미세한 것이나 거대한 것이나 눈에 보이거나 눈에 안 보이거나 멀리 살거나 가까이 살거나 태어났거나 태어나려 하거나 모든 중생들이 고통을 여의고 행복하십시오.
5) 북쪽에 있는 모든 중생들이 고통을 여위고 행복하십시오 길거나 짧거나 아니면 중간 치기거나 미세한 것이나 거대한 것이나 눈에 보이거나 눈에 안 보이거나 멀리 살거나 가까이 살거나 태어났거나 태어나려 하거나 모든 중생들이 고통을 여의고 행복하십시오.
6) 동쪽에 있는 모든 중생들이 고통을 여위고 행복하십시오 길거나 짧거나 아니면 중간 치기거나 미세한 것이나 거대한 것이나 눈에 보이거나 눈에 안 보이거나 멀리 살거나 가까이 살거나 태어났거나 태어나려 하거나 모든 중생들이 고통을 여의고 행복하십시오.
7) 서쪽에 있는 모든 중생들이 고통을 여위고 행복하십시오 길거나 짧거나 아니면 중간 치기거나 미세한 것이나 거대한 것이나 눈에 보이거나 눈에 안 보이거나 멀리 살거나 가까이 살거나 태어났거나 태어나려 하거나 모든 중생들이 고통을 여의고 행복하십시오.
8) 아래쪽에 있는 모든 중생들이 고통을 여위고 행복하십시오 길거나 짧거나 아니면 중간 치기거나 미세한 것이나 거대한 것이나 눈에 보이거나 눈에 안 보이거나 멀리 살거나 가까이 살거나 태어났거나 태어나려 하거나 모든 중생들이 고통을 여의고 행복하십시오.
9) 위쪽에 있는 모든 중생들이 고통을 여위고 행복하십시오 길거나 짧거나 아니면 중간 치기거나 미세한 것이나 거대한 것이나 눈에 보이거나 눈에 안 보이거나 멀리 살거나 가까이 살거나 태어났거나 태어나려 하거나 모든 중생들이 고통을 여의고 행복하십시오.
10) 일체중생 모두가 고통을 여위고 행복하십시오 길거나 짧거나 아니면 중간 치기거나 미세한 것이나 거대한 것이나 눈에 보이거나 눈에 안 보이거나 멀리 살거나 가까이 살거나 태어났거나 태어나려 하거나 모든 중생들이 고통을 여의고 행복하십시오.
- 이 마음을 느끼는 일체중생들이 모두 응답하며 환희심을 냅니다 ―
11) 천천히 숨을 들이쉬면서
(관세음보살의 천수천안을 관하면서)
일체중생의 모든 고통을 다 거두어 주겠습니다.
숨을 천천히 내쉬면서
(아미타불의 무량광불을 관하면서)
일체중생에게 낱낱이 자비의 빛을 방사 합니다
다시 천천히 숨을 들이쉬면서
일체중생의 모든 고통을 다 거두어 주겠습니다.
숨을 천천히 내쉬면서
일체중생에게 낱낱이 자비의 빛을 방사 합니다
12) 마음에서 끊임없는 이어지는 자비의 빛을 방사 합니다.
시간적으로는 무량수불이며 공간적으로는 무량광불입니다
- 아 - 나는 간곳이 없고 무량수불, 무량광불 뿐 입니다
마음을 좁게 쓰면 바늘 하나 떨어질 자리도 없지만 마음을 넓게 쓰면 삼천대천세계을 싸고도 남음이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 억한 마음이 삼천대천세계를 오염시키고
한 생각 자비한 마음이 삼천대천세계를 정화 합니다
명상수행은 공기를 정화시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알게 모르게 일체중생에게 마음을 베푸는 것입니다.
자비관법은 부처님께서 육성으로 직접 일러주신 수행법입니다 부처님 당신께서도 자비관법 수행을 했다고 합니다. 위의 수행법은 본인이 자비관법 수행을 나에게 맞게 수정하여서 하는 수행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자비경慈悲經 카라니아 멧다숫타
1.누구나 좋은 일을 능숙하게 하고 평화로운 자리를 얻고자한다면 반드시 자비경을 암송하라,
제자들은 모든 일에 유능하고 정직해야 하며 고결하고 점잖아야 한다 말은 부드러워야 하고 행동은 거만하지 않아야 한다.
2.불제자는 모든 일에 만족 할 줄 알아야하고 남들이 부담 없이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조급하지 않고 검소해야 하며 감각은 고요하고 사려가 깊어야 한다. 더욱이 뻔뻔스럽거나 아부해서도 안 되고 가족의 인연에 치우처서도 안 된다
3.불자들은 현자에게 질책 받을 어떠한 행동도 삼가야 한다.
그런 다음에 이렇게 발원해야 한다.
“모든 중생들이 탈 없이 잘 지내기를 진정으로 행복하기를”
4.살아있는 모두가 하나도 예외 없이 그것들이 약하던 강하던 짧거나 길거나 작거나 아니면 중간 치기거나 미세하거나 거대하거나
5.또 눈에 보이거나 안보이거나 멀리 살거나 가까이 살거나 태어났거나 태어나려 하거나 모든 중생들이 행복하기만을 축원하라
6.자기의 도반을 비롯해 누구든지 어디에 있건 간에 속이거나 헐뜯는 일이 없게 하라 누구라도 잘못되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원한에서든 증오에서든
7.외아들을 사랑하는 어머니처럼 뭇 생명을 향한 자비심을 자기의 것으로 지켜내라
8.넓은 우주를 감싸는 자비심을 키위라 미움도 악의도 넘어선 잔잔한 자비를
9.서 있거나 움직이거나 앉거나 누웠거나 깨어 있은 한 이 자비의 마음을 챙겨라 세상에서 말하는 “거룩한 삶”이 바로 이것이다
10. 그릇된 생각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고 계행과 해탈의 경지를 갖추어 감각기관의 욕망을 이겨낸다면 그는 또 다시 모태에 들지 않으리.
9. 행법(4)
염불선(念佛禪)
염불선은 대승경전은 물론 아함경에도 염불선 수행에 대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남방에서 마지막 아라한이라고 말하는 아짠문스님(1870~1950) 글에 보면 붓도를 관(觀)하는 수행했다는 글이 나오고 있습니다.
“염불선이란 부처님을 염(念)하고 관(觀)하면서 부처님의 몸과 마음을 닮아가는 수행입니다” 염불(念佛)과 염불선(念佛禪)이라는 말은 부처님을 칭념하는 염불이 깊어지면 자연히 부처님을 사유(思惟) 관찰(觀察)하는 염불선이 되는 것입니다.
대승경전 6백부가운데 2백부가 염불수행을 말하였다고 합니다 초심자도 신심만 있으면 쉽게 접근 할 수 있고 장점도 많은 수행법입니다 인간의 마음을 가장 자극하는 것이 소리입니다 소리는 긍정적인 소리가 있고 부정적인 소리가 있니다. 과학자들도 가장 부정적인 소리가 기계톱으로 나무 자르는 소리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살생하는 소리입니다 부처님 말씀에 짐승을 죽이지도 말고 죽이는 것을 보지도 말고 짐승의 비명소리도 듣지도 말라고 합니다
이런 부정적인 소리을 계속 들으면 사람이 부정적인 생각을 같게 되는 것입니다 가장 긍정적인 소리가 찬탄하는 소리, 부처님을 찬탄하는 소리입니다 부처님 명호을 계속하여 찬탄하면 신심도 살아나고 생각도 긍적적인 생각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을 소리을 내서 “나무아미타불”소리을 듣는 수행이 익숙해지면 좌복에 앉자서 나무아미타불을 사유(思惟)관찰(觀察)하게 되는 것입니다
죄송한 표현이지만 부처님경전에는 의심하라는 말은 없습니다. 선(禪)이라는 것은 사유(思惟)을 말하는 것입니다 선(禪)의 교과서라는 릉엄경의 핵심도 염불선을 말하는 것입니다.
염불수행
염불수행은 특이 한 것이 없습니다. 약한 불에 오래 익힌 음식이 맛있듯이 오래 오래 꾸준히 일생을 바친다는 생각으로 하는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 한 구절을 써서 벽에다 붙치어 놓고 좌선하는 자세로 앉자 서 염송하십시오. 눈으로 보고 입으로 소리 내고 귀로 듣고 천 주을 돌리면서 하시여도 좋습니다.
“나무아미타불”을 또렷이 소리 내고 또렷이 듣는다면 속도가 빨라져도 상관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얼마 못하지만 꾸준히 하면 속도도 붙고 숫자도 늘어 갑니다. 세월이 가면 “나무아미타불”이 걸음걸음 마다 생각 생각마다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참 샘에서 맑은 샘물이 솟구치듯이 가슴 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매 마른 땅에 봄비가 내리어 대지을 촉촉이 적시어 나가면서 만물이 소생 하듯이 “나무아미타불” 진동이 내 마음을 치면서 척박한 마음을 적시면서 나을 정화시키고 주변을 정화 시킵니다. 우리는 그것을 염념상속(念念相續) 이라고 합니다.
염념상속이 좀 더 깊어지면서 더덕더덕 붙어있던 삼독심(三毒心)과 망상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 합니다 병고(病苦)도 망상의 그림자 일 뿐입니다. 온전히 “나무아미타불”여섯 자 만 남았을 때 탁한 물이 걸러지어서 맑은 물이 되듯이 삼독심과 망상에 쩌든 마음이 정갈 해지기 시작 하면서 계행이 스스로 우러나와서 갖추어지기 시작 합니다 계행은 스스로 마음으로부터 갖추어질 때 온전한 계행입니다.
수행과 계행이 나란히 갈 적에 바른 수행입니다. 흔히 계행과 망상을 걱정 합니다 그러나 염념상속이 익으면 자연히 해결되는 것 입니다 계행과 염념상속 즉 집중(止ㆍ定ㆍ사마타ㆍ一行)이 어느 정도 되었을 때야 비로소 관찰(觀察)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나무아미타불”이 가슴 속에 사무처 나갈 때 관상염불(觀像念佛) 또는 실상염불(實相念佛) 을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수행의 마지막 부분은 관찰(觀ㆍ慧ㆍ一相ㆍ觀照ㆍ廻光返照ㆍ비파사나)입니다 끊임없는 자아성찰과 관찰을 통해서 지혜(智慧)ㆍ반야(般若)가 드러나는 것 입니다 다라니를 하던 염불을 하던 화두를 하던 지혜. 반야가 동반되지 않은 수행은 쭉쟁이 수행 일 뿐입니다.
널뛰는 마음 가지고는 관찰이 제대로 할 수 없기에 먼저 집중하라 하는 것 이고 집중도 제대로 안 되기 때문에 먼저 계행을 지키어라 하는 것입니다. 계(戒)ㆍ정(定)ㆍ혜(慧) 삼학(三學)입니다 계와 정을 묶어서 정이라 하며 定(止)과 慧(觀)을 함께 수행하라 해서 정혜쌍수라고도 합니다. 정혜가 나란히 할 적에 바른 수행입니다 수레가 양 바퀴를 굴려서 먼 길을 가듯이 정혜쌍수가 깨달음의 길로 인도 합니다 이러한 공부인의 삶은 정갈 합니다 건강ㆍ정직ㆍ보시ㆍ청빈ㆍ검소ㆍ겸손ㆍ너그러움ㆍ자비심 다 바른 수행을 하였을 때 일어나는 덕목입니다.
수행이 한 단계 더 내면으로 들어갔을 때 비로소 온전한 보리심(菩提心)이 일어납니다. 보리심이란 마음은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윤회하는 생명 모두를 연민 하는 자비심(慈悲心)에서 비롯됩니다. 자비심이란 상대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그들을 괴로움으로부터 건져내고 모두가 바른 깨달음을 얻도록 해주려는 마음에서 보리심이 나오는 것입니다.
보리심이 마음에 인(忍-어떠한 고통에도 마음에 흔들림이었음)이 되어 을 때 비로소 수행의 문에 들어 왔다 수행의 출발이다 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이전의 삶은 다 중생의 삶입니다. 출가자 재가자를 막론하고 나라는 생각을 질 머진 수행과 삶은 중생의 놀이 일 뿐입니다 중생은 나와 너라는 이분적인 울타리가 있지만 수행자의 삶은 그 울타리를 부수어 하나로 만드는 것입니다.
보리심을 지닌 참 수행자가 탁한 물을 거르듯이 사바세계를 정화 시키어 줍니다. 온전한 보리심을 지니고 하는 나무아미타불 염불 한번이나 천수경ㆍ금강경 한 구절ㆍ절ㆍ진언ㆍ들숨과 날숨이 일체중생의 업을 녹이고 깨달음의 길로 인도합니다. 온전한 보리심. 깨달음. 결국은 인격 완성입니다 그러나 인격 완성은 한생에 이루어지지 않은 다고 합니다
전생에서 금생으로 다음 생으로 끝없이 이어 집니다.
산 너머 산 끝없이 이어지는 산 머나먼 길입니다 그러나 꼭 가야 할 길입니다.
-아 애쓰고 애쓰십시요-
願我盡生無別念. 阿彌陀佛獨相隨. 心心常係玉毫光. 念念不離金色相
원컨대 저는 생명이 다 하도록 다른 생각 없이 오직 아미타불 모습 따라 마음과 마음을 항상 옥호 광에 두고 생각 생각 금색 상을 여의지 않겠나이다.
10. 맺는 글
인간의 마음에는 두 가지의 속성(屬性)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기심이고 하나는 이타심입니다 이기심(利己心)을 전문적인 언어로 탐(貪)ㆍ진(瞋)ㆍ치(痴) 삼독심, 아상(我相)ㆍ인상(人相)ㆍ중생상(衆生相)ㆍ수자상(壽者相)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이타심(利他心)은 우리가 간직한 순수한 마음 불성(佛性),자성(自性)청정심(淸淨心)이며 보리심(菩提心)이며 인격화 시키였을 적에는 관세음보살ㆍ아미타불입니다.
모든 종교의 성자들의 가르침이 이기심을 뽑아내고 이타심을 기르라고 강조했지만 이기심을 소멸시키기가 어렵고 어려운 길입니다 현대사회의 무한 경쟁은 이기심을 부추기고 성공으로 미화시키고 있습니다. 예전보다 물질적으로는 풍요해지였지만 행복치수는 오히려 낮아지였습니다 그러나 한 생각 돌이켜보면 이기심 때문에 인간이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한번 일으키는 이기심은 몸과 마음을 긴장시키며 긴장한 만큼 세포는 죽게 되는 것입니다 스트레스를 다시 말하면 과도한 긴장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타심을 한번 일으키면 몸과 마음이 이완되면서 행복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제가 새벽에 일어나 우주를 깨우는 도량석를 돌고 부처님 전에 나아가 일체중생을 위하여 발원하는 일, 숨을 고르고 일체중생의 모든 고통을 거두어 주겠다는 서원으로 들숨과 일생중생에게 자비의 빛을 방사하면서 날숨을 하는 좌선하면서 무한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모든 세속적이 감각이 절제된 비구의 삶을 가꾸어 나갈 수 있는 것은 이런 원력과 수행이기 때문입니다.
율장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사미스님이 큰스님 따라 공양 청을 받고 따라가는데 갈 적에는 이타심을 간직하고 따라가니 하늘에서 신장님들이 꽃을 뿌리면 찬탄했습니다. 그러나 과분한 공양을 받고 재물까지 얻으니 마음이 흔들리어 이기심이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신장님들이 침을 뱉으며 돌아서는 것입니다. 어떠한 종교나 수행을 하던 이기심이 소멸되어야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고 깨달았다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아미타불” 열 번만 불러도 극락세계 왕생한다는 말도 극락세계도 이기심이 소멸되어야 가는 세계입니다. “화두를 타파했다” “깨달았다” 말하는 사람도 재물에 헐떡거리고 이름에 헐떡거리는 것은 아직 이기심이 남아있는 것입니다 .
저 또 한 “가진 자의 거만함과 갖지 못한 자의 비굴함에 분노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향하는 길이 용서하고 이해하고 이기심에 대해서 보고 느끼며 소멸하고자 마음을 내는 것입니다. 수행이란 인격 완성입니다 인간이 되고 성불하는 것입니다 인간도 안 된 는데 성불하겠다는 객기는 이웃을 피곤하게 할 뿐입니다. 좌선이란 긴 글 함께하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모두 수행을 통하여 마음을 밝히고 사회를 밝히 여서 모두가 성불하기를 발원합니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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