念佛禪 特講
강사 대주스님
차 례
Ⅰ. 序 文 1
Ⅱ. 禪淨一如의 念佛禪 3
1. 禪의 意味 ...................................................................................... 3
2. 念佛禪의 根據 4
3. 念佛禪의 定義 6
4. 念佛禪 修行法 7
1) 稱名念佛法 7
2) 參究念佛法 8
3) 觀念念佛法 10
4) 耳根圓通稱名念佛法 10
5. 金陀의 「菩提方便門」에 나타난 念佛禪 14
6. 念佛禪 修行의 次第 15
Ⅲ. 結論 16
Ⅰ. 序 文
부처님의 八萬四千 가르침은 우주와 인생에 대한 진리를 올바로 깨달아 모든 고통과 죄악, 슬픔 등의 번뇌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해탈법문이다.
부처님께서는 解脫涅槃의 實踐法으로 戒定慧라는 三學의 수행을 제시하셨는데, 根本佛敎에서는 五停心觀과 三十七助道品이 그 實踐修行說이다. 그러나 대승불교에서는 각 시대마다 敎法이 발달하고 여러 종파로 나눠지면서 각 종파마다 독특하고 다양한 수행체계가 발달하여 왔다.
이 가운데서 念佛思想은 근본불교에서는 「雜阿含經」三十三에 念佛, 念法, 念僧, 念戒, 念施, 念天이라는 여섯가지 법[六隨念處]이 말씀되어 있고, 대승불교가 일어난 후 阿彌陀佛과 極樂世界를 말씀하신 경전은 「般舟三昧經」, 「阿彌陀經」, 「無量壽經」, 「觀無量壽經」, 「華嚴經」, 「法華經」, 「涅槃經」, 「楞嚴經」, 「寶積經」, 馬鳴菩薩의 「起信論」, 龍樹菩薩의 「十住毘婆娑論」, 「智度論」, 世親菩薩의 「往生論」 등 수많은 經典과 論書, 그리고 역대 祖師들의 법문 속에 염불에 관한 기록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참선하는 이들은 看話禪을 위주로 禪修行을 하고 있으나, 이런 수행풍토 속에는 念佛禪 修行도 함께 있어 왔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예로부터 禪을 분류할 때, 外道禪, 凡夫禪, 小乘禪, 大乘禪, 最上乘禪, 如來禪, 祖師禪 등 여러 가지로 말하고 있다. 그 중에서 祖師禪이란 六祖慧能 계통의 南宗禪을 의미하는데, 南宗禪에서는 潙仰宗(表相現法1)), 臨濟宗(看話禪2)), 曹洞宗(黙照禪3)), 雲門宗(一字觀4)), 法眼宗(念佛禪5)) 등 五宗의 修行家風이 형성된 후에 臨濟宗에서 파생한 黃龍宗과 楊岐宗의 二宗을 더하여 五家七宗에서 수행한 參禪法을 총칭한다. 따라서 祖師禪이라고 한다면 위의 다섯 가지 수행법이 모두 포함되고 있기 때문에 念佛禪도 祖師禪의 한 修行法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종래 중국의 淨土宗에서 행하는 염불수행은 阿彌陀佛의 本願에 의해 往生極樂하려는 他方淨土信仰 위주였지만 唐末이후 佛敎思潮가 禪淨一如의 성격을 띠고 있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역대 祖師들의 어록에도 禪淨一如의 내용이 많이 실려 있다.
오늘날 禪淨一如의 念佛禪에 대한 관심이 적지 않은 만큼 현대학문으로 치밀한 연구가 행해질 필요가 있고, 또한 念佛禪에 대한 합리적이며 정확한 定義를 내려 어떻게 닦아야 진정한 念佛禪이라 할 수 있는지 그 한계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오늘 이 시간에는 지난해 동국대학원에서 석사학위 논문으로 제출된 念佛禪 修行法 ??를 간추려 소개할까 한다.
Ⅱ. 禪淨一如의 念佛禪
淨土宗의 염불수행은 阿彌陀佛에 의지하여 현세에서는 평안을 찾고, 내세에서는 그 本願에 의해 極樂淨土에 왕생하여 그곳의 훌륭한 여건에서 수행하여 成佛함을 목표로 하는 他力修行의 대표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안에서 나를 찾기보다는 다분히 신비적인 경향으로 흐르기 쉽다. 이에 반해 禪宗에서는 마음이 바로 부처다[心卽是佛], 문자를 내세우지 않고[不立文字], 마음을 곧 바로 가리켜[直指人心], 성품을 보아 성불[見性成佛]하는 이론을 앞세워 수행을 하게 되는데, 이 수행법은 현세에 成佛함을 목표로 하지만 사실 눈 밝은 善知識의 가르침을 받아 몸과 마음을 잘 다스려 得力을 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淨土宗과 禪宗 수행의 장점을 취하면서 그 한계성을 보안하고 극복하여 현생과 내생에 성불함을 목표로 하는 自力과 他力을 겸한 禪淨一如의 수행법으로 새롭게 주창된 것이 바로 念佛禪이라고 할 수 있다.
2. 禪의 意味
禪이란 무엇인가? 宗密은 「禪源諸詮集都序」에서 禪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禪이란 산스크리트어로 구체적으로 말하면 禪那(dhyāna)인데 中國에서 번역하여 思惟修라 하고 또한 靜慮라고도 했다.”6) 그런데 여기에서 禪那라는 것은 빨리어 Jhāna의 音譯이고, 이 Jhāna에서 後部의 母音 a가 떨어져 나가 音寫된 것이 禪이다.7) 그러면 思惟修와 靜慮란 무슨 뜻인가? 하면 思惟修라는 것은 마음을 어느 한 대상에 오롯하게 集中하여 細審하게 思慮하는 것을 思惟, 이와 같은 心理로 漸進하는 것을 修라 한다. 그리고 靜慮라는 것의 靜은 寂靜의 뜻인데 思慮는 觀의 뜻으로서 慧를 의미하므로, 靜慮라는 것은 定과 慮의 뜻을 구비한 것이 된다.8) 그리고 samādhi는 梵語인데 中國에서 번역하여 定이라 하였고 音譯하여 三昧라고 하였다. 그 뜻은 마음을 하나의 목표물에 집중시켜 산란하지 않은 상태[心一境性]를 말한다.9)
2. 念佛禪의 根據
전통적인 淨土宗은 西方淨土가 분명하게 존재하고, 念佛의 목적이 往生極樂淨土임을 주장한다. 그러나 禪宗에서 수용된 淨土는 來生이 아닌 지금 現世에서 도달한다는 것이고, 他力에 의한 성취가 아니라 自力에 의한 自覺이란 점을 들고 있다. 그래서 淨土란 곧 자기 마음의 淸淨을 의미한다. 이러한 唯心淨土의 思想은 淨土의 개념을 禪에서 수용하여 禪淨一如의 念佛禪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10) 이러한 念佛禪 사상의 經典 根據로는 「文殊說般若經」에서 다음과 같이 念佛禪을 說하고 있다.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길. “세존이시여, 마땅히 어떻게 행하여야 속히 無上正等覺을 성취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문수사리여, 반야바라밀경의 說하는 바와 같이 닦아 행하면 속히 無上正等覺을 얻을 수 있다. 다시 一行三昧가 있으니, 만약 善男子 善女人이 이 삼매를 닦는 이는 또한 속히 無上正等覺을 얻을 것이다.” 문수사리가 아뢰길, “世尊이시여, 어떠한 것을 一行三昧라 합니까?”하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法界[眞如․法身]는 一相이니 생각을 法界에 붙들어 매는 것[繫緣法界]을 一行三昧라 한다. 만약 善男子 善女人이 一行三昧에 들어가고자 하면 마땅히 먼저 반야바라밀을 듣고 說한대로 修學한 뒤에야 一行三昧에 들어갈 수가 있는데, 法界와 같아짐을 인연하여[法界緣] 물러나지 않고[不退], 무너지지 않으며[不壞], 不思議하며, 걸림이 없고[無礙], 無相이 된다. 善男子 善女人이 一行三昧에 들어가고자 하면 마땅히 비고 한적한 곳을 선택하여 모든 어지러운 뜻을 버리고 형상이나 모양에 집착하지 말고 마음을 一佛에 붙들어 매어 오로지 名號를 부르며, 부처님 계신 방향을 따라 몸을 바로 향하여 한 부처님에 대해 생각생각 서로 이어가면[念念相續] 곧 이 念하는 가운데 능히 과거․미래․현재의 모든 부처님을 親見할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一佛을 念하는 공덕은 無量無邊하며, 또한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의 功德과 다름없고, 不思議하며, 佛法과 평등하여 분별이 없으니, 모두 한결같음[一如]을 힘입어서 無上正等覺을 성취하고, 모두 한량없는 공덕과 한량없는 辯才를 갖추기 때문이다.”11)
라고 하여, 一行三昧로써 無上正等覺을 성취하는 三昧 자체로 보이고, 다시 一行三昧의 實踐法으로는 念佛方便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初期 禪宗에서 淨土를 一心에서 통합하여 禪淨一如의 念佛禪을 언급한 것은 四祖 道信(580~651)의 「入道安心要方便法門」에서 찾아볼 수 있다.
善男子 善女人이 一行三昧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마땅히 여유 있고 한가로운 곳을 선택하여 모든 어지러운 생각을 버리고, 형상이나 모양에 집착하지 말고 마음을 一佛에 붙들어 매어 오로지 부처님 名號를 부르며, 부처님계신 방향을 따라 몸을 단정히 하고 바로 향하여 한 부처님을 생각생각 서로 이어가면[念念相續] 곧 이 念하는 가운데 능히 과거 미래 현재의 모든 부처님을 친견하게 된다. 어찌하여 그런가 하면, 一佛을 念하는 功德은 無量無邊하며, 또한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의 功德과 다름없고, 不思議하며, 佛法과 평등하여 분별이 없으니, 모두 한결같음[一如]을 힘입어서 無上正等覺을 성취하고, 모두 한량없는 공덕과 한량없는 辯才를 갖추기 때문이다.12)
라고 하여, 道信은 一行三昧의 구체적인 行法으로 앞에서 인용한 「文殊說般若經」의 念佛方便을 들어 說하고 있다. 이것은 四祖 道信 때에 이미 禪淨一如의 念佛禪이 行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이 「入道安心要方便法門」은 禪宗에서 念佛禪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그 사상의 흐름은
五祖 弘忍의 제자 宣什과 淨衆宗의 無相 , 그리고 宋代의 法眼을 거쳐 永明에게서 강조되었으며, 元代하에 와서는 中峰는이 계승하여 그의 제자 天如로 이어져 明代에 와서 雲棲에게로 계승되어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光宗朝에 이르러 法眼宗의 永明延壽 門下에서 수학한 승려들에 의해 도입되어 대각국사의 天台宗 開倉에도 큰 영향을 미쳤으며, 보조의 定慧結社 성립에도 많은 역할을 하였다.
3. 念佛禪의 定義
念佛禪이란, 말 그대로 염불과 禪이 합치된 복합명사이고, 이는 염불의 他力的인 신앙과 禪의 自力的인 수행을 하나로 합치시켜서 解脫涅槃을 이루고자 하는 수행법이다.
淸華(1923~2003)는 念佛禪에 대한 定義를 내릴 때 「觀無量壽經」을 인용하여 念佛禪의 근거를 두고, 자신이 번역한 「淨土三部經」의 「解題」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극락세계를 念願하고 아미타불을 생각하며 그 名號를 부르는 염불 공부는 眞如自性을 여의지 않는 참선 공부와 본래 優劣이 없으니, 염불과 禪은 일치한 것이다. 그리고 念佛과 參禪이 둘이 아닌 禪淨一如의 뜻이 담긴 대표적인 법문은 「觀無量壽經」의 다음 구절을 들 수 있다. “모든 부처님은 바로 法界를 몸으로 하는 것이니 일체 중생의 마음 가운데 들어 계시느니라. 그러므로 그대들이 마음에 부처님을 생각할 때 이 마음이 바로 三十二相과 八十隨形好를 갖춘 원만 德相이니라. 그래서 이 마음으로 부처님을 이루고 이 마음이 바로 부처님이니라”.13)
이것으로 볼 때 淸華의 念佛禪은 自性을 여의지 않는 實相念佛을 하는 것을 念佛禪이라고 정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懶翁慧勤(1320~1367)의 唯心淨土 自性彌陀에 해당하는 偈頌에는 다음과 같이 念佛禪을 표현하고 있다.
阿彌陀佛 어느 곳에 계시는가?
마음에 붙들고서 간절히 잊지 않는다면,
念佛하는 一念은 一念마져 끊어진 無念處14)에 도달하여
六根門에 항상 紫磨金色光明을 놓으리.15)
라고 되어 있다. 이 게송에서는 ‘阿彌陀佛’이라는 名號를 一心不亂하게 부르다보면 염불하는 그 一念마져 끊어져 無念의 境地에 도달하고서, 우리의 몸과 마음을 표현하는 六根門에 항상 紫磨金色光明(부처님 몸에서 나는 자줏빛 광명)을 놓는다. 즉 이 몸 이대로 阿彌陀佛을 이루게 됨을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이 게송에서는 어떠한 종류의 염불을 하느냐보다는 一心不亂으로 염불하여 念佛三昧를 성취하는 無念의 境地에 들어감을 더욱 더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禪’을 禪定 혹은 定(三昧), 心一境性, 一心不亂 등의 뜻으로 본다면 稱名念佛, 觀像念佛, 觀想念佛, 實相念佛, 參究念佛 등 어떠한 종류의 염불이든 다만 마음을 念佛에 집중하여 一心不亂이 되게 하거나, 三昧에 들거나 無念의 境地에 이른다면 그것을 念佛禪이라고 해야될 것 같다. 따라서 念佛禪이란 자신의 여건과 취향에 맞는 念佛法을 선택한 다음 “마음을 念佛에 집중하여 一心不亂이 되게 하고서 無念의 境地에 도달하여 解脫涅槃을 성취하는 禪修行法이다.”라고 定義할 수 있다.
4. 念佛禪의 修行方法
앞에서 念佛禪의 定義를 “念佛禪이란 자신의 여건과 취향에 맞는 염불법을 선택한 다음 마음을 念佛에 집중하여 一心不亂이 되게 하고서 無念의 境地에 도달하여 解脫涅槃을 성취하는 禪修行法이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念佛禪의 修行方法도 이러한 見解에 입각해서 전개해나가려 한다.
1) 稱名念佛法
‘稱名念佛’이 왜 念佛禪이 되는가? 稱名念佛은 입으로 부처님의 名號를 부르는 念佛法을 말하는데, 或者는 그것이 방편염불이지 어떻게 念佛禪이 되겠는가 하고 의심할 수가 있다. 그러나 「阿彌陀經」에서는 往生要訣로 다음과 같이 說하고 있다.
사리불아, 만약 착한 사람들이 아미타불에 대한 설법을 듣고 그 명호를 굳게 지니어[執持名號], 하루나 이틀이나, 혹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혹은 이레 동안을 두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흐트러지지 않으면[一心不亂], 그 사람의 수명이 다할 때, 아미타불께서 여러 聖人 대중들과 함께 그 사람 앞에 나투시느니라. 그래서 그는 끝내 마음이 뒤바뀌지 않고, 바로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에 왕생하게 되느니라.16)
라고 되어 있다. 여기에서 往生要訣로 염불행자가 往生하기 위해서는 “執持名號 一心不亂”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鏡虛(1875~1939)는 “一切法을 根源에서 了達한다면 어찌 禪敎를 분별할 것인가?”라고 하면서 이러한 뜻에서 鏡虛는 「與藤岩和尙」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看話門에서는 惺寂等持하면 반드시 見性한다하고, 念佛門에서는 一心不亂하면 결정코 往生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一心不亂이 어찌 惺寂等持가 아니겠는가? 만약 一心不亂을 他力이라 한다면 惺寂等持가 어찌 他力이 아니며, 만약 惺寂等持를 自力이라 한다면 一心不亂이 어찌 自力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一心不亂과 惺寂等持는 과연 어떤 사람이 더디고 빠르며, 어떤 사람이 어렵고 쉬운가.…17)
이와 같이 鏡虛는 看話門의 惺寂等持(밝게 깨어 있음과 고요한 상태로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평등하게 유지함)와 念佛門의 一心不亂(한결같은 마음으로 산란하지 않음)이 서로 다르지 않음을 밝히고 있다.
이상에서 稱名念佛과 관계되는 내용을 살펴보았는데, 稱名念佛이 念佛禪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一心不亂으로 염불을 해야하며, 念佛行者는 이와 같이 一心不亂으로 염불을 행하여 念佛三昧를 성취하고, 阿彌陀佛을 親見하거나 또는 往生을 하게 된다고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稱名念佛도 一心不亂으로 행하여 念佛三昧에 도달한다면 念佛禪이 됨을 알 수 있다.
2) 參究念佛法
「參究念佛」이란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念佛을 參究한다’는 말인데, 이는 염불하면서 “지금 염불하는 자가 누구인가[念佛者是誰?]”를 參究해가는 수행법이다.
禪淨一如의 參究念佛法의 최초 근거는 허흥식교수에 의해 발표된 것으로 「蒙山和尙의 念佛話頭法」과 「蒙山和尙念佛法語」를 들고 있는데 여기서는 「蒙山和尙의 念佛話頭法」을 소개한다.
「蒙山和尙念佛話頭法」
‘나무아미타불’하는 十二時중 四威儀18)에서 혀는 움직이지 말고 또한 마음도 昧하지 말며 ‘이 염불하는 자는 누구인가?’를 때때로 점검하여 스스로를 返照하여 보라. 이 몸은 허망하여 잠시 빌린 것이라 오래지 않아 죽어서 썩어지면 염불하는 자는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이와 같이 열심히 닦아 오랜 세월이 지나면 자연히 이 육신을 떠나지 않았을 때 곧 西方에 도달하여 아미타불을 친견하게 된다. 이때 천만번 다시 아름답고 빛나는 광채[精彩]를 붙들고서 勇猛心을 발휘하여 間斷없이 공부하라. 그러면 자연히 고향집에 도착하는 時節이 있으리니 소홀히 하지 말라.19)
이 念佛話頭法에서는 南無阿彌陀佛이라는 염불을 話頭公案의 입장에서 수용한 것으로, 그 염불하는 방법은 한편으로는 마음속으로 나무아미타불을 念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염불하는 자가 누구인가[念者是誰]’를 參究하는 것이다. 參究하는 방법 또한 다른 話頭를 參究하는 방식과 전혀 다르지 않다. 이 법문에서도 강조되는 것은 온종일[十二時中] 行住坐臥에 있어서 勇猛心을 발휘하여 間斷없이 즉 一心不亂하게 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닦으면서 오랜 세월이 지나면 이 육신을 떠나지 않고서도 阿彌陀佛을 친견한다 했으니, 내 自性이 바로 阿彌陀佛이며 唯心淨土임을 일러주는 가르침이라 하겠다.
이것은 南宋에서 발전된 看話禪法이 念佛에 그대로 적용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淨土宗의 念佛法으로 분류한다면 소리를 중시하는 稱名念佛이 아니라 마음을 觀하고 念하는 觀念念佛에 해당되며, “色身을 떠나지 않고서 아미타불을 친견한다”했으니 名號不思議에서 아미타불의 가피를 입는 他力的인 요소와 自性에서 今生에 阿彌陀佛을 친견하는 自力的인 요소가 융합된 禪淨一如의 念佛禪 修行法이라 하겠다.
3) 觀念念佛法
‘念佛’이란 부처님을 念하는 것이다. 여기서 念한다는 말은 산스크리트어로는 smṛti이며, 빨리어로는 sati를 말한다. 그 의미는 알아차림, 깨어 있음, 想起[생각해냄], 記憶[대상을 기억하는 것], 憶念[대상을 기억하여 잊지 않음]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佛’이란 말은 빨리어 buddha의 音譯인데, 覺者[진리를 깨달은 사람]라고 漢譯하는데, 여기서는 佛身, 佛名, 覺, 眞如, 實相을 뜻하므로 부처님의 깨달음일 수도 있으며, 佛身이나 名號 자체일 수도 있다.20)
念佛法에 대한 분류로는 圭奉宗密(780~841)의 「華嚴經行願品別行疎鈔」에서는 稱名念佛, 觀像念佛, 觀相念佛, 實相念佛로 구분하고 있는데, 稱名念佛은 佛名號를 입으로 소리내어 부르면서 하는 염불이고, 觀像念佛은 佛像을 관하면서 하는 염불이며, 觀相念佛 혹은 觀想念佛은 부처님의 相好․功德․莊嚴 등을 觀하면서 하는 염불이며, 實相念佛은 자신과 아울러 一切 諸法의 眞如自性인 法身을 관하면서 하는 염불을 말하기 때문에 稱名念佛을 제외한 나머지 세 가지는 觀念念佛에 해당된다.
觀念念佛이 念佛禪이 되기 위해서는 역시 一心不亂으로 佛身․相好․佛像․光明․眞如․自性․法身․實相 등을 觀하고 念하여 三昧를 이룰 때 비로소 念佛禪이라고 할 수 있다.
4) 耳根圓通稱名念佛法
‘耳根圓通稱名念佛法’21)이라는 말은 “단지 부처님의 名號를 부르는 稱名念佛에다 念佛하는 소리를 觀하는 耳根圓通22) 원리를 겸하여 無念의 境地에 이르러 涅槃을 성취하는 禪淨雙修의 수행법”을 말한다.
소리를 觀하면서 수행한다는 것은 耳根(귀의 감각기관)을 활용한다는 것인데, 耳根이란 六根 가운데 가장 靈敏한 것으로, 이 耳根을 활용하여 三昧에 들어 成道하는 수행방법은 「楞嚴經」의 「二十五圓通章」에 다음과 같이 說해져 있다.
부처님께서 文殊菩薩에게 묻기를, “스물 다섯 분의 大菩薩들과 阿羅漢들이 제각기 처음에 成道하던 方便을 말하면서 나름대로의 修行法을 제시했지만, 阿難과 末法時代의 중생들이 菩薩乘에 들어가고 無上道를 구하려면 무슨 方便을 써야 쉽게 성취하겠는가?”라고 묻고 있다. 이에 文殊菩薩이 대답하길, “스물 다섯 분의 善知識들 가운데 觀世音菩薩의 耳根圓通法이 가장 殊勝합니다.”라고 찬탄하고 있다. 이와 같이 「楞嚴經」에서 阿難과 末法時代의 衆生들을 救援하고 涅槃妙心을 성취하는 가장 殊勝한 方便으로 제시한 修行法이 바로 耳根圓通法임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筆者가 稱名念佛에다 耳根圓通 原理를 겸하여 수행하는 「耳根圓通稱名念佛法」을 행하게 된 세 차례의 경험을 소개하고자 한다.
맨 처음엔 출가하기 전에 1988년 冬安居때 경상북도 영풍군 순흥면 小白山 聖穴寺에서 百日觀音祈禱를 봉행하면서 峰徹禪師(주지스님)께서 高聲念佛을 권하여 高聲으로 觀世音菩薩을 부르면서 단지 내 염불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면서 五體投地의 절을 하다보니 주변의 스님이나 불자들이 전혀 의식이 되지 않고 一心不亂하게 念佛이 되었다. 이렇게 백일간 하면서 자신의 염불소리를 들으면서 염불을 할 때 쉽게 몰입이 되고, 一心不亂하게 염불을 할 수 있음을 체험하였지만, 어떠한 원리에 의해서 잡념망상이 쉽게 사라지고 몰입이 쉽게 되는지를 잘 몰랐었다. 그렇지만 그 때 약간의 종교적인 체험이 있었기에 그 이듬해에 곧바로 전남 곡성군 죽곡면 桐裡山 泰安寺에 가서 淸華禪師를 恩師로 출가를 하게 되었었다.
두 번째는 앞의 경험을 가진 뒤 10년째 되던 해(1998년)에 전남 장흥군 대덕읍 天冠山 般若臺 土窟에서 3년간23) 정진을 하면서 처음 1년간 大悲呪를 하루 천 번 이상 외우는 기도를 할 때의 일이다. 그 때는 낮 동안엔 혼자서 토굴을 지어가면서 공부를 해야 했으므로 좌선을 위주로 수행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공부도 하면서 일도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다보니 예전의 禪師들은 본철 安居에는 좌선을 위주로 하고 산철에는 3개월 동안에 大悲呪24) 10만 번을 외우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내고 大悲呪 呪力修行을 하게 되었다.
처음 4개월 보름 동안에 大悲呪 십만 번을 마치고, 두 번째로 3개월 보름동안에 다시 십만 번을 해나가던 어느 날 大悲呪 呪力을 하다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達磨大師를 친견하게 되었다. 그 때 달마대사께서 筆者에게 이르시길, “그런데 너는 念佛할 때 입으로만 하지 말고 소리를 觀하면서 염불을 해라.” 하시면서 2층 종각으로 데려갔는데, 가서 보니 거기엔 우리가 초등학교 때 보았던 학교에 매달린 작은 鐘 정도 되는 것들이 두 줄로 14개가 매달려 있었다.25) 달마대사는 그 사이를 지나가면서 “한편으로는 종채로 종을 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종소리를 들으라”고 하시면서 시범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나서 꿈을 깨었는데 너무도 생생하게 기억이 되살아나서 메모를 해두었다. 메모를 하면서 보니, “소리를 觀하라”는 말을 한자로 쓰니까 ‘觀音’이 되었다. ‘觀世音菩薩’을 약해서 ‘觀音菩薩’이라고 부르는데, 우리가 보통 이해하기로는 ‘觀世音菩薩’은 慈悲化身으로서 중생이 괴로워하는 소리를 觀하여 서른 두 가지 應身을 나투어 그 苦難을 구제해주는 보살이라고 「楞嚴經」을 통해 익히 알고 있지만, 자신이 염불을 하면서 그 소리를 들으면서 수행을 하면 쉽게 一心不亂이 되어 스스로 觀音菩薩이 되어 감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부터 입으로는 대비주를 외우고 귀로는 그 소리를 들어가면서 수행을 하다보니 잡념망상이 덜하여 공부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세 번째는 2,000년 5월에 전남 강진군 도암면 萬德山 白蓮寺에서 중국의 寬淨禪師(이후 寬淨이라고 약칭함)26)와 인연이 되어 30여 차례의 法門 통역을 맡으면서 ‘淨土禪’27)을 배우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이 수행법도 예전에 達磨大師에게서 꿈을 통해 전해 받은 “소리를 觀하면서 念佛하는 수행법”과 契合이 되었다.
이번엔 寬淨의 語錄에 해당되는 拙譯, 「극락은 있다」에 실려 있는 “淨土禪이란 무엇인가?”관한 「阿彌陀佛의 說法」과 「觀世音菩薩의 說法」의 내용을 소개하려 한다.
「阿彌陀佛의 설법」
九品蓮花를 다 돌아본 뒤에, 우리들은 또 아미타불 앞에 五體投地로 三拜를 올리고 가르침을 주시길 간절하게 청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미타불께서 金口로써 매우 신중하게 한 구절 한 구절씩 말씀해 주시길, “衆生의 佛性은 한결같이 평등한데, 意識이 뒤바뀌어 환상을 진실로 여기고, 因緣果報로 인하여 六道에 生死輪廻가 끊이지 않아서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四十八願 가운데는 중생을 제도하는 誓願이 있으니 男女老少가 信[신심]․願[발원]․行[실천]을 一心不亂하게 하면 그것이 곧 淨土禪이며, 이것이 곧 十念이며, 결정코 왕생하게 되는 것이다.28)
“耳根圓通稱名念佛法이란, 여타 수행법들의 번쇄함을 다 떨쳐버리고 간소화하여 다만 ‘나무아미타불’ 한마디 名號만 사용하면서 耳根圓通法을 곁들여서 一心不亂으로 無念의 境地에 도달하여 解脫涅槃을 성취한다”고 하는 수행의 원리를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耳根圓通稱名念佛法’에서도 기본적으로 一心으로 염불하여 無念의 境地라는 念佛三昧를 갖추어야 念佛禪이 된다는 것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念佛禪 수행법으로 稱名念佛法, 參究念佛法, 觀念念佛法, 耳根圓通稱名念佛法 등의 念佛禪 修行法을 살펴보았다. 이들 각각의 수행법들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난 것은 마음을 一心不亂하게 하여 念佛三昧에 들어가야 念佛禪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一心不亂과 三昧를 갖추지 못한 염불이라면 그것은 단순한 善業을 짓는 정도의 念佛修行에 불과한 것이지 念佛禪이라고 말하기엔 곤란하다. 따라서 단지 염불하는 방법이 다르다고 해서 念佛禪이 되기도 하고 안되기도 한다고 주장하면 그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왜냐하면 설사 觀念念佛이나 參究念佛을 택하여 가부좌 자세로 앉아 阿彌陀佛을 觀念하거나 參究하면서도 온갖 번뇌 망상과 昏沈에 빠져 있다면 그것은 念佛禪을 닦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산란한 마음으로 단지 善業을 닦고 있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念佛禪」이란 위에서 제시한 여러 가지 念佛修行法 중에서 자신의 여건과 취향에 맞는 念佛法을 선택한 다음 “마음을 念佛에 집중하여 一心不亂이 되게 하고서 無念의 경지에 도달하여 解脫涅槃을 성취하는 禪修行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5. 金陀의 「菩提方便門」에 나타난 念佛禪
「菩提方便門」은 金陀가 禪定 중에 感得한 碑銘의 金石文으로, 「菩提方便門」의 碑尾文에 ‘龍樹菩薩(B.C. 2~3세기)’이라 쓰여 있었으며, 「菩提方便門」을 得持한지 三十二日만에 得見本性하였던 珍本이다.29) 따라서 이것은 龍樹菩薩이 著述한 論書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으며, 見性悟道의 方便이 되는 가르침인데,30) 그 原文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菩提方便門」
위의 菩提란 覺의 義로서 菩提方便門은 見性悟道의 方便이라. 定慧均持의 心을 一境에 住하는 妙訣이니 熟讀了義한 후 寂靜에 處하고 第一節만 寫하야 端坐正視의 壁面에 付하야 觀而念之하되 觀의 一相三昧로 見性하고 念의 一行三昧로 悟道함.
心은 虛空과 等할새 片雲隻影이 無한 廣大無邊의 虛空的 心界를 觀하면서 淸淨法身인달하야 毘盧遮那佛을 念하고, 此虛空的 心界에 超日月의 金色光明을 帶한 無垢의 淨水가 充滿한 海象的 性海를 觀하면서 圓滿報身인달하야 盧舍那佛을 念하고, 內로 念起念滅의 無色衆生과 外로 日月星宿 山河大地 森羅萬象의 無情衆生과 人畜乃至蠢動含靈의 有情衆生과의 一切衆生을 性海無風 金波自湧인 海中漚로 觀하면서 千百億化身인달하야 釋迦牟尼佛을 念하고, 다시 彼無量無邊의 淸空心界와 淨滿性海와 漚相衆生을 空·性·相 一如의 一合相으로 通觀하면서 三身一佛인달하야 阿(化)彌(報)陀(法)佛을 常念하고, 內外生滅相인 無數衆生의 無常諸行을 心隨萬境轉인달하야 彌陀의 一大行相으로 思惟觀察할지니라.
위의 「菩提方便門」의 序頭 부분을 살펴보면, 여기에서는 「菩提方便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제목 설명과 그리고 見性悟道의 方便門인 이것을 어떻게 觀하고 念하는지에 대해 觀의 一相三昧로 見性하고 念의 一行三昧로 悟道한다고 하여 見性悟道의 方法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菩提方便門」은 見性悟道의 方便門이고, 定慧雙修의 妙訣이며 觀의 一相三昧로 見性하고 念(sati)의 一行三昧로 悟道하는 것으로 禪淨一如의 念佛禪 要訣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一相三昧와 一行三昧에 대한 말은 經典의 理論的 指針에 의해 禪觀을 실천했던 初期 禪宗의 禪수행 중심에서 「文殊說般若經」의 一行三昧를 根據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四祖 道信(580~651)은 「入道安心要方便法門」에서 一行三昧를, 六祖 慧能(638~713)은 「六祖壇經」의 「付囑第十」에서 一相三昧와 一行三昧에 대해서 역설하고 있고, 「禪關策進」의 「諸經引證節略」에서도 「文殊般若經」을 引用하여 一行三昧의 功德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6. 念佛禪 修行의 次第
一相三昧(正見確立․阿彌陀佛보따리)
↓
一行三昧(耳根圓通法․呪力法 ․光明觀 등으로 念念相續)
↓
念佛三昧(不念自念․靜中一如→動中一如→夢中一如→寤寐一如)
↓
到無念(滅盡定․百尺杆頭進一步)
↓
明心見性(解脫涅槃․無上正等覺 )
願我盡生無別念 阿彌陀佛獨相隨 心心相繼玉毫光 念念不離金色相 我執念珠法界觀 虛空緯繩無佛貫 平等舍那無何處 觀求西方阿彌陀 南無西方大敎主 無量壽如來佛 南無阿彌陀佛
Ⅲ. 結論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念佛禪 修行法을 考察하면서 念佛禪이란, 여러 가지의 念佛法 중에서 자신의 여건과 취향에 맞는 修行法을 선택한 다음, 마음을 念佛에 집중하여 一心不亂이 되게 하고서 無念의 경지에 도달하여 解脫涅槃을 성취하는 禪修行法임을 밝히고, 念佛禪의 효시와 念佛禪 修行方法들을 소개하였으며, 中國 禪師들의 念佛禪 그리고 韓國 禪師들의 念佛禪까지 살펴보았다.
그 과정에서 어떤 한 가지 修行法을 가지고 닦아나갈 때 雜念妄想과 昏沈에 빠져있으면서 외형적으로만 禪수행을 하고 있는 경우는 禪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문제가 있으며, 이러한 형식적인 방법만 가지고 念佛禪인지 아닌지를 주장하는 것은 再考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어진다. 왜냐하면 禪이라는 用語를 사용하려면 기본적으로 一心不亂․三昧․惺寂等持․無念 등의 조건을 갖추었을 때 가능한 것이며, 이러한 조건을 갖추고서 念佛을 하면 念佛禪이 되는 것이고, 話頭公案을 가지고 수행을 하면 看話禪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初期 禪宗의 四祖 道信에서부터 시작하여 宋代 永明延壽에 의해 강조된 禪淨一如의 念佛禪 사상은 元代에 와서 看話禪과 융합하여 參究念佛法으로 발전을 가져왔으며, 이러한 禪淨一如 사상은 우리나라에서도 高麗의 光宗朝에 法眼宗 永明延壽 門下에서 수학한 승려들에 의해 流入되어 하나의 家風을 형성하여 太古, 懶翁, 涵虛, 西山, 四明, 金陀, 淸華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는데 그 중에서 高麗末 懶翁의 念佛禪과 朝鮮時代 西山의 念佛禪, 그리고 近代 金陀의 「菩提方便門」에 나타난 念佛禪을 살펴보았다.
金陀의 「菩提方便門」은 이러한 가르침들을 會通한 것으로 眞如自性을 여의지 않는 實相念佛이자 觀念念佛이며, 四祖 道信과 六祖 慧能의 禪法을 계승하여 禪淨一如의 念佛禪을 제시한 가르침이라 생각되며, 또한 佛敎 諸宗의 融合과 禪淨一如의 흐름을 하나의 修行法으로 體系化시킨 가르침이라 생각된다.
오늘날은 모든 정보와 문명의 혜택을 공유하면서 급변하는 지구촌 시대이기 때문에 佛敎에서도 諸宗의 融合은 시대적인 요청이며, 禪淨一如의 念佛禪 修行法은 時機相應한 수행법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이 念佛禪 修行法이 大衆的적으로 널리 보급되기 위해서는 보다 쉬운 行法의 개발과 알기 쉬운 理論體系, 修行體系, 點檢體系가 조속히 마련될 필요성을 알게 되었다. 성불하십시오.
1) 主觀과 客觀세계를 想生(主觀思惟)․相生(客觀世界)․流注生(主觀과 客觀세계의 變化無常) 등 三種生으로 나누어 그 하나 하나를 否定해가는 수행법을 말함.
2) 스승으로부터 주어진 話頭公案을 생각하면서 坐禪을 행하는 禪을 말함.
3) 禪은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敎外別傳이라 하여, 고요하고 묵묵히 앉아서 모든 생각을 끊고 좌선하는 것을 말함.
4) 雲門文偃이 수행자의 물음에 대해, 항상 一字로서 대답하면서 지도했던 것을 말함.
5) 마음을 念佛에 집중하여 一心不亂이 되게 하고서 無念의 경지에 도달하여 涅槃을 성취하는 禪을 말함.
6) 宗密著, 「禪源諸詮集都序」, (大正藏, 48), p.399上. “禪是天竺之語 具云禪那 中華飜云思惟修 亦云靜慮”
7) 金東華著, 「禪宗思想史」, (寶蓮閣, 1985), p.16.
8) 金東華著, 「禪宗思想史」, (寶蓮閣, 1985), pp.16~17.
9) 金東華著, 「禪宗思想史」, (寶蓮閣, 1985), pp.17~18. 참조.
10) 印鏡, 「禪淨一致에 관한 思想史的 考察」, 「大覺思想」 3, (대각사상연구원, 2000). pp.174~175. 참조.
11) 梁扶南國三藏曼陀羅仙譯, 「文殊師利所說摩訶般若波羅蜜經」卷下, (大正藏 8), p.731上中. “文殊師利白佛言 世尊 當云何行能速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佛言 文殊師利 如般若波羅蜜所說行 能速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復有一行三昧 若善男子善女人修是三昧者 亦速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文殊師利言 世尊 云何名一行三昧 佛言 法界一相 繫緣法界是名一行三昧 若善男子善女人 欲入一行三昧 當先聞 般若波羅蜜 如說修學 然後能入一行三昧 如法界緣 不退不壞不思議 無礙無相 善男子善女人 欲入一行三昧 應處空閒 捨諸亂意 不取相貌 繫心一佛 專稱名字 隨佛方所 端身正向 能於一佛念念相續 卽是念中能見過去未來現在諸佛 何以故 念一佛功德無量無邊 亦與無量諸佛功德 無二不思議 佛法等無分別 皆承一如成最正覺 悉具無量功德無量辯才”
12) 釋正覺著, 「楞伽師資記」, (大正藏, 85), pp.1286下~1287上. “善男子善女人 欲入一行三昧 應處空閒 捨諸亂意 不取相貌 繫心一佛 專稱名字 隨佛方所 端身正向 能於一佛念念相續 卽是念中能見過去未來現在諸佛 何以故 念一佛功德無量無邊 亦與無量諸佛功德無二不思議 佛法等無分別 皆承一如成最正覺 悉具無量 功德無量辯才”
13) 淸華譯, 「淨土三部經」, (을지출판사, 1994), p.55. “諸佛如來是法界身 入一切衆生心想中 是故汝等想佛時 是心卽是三十二相八十隨形好 是心作佛 是心是佛.”
14) 無念處는 阿彌陀佛 一念이 지속되다 어느 순간 그 일념마져 끊어진 我空․法空의 상태에 도달함을 말함.
15) 「答妹氏書」, 「懶翁和尙語錄」, (韓國佛敎全書 6), p.728. “阿彌陀佛在何方 着得心頭切莫忘 念到念窮無念處 六門常放紫金光.”
16) 淸華譯, 「淨土三部經」, (을지출판사, 1994), p.327. “舍利弗 若有善男子善女人 聞說阿彌陀佛 執持名號 若一日 若二日 若三日 若四日 若五日 若六日 若七日 一心不亂. 其人臨命終時 阿彌陀佛 與諸聖衆 現在其前 是人終時 心不顚倒 卽得往生 阿彌陀佛 極樂國土.”
17) 「與藤岩和尙」, 「鏡虛集」, (韓國佛敎全集, 11), (동국대학교출판부, 1992.), p.593. “看話門中 說惺寂等持 必能見性 念佛門中 說一心不亂 決定往生 一心不亂 豈非惺寂等持耶 若以一心不亂 以爲他力 惺寂等持 豈非他力 若以惺寂等持 以爲自力 一心不亂 豈非自力 夫然則 一心不亂與惺寂等持 果孰遲孰速 孰難孰易乎”
18) 인간의 행동을 4종류로 분리한 것으로, 즉 가는 것(行)․머무는 것(住)․앉는 것( 坐)․눕는 것(臥)으로 일체의 행동이 포함된다.
19) 印鏡, 「蒙山德異의 念佛話頭法 成立에 관한 一考察」, 「韓國佛敎學」 26, (韓國佛敎學會, 2000), p.441. 「蒙山和尙念佛話頭法」, “南無阿彌陀佛 於十二時中 四威儀內 舌根不動 心念不昧 念者是誰 時時檢點 返照自看 此身虛假 不久死去 堂堂爛壞 念者歸何處 如是用功 日久月深 自然不離色身時 卽到西方 得見阿彌陀佛 千萬更著精彩 發勇猛心 勿令間斷 自有到家時節 毋忽.”
20) 坪井俊映著, 韓普光譯, 「淨土敎槪論」, (홍법원, 1993), p.126. 참조.
21) 筆者는 本考에서 소개하고 있는 세 차례의 경험과 「楞嚴經」에 나오는 「耳根圓通法」의 典據를 들어 그 수행방법과 의미를 살려서 ‘耳根圓通稱名念佛法’이라고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22) 耳根圓通이란 六根 가운데 가장 靈敏한 耳根(귀의 감각기관)을 활용하여 三昧에 들고서 깨달음을 성취[圓通]하는 修行法을 말한다.
23) 1997년 5월부터 2,000년 9월까지의 3년.
24) 「千手經」에 나오는 「神妙章句大陀羅尼」를 말함.
25) 종이 매달린 모습은 다음과 같음.
○ ○ ○ ○ ○ ○
○ ○
○ ○ ○ ○ ○ ○
26) 寬淨禪師(1924~)께서는 중국에서 近代 四大名僧 가운데 한 분인 虛雲禪師(1840~1959)의 제자로 1967년 10월부터 1974년 4월 8일까지 6년 5개월 동안 觀世音菩薩의 引導를 받아 극락세계를 參觀 하면서 ‘淨土禪’을 배우고 阿彌陀佛로부터 사바세계에 전하라는 부촉을 받은 不可思議한 체험을 하신 분이다. 현재는 中國 福建省 仙遊縣 滴水岩寺에 적을 두시고 전 세계로 다니면서 '淨土禪'을 傳하고 있는데, 우리 나라와는 1997년 봄에 인연이 되었으며, 그 동안 수차례에 걸쳐 往來하시면서 ‘淨土禪(耳根圓通稱名念佛法)’을 傳하고 있다.
27) 寬淨은 淨土와 參禪을 함께 닦는다는 의미로 ‘念佛禪’을 ‘淨土禪’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불교의 여러 經論에서 ‘念佛禪’이라는 用語는 찾아볼 수 있지만 ‘淨土禪’이라는 用語는 어떠한 經論이나 「佛敎大辭典」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이와 같이 ‘淨土禪’이라는 말은 寬淨禪師께서 처음 쓰는 말이기도 하고, 또한 淨土禪은 念佛禪 修行法의 한 方法에 해당하므로 本考에서는 「耳根圓通稱名念佛法」이라고 표현하고 있음을 밝혀 둔다.
28) 拙譯, 「극락은 있다」, (붓다의 마을, 2002), p.232. 「阿彌陀佛開示」 “九品蓮花, 參觀完後, 我們又回到阿彌陀佛的跟前, 我跪在阿彌陀佛面前, 拜了三拜, 誠心懇切地求祂給我開示. 不一會, 自阿彌陀佛金口中, 一句一句, 十分愼重地給我開示:“衆生佛性, 一律平等, 意識顚倒, 以幻爲眞, 因緣果報, 六道生死, 輪廻不斷, 苦痛萬千. 四十八願, 誓度衆生, 男女老幼, 以信․願․行, 一心不亂, 是淨土禪, 就是十念, 決定往生”
29) 空閒山人 編著, 「碧山閑人 秘密心契」, 「碧山禪要」 上卷, (能顯禪院, 1993), p.280.
30) 淸華禪師 法語集Ⅱ, 「圓通佛法의 要諦」, (聖輪閣, 1993),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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